들불의 여정을 당신과 함께합니다 📓 매번 마감을 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겁에 질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원하는 무언가로 살지 못하더라도 그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내가 꿈꿔온 나'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나'로 살 수 있을 거라는 낙관이 어쩌면 더 오래 쓰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멀리 나아가고 싶다.- '작가의 말' 중 💭 오늘 소개할 『이완의 자세』 는 공중목욕탕인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엄마 오혜자, 그리고 그 딸인 김유라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엄마 오혜자가 사파이어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서 경기도 외곽의 선녀탕으로 도망치듯 쫓겨내려온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적지 않은 빚을 얻게 된 엄마는 조부모에게 빌린 돈으로 선녀탕의 때밀이 자리를 사는데요. 모두가 그렇듯, 처음부터 엄마에게 이 일이 능숙치는 않습니다. 그런 엄마는 프로 때밀이가 되기 위해 매일 밤, 나를 눕혀놓고 열심히 연습합니다. 엄마가 연습을 통해 프로 때밀이가 되어 가는 동안, 연습 대상이 되어야했던 나는 추위와 아픔, 수치와 모멸감을 견뎌야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 커서도 누군가 몸을 건드리면 긴장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곤 합니다. 소설은 짤막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특히 좋았던 이야기는 오회장의 에피소드입니다. 암에 걸려 오른쪽 유방을 잃게 된 오회장은 수술 이후에도 투병 전과 마찬가지로 여탕에 드나드는데요. 처음엔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던 오회장의 상처도 모두에게 점차 익숙해져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것을 징그럽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오회장의 출입 이후, 이상하게 여탕에 유방암 수술을 한 여자들의 출입이 늘기 시작합니다. 세신사인 엄마가 신체의 한 부위나 장기 일부가 없는 손님이라는 이유로 할인해주는 법은 없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어떠한 제약이나 구별 없이 여탕에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깨닫습니다. 여탕이 온갖 사람들이 구별없이 드나드는 곳처럼 개방되어 있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멀쩡한, 너무도 멀쩡한 몸을 가진 사람들만 자신 있게 벌거벗은 채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가족 서사 중에서도 유독 모녀 간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습니다. 모녀 간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엄마와 딸 사이에 공유되는 감정이 비슷한 듯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또 그만큼 서로에게 전해지지 않는 무언가가 많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이 어쩌면 그 간극을 조금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엄마를 향한 원망과 미움으로 하루를 보내다가도, 이런 책을 읽고나면 엄마의 마음 한 구석도 조금은 이해하고 싶어지니까요. 들불의 추천 한마디 도통 '나'로서 존재하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그 속에서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건지,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각인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죠.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다보면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싶어지잖아요. 그런데 아쉽게도 전염병의 창궐로 목욕탕 방문은 요원하기만 한데요.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힘을 쭉 빼고 별 생각 없이 살아본 날이 언제인지 까마득한 분이라면 특히 좋아하실 거예요. 책이 선사하는 온기에 여러분의 몸 구석구석이 충분히 숨쉴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의 들불이 만난 이야기 마칩니다. 💬 "원장쌤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어. 춤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는 뜻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한다고도. 요즘에는 계속 그 말이 생각나." Curator’s Comment: 이 소설,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답하자면, 그런 책은 아닙니다. 경직된 어깨와 굳어버린 듯한 척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저는 언제나처럼 이미 늦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저에게 가장 익숙한 자세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OO동의 대중목욕탕’ 또는 ‘△△동의 사우나’를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알리는 뉴스에서 보고는 합니다. 김유담 소설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에서 썼던 원고를 코로나 시국에 고쳐 쓰면서 소설 속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했는데요. 이야기의 안과 밖에서 편안하게 빠져들만한 자기만의 욕조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불도 꺼지지 않는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흘러가는 매일의 시간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혜자가 김유라에게 “이 일은 생각이 많으면 못 한다”라고 한 것 처럼요. 📕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 / 아이린 파드빅, 바버라 레스킨 노동 분야에서 나타나는 젠더 불평등 현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이 책은, 성차별 현상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밝힘으로써 우리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요. 노동의 정의부터 가사 노동에 대한 편견들, 고용, 승진과 소득의 불평등까지 고루 살피고, 더 나아가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정책과 제도, 인식과 태도의 측면에서 알아보는 책입니다.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인식해왔지만, 누군가가 '왜 여성의 임금은 더 낮고 승진은 어려울까요?' 라고 물었을 때 선뜻 답하기 어려웠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우리의 사람들 /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인터내셔널의 밤』 등을 집필한 박솔뫼 작가의 소설집입니다.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박솔뫼의 독특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를 특히 도드라지는 책인데요. 긴 호흡의 문장과 짧은 호흡의 문장이 교차하며 펼쳐지는 장면에서는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조용히 숨을 몰아쉬게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박솔뫼의 세계에서 탈락해버릴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요. 📕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 김현미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를 쓴 김현미 교수의 신간입니다. 이 책은 '줌마네'에서 2018년 5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강연 '일상의 여성학 : 인간적인 노동과 삶을 위한 일상의 재배열'의 결과물입니다. 통합된 인격체로서 일, 활동, 소비, 친교 등에서 페미니즘적 일관성을 갖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단일한 사상 체계가 아니며, 특정 시간과 공간, 경제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개인의 자율과 집단으로서의 결속 사이에서 구성되는 관점, 입장, 실천임을 말해주는 책이에요. 윤리적인 입장에서 누구와 무엇을 모색해야할지, 내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분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좋은 참조점이 될 책인 것 같습니다. 👏 들불이 글담출판사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과 <산이 좋아졌어>, 이 두 권의 책을 지원해드리는 형태로 독서모임을 운영할 계획인데요. 위 두 책을 함께 읽어보고 싶다면, 들불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시고 새로운 소식을 기다려주세요! 🔥 들불은 3월의 북클럽 프로그램을 준비중입니다. 3월 8일에는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기념 독서회도 열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이번 주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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