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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케이팝 응원봉 걸스』 를 통해 한국 사회의 사회운동 및 정치 지형이 변화하기 위한 실마리를 발견하고, 응원봉 시민의 정치적 주체성을 구체적으로 의미화했습니다. 레터 하단의 도서 증정 이벤트도 꼭 참여해보세요! 🔥 추운 날씨에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 시작해보겠습니다.
📚 들불이 만난 이야기(+도서 증정 이벤트)
- 『케이팝 응원봉 걸스』, 구구, 일석, 희주 (클레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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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4년 12월 7일 국회 앞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 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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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계엄 선포 이후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 1년의 시간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는 여러 기획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다양한 기사 중 인상적인 몇 개의 기사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 기사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현 정부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공론장에서 이른바 '응원봉 시민'에게 마이크가 쥐어지고 있지 않으며, 광장에서 많은 응원봉 시민들이 염원했던 '성평등'을 여전히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는 문제의식 역시 반영되어 있습니다.
저는 위 기사들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한편, 기사의 관점에는 의문을 표하고 싶습니다. 응원봉 시민을 주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아 정치적 무력감을 학습하게 만드는 현실정치에 대한 타격과 별개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존재들에 집중하기보다 우리가 광장을 통해 어떠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이후 응원봉 시민들이 어떠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장이 열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저 '응원군'에 불과하지 않았냐는 분석이 도리어 응원봉 시민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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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은 지난 해 9월, 2주에 걸쳐 〈케이팝 하는 여자들〉 토크(이하 케하여)를 진행하였습니다. '케하여'는 케이팝 소비자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여성의 목소리가 케이팝 산업 및 문화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기획된 행사였습니다. 당시 '케하여'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줄곧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오던 들불 채널에서 돌연 케이팝 이야기를 시작한 까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온 케이팝 팬들의 힘이 앞으로의 시민사회운동과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소비자 정체성을 갖고 폭력적인 요구를 일삼는 케이팝 팬들을 비판합니다. 그러한 비판은 팬들을 취약하게 만드는 산업에 대한 분석이 선행된 후에야 적절하게 제기될 수 있습니다. 케이팝 문화 내에서 아이돌을 향한 지나친 요구, 팬덤 내에서 팬들 간 자행되는 사이버불링, 굿즈 소비를 부추기는 문화, 아이돌과 팬이 각각 수행하는 감정 및 돌봄 노동과 그로 인한 피로 등 케이팝의 많은 문제들은 대체로 엔터사를 주축으로 한 산업 내 권력자 혹은 자본가들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은 우리의 가까이에 있는 팬들에게서 쉽게 발견되기 때문에, 일반대중은 '아이돌 팬들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케이팝 문화 내 문제들에 단순하고 납작하게 접근합니다.
다른 방향에서 케이팝 팬을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케이팝 팬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조심해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케이팝 팬들의 상당수가 아이돌을 향한 혹은 한 멤버를 향한 사랑으로 케이팝 문화를 향유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한 '케하여'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돌을 지키고, 그 안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이라는 가치를 믿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서기로 맘 먹은 팬들을 만났습니다. 케이팝 산업과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무언가 변화시키기로 맘 먹은 팬들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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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친구가 응원봉에 붙이고 온 '탄핵' 스티커 © 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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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현재의 페미니즘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가요? 저는 페미니즘이 어느 시점부터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movement)으로서의 페미니즘의 가치가 힘을 잃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주장은 "페미니즘은 끝났다!"는 식의 비관적인 분석이라기보단,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 우리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며,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인 우리에게 어떠한 성찰이 필요한지, 또 이를 운동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 어떠한 전략을 가져야 할 지에 대한 질문에 가깝습니다.
제가 가장 문제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페미니즘이 현재를 긍정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방식으로 호출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예컨대, 페미니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은 ~이며, 앞으로 ~한 (긍정적인)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보다는 피해자가 발생했고, 해당 사안에 긴급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여성/소수자를 잃을 수 있다는 내용과 같이 폭력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현 상황에 대한 간절한 부름에만 반응하는 방식으로 페미니스트가 조직력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사회운동의 메시지 전략 차원에서 페미니즘은 위기와 부정적 상황에 초점을 두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돌봄 담론과 같이 넓은 범위에서의 비전을 제시하곤 있으나 페미니스트 시민들은 이를 자신의 일상과 만나는 구체적인 경험으로 끌어오는데 일정 부분 실패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 페미니스트가 된 이들 중에는 페미니즘의 '부흥'을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정확히는 여러 진보적 의제의 중심에 페미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한다는 자명한 사실에 어떻게 모두를 도달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탐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광장의 어둠을 몰아냈던 '응원봉'의 존재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에게는 공개방송, 콘서트 참여를 통한 돌봄의 경험이 있습니다. 또, 현장의 성격은 다르지만 집회와 유사한 방식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시위 문법을 바꾸는데 크게 일조할 수 있었죠. 준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기존의 진보 진영 집회 분위기에 반전을 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응원봉 시민의 역할이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흥겹게, 그리하여 지속가능한 광장으로 만든 주역이 이들이었죠. 우리는 이들에게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한,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서로 연결되고 싶은 의지와 만나는 흐름을 확인하고, 그러한 경험이 시민사회 문화의 역동을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친구랑 "나 지금 2구역 2열이다"하고 웃기도 했어요. 준비물 챙겨서 공개방송(이하 공방) 뛰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농담하면서요. 집회 갈 때 챙긴 핫팩, 방석, 담요는 공방 갈 때도 다 챙기는 것들이거든요. (...) 공방에 가면 현장에서 휀걸들은 당연하게 바닥에 있는 존재로 취급돼요. (...) 근데 집회에서도 바닥에 앉더라고요. 바닥에 앉는 게 익숙하니까 어려울 게 없었어요." (p.134, 《케이팝 응원봉 걸스》)
또, 응원봉 시민이자 케이팝 팬인 이들에게서 우리는 낙관과 사랑에 기반한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응원봉은 사랑이 미래를 낙관하게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적인 애정에 기반한 개인주의적 욕구로 분석할 수도 있겠으나, 달리 본다면 사랑의 힘을 폄하하거나 간과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랑을 중심에 두고 행동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로서의 접근도 가능합니다.
페미니즘 운동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출발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하는 사랑을 모두 사회운동의 모양에 끼워넣을 수는 없겠지만, 사랑과 사회운동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사랑의 힘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사랑을 매개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존재들을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주체로 호명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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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응원봉 걸스의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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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친구가 보내온 사진 © 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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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동력으로 이루어지는 혁명과 이로 인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잠재력에 대해서는 앞으로 꾸준한 분석과 전략이 필요할텐데요. 그에 대한 분석과 전략 수립에 앞서 살펴보면 좋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케이팝 응원봉 걸스》 입니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 곳곳에서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선 여성들이 품고 있는 사랑과 그것이 발휘한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팝콘은 다크비의 멤버 '해리준'이 본인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냐는 희주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 시위 현장에서 "최애야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라고 적힌 깃발을 봤는데요. 마음이 찡했어요. 저 역시 '해리준 널 위해서 내가 찬 바닥에 앉아 시위를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쨌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케이팝도 제대로 굴러갈 테니까요. 제가 공방이나 콘서트장에서 흔들던 응원봉을 굳이 광장까지 들고 나간 건, 해리준이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p.144, 《케이팝 응원봉 걸스》)
또, 집회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요.
"(...) 응원봉을 들면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분명해지고, 이 자리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의미 있다고 생각했죠." (p.132, 《케이팝 응원봉 걸스》)
더불어 샤이니의 팬(샤월)인 인터뷰이 솜눈은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주었던 샤이니의 멤버, 종현에 관한 이야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 종현이라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광장에 함께했으리라 믿고, 그런 종현이를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기에 나선 분, 또 종현이라면 분명 정의를 위해 광장에 나온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했을 거라고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 샤월로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샤월이 사는 방식이자 종현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이겠죠." (p.113, 《케이팝 응원봉 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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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응원봉 걸스〉의 저자 일석, 구구, 희주 (왼쪽부터 순서대로)와 보아, 엔시티 위시의 앨범 및 굿즈들
© 클레이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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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닙니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는 팬덤 문화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참고서 중 하나이며, 케이팝 문화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동을 다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 '엔시티 퀴어'라는 이름의 엔시티를 좋아하는 퀴어 팬 모임을 조직하여 활동했던 연혜원 연구자(《퀴어돌로지》 저자), 이달의 소녀 팬덤 '오빛'으로서 한을 먹고 있는 안희제 연구자(《망설이는 사랑》)의 대담과 더불어 보아 응원봉(아별봉)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일석과 팬덤 경험과 한국 현대사의 국면을 교차하며 이해해본 구구의 에세이까지 케이팝 문화와 팬덤이 갖는 정치성을 두루 분석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케이팝을 잘 모르는 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케이팝 단어 사전도 부록으로 실려 있으니, 광장의 응원봉 시민의 출현과 그들이 갖는 정치적 주체성을 이해해보고 싶은 분들은 주저말고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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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응원봉 걸스》와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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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응원봉 걸스〉 북토크
"계엄 1년 후, 응원봉 시민을 말하다"
응원봉을 든 케이팝 팬들의 구체적인 얼굴과 그들이 품은 사랑의 힘을 확인하고자 인터뷰를 결심한 세 사람, 구구·일석·희주의 북토크가 열립니다. 북토크에 오셔서 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부터 최애를 향한 사랑, 나를 드러내는 용기, 그리고 서로 연결되고 싶은 의지까지 여러 모양새의 마음을 담아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 여러분의 정치, 사랑,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더해주시길 바랍니다 ❤️
- 일시: 12월 10일(수) 저녁 7시
- 장소: 알라딘빌딩 1층(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89-31)
- 참가비: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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