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의 키워드 : 공정 공정은 매년 정치권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주요한 키워드였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 중요성이 특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준석의 엘리트주의 주창에서 시작된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지, 과연 능력주의는 진짜로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왔는데요. 모든 것을 개별 역량(능력)에 따라 결정해야한다는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공정은 무엇이고, 공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한 걸까요? 오늘은 3권의 책을 소개하며 우리가 개선해나가야 할 이 나라의 불공정을 짚어보고, 공정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 1.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제정임, 곽영신 엮음 공정에 대해 언급하자면 여러 카테고리가 있겠지만, 최근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지역 문제입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경향신문에서는 <절반의 한국> 연재기사에서 팽창이 가속되고 있는 수도권과 소멸 직전의 지방의 사정을 소개하며,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일자리, 문화예술인프라 등의 문제들을 심층분석하기도 했는데요.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비영리독립언론 <단비뉴스>가 2019년 2월부터 지역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연재한 '지방대 위기와 혁신' 시리즈 기사를 엮은 책으로, 지방대와 지방대생을 혐오하는 한국의 현재를 조명했습니다. '지잡대'라는 표현을 통한 사이버 폭력 수준의 지방대 혐오와 노동시장에서 지방대생이 받는 불이익,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2등 시민으로 취급 당하는 지방대생들의 처지를 다루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고조된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관한 논쟁까지도 다루고 있는데요. 1부에서 각종 통계자료와 인터뷰 사례를 통해 한국사회의 지방대 혐오 문제와 교육 전반의 쏠림 현상을 분석하는 한편, 2부에서는 1부의 분석을 토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제안을 합니다. 💬 "최근 한국사회에서, 특히 청년층에서 왜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을까? '헬조선' 'N포세대' 라는 말이 드러내듯 한국사회에 세습과 경쟁으로 인한 불평등이 심해지는데, 교육·일자리·주거 등 주요 민생 분야의 자원 배분 시스템이 도무지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게임의 규칙'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이다. 즉 전쟁 같은 학력·학벌, 일자리 경쟁을 그대로 두고 입시제도 같은 것을 이리저리 바꾸는 게 아니라, 현실 그 너머의 교육 시스템을 상상하고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공정과 평등, 정의의 가치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교육 기회와 자원 배분 원리를 다원화하고 누구도 소외받거나 차별받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만듦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지방대생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공정한 교육을 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다." (p.287) ![]() 2. 『능력주의와 불평등』, 이유림 외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가 지방과 지방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논의를 다각도에서 조명한 책입니다. 1부에서는 능력주의의 산실인 시험과 학교에 대한 고찰을, 2부에서는 다양한 주제별 담론들을 다루었는데요. 특히 2부의 「뛰어난 여성들은 자신의 파이를 구할 수 있을까」(이유림)는 최근 몇년간 트위터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담론,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마카롱', '덕질' 비용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야망보지' 운동에 대한 소고입니다.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위 담론에 대해 저자는 청년-여성이 페미니즘을 요청하게 된 배경과 야보힘(야망 보지 힘주기) 프로젝트가 지닌 감각을 유래시킨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분석하고, '능력 없음'과 '능력 있음'을 규정하고 세분화하는 권력이 주목하는 개인의 개별적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우리 사회는 이에 어떻게 응답해야할지 고찰합니다. 💬 "능력주의의 사다리를 타고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은 페미니즘이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며, 우리는 능력에 따른 노동을 하고, 노동에 따라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사회를 1차적인 평등의 감각으로 상정할 수 있다. '나는 내 파이를 찾겠다'는 디지털 페미니스트의 선언은 분배의 불평등성, 즉 파이의 측정과 분배의 과정이 남성 성원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그런데 사실상 불평등한 파이를 해체하고 나의 파이를 되찾기 위해서는, 평등하지 않은 방식으로 파이에 연루되어 있고, 얽혀 있고, 상호작용하고 있는 구조를 드러내야 한다. 특정한 능력이 특정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능력 자체에 차등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체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자생하는 페미니즘과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의 만남 혹은 충돌 등 한국 사회의 젠더 지형의 변화를 분석한 논문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페미니즘 정치성을 조명한 글로, 디지털 페미니즘으로 명명되는 '야보힘 프로젝트'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입니다. ![]() 3. 『차이의 정치와 정의』, 아이리스 매리언 영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하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입니다. 이 책은 집단의 구별과 부정의를 '차별'이 아닌 구조적인 '억압'으로 설명하며,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착취, 주변화, 무력함, 문화제국주의, 폭력)이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주의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서술합니다. 특히 7장 「적극적 차별시정조치와 능력이라는 신화」에서 영은 혜택을 분배하는 데 있어 능력주의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일은 복잡하고 다면적이어서 그 직무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성과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결과물(혹은 생산물)은 노동자들이 협동해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각 개인이 기여하는 바를 식별해내는 것이 무척 어렵고, 상급자가 실무자의 기술적 업무의 성과 그 자체를 평가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노동자의 태도나 규칙 준수 등의 사회적 품행이라는 평가 지표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근거로 삼습니다. 💬 "위계적 노동 분업 구조 안에서 능력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특권이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그들이 평가하는 사람들보다 상위에 자리하는 게 보통이다. 이들의 평가 기준은 직업상의 기량과 성과만을 중립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기존의 특권, 위계질서, 예속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순응의 규범들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미국 사회에서 특권의 위계질서는 명백하게 인종 차이, 젠더 차이, 여타의 집단 간 차이에 의해서 구조화된다. 그래서 평가자들은 대부분 백인 이성애 비장애 남성인 경우가 많고, 이들이 평가하는 타 집단들의 대상자들도 이성애 비장애 남성인 경우가 많다." (p.436) 이 달의 번역가
정 소 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대사들 1·2』,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돌 세 개와 꽃삽』, 『전쟁과 가족』, 『유도라
웰티』, 『진 리스』, 『권력의 문제』, 『핵 벼랑을 걷다』, 『일곱 박공의 집』 등이 있음.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세라 오언 주잇,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샬럿
퍼킨스 길먼, 케이트 쇼팽, 윌라 캐더, 이디스 워턴, 수전 글래스펠, 버지니아
울프, 캐서린 맨스필드, 엘런 글래스고, 조라 닐 허스턴 저, 정소영 옮김)
여성 작가가 집필한 작품을 여성 번역가가 엮어내고 번역하여 하나의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정말 멋지지 않나요? 이 멋진 책이 바로 이달의 번역가 정소영 님을
소개하기 위한 첫 번째 책 『실크 스타킹 한 켤레』입니다. 페미니즘이 출판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향으로
자리 잡으면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여성 번역가가 번역하는 것이 이제는 매우 새롭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번 작품처럼 여성 번역가가 번역 그 자체뿐만 아니라 번역할 작품을 선정하는 데까지 관여했다는 것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겨보았습니다.
아무래도 19-20세기에 쓰인 작품이다 보니 내용이
대단히 파격적이거나 놀라운 깨달음을 안겨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옛날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현대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지점이 많습니다. 이를 두고 정소영 번역가는 사실 이 작품이
쓰인 때와 우리 시기의 삶의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통해 지금은 고착되어 제대로 보기 힘든 사회의 여러 면모를 오히려 새롭게 볼 수 있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예컨대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를 읽으면서는 『제인 에어』 속 다락방의 미친 여자 혹은 더욱 일반적인
가스라이팅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를 통해서 오늘날의 비혼주의를 떠올리게 됩니다. 표제작인 케이트 쇼팽의 「실크 스타킹
한 켤레」에서는 나를 위한 가치 있는 소비가 얼마나 긍정적인 힘을 가지는지 한 번 더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의미에 재미까지 있는 10개 작품을 읽는
동안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 여성의
지위와 남성의 지위 그리고 그들 사이의 우위, 여성다움 혹은 여성성,
여성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가사 노동과 가정 내 폭력 등 2021년 현재까지도 실마리조차
풀리지 못한, 어쩌면 더 복잡해지기만 한 여러 주제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번역가님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경험이 ‘답이
없다’고만 생각하고 한 켠에 미뤄둔 중요한 문제들에 다시 한번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그랬듯, 어쩌면 무기력을 겪고 계실 여성 독자분들께 이 책이
새로운 사고의 힘을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 함께 보면 더 좋아요 💖
국내 번역되어 있는 위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이외에도
자유로이 찾아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덧. 세라
오언 주잇, 수전 글래스펠, 앨런 글래스고의 작품은 아직
여성번역가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어요. 앞으로의 여성 번역가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메리 읽고 씀. 🐚 메리 :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번역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한 달에 두 번 번역 덕분에 읽을 수 있는 여성 서사를 소개합니다. 여성 서사가 모두의 것이 되는 날을 바랍니다. ![]() ▶시리즈 특징 : 을유세계문학전집의 각 도서에는 작품 해설과 저자 연보가 실려있습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작품 속 해설은 해당 도서를 번역한 옮긴이가 작성하여 원문에 보다 더 깊이있는 접근을 시도하는데요. 해설을 통해 원문이 쓰여진 시대적·역사적 배경 등을 보다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록처럼 실려있는 저자 연보는 저자의 일생을 성기게나마 따라가볼 수 있으며,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이해하는데 용이한 역할을 합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은 수집가인 제가 얼마 전부터 모으기 시작한 시리즈입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과의 첫 만남은 『프랑스어의 실종』(아시아 제바르) 전자책이었는데요.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찾아 읽었던 책이에요. 이후 시몬 드 보부아르, 이디스 워튼 등 제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들의 책이 근간으로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종이책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에 보다 더 많은 여성작가의 책이 전집에 포함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제가 수집한 책 3권을 소개해보겠습니다! 💁 👓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아주 편안한 죽음』은 『제2의 성』으로 유명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암에 걸린 엄마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되면서 여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 특성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화자인 '나'가 깨닫게 되는 여정을 그린 책이에요. 딸과 엄마의 관계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법인데, 엄마가 죽음과 가까워지면서 알고 싶지 않았거나 오랫동안 외면해 온 엄마의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마주하는 일을 겪게 되니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그로 인해 '나'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물망초』는 요시야 노부코의 대표작으로 소녀들 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한 책입니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프롤로그에서 작가로 추정되는 제3의 화자가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분류한 학급 내 그룹들에 대해 소개를 하는 부분인데요. 무성영화 시기의 변사처럼 책의 간단한 설정을 유쾌한 어투로 설명해주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짧은 설명만으로도 각각의 그룹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고, 이후 이어지게 되는 전개에 필요한 정보들로 구성되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또, 주요 등장인물인 아이바 요코, 사에키 가즈에, 그리고 유게 마키코의 성격의 차이가 보여주는 온도차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소녀들의 관계 뿐 아니라 일본의 남존여비사상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꼬집는 책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딸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와 남아선호사상을 드러내는 가부장적 장치의 묘사를 통해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버너 자매』는 이디스 워튼의 작품 「버너 자매」와 「징구」, 「로마열」 세 작품을 엮은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인 「버너 자매」는 앤 엘리자와 에블리나 두 자매의 비극적인 이야기예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두 자매 중 한 명이 결혼을 하게 된 이후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이 무척 괴롭고 슬픕니다. 진실을 직면한 이후에 자매 각각이 처하게 되는 상황 또한 절망적이어서 소설의 후반부에 진입하면서는 '아니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싶을 정도로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하고, 자매를 비참하게 만든 당사자에게 험한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기도 합니다. 비혼을 결심하고 계신 분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그 결심을 더욱 단단히 굳히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디스 워튼 특유의 섬세한 묘사(특히 궁상 맞고 비참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게 돋보이는 작품으로, 읽다보면 저절로 버너 자매의 상황에 과몰입한 스스로를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답니다!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카카오 뷰 @들불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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