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는 '만약 1990년에 사라진 여자들이 모두 태어났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땠을까?'같은 질문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집단 행동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보다 우선 집단 구성원의 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대선 결과를 통해 다시금 확인했기 때문인데요.
오늘 들불레터는 1990년, 미신으로 인해 허망하게 사라져야했던 여자들을 떠올리며 '만약의 세계'를 그려보았습니다. '만약'이라는 글자로 남아버린 그들을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해보겠습니다.
🔥 들불의 PICK
-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황모과
- 『남성 과잉 사회』, 마라 비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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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인 주인공 채진리는 태어나던 날 엄마를 떠나보내고, 빵집을 운영하는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진리의 학교 생활은 절친인 해라와 예준, 연인인 훈우로 인해 따뜻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도 잠시, 새 학기를 맞아 들뜬 마음으로 등교를 하던 2007년 3월, 쿵 하는 진동과 함께 알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진리의 삶은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진리의 같은 반 친구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남학교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 파(훈우, 종혁 등)와 남녀공학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 파(여자애들 전원, 예준, 계수 등)로 나뉘게 되고, 또래 남자아이답지 않게 감수성이 풍부했던 훈우는 전과 다른 모습으로 진리를 마주합니다. 믿기지 않는 변화 속에서 진리는 '열여덟 살 이하 여자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내용'의 인터넷 게시글을 보게 되는데요. 이 글의 의미를 되새길 겨를도 없이 진리의 눈 앞에서 여자아이들만 선택적으로 사라지게 되고, 점차 떠난 아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진단 걸 깨닫게 됩니다. 무언가 잊어간다는 것은 알겠는데, 무얼 잊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말입니다.
진리는 친구들을 찾아 나섭니다. '동네 지킴이'라는 어깨띠를 두른 아저씨가 자신을 향해 '오류'라고 말하고, 반 친구들이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후려치며 괄시하고, 모두가 서로를 서로의 적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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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지킴이 아저씨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건별로 정리 중이야. 예외적인 오류라 시간이 좀 걸리나 봐.
너희들 말이야. 원래 세계에는 없었던 애들. - p.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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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말띠 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백말띠로 불렸다.
사주니 팔자니 얘기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개념이었다.
십이간지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나라들 가운데서도
한국에만 존재하는 육십갑자라는 연도 표기법이 근거였다.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고 사납다고 여겨졌다. 그 바람에 그해 여아 출산이 기피되었다.
성 감별이 불법인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
1990년에는 여아를 낳을 바에야 안간힘을 써서 출산을 꺼린 거였다. (...)
그해에 태어난 여자는 모조리 드세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 p.196-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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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 인구정책, 어제와 오늘 (국가기록원)
- 아래 :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제공 (PN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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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 작가의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속 시점은 1990년과 2007년입니다. 1990년은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고 사납다'는 미신에 의해 여아선별낙태가 이루어지던 시기로, 출생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이라는 아픈 기록을 남겼던 때입니다.
그럼 소설 속 2007년은 어떤 의미가 있는 해일까요? 바로 출생성비 인플레이션이 자연성비 수준으로 돌아오게 된 시점입니다. 한국에서 출생 성비 불균형이 심화된 것은 1980년대부터였습니다. 가파른 속도로 출생 성비 격차가 발생하면서 1990년이 되어 정점을 찍었고, 이후 2007년이 되어서야 여자 아이 100명당 남자 아이 출생자가 106.1명으로 25년만에 자연 수준으로 돌아오게 되었죠.
이야기는 2007년의 세계로부터 조력을 받은 1990년의 진리가 그 해 사라진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러한 SF적 상상력은 출생성비가 자연상태에 가까운 정도로 유지되었던 2007년의 상황이 1990년에도 적용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가정을 품고 있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채진리는 1990년과 2007년 두 시점을 삐삐와 냉장고를 매개로 오가며 친구들을 구하고자 분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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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여아선별낙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7년, 의료법상 태아 성감별을 불법행위로 규정했지만 의사들은 태아의 성별을 직접 알려주지 않고 우회하는 방식으로 보호자에게 알렸고 선별낙태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법원은 1996년 성감별을 한 의사와 조산사를 적발해 면허 정지 처분을 내렸고, 이후 2010년,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기에 성별을 알려주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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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더 할걸, 학위를 딸걸, 외국에 나갈걸, 결혼하지 말걸, 여행을 더 다닐걸, 일찍 집을 살걸......
가지 못한 길, 하지 못한 일은 모두 후회로 남았다.
이렇게 살다 인생이 통째로 후회 덩어리가 될 것 같았다.
(...)
이영은 아이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
이영에게 낙태는 자신의 선택이고 자기 삶을 우선할 권리였다.
- p.131-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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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영은 1990년, 출산 문제로 고민에 빠집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남편 채필림은 아기 옷을 핑크색으로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에 잠깐 실망하지만, 이내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둘째를 아들 낳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영은 이 말에 격노하며 윗세대와 다를 바 없는 고리타분한 인식을 가진 남편에게 실망합니다. 이후 이영은 계속해서 일과 양육을 두고 고민합니다. 엄마로 사는 일이 어떤 모험일지 궁금하지만, 한편으론 남동생과 남편을 생각하느라 자기 삶을 우선할 수 없던 그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며 울적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이영은 임신중절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1970~80년대에는 빈곤 문제로 인해 국가에서 임신중절을 독려했고, 임신중절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임신중절과 관련한 논의가 점차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죠. 하지만 국가적 논의에서 나타난 변화와 달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임신중절이 상당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최이영은 태아가 여아이기 때문에 임신중절수술을 결정하는 그 시대의 보편적 선택과 다르게 오로지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신의 선택으로 임신중절을 결심하는 인물입니다. 최이영이라는 캐릭터의 등장은 자칫 임신중절이라는 결정이 여성 스스로의 주체적 선택이 아닌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휩쓸려 내리게 되는 외부 유인으로 인한 결정으로만 치부될까 염려한 작가의 배려처럼 느껴지는데요. 최이영의 존재는 부모님과 남편의 강요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신중절을 택해야했던 여자들에 대한 위로이자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출산과 양육의 세계로 진입해야했던 여자들을 향한 응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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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존율의 악화는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하지만 방치된 문제 중 하나다."
- 아마르티아 센(인도의 경제학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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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성감별'을 통한 성비불균형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과잉사회』의 저자 마라 비슨달은 자연출생성비라고 알려진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의 균형이 깨져버린 여러 지역을 분석하며 성비불균형과 관련한 문제들을 자세히 살핍니다.
성비 불균형 위험국가는 중국과 타이완, 싱가포르, 베트남 등의 동아시아와 인도, 파키스탄의 남아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의 서아시아에 걸쳐있습니다. 아시아에선 성 감별로 사라진 여아의 수가 1억 6300만명에 달할 정도이며 그 수는 미국의 전체 여성 인구수를 넘는 수치라고 하는데요.
이 책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한국의 사례도 등장합니다. 저자는 한국이 '2007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출생 성비를 기록하며 이전에 성비 불균형이 나타났다가 성별 선택 낙태를 일소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되었음'을 알고, 한국의 변화에 대해 듣기를 기대하며 한국에 방문합니다. 한국에서 저자는 통신회사 중간급 관리자인 캐서린 민을 만나는데요. 놀랍게도 그는 '아들을 낳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캐서린 민은 아들을 낳고 싶은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일을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영향력 있는 자리에는 오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 위에 있는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고 유교와 연결된 문화적 가치로 생활에 뚜렷한 제약을 받는다. 수명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한국 여성들은 여전히 질병율과 스트레스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는 최희란의 논문을 인용하며, 한국의 상황은 인구 조절에 있어 비틀린 형태를 띠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정부의 정책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 영향을 주지 못했고, 이에 출생률은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더 이상 출생 성비는 거의 소용없게 되었다고 말하죠. 또, 출생성비가 맞춰진 결정적인 이유는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만 낳길 원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백은정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의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서구 조직들이 기여한 바는 없으며 성 인지 정책들로 북돋워진 '초기 단계의 전환'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의미가 없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또, 저자는 성비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문제를 '호르몬'에서 찾습니다. "남성과잉은 사회 전체의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폭력성의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하죠. 테스토스테론은 남녀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남성에게서 훨씬 다량으로 분비되며 태아 발달 초기 단계에서 태아에게 남성적 특성을 부여하는 호르몬인데요. '테스토스테론은 폭력 범죄를 조장할 뿐 아니라 반달리즘, 공격성, 모험심, 기본적인 규범 위배 같은 다른 반사회적 행동과도 관련이 있으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나온 남성은 장물을 매매하거나 악성 부채를 지거나 교통위반 외의 범죄로 체포되는 경향이 더 많다'(p.272-273)고 말합니다. 즉, 남성과잉은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재앙이며,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이외의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례를 알고 싶거나 '남성과잉사회'가 초래할 인류의 재앙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현 인류에겐 절망 뿐인 미래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우리 종을 영속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노력한 책이라는 점에서 작은 희망이나마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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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사회학자 변화순에게 같은 질문(정부 정책이 여성의 지위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 변화순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평가하기 위한 유엔개발계획의 지표상으로 한국은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지만 여성권한지수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p.316
(한국의) 엘리트층에서는 성별 선택 낙태가 1990년대의 조잡한 방법으로 일축되며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녀의 성별을 조작하는 데 관심 있는 부모가 많다. 낙태는 더는 성별 조작에 필요한 방법이 아니다. 서울의 번화가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소현은 "오늘날에는 체외수정 기술 덕분에 부모들이 여러 유형의 태아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 가능해요"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원하지 않는 태아(원하지 않는 성별의 태아)를 없애달라고 요청하죠.
딸들을 지울 수 있어요. 아들은 남기고요."
-p.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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