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책은 주디스 휴먼과 크리스틴 조이너의 『나는, 휴먼』입니다. 『나는, 휴먼』은 장애 인권을 위한 주디스 휴먼의 긴 투쟁을 다룬 책으로, 각 챕터가 투쟁의 시기별로 분류되어있습니다.
<1부 뉴욕 브루클린, 1953>에서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어머니와 주디의 투쟁 그리고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한 소송 등을 다룹니다. 주디는 교육위원회와 싸우기 전, '나에게 권리가 있었던가' 두려워하며 자문(p.88)합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자신이 형편 없는 교사로 평가받게 된다면 자신의 실패가 만천하에 드러남은 물론 장애가 있는 사람은 누구를 가르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강화될까 우려했기 때문이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로 한 자가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속한 그룹의 대표로 호명되고, 이로 인해 현미경으로 관찰당하듯 시시각각 파헤쳐지는 것에 대한 우려로 자신의 권리 주장마저 포기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디는 이러한 부담감을 마음 한 켠으로 밀어두고 자신이 지금 해야할 일에만 집중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긴 싸움 끝에, 교사 면허를 취득하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믿는 일이 항상 일을 쉽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내 몸을 채우는 강렬한 공포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이 싸움을 할까?" - 『나는, 휴먼』, p.89
<2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77>에서는 의회가 제안한 재활법 개정안의 504조를 규정에 서명을 받기 위한 투쟁을 그립니다. 그들이 많은 어려움에도 끝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504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내에서 제7조 제6항의 장애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는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
장애인들의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한 이 조항이 여러 분야에 걸쳐 확대된다면 장애인들이 겪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음은 자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와 보건교육복지부 장관 조지프 칼리파노는 당선 당시(1976년 말) 504조에 서명할 것을 약속한 후 1977년 4월까지도 서명을 미뤘고 장애인들의 의견 또한 계속해서 묵살했죠. 이에 장애인들은 504조 도입을 위한 투쟁에 돌입하기로 합니다. 주디와 동료들은 '504조 회생 위원회The Committee to Save 504'를 조직하고, 전국에 있는 보건교육복지부 사무소를 중심으로 단체 시위를 계획합니다. 시위대는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 앞 광장에서 '504조에 서명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수어로 표현합니다. 이윽고 시작된 연설에서 에드 로버츠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실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불가능한지만 보려 하지만요. (...)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명심하십싱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 일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직 우리 자신만이 우리에게 옳은 일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나는, 휴먼』, p.140
훌륭한 연설로 감화된 시위대는 기세를 몰아 연방 보건교육복지부 지역 사무소장으로 표시된 사무실로 돌진합니다. 이후 시위대는 건물을 점거하고, 한 달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농성에 돌입합니다. 점거농성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장애인이 밤을 새기 위해선 활동 보조가 필요한 것 이외에도 다양한 약 복용, 카테터(체내에 액체를 주입하거나 빼내기 위해 사용하는 관 모양의 기구)를 교체하거나 욕창을 막기 위해 수시로 자세를 바꿔주어야 하는 일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밤샘을 자원합니다. 주디는 시위가 길어짐에 따라 조직을 개편할 필요성을 깨닫고 시스템을 정비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일은 진행하지 않겠다는 주디의 뜻에 맞추어 민주적으로 진행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보건교육복지부를 대표해서 온 아이덴버그와 청문회까지 진행한 주디는 칼리파노에게 504조 서명을 보다 더 강하게 요구하기 위해 대표단을 꾸려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DC에서도 주디와 동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처음으로 집회를 한 날로부터 24일째 되는 날,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대한 칼리파노의 서명을 받아냅니다.
<3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81>에서는 504조를 이해하고, 구체화하고, 시행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조직했던 주디의 고민들이 담겨 있습니다. 주디는 자립생활센터에서 많은 일을 관장하며, 해외의 동료 활동가들과도 긴밀히 관계를 맺습니다. 이 때 주디는 첫 유럽 여행으로 독일을 가게 되는데요.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인 주디는 독일에서 유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침묵과 회피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침묵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임을, 고집스럽게 할 말을 하고 끈질기게 듣는 사람임을 떠올리며 자신의 방식으로 불평등에 대항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미국장애인법 통과를 두고 여러 반대 운동을 맞닥뜨리지만, 주디는 정부를 감시하고, 추적하고, 그들이 책임을 다하며 일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한편, 주디는 여성 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여러 차례 분노하고 좌절합니다. 함께 일해 온 동료인 에드는 남자로서 실수도 하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만 여전히 책임자의 자리에 있는 반면, 여성인 주디와 다른 동료들은 매번 옳은 일을 하고, 수천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며 모든 약속을 지켰음에도 책임자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도 하고, 자신에게 '화났냐'고 묻는 사람들에 보며 여성이 화를 내는 것이 왜 올바르지 못하다고 여겨지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하면서 말이죠. 주디는 이러한 내적 갈등 속에서 때로 두려움에 휩싸이고, 변화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남편 호르헤의 말('한번 해봐요. 당신은 친고나chingona*(스페인어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뜻)니까요.')과 여러 동료들의 존재를 통헤 용기를 내기로 합니다.
이후 주디는 교육부의 특수교육 및 재활 서비스국(OSERS) 차관보 자리에서 근무하며 최전선에서 평등을 외칩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하던 기간 내내 주디는 엄청난 부담감에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자신의 목표인 '권력을 나누는 것, 듣는 것, 협력하는 것'에 몰두하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주디스 휴먼의 『나는, 휴먼』은 주디가 주도하거나 동참해 온 투쟁의 기록인 동시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가져야할 자세를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주디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p.300-301). 여러분은 지금 나 자신과 가족, 사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누구와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있나요? 『나는, 휴먼』을 통해 보다 더 평등한 사회로의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왜 우리는 장애를 인간의 다른 여러 측면과 달리 보는가? 돌이켜 보면, 504조 농성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우리는 공통의 목표, 우리 모두가 함께 추구하는 목적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 각자가 어떻게 말하고 움직이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초월하여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했다. 우리는 포용성과 공동체, 평등과 정의에 대한 사랑을 옹호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 『나는, 휴먼』, p.289
* 친고나를 어반딕셔너리닷컴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고 합니다. "친고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여자들이다. 그들을 화나게 하지 마라. 화나게 했다가는 당신의 엉덩이를 걷어찰 것이다." (p.2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