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3월 8일 진행되는 여성파업의 목표와 의의를 소개하고, '노동' 문제와 관련한 책들을 소개하였습니다. 또, 페미니스트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인플루언서인 타라-루이제 비트베어의 신간을 소개하며, 오랜 시간 이어져온 여성혐오의 역사가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 봅니다. 오늘 레터 하단에는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도서 증정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 드려요 💌
✊ 들불 캐비닛
-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
- 『애프터 워크』, 헬렌 헤스터, 닉 스르니첵 (소소의책)
- 『뒷자리』, 희정 (포도밭출판사)
-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히니 (이르비치)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도서 증정 이벤트)
-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프런트페이지)
-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잭 홀런드 (ㅁ(미음))
- 『여성 선택』, 마이케 슈토베로크 (에코리브르)
|
|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이미지 출처: 3.8 여성파업 사이트) |
|
|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에서도 '여성파업'이 진행됩니다. 이번 여성파업에서는 노동자가 겪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이를 격파하는 것을 목표로 총 다섯 가지의 요구안을 제시하는데요. 여성파업 5대 요구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성별임금격차 해소
- 돌봄 공공성 강화
-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 최저임금 인상
여성파업은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운동입니다. 1975년 벌어졌던 아이슬란드의 여성파업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죠. 지난 해 6월 14일에는 스위스에서는 1991년, 스위스 여성들이 최초로 일을 중단했던 '프라우엔슈트라이크(여성파업)'을 기념하고 그 뜻을 이어 받는 여성파업이 일어나 30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또, 폴란드에서는 2016년 임신중지법 개악에 맞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여성파업을 벌였고, 개악안을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요.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는 파업에 한국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조직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사실 한국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 줄곧 회원국들 중 성별 임금격차 1위를 차지해왔습니다. 또,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여성 고용률은 51.2%로 남성 고용률인 70%에 비해 낮을 뿐 아니라 OECD 회원국 평균(61%)보다도 크게 낮은 수치를 기록했죠.
또, 돌봄 공공성 측면에서도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공공기관 소속의 돌봄 노동자들이 돌봄이 필요한 시민에게 필요한 제도들을 연계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인데요.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사회서비스원 역할을 민간기관 조력자로 축소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회서비스원은 "영유아보육, 노인요양, 장애인 지원 등 사회서비스와 사회복지 영역에서 공공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 논의되어 온 시설입니다. 사회서비스원은 '돌봄'의 공적 책임을 정책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기관입니다. 가정 내 구성원, 특히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돌봄 수행을 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 등의 특성을 가진 돌봄노동의 문제와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여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죠. 구체적인 역할로는 지자체의 돌봄 노동자 직접 고용, 돌봄 파견 서비스, 장기요양 서비스, 장애인 활동지원, 발달장애청소년 활동 지원, 돌봄 공백 지원, 공공어린이집 운영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전국 16개 시도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중앙정부 지원금을 전액 삭감시키고, 이를 민간 시장에 다시 맡기고자 정책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시장 실패를 개선하고자 공적 영역으로 관할이 이전되었던 서비스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애초에 설립취지와 맞지 않을뿐 아니라, 그 인프라를 축소시킬 수 있어 가뜩이나 모자란 돌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입니다.
노동권 보장과 관련해서 최근 자주 논의되었던 건 아마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이야기일텐데요. 이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노동권에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공공보육교사, 중증장애인, 사서노동자,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노동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 관한 기사가 매일 같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권 보장 문제 역시 무척 시급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3.8 여성파업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비단 여성과 성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모두를 억압합니다. 차별과 억압의 양상이 다를 뿐,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착취는 모두에게 적용되죠. 그러니 함께 해주세요! 노동자계급의 의제를 공표하고, 차별과 착취를 뿌리 뽑는 투쟁에 함께 할 때, 노동문제 해결의 큰 걸음을 뗄 수 있을 거예요.
🔥 3.8 여성파업 본대회 참가 방법
- 여성파업대회 일시: 3월 8일 금요일 오후 12시 20분
- 장소: 보신각(서울 종로구 종로 54)
- 개인 참가자는 여성파업 깃발 아래 모여 함께 행진합니다!
|
|
|
연차, 반차, 조퇴 등 다양한 형태로 여성파업에 동참할 분들을 위해 '노동'과 관련한 몇 권의 책을 소개해 보려고 해요. 행진에 함께 할 수 없다면, 집에서, 회사에서 이 책들과 함께 투쟁을 외쳐 주세요! |
|
|
김그루, 박희정, 이은주, 이호연, 홍세미 지음
(코난북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한화오션과 케이조선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명의 구술생애사를 담은 책입니다. '조선소'라는 특수한 현장에서 분투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업의 실태를 파악하고, 해고의 공포와 임금 동결 등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임하는 여성노동자의 의지를 살필 수 있는 작품입니다. |
|
|
박다솜 옮김 (소소의책)
《애프터 워크》는 '일'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탈노동사회'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작품입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주로 남성 위주의 산업에 집중해왔습니다. 반면, 사회 재생산 노동인 가사노동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된 논의를 나누지 못하고 있죠. 이렇듯 노동 억압적인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공동 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 세 가지 핵심 개념을 가지고 모두가 탈노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
|
|
희정 지음 (포도밭출판사)
사회적 변혁이 일어났을 때, 주목을 받는 건 언제나 앞장서서 투쟁을 이끌어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앞과 뒤, 모두의 자리에서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현장에서 소수자와 노동자들의 싸움을 목격해온 희정 작가가 이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뒷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집단소송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 용화여고 ME TOO 투쟁에 함께한 이들을 조명하며 이들의 투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핍니다. |
|
|
노동 문제는 당연히 서울과 수도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 밖에서도 차별과 억압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한 환경에서 분투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죠.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는 지역 청년으로서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 활동가이면서 포항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노동자 히니가 쓴 책입니다. 지방 청년 여성의 일자리, 경북을 대표하는 기업인 포항제철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지역의 노동 문제를 당사자의 시선에서 조명합니다. |
|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구매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프런트페이지)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지음, 김지유 옮김
'문화비평'은 1990년대 이후 익숙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각종 매체와 지면에서 자신을 문화비평가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늘었고, 대중 역시 그들의 작업을 '직업'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죠. 문화비평가들은 '비평'을 일종의 정치적 수행이라 여기며 전체적인 관점에서 개별적인 문화 현상을 바라보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다만 문화비평이 부흥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와 지금은 그 방식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문화비평이 주로 글을 통해 텍스트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작업이었다면, 현대의 문화비평은 영상, 그림 등을 넘나들며 기존의 고정된 형태를 허물고 있으니까요. 또, 지금의 문화비평가들은 대중시장 안으로 뛰어들며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방법론을 연구한 엘리트들만이 해내던 작업에서 벗어나 새롭게 연루되는 비평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특히 괄목할 만한 변화는 '숏폼'을 통한 대중문화 비평입니다. 글이 아닌 영상이 세상을 읽는 주요 매체로 자리 잡은 지금, 숏폼을 통해 대중에게 사회문화 전반을 이해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낯설지만 중요한 변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은 최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 콘텐츠 크리에이터, 타라-루이제 비트베어와 그의 책에 관해 이야기하며,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바라보는 이 시대의 여성혐오와 이에 대한 인플루언서 페미니스트의 관점을 살피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
|
사진: 타라-루이제 비트베어의 틱톡 계정(@wastarasagt) |
|
|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의 저자 타라-루이제 비트베어는 1990년생 페미니스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현재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합쳐 60만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글로벌 인플루언서입니다. 자신의 전공인 문화학을 대중문화와 미디어 분석에 접목시켜 비평하고, 이를 통해 페미니즘 대중화에 힘쓰고 있죠.
그가 하는 작업은 요즘 말로 '인포테인먼트'라고 부릅니다. 인포테인먼트란,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이 합쳐진 말로, "어떤 정보나 사회적, 교육적 내용을 짧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해요. 리사 이오띠의 책 《8초 인류》에 따르면,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8초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효과적인 인포테인먼트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 8초만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짧고, 재밌게 만드는 게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당연히 8초라는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담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저자는 냉소적이고 비꼬는 방식으로 시선을 끌거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는 형태로 8초를 채우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영상에 무슨 정보값이 있냐고 투덜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로 영상을 꽉 채운 그의 얼굴에 드리운 여러 감정과 짧게 지나가는 자막들을 합쳐보며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구나'라는 예감을 느끼게 되고,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작은 결심을 품게 됩니다.
'숏폼'이라는 방식으로 대중과 동기화되는 작업을 해온 타라의 방식이 여전히 아쉬운 사람들에게는 그의 책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타라가 그간 해온 작업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경험과 대중문화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여성혐오를 낱낱이 해체하는 작업을 거치는 이 책은 현 세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저는 이 책을 '어깨 힘 빼게 만드는 책'이라고 부르며 주변에 추천을 하고 있는데요. 진지하고 엄격한 태도로만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한다고 믿는 저와 동료들에게 유쾌한 언어로 뻔하지 않게 던질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됐던 것 같아요. 사회운동이 방법의 측면에서 하나의 정론을 가지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했고요. 또, 그럼에도 여전히 틱톡보다는 텍스트가 익숙한 제게는 그가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경위나 작업들에 담긴 고충, 여성들의 관계나 그들을 향한 호칭 등에 대한 그의 관점 등을 엿볼 수 있어 정말 유용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
|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트위터(현 X)', '틱톡'이 자주 등장합니다. 타라가 그의 메시지를 위 두 플랫폼을 통해 적극적으로 발신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재미있는 점은 타라가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주로 '댓글'을 통해 여성혐오적 세계를 분석합니다. 자신의 틱톡 영상에 달린 댓글이나 엠버 허드에게 달린 악플을 보여주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자신의 책에 달리게 될 예상 별점과 리뷰를 가정해보며 작금의 세계가 처한 여성혐오의 현실을 까발리죠. 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욕성 메시지를 남기는 남성들을 '레온과 루카스'*로 통칭하며 하나의 현상으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넘쳐나는 '개소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여성혐오를 일삼는 자들의 반응에 주눅들거나 그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향한 공격과 비난을 완전히 드러내고, 그 문제점을 명확하게 짚어내죠. 가령, 기차에서 타라가 차지한 자리에 대해 한 남성이 불편해했던 상황(두번째 이미지)을 그는 남성이 한 집단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겪는 인지적 편향에 관한 틱톡 자료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가 발견한 콘텐츠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이 한 집단의 17퍼센트를 차지하면 마치 5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만약 여성의 비율이 33퍼센트까지 늘어난다면, 남성들은 그 집단에서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구성한다고 느낀다고 하고요. 이 자료를 소개하며 타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나는 무려 정확히 50퍼센트를 차지하려 들었으니 그 불쌍한 남성이 느꼈을 고통은 차마 헤아리기도 어렵다."(p.130)
* 타라는 자신의 계정에 들어와 악성 댓글을 다는 남성과 소년들의 이름 중에 레온과 루카스가 정말 많다고 이야기하며, 악성 댓글을 달며 남성에게 선택받는 일만이 여성에게 최우선 목표인 것처럼 취급하는 남자들의 태도를 '레온과 루카스'라는 현상으로 통칭합니다. |
|
|
사진: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 1의 포스터(왓챠 제공) |
|
|
또, 타라가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로 드라마 〈킬링 이브〉의 '빌라넬'을 꼽는 파트 역시 재밌는 부분입니다. 타라는 이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윤리적이고, 사회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분열되어 있지 않은 가정적이고 유능한 여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이코패스이자 소시오패스인 러시아 킬러 '빌라넬'이 자신과 닮았다고 고백합니다. 빌라넬은 "불안정하고, 시끄럽고, 막말하고, 오만하고, 비호감에, 공감 능력이 없고,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인물인데요. 빌라넬의 면면을 모두 가진 타라는 그를 보며 공감성 수치를 느낍니다. 선 또는 악으로 매끄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복잡한 존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지 않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타인의 마음을 사기도 하는 매력적인 존재, 사랑을 두려워하고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길 원하지만 한편으론 상처를 두려워하는 존재. 빌라넬이 가진 복합성은 타라가 살아온 삶을 통째로 대변할만큼 엄청난 것이었고, 타라는 그간 느껴온 답답함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사실 타라는 '네 자신의 삶을 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계속 막막하게 느껴왔거든요.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다운게 도대체 뭔데? 하는 기분에 휩싸인 거죠. 그러나 그는 빌라넬을 보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 '나'를 새로운 언어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
|
|
타라의 책 뿐만 아니라 외국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타라를 지칭하는 '페미니스트 틱톡커' 또는 '페미니스트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이 한국에서 얼마나 어색하고 낯선 것인지 생각해보면 조금 씁쓸해지기도 해요. 타라가 독일에서 많은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여성혐오가 사라진 세상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도달할 때면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슬픔 섞인 농담을 떠올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무수히 많은 가정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지금 여기'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타라처럼 자신의 필드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내며 분열된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여성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나이기를 받아 들이고 여성인 채로 존재하는 나 자신을 이해해주기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페미니즘 운동의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죠.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여성을 곧바로 좋아하고, 대단하게 여기고, 가부장적으로 판단 내리기를 거부한다. 놀랍게도 다른 여성들도 나를 그렇게 대해준다. 이제 나는 다른 여성들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들처럼 되길 원한다.나는 활발하고, 시끄럽고, 분홍색 때로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다양한 여자 친구 무리에 끼어 어울리고 싶고, 칵테일을 마시고, 쇼핑하고, 여성에 대한 온갖 진부한 편견을 따르거나 혹은 전혀 따르지 않고 싶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 판단, 성 역할에 따른 고정관념 그 너머의 존재다. 여자가 이래도 되냐고? 아니면 내가 여자치고는 제법 시끄럽고, 대담하고, 똑똑하고, 피곤하고, 재밌다고? 아니, 나는 나다. 그리고 나는 여성이다. 그게 전부다." (p.250-251) |
|
|
타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차별」에서 잭 홀랜드의 책 《판도라의 딸들》의 "여성 혐오의 역사는 오래된 만큼이나 유일무이한 증오에 관한 이야기며 아리스토텔레스와 잭 더 리퍼, 리어왕과 제임스 본드를 하나로 결속하는 역사다"라는 문장을 인용합니다. 이어 타라는 여성 혐오가 얼마나 오래된 역사인지 성경 속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근거로 이야기하는데요. |
|
|
《판도라의 딸들》은 북아일랜드의 정치와 테러리즘에 관한 논픽션을 주로 써 온 작가 잭 홀런드의 작품으로, 여성 혐오의 기원을 집요하게 파헤친 책입니다. 저자는 여성 혐오가 기원전 8세기 지중해에서 태어났다고 선언하며, 시인 헤시오도스에 의해 탄생한 '판도라 신화'가 여성을 죄인으로 만든 주범이라고 지적합니다. 또, 어떤 이들에 의해 페미니스트로 칭송 받는 플라톤과 사도 바울이 여성 혐오의 역사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지 조명하며, 여성을 향한 마녀 혹은 성녀의 이분법이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탄생한 것임을 짚습니다. |
|
|
마이케 슈토베로크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타라는 「레온과 루카스는 왜 나를 싫어할까?」에서 생물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마이케 슈토베로크의 저서 《여성 선택》을 언급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짝짓기를 할 때 선택권을 쥐는 쪽은 보통 암컷입니다. 인간 사회의 통념과는 상반되는 현상이죠. 타라는 인간 세계에서도 여성이 누구와 섹스를 할 건지 스스로 결정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가부장제가 도입되면서 그 결정권이 남성에게 이양되었음을 밝히며 안타까워 합니다. |
|
|
《여성 선택》의 제목인 '여성 선택'은 자연에서 여자가 섹스를 통제하는, 생명체의 번식 전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컷이 선택 받기 위해 경쟁하고 구애하며 암컷은 결정하는 이 원칙이 정착 생활을 하기 전 인간에게도 적용되었음을 밝히죠. 그러나 문명 사회의 등장으로, '여성 선택'이라고 불리는 생물학적 원칙이 부정 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남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명'이라는 게 허물어질 때, 세상의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이 책의 결론과 저자의 제안에서 동의가 어려운 지점이 꽤 있습니다만, 가부장제나 여성 억압을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
|
|
🎁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도서 증정 이벤트!
페미니스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타라-루이제 비트베어의 개인적인 경험과 통쾌한 문화비평이 담긴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를 총 다섯 분께 증정해 드립니다. 아래 응모 페이지 링크를 통해 응모해주시면, 3/12(화)에 당첨자 분들께 개별 연락 드릴게요. |
|
|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답니다! |
|
|
들불레터 지난화 다시 보기
친구에게 들불레터 추천하기 아래의 링크를 주변에 공유해주시면, 들불의 내일에 큰 보탬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