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 X 김영사 : 자궁 이야기 특집호
▪️ 들어가며: 한국에서 '자궁'에 관한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 영국의 조산사가 쓴 『자궁 이야기』
- 〈콜 더 미드와이프 Call The Midwife〉
▪️ 수정 : 〈그레이 아나토미〉와 적대적 자궁
▪️ 임신과 출산: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것
- 유튜버 해쭈가 밝힌 임신
▪️ 생식절제술: 성정체성과 자궁
- 부치의 자궁: 이반지하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 나가며: 여자들이여! 자궁에 대해 더 많이 떠들자!
▪️ 부록: 『자궁 이야기』와 『버자이너』, 어떤 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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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들불입니다.
오월의봄과 함께한 5.18 특집호에 이어 오랜만에 새로운 특집호로 돌아 왔어요. 김영사와 함께 한 이번 특집호에서는 3.8 여성의날에 맞춰 출간된 리어 해저드의 책 『자궁 이야기』를 함께 읽으며 '자궁'에 대해 심도깊은 탐구를 시도해보려고 해요 🔍 오늘은 특집호답게 분량이 꽤 긴 편입니다. 시간되실 때 찬찬히 읽으며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자궁을 함께 탐구해보시길 바랍니다!
🧐 들어가며: 한국에서 '자궁'에 관한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한국의 자궁 관련 질환의 발병률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질환인 자궁근종의 환자는 최근 10년새 급증하여 2010년 약 25만명에 달하던 수가 2022년 무려 60만명으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을 20대에서 40대까지가 차지하고 있고요. 또, 자궁내막증 환자는 2016년 약 10만명 가량에서 2020년 15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약 50% 정도가 늘어난 것이죠.
앞서 언급한 질환들은 이제 여성들 사이에서 제법 익숙한 질병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병명이나 증상 등이 널리 알려졌을 뿐, 여전히 어떤 병인지, 자궁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경우에는 발생 원인이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모호한 질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왜 우리는 질환이 생기고 나서야 자궁에 관심을 두게 되는 걸까요? 그 전에, 왜 자궁은 우리에게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걸까요?
아마 '자궁'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나 산부인과 방문을 주저하는 이유에 관한 사회문화적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로부터 학습 받은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가 산부인과에 가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주 말씀하셨거든요. 또, 이른바 '굴욕의자'라 불리는, 산부인과 진료 방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여성의 증상을 '진짜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는 의학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거나 증상이 없으니 딱히 필요를 못 느끼시는 분도 계실 거고요.
이처럼 우리가 자궁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만드는 외부 요인은 너무나도 많지만요, 이제는 자궁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 우리에겐 '자궁'을 탐구할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자궁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러 텍스트와 영상을 경유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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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산사가 쓴 자궁 이야기?
『자궁 이야기』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의 조산사인 리어 해저드Leah Hazard의 책인데요.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조산사'라는 직업은 왠지 옛날옛적의 '산파'를 떠올리게 만드니까요. 사실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조산사는 여성신체와 관련된 모든 의료적 처치를 하는 전문직입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산모가 산부인과 의사를 통해 출산하기 때문에 조산사라는 직업이 유명무실해진 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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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국의 인기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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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조산사는 조산학과에서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고 조산 기술 및 여성의학 전반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거쳐야 될 수 있는 직업입니다. 가정분만을 장려하는 영국의 특성상 조산사는 출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1950년대 런던 동부 지역의 조산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가 굉장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조산사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는 영국 가디언지의 발표도 있었고요.
『자궁 이야기』의 저자인 리어 해저드도 〈콜 더 미드와이프〉의 인기가 한창이던 2013년 정식 조산사가 됩니다. 그가 조산사가 되기로 결심한 건 첫째 딸을 낳으면서였는데요. 임신, 출산, 산후조리 중에 겪었던 어려움이 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열망을 자극한 것이죠.
* 〈콜 더 미드와이프〉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진짜 재밌어요! 시트콤 〈미란다〉로 유명한 미란다 하트도 나온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왓챠와 웨이브에서 보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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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궁 이야기』, 어떤 책인가요?
『자궁 이야기』는 자궁과 관련한 14개의 키워드를 각 챕터로 분류하여 깊이 있게 다루는 책입니다. 이 책은 조산사의 시각에서 자궁의 이모저모를 살피는데요. 신생아의 자궁부터 자궁을 둘러싼 의료학계의 게으르고 두루뭉술한 용어들, 수축, 진통, 제왕절개 등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폐경, 자궁절제술, 인공자궁 등 현대에 이르러 보다 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주제까지... 조산사로서의 경험과 의학적 전문 지식이 더해진 이 책은 그야말로 자궁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룹니다.
여성의 몸에 관한 책을 제법 읽었다고 자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요. 웬걸, 1장부터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가 나와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바로 신생아의 자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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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궁은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인데
여러분은 신생아의 자궁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자궁이라는 게 우리의 몸에 있다는 사실을 가장 강렬하게 의식하는 순간은 대체로 첫 월경 때 일거예요. 월경을 경험하지 않은 여자아이의 자궁에 대해 떠올리거나 말하는 건 왠지 조금 불경하고 꺼림칙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죠.
왜 꺼림칙할까요? 자궁은 그냥 기관일 뿐인데 말이죠. 리어 해저드 역시 이 점을 짚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자궁을 둘러싼 알 수 없는 감정들을 걷어내기 위해선 아기의 자궁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요. 우리가 자궁을 떠올릴 때 느끼는 불안, 수치심 같은 것들은 사실 젊은 여자와 소녀의 몸이 사회에 의해 성애화되어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자궁을 명료하고 탐구적이고 불편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기관으로서 아기의 자궁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신생아의 자궁과 자궁내막은 "출생 후 몇 시간 동안 모체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을 받지만", 호르몬의 점차적인 감소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바로 '거짓월경'(또는 가성월경)이라는 것인데요.
거짓월경이란 신생아가 겪는 작은 월경으로, "어머니의 임신 호르몬이 딸의 작은 자궁의 내막을 일시적으로 두꺼워지게 했다가 출생 후 어머니에게서 온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감소함에 따라 그 작은 내막이 떨어져" 나오는 (지극히 당연한) 생리현상을 의미합니다. 저는 정말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놀랐는데, 검색해보니 이와 관련한 많은 정보가 있더라고요. (거짓월경이 오래 지속되면 신생아도 질염에 걸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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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그레이 아나토미〉의 주인공 '메러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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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대적 자궁이라고?
저는 의학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여러 번 돌려볼 정도로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은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메러디스와 친구가 된 것처럼 함께 울고 웃으며 봤었죠. 메러디스는 주인공답게 정말 별 일을 다 겪습니다. 그가 겪은 일 중에는 우리가 여성으로서 공감할만한 사건도 많아요. 그 중 저도 크게 분노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바로 '적대적 자궁'과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7에서 메러디스는 유산을 경험하는데요. 유산의 원인을 알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는 뜻밖에 그 원인을 메러디스의 "적대적 자궁"으로 꼽습니다. 자궁이 적대적이라니... 자궁이 감정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인데요. 『자궁 이야기』에 실린 메러디스와 남편 데릭의 대화를 옮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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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이라고?" (...) "지금 내 자궁을 적대적이라고 한 거야?" "당신은 지금 말꼬투리를 잡고 있어." 데릭이 반박하면서 의사가 치료 계획도 제시했다고 말하지만, 메러디스의 감정은 가라앉지 않는다. "너는 의사가 네 음경이 화가 났다거나 비열하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메러디스는 격분한다. - p.108,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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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저자는 '적대적 자궁'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웃긴지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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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있다가 미친 듯이 킥킥거렸다. ... 그런 식으로 인격화된 다른 신체 부위를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궁이 손에 칼을 들고 있거나 손가락을 기폭장치에 올려놓은 모습을 상상했다. 내 자궁은 테러리스트였다." - p.111,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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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웃긴 표현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적대적 자궁을 가지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여성들은 당혹감과 자기의심을 느끼기 때문이죠. 저자는 이 말이 "이미 취약해진 여성을 심판하는 일종의 채찍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더 큰 혼란과 분노, 적대적 감정을 유발하며 환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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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튜브 '해쭈' 채널에 업로드된 〈임신 후 몸에 생긴 날것의 변화를 보여드리겠다〉 영상 썸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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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과 출산: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것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저 역시 너무나도 사랑하는 유튜버 '해쭈'가 얼마 전 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출산을 알리는 해쭈의 영상을 보며 저는 마치 제가 아이를 낳기라도 한 양 안도감과 기쁨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는데요(ㅎㅎㅎ)
해쭈가 사랑받는 이유는 정말 많겠지만, 그 중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솔직함'을 들겠습니다. 그의 솔직함이 돋보였던 영상 중 하나는 바로 임신 후 겪게 되는 변화를 소개한 영상이었는데요. 이 영상에서 해쭈는 겨드랑이와 엉덩이 밑살이 착색되고, 유두와 유륜이 엄청 커지고 까매진다고 밝혔어요. 또 임신 후 몸에서 쉰내가 난다고 이야기했고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임신에 관해 어느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상을 통해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단 걸 알았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변화는 아마 체중의 변화일겁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러한 체중 변화에 몹시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날씬하고 섹스를 할 수 있으며 가능한 한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몸"을 선망하기 때문이죠. 출산을 막 마친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는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저도 출산을 마친 친구들이 일터로 복귀하기 전 부랴부랴 다이어트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며 이러한 사회적 압박을 원망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국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사정은 비슷합니다. 『자궁 이야기』에서는 출산 후 튀어나온 배를 줄어들게 만들어 임신 전 몸매로 만들어주는 '복부 압박' 상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저자는 복부 밴드가 "골반 근육과 장기를 받쳐준다"는 건 적절한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임신으로 늘어나고 혹사당한 몸을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복부 밴드가 아닌 더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복부 밴드는 심지어 부작용을 낳기도 해서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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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블로거는 복부 밴드를 너무 열심히 착용하다가 골반 장기 탈출증을 겪은 경험담을 들려준다. 제니퍼 토메는 출산한 지 겨우 닷새 만에 배에 '후크와 링이 달린 밴드'를 여러 겹 두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배가 납작해졌기 때문이었다. 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증가한 오로와 끊임없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제니퍼는 산부인과 의사와 조산사를 찾아갔고, 골반 장기 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복부 밴드가 내 모든 장기를 압박했고, 그 때문에 방광이 아래로 밀려난 상태였다."" - p.265,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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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쭈가 올린 위 영상은 '노란딱지'를 받아 영상의 화제성만큼이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임신 후 생긴 변화를 이야기한 영상이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되어 수익 창출에 제한이 생긴 것입니다. 진짜 선정적이고 조치가 필요한 영상들은 그대로 내버려두면서, 임신을 예정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훌륭한 교재에 가까운 이 영상을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한 유튜브의 조치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미디어 플랫폼의 콘텐츠 분류 기준에 관한 의심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요. 임신에 관해 다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정보는 은폐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느껴집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사회의 인식은 앞서 소개한 '복부 밴드'의 사례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여성의 몸이 언제나 '마를 것'으로 강제되는 사회에서 출산은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출산 과정에서 고통을 겪은 여성이 크게 벌어진 상처 부위를 치유하고, 깊은 휴식을 취해야 할 때 '다이어트'라는 사회적 압력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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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여성적이려면 자궁이 있어야 한다?
『자궁 이야기』에 담긴 대다수의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젠더'와 관련한 챕터입니다. 자궁절제술에 관해 다루는 이 챕터는 라이언 샐런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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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궁을 가졌음에도 자궁절제술의 사회적, 정서적 이점 때문에 신체적, 인지적 부작용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이언 샐런스도 그 중 하나인데, (...) 그의 머릿속에는 자유분방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나무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던 날을 기억해요." 그는 그날을 떠올린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었어요. 그러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게 '넌 여자야. 남자가 아니야'라고 말했어요. 순간적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어요. 거슬리는 사람이 될까봐서가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왜 신이 나를 여성으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건 내가 아닌데 왜 그렇게 살아야 하죠?"" - p.356-357,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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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은 "자아 감각과, 사회와 어떤 더 높은 질서의 '목소리'가 요구하는 정체성의 충돌" 속에서 인지부조화를 경험합니다. 생리를 하게 된 사춘기 때, 여자라는 현실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왔고요. 그는 생리 때마다 지독한 '생리 트라우마'를 겪으며 육체와 정체성이 일으키는 불화를 고통스럽게 감각했습니다. 그가 겪은 괴로움은 결국 거식증으로 이어졌고요. ("무월경이라는 부작용이 정말 반가웠어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자궁절제술'로 정합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건강보험의 굉장히 복잡한 절차와 싸워야했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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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트랜스젠더 건강을 위한 전문가협회 WPATH가 정한 치료 기준을 따르는 시스템은 (...)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위해 세계적으로 일관된 경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자궁절제술을 받을 경우 WPATH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할 것을 권고한다. "지속적이고 입증된 젠더 위화감", 동의할 수 있고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 능력, 성년 연령, 의학적 정신적 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 잘 관리되고 있을 것, 수술 전 12개월 연속 호르몬 치료를 받을 것 등이다." - p.360,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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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러한 절차가 명확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경로를 통과하면서 겪게 될 우여곡절과 좌절감을 염려합니다. "긴 대기자 명단, 수많은 시술 제공자의 장황한 소견, 기관 간의 협력"이 요구될 것이 뻔한 이러한 절차는 자궁절제술을 원하는 많은 이들을 또 한 번 절망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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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성확정수술과 치료 절차를 진행하려면 당사자가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출생 시 지정된 자신의 신체적인 성별이나 성역할에 대해 느끼는 위화감)이라는 '장애'를 진단받기 위해 (종종 두 명 이상의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성정체성 장애라는 새로운 명칭은, 트랜스젠더 맞춤 의료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성정체성 전문가라는 하나의 전문가 계층을 만들어냈다."" - p.364,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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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 전문가라니... 이것만큼 이상한 명칭이 또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의 성정체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아닐까요? 저자 역시 이 점을 지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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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정체성 전문가가 나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평소 청바지와 후드티를 즐겨 입는 나는 국가가 여성으로 인정할 만큼 충분히 여성적일까? 나는 (...) 내 자궁과 투닥거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요일, 주, 월 또는 해에 따라 어떨 때는 행복하고, 어떨 때는 우울하게 바뀌는 관계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 p.365, 『자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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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의 자궁에 관한 이야기는 이반지하의 책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저자는 두 명의 부치가 경험한 자궁 관련 에피소드를 인터뷰 형태로 전합니다. 이들은 자궁과 관련해 각각 유사하기도, 다르기도 한 경험을 합니다. 첫 번째 인터뷰이인 '성 열'은 산부인과 진료를 빠뜨리지 않고 성실히 받는 부치입니다. 저자는 "역삼각형 몸에 근육질이고, 자궁에 가슴까지 있는" 성 열의 인터뷰가 "만족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고 고백하는데요. 성 열이 저자의 생각(혹은 기대)만큼 자신의 자궁과 반목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굉장히 사무적인 태도로 대하며 잘 관리하며 지내고 있었거든요.
'성 열'님의 인터뷰에 이어 '성확정' 님의 인터뷰도 인상적입니다. 성확정은 43년의 생에서 한 번도 자궁을 '내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자궁을 적출하자는 대학병원 의사의 말에 처음으로 자궁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의사의 적출 권유에 오랜 체증이 씻겨내려가는 것 같았다며 그 날을 회상합니다.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털어놓던 그는 이윽고 저자에게 "40년간 저주의 말만 듣고 자란 양파 같은" 적출된 자궁 사진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런데 뜻밖에 그는 자궁이 없는 상태에서 자궁내막증에 걸리는 기이한 상황에 처하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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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확정은, 충격적이게도 수술 후 6개월도 되지 않아 다시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 현대 의학은 분명 그의 자궁을 제거했으나, 자궁 자신은 여전히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성확정이라는 이름의 구천을 떠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자궁은 그의 성을 확정시켜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 -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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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이반지하는 그를 보며, '자궁'이란 건 어쩌면 그에게 '페미니즘'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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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을 완전히 잃은 자궁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을 열렬히 토로하는 그를 보며, 나는 문득 그에게 자궁은 존재를 부정하면 할수록 더욱더 큰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여자들의 목소리, '페미니즘'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부치 성확정의 삶은, 신체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평생 '여자'들을 듣고 모시고 관리해야 하는, '남자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참으로, 참으로 '가부장'적인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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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이야기』와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자궁'에 관한 진실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궁이 기관으로서의 모양과 특성은 유사할 수 있어도, 각자의 몸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제각각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의료계는 자궁을 하나의 일관적인 모델로 설정하고, 일률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 개별적인 관점으로서의 의료 체계와 접근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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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치는 복장, 말투, 몸짓 등에서 소위 남성적인 방식으로 성별표현을 하고 이를 편안하게 느끼는 레즈비언을 가리킵니다. 성별표현 방식이기도 하지만, 관계 내에서의 역할 구분에 따라 붙여지는 이름이기도 해요. 이외에도 팸, 전천 등의 단어가 있는데요. 이 단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여기에서 읽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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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며: 여자들이여! 자궁에 대해 더 많이 떠들자!
『자궁 이야기』를 읽으면서, 머리 위로 정말 많은 느낌표와 물음표를 띄울 수 있었는데요. 조산사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저자 덕분에 의학적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한편, 기존의 의료체계와 사회구조가 '자궁'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로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자궁의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자궁의 일면을 학습한 대로, 관성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더 많은 여성들의 자궁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여러분도 『자궁 이야기』를 읽고, 친구, 동료와 함께 자궁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의 작은 지혜들이 모여 사회와 의료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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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자궁 이야기』와 『버자이너』, 어떤 차이가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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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이야기』와 『버자이너』 두 책 모두 3.8 여성의날 즈음에 출간된 '자궁'에 관한 책입니다. 공교롭게도 출간 시기가 겹쳐 각종 매체에서 짝을 이뤄 함께 소개되고 있는데요. 두 책을 모두 읽어본 입장에서 저는 두 책 모두를 읽어보실 것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각각의 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입니다.
먼저, 『자궁 이야기』는 영국 조산사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으로, 실무자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실무자의 시선이란, 여성이 자궁으로 인해 겪게 되는 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알게 된 그들의 감정과 사회적 역동 등을 포착하는 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버자이너』는 생식생물학을 전공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남성 중심 과학을 해체하고,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 업적을 중심으로 여성의 몸을 재정의한 책입니다.
둘 다 전문가에 의해 쓰여진 책이지만, 『자궁 이야기』가 자신이 조산사로서 겪은 경험과 (환자와의) 관계, 기존의 의학적 지식을 '자궁'의 사회적인 맥락을 통해 읽고,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을 가진 과학자와 연구자의 말을 담는 방식으로 자궁을 읽어 냈다면, 『버자이너』는 여성의 삶을 학계적 관점(생물학, 생명공학, 해부학, 정신분석 등)에서 살펴보며 여성의 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돌파하고 바로 잡는 방식으로 자궁과 가까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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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다. … 그러나 인간의 눈에는 한계가 있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자는 대부분 서양의 백인 남성이었다. 이들이 활동한 각 시대의 태도와 정치는 과학자들의 일에 영향을 주었고, 그들이 생산한 지식은 다시 그 시대의 정치를 강화하고 영속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과학적인 지식은 어떤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권을 부여했다. 가치 있는 몸과 가치 없는 몸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 그 시기의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눈에는 생식 기능이라는 렌즈가 끼워진 경우가 많았다. 여성은 걸어 다니는 자궁, 아이 낳는 기계, 성적으로 남성과는 다른 존재로 여겨졌다." - 『버자이너』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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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 유튜버로 활동 중인 '수낫수'님의 브랜드, 플레인플렌티에서 '도나 드로즈' 증정 이벤트를 제안해주셨어요. 플레인플렌티는 다양한 체형과 취향을 아우르는 여성 이너웨어 브랜드로, 체형과 취향에 상관 없이 모든 여성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속옷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속옷에 달린 레이스나 후크, 금속 참 때문에 불편함을 경험해보신 적 다들 있으시죠? 또, 꽉 끼는 삼각팬티를 입어 불편함을 겪어보신 분들도 계실 테고요. 플레인플렌티는 이런 분들을 위해 레이스나 와이어처럼 불필요한 요소는 지양하고, 원단과 밴드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집중한 편한 속옷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런 속옷을 찾았던 분들이라면 지금 바로 이벤트에 참여해 주세요!
- 이벤트 참여 기간: 3/15(금) ~ 3/21(목)
- 당첨 인원: 3명
- 증정 제품: 플레인플렌티 도나 드로즈 1장
- 당첨자 발표: 3/22(금)
- 유의사항: 제품을 수령하신 후, 개인 SNS 계정에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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