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페미니즘 입문서로 적합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들은 모두 함께 읽기의 중요성과 페미니스트 동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데요. '페미니즘의 유행은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요즘, 들불레터가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일을 다시금 고찰하고, 유행과 상관 없이 페미니스트로서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랍니다 🔥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벨 훅스 같이 읽기』, 페페연구소 기획 (동녘)
-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사라 아메드 (동녘)
- 『멀리 오래 보기』, 비비언 고닉 (에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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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
페페연구소 기획, 김동진·김미소·김은지·레일라·오혜민·장재영·조은 지음 (동녘)
몇 달간 여러 장소에서 '페미니즘 커뮤니티'를 운영했던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페미니즘 실천의 방법들을 오랜 시간 고민해 온 그들은 입을 모아 '페미니즘의 유행이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어요. 이들이 몸 담고 있는 분야나 활동 영역이 제각각이었는데도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실로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저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판계와 커뮤니티 사업의 접점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눈에 띄는 페미니즘 서적의 출간이 뜸해지고,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관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이 드물어진 현상을 목격하며 유행에서 밀려난 페미니즘을 체감할 수 있었거든요. 물론 이것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 되기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유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했고 다만 격화된 '백래시'로 인해 화력이 다소 약해지는 시기가 찾아올 뿐이죠. 그럼에도 고민과 걱정은 여전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을 모두의 삶의 중심에 위치시킬 수 있을까? 삶에 밀려드는 슬픔과 좌절, 피곤함과 괴로움 속에서도 여전히 페미니즘을 품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해야할까?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인생의 코어로 삼게 만드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제방이 무너지듯 여러 질문들이 물밀듯이 밀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저는 습관처럼 책을 찾았습니다. 유명한 학자가 쓴 어려운 책에서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죠. 어려운 언어 속을 헤매다보면, 분명 길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였죠. 이들이 쓴 내용은 분명 깊은 통찰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들의 언어는 (그것이 '페미니즘적'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것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학계의 언어, 권력의 소리들은 제가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나고 싶은 건 너와 나 사이에 또 다른 선을 긋는 방식이 아닌, 그 선을 자유롭게 뛰어 넘고 밟고 무시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려면 보다 쉬운 언어, '선'을 만들지 않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덮어두고, 페미니즘 입문서 또는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더 이상 들춰보지 않았던 책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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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작가가 바로 '벨 훅스'였습니다. 그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위해 쉬운 언어로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 문제 등을 다룬 작가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페미니즘 입문서라는 이유로 밀어 두었던 그의 책 위에는 어느덧 뽀얀 먼지가 쌓여 있었어요. 저는 먼지를 털어내며, 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사유에 접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벨 훅스의 책을 함께 읽기로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주의교육연구소인 페페Feminist Pedagogy입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관련 외서를 읽는 '페페스터디'와 페미니즘 관련 대중서를 읽는 '페미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벨 훅스 같이 읽기》는 이 곳에서 열린 벨 훅스 독서 모임에서 생겨난 고민과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총 7명의 저자가 벨 훅스의 작품들을 읽고, 그 책을 소개하며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작업은 백래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는데요. 오늘은 《벨 훅스 같이 읽기》 속 두 꼭지를 벨 훅스의 작품과 함께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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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 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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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2000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며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작품입니다. 한국에는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 첫 출간되었고, 이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재출간되었는데요. 한국에서도 2016년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공유되었던 '페미니즘 입문서 리스트' 맨 첫 줄에 거론되었을만큼 훌륭한 입문서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을 쓴 작가 조은 역시, 서점 소개글에 적힌 '페미니즘 기본서'라는 문구를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는 4장째 읽었을 때 이 책을 덮고 맙니다. 벨 훅스의 '좋게 말하기'가 너무 '고운' 느낌이라 '안일하고 쉬운 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는 스피박의 책을 집어 듭니다.
"나는 스피박을 좋아한다. 어려운 단어, 어려운 문장, 그리고 더 어려운 번역은 나를 도전하게 만든다. 가장 먼저 스피박은 서발턴이라는 단어로 나를 사로잡는다. 사실은 이 복잡한 어휘가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자주 인용하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 이를 인용할 때는 왜인지 멋진 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대학원생이라는 나의 똑똑이 정체성 역시 안정된 공간에 안착할 수 있게 돕는 느낌도 주었다." (p.123,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
그는 스피박의 책에서 '멋진 말'을 인용하면서도 약간은 찔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페미니즘이 오랫동안 학계라는 게토에만 존재해온 개념이라는 사실이 한가득 느껴지기 때문"(p.123)이었죠. 그는 '똑똑한 여성들이 전유하는 언어'가 나를 드러내주기보다 도리어 숨기기 위해 필요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말'을 한다는 이유로 선을 그었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다시 살피기 시작합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길잡이가 부족한 상황에서 반드시 등장해야만 했던 책이었습니다. 벨 훅스는 이러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사명감을 갖고 이 책을 썼죠.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의 저자는 벨의 작품을 통해 마치 프리사이즈 옷 하나만 존재할 수 없듯 우리의 몸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상상력의 힘'을 나름대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내가 해석해본 상상하기란, '내'가 놓인 현실에 대해 먼저 인지하고 '너'의 현실에 부재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 뒤 '우리' 각자가 놓인 위치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 이 상상력이라는 개념은 쉽게 말해 누군가가 '된다'는 것이다." (p.133~134,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
'서로되기'라는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나는 '나'인 채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너'가 되는 경험은 곧장 이해가 되질 않죠. 그렇기에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몹시 '느리고 비효율적'이겠지만,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던 '연대'의 모습에 가장 가까워지기 위해 희망을 갖고 임해야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희망을 갖기 어렵다면, 벨 훅스의 책을 펼쳐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그랬듯, 우리도 벨의 책에서 모두의 몸을 자유롭게 느낄 진정한 프리free 사이즈의 옷을 찾게 될 수도, 이를 통해 서로의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바로 이 감각을 느끼는 순간, 희망이 태동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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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가 아닙니까?》 가모장의 탈조 일기, 오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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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가 아닙니까?》는 벨 훅스가 대학생이던 시절 쓴 책으로, 상호교차성 및 흑인 페미니즘 연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서 벨은 인종·젠더·계급의 교차성을 대중매체에서의 재현과 남성성의 문제 등을 통해 폭넓게 다루며,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통찰을 제시합니다.
「가모장의 '탈조' 일기」를 쓴 작가 오혜민은 《난 여자가 아닙니까?》를 출간되기 전, 벨과 나눈 대화를 통해 독일 유학 시절 경험한 인종차별과 성차별 문제에 대한 관점을 재구성합니다.
저자는 아시아 여성인 자신이 당한 성적 모욕에 인종차별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난감해하던 성폭력 상담소에서의 경험을 벨에게 털어 놓습니다. 그 곳에서 '나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야, 학생이지! 그것도 여성학 전공!'(p.30)이라고 항변하고 싶었던 마음도 고백하고요. 이윽고 저자는 집, 학교, 직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진취적인 목표'를 이야기하며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힘을 갖기 위해 '논문'을 쓰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 저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워 섬겼던 언어들, '가모장', '높은 곳에서 만나자', '야망 보지' 등이 누군가의 무력감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방법으로서 '가모장'을 일종의 행동양식으로 채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 그 첫 사건 후 집에 오는 길에 '내가 너희가 생각하는 '그저 그런' 아시아 여자 같냐. 내가 이 주제로 논문 쓴다. 두고 봐라, 이 자식들아' 하고 다짐했어." (p.31, 「가모장의 '탈조' 일기」)
그의 이야기를 들은 벨은 '가모장' 같은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실제로는 갖지 못한 힘을 소유했다고 상상하는 그런 마음이 오히려 현실에 대항해 싸울 가능성을 자꾸 줄인다"(p.32)는 게 그 이유였죠. 저자는 '가모장'이라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힘을 가진 존재를 지워버리면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도대체 어떻게 뒤집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을 가집니다. 그러면서 벨에게 묘한 반발심이 생겨나는 걸 느끼죠. 하지만 벨은 '가모장' 신화에 가려진 진짜 문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 진짜 문제는 실제 미국 흑인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가모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였어. 흑인 여성을 가모장으로 몰아간 건 흑인 여성이 아니었거든. 그저 흑인 여성이 '남성화된', 그리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 했던 이들이었지." (p.34, 「가모장의 '탈조' 일기」 )
저자는 독일 여성정책 수업을 진행했던 A 여성학 교수의 편견 가득한 말을 들으며, 그것을 참아내는 것만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교수의 인종차별이 해도해도 너무한 상태에 이르자 결국 그는 수업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죠. 저자는 그가 자신의 편견이 옳았다고 믿을까 두려워하면서 '가모장' 신화로부터 은퇴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결정을 듣고 난 후 벨이 건넨 메모를 첨부하는데요. 이 메모에서 벨은 흑인 여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백인 남성이 만든 여러 신화들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사파이어와 제미마, 아마존과 가모장이라는 신화였어요. 신화는 흑인 여성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들거나 감정을 억누르게 만들었습니다. 또,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 권력은 없으나 고난을 이겨내는 연약하지 않은 여성이 '남성화된' 인간 이하의 생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들을 억압했죠. 저자는 벨의 메모를 보며 자신이 사파이어와 제미마의 모습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곤 '가모장'의 신화 없이 여지껏 자신을 지탱해왔을 벨이 짊어져야 했을 삶의 무게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는 '가모장'의 신화 없이 그동안 무엇으로 자신을 지탱해왔을까. 그는 사실, 한 번도 운명이 자기 삶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 단지 자기의 삶을 결정지으려는 그 운명을 몇 번이고 고통 속에서 직시하고자 애썼을 뿐이다." (p.40, 「가모장의 '탈조'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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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에서는 앞서 소개한 두 작품 이외에도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페다고지(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시도했던 '교육' 3부작 시리즈 중 두 권(《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국내 미출간 작품으로 벨 훅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 《본 블랙Bone Black》, 사랑에 관해 알아가고자 했던 그의 시도가 담긴 《올 어바웃 러브》를 다룹니다.
《벨 훅스 같이 읽기》를 곁에 두고 벨 훅스의 작품들을 친구, 동료들과 함께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벨 훅스의 작품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읽어야 할 지 참고하기 좋은 레퍼런스이면서 동시에 저자들이 털어 놓는 개인적인 경험 위에 나의 경험을 포개어 놓음으로써 내가 네가 되고, 또 네가 내가 되는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거든요. 거센 백래시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은 모든 페미니스트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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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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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절판) 사라 아메드 지음, 이경미 옮김 (동녘)
《벨 훅스 같이 읽기》의 「들어가며: 지금 벨 훅스를 같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라 아메드가 '읽기 역시 동료애'라고 이야기했던 내용을 인용합니다.
"성차별주의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이런저런 노력을 할 때 우리는 자칫 스스로가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기 쉽다. 그럴 때 내가 했던 것은 책 읽기였다. 여성학자 사라 아메드가 '읽기 역시 동료애'라고 했던 것처럼, 동료가 없던 내가 읽은 숱한 페미니즘 책들은 나의 동료이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p.5)
사라 아메드는 자신의 책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의 「한국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을 마치며 '페미니스트 동료(애)'에 관해 적습니다. 그는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어디에서건 '페미니스트가 됨으로써 따르는 결과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며, 이 길에는 함께 분투하는 사람, 즉 페미니스트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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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동료는 길에서, 독서모임에서, 식사 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여정의 모든 자리에서 만날 수 있죠. 사라 아메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책'이라는 자원을 통해 감각하게 되는 '연결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요. '페미니스트 책을 쓰고 읽는 것이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부분'(p.42)이며, 이 여정에서 서로에게 동료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읽기'란 너무도 중요한 동료애인 셈입니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는 벨 훅스의 책 만큼이나 중요한 입문서로 거론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거듭해서 묻습니다. 독자는 아메드의 질문과 그에 관한 답변(혹은 관점)을 따라가며, 각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고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요. 이 고찰은 곧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해 어떠한 윤리적 차원의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은 벨 훅스가 강조했던 '상호교차성' 개념에 관해서도 다루는데요. '골치 아프면서도 구체적'(p.212)인 이 개념을 아메드는 미국에서 저작 활동을 하는 인도인 페미니스트인 라타 마니의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루스 프랑켄베르크와 라타 마니 두 사람이 나눈 멋진 대화를 옮긴 글에서 이들은 탈식민성이 위치의 정치학이라고 말한다. 이때 위치는 역사의 다층적 궤적으로 형성된다. 위치는 불안정하다. 개인의 역사는 더 기나긴 식민주의 역사로 만들어진다. (...) 라타 마니는 대학교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경험한 두 번의 순간을 설명한다. 첫 번째 순간은 한 백인 남성 교수가 문을 열더니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을 때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그 누구라도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그가 하는 짓을 하늘은 알 것이다." 두 번째 순간은 한 필리핀 여성이 복도 청소를 하고 있을 때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미소 짓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p.212)
아메드는 라타 마니의 사례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 누구라도' 쓰레기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미소 지으며 들어오라 한다. '상호교차성'은 멈춤과 출발의 지점이며 누구든지 안에 있고 누군가는 밖에 있다." (p.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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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은 《멀리 오래 보기》에서 자신의 역사와 경험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의식 고양 모임'에 관해 씁니다. 읽다보면 '페페'의 모임인 〈벨 훅스 같이 읽기〉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 파트에서 고닉은 '개인적 증언과 감정적 분석을 통해 '여성'의 계급의식이 고양될 수 있는', 마치 '정치적 다이너마이트'와도 같은 의식 고양 모임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서술합니다. 이 파트에서 인상적인 건 정기적으로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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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임에 참석했을 때 거기 모인 사람들을 보고 혼자 생각했어요. '내가 겪은 일을 겪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사람들, 내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겠네.' 뭐, 그랬는데요. (...)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그게 이 모임의 방식이죠―'다들' 내가 겪은 일들을 겪었고, 내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있더라고요. 세상에, '그 모습을' 보았을 때 기분이란! 언제나 나만의 개인적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거기 모인 다른 모든 여자들에게도 사실이라는 걸 알았을 때 말이에요! 바로 그때 '나의' 의식이 고양되었죠." (p.216-217)
이어 고닉은 의식 고양 모임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성운동 활동가가 아니었고, 현신적인 페미니스트도 아니었으며, 사회 발전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나 개인적인 노이로제가 특징이지도 않았던' (p.222) 그들의 대화에서 저는 엄청난 위로를 받았는데요. 이 위로는 저 멀리 여자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는 동질감, 내가 겪은 일들이 결코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같아요. 모두가 저와 같은 마음을 느끼며 안도할 수 있도록, 대화에서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던 마리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의 책 소개를 마칩니다.
"마리: (...)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말아요. 우린 백 살도 이백 살도 아니잖아요. 우린 엉망진창의 한가운데 빠져 있어요. 해도 엉망, 안 해도 엉망이죠. 괜찮아요. 바로 그래서 여기에 와 있잖아요. 속박을 깨뜨리려고요. (이 말에 모두 마음을 다잡고, 기운을 내고, 어두워진 맨해튼 거리로 몰려나간다.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p.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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