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 이어 오늘 들불레터에서도 '계급'에 대해 다룹니다. 이어 계급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 블루칼라 여자』를 다른 두 권의 책과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 들불 캐비닛
- 『교양의 효용』, 리처드 호가트 (오월의봄)
- 『계급도시』, 하시모토 겐지 (킹콩북)
- 『야망계급론』,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오월의봄)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나, 블루칼라 여자』, 박정연 (한겨레출판)
-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 글쓰기 모임 (삶창)
-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나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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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효용》은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인문사회학자 리처드 호가트가 쓴 책으로, '문화연구'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20세기 초중반의 영국 노동자계급 문화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그들의 삶을 음악, 신문, 잡지, 책 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 살피는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문화'가 계급과 어떤 식으로 조우하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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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0장, 「탄력을 잃은 용수철: 유리되고 불안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 파트는 특히 흥미로운 장입니다. 이 챕터에서 호가트는 노동자계급에서 탈출한 사람들에 대해 다룹니다. 지난 레터에서 말했던 샹탈 자케의 '계급횡단자'로도 설명가능한 이 사람들은, 호가트의 분석에 의해 '장학생소년들'로 불리는데요. 이들은 모종의 '불안'을 느낍니다. 이때의 불안이란 "노동자계급의 가족 중심적인 삶의 가치관을 거부해야 할 때 발생"하는 불안, "스스로를 과도하게 밀어부치는 한편 수동적인 태도로 학교를 다녀야하는 분열"에서 느끼는 불안 등 다양합니다. '장학생소년들'은 이러한 불안과 자신의 출신 그리고 지향에서 오는 괴리감을 털어 없애기 위해 문화와 교양에 의존합니다. 이들에게 문화와 교양은 "객관적인 선善이며, 또한 명석한 두뇌와 상상력이 자유와 균형감각을 준다는 징표"입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진정한 교양인을 향한 열망의 이면에는 "자유, 힘,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에 대한 이 기묘한 형태의 갈망"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노동자계급에도, 중산층이나 그 이상의 계층에도 섞일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 문화와 교양을 자신의 자유를 조율하는 방편으로 사용합니다.
호가트는 이처럼 소수를 선별하는 '장학제도'가 능력주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한편, 노동자계급 출신의 엘리트가 노동자계급에게서 느끼는 거리감에 문제적으로 접근합니다. 또,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소수를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이탈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에게 좋지 않은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합니다. 남아있는 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이 과거 향유하던 진정성 있는 문화에서 벗어나 대량생산된 획일적인 문화를 소비하면서 점차 냉소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의식있는 소수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정치적 관심이나 주의를 환기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게 호가트의 설명인데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의식있는 소수의 이탈로' 노동자계급이 "물질중심주의 그 자체를 자신들의 사회철학으로 여기게" 된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성 있는 교양 혹은 문화적인 접근에 어떻게 다다를 수 있느냐하는 것인데요. 호가트의 질문은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신주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하나의 사고체계로 자리 잡은 지금, 자극적인 매체와 냉소주의를 낳는 대중문화 사이에서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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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도시』 하시모토 겐지 지음, 김영진, 정예지 옮김 (킹콩북)
지난 레터에서 최성수 씨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교육 불평등'의 문제에 있어 핵심은 '분리'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계급도시》는 도시공간 분석을 통해 계급적 분리 현상을 설명한 책입니다. 저자는 산업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고임금 노동자의 소비능력이 향상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활방식에 따른 거주지 분화가 일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발생한 거주지 분화가 곧 도시공간을 구획하게 된 것인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계급 간 분리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자녀교육'의 문제는 계급을 재생산하기 위해 중요한 이슈가 되는데요. 그래서 그들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학군'이라는 말로 거주 공간을 구획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이 책은 결말이 다소 아쉽습니다. 비판할 만한 지점이 여럿 있어요. 예를 들자면, 공간 분리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고학력의 신중간계급에게 "고층 맨션 같은 자신만의 게토에 머무는 대신에 지역 사회로 나와서 정착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는 부분에서 다소 나이브함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거주지 분화를 계급적 측면에서 살펴봤다는 데에서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사정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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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계급론』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지음, 유강은 옮김 (오월의봄)
《야망계급론》은 '지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적 소비'를 통해 자신과 다른 이들을 구분 짓는 이른바 '야망계급'을 소개한 작품입니다. 저자가 야망계급을 소개하는 대목을 일부 가져와 볼게요.
"이 새로운, 지배적인 엘리트 문화집단을 아주 간단하게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들의 상징적 지위는 간혹 물질적 재화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지식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화적 기표들(...)을 통해 드러난다. 이런 행동과 기표들은 야망계급의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 또한 넌지시 드러내준다. 오늘날의 야망계급은 커리어에서부터 식품점에서 구입하는 식빵 종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선택을 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데서 가치관과 문화적·사회적 의식, 지식 습득을 소중히 여긴다. 이들은 크고 작은 온갖 선택을 할 때마다 자신이 사실에 근거해(유기농 식품, 모유 수유, 전기차 등의 장점에 관해) 올바르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결정이 식견 있는 것이며 정당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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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호가트의 책을 통해 언급했던 '노동자계급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문화와 교양을 자신들의 자유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야망계급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기 위해 언어, 문화자본 등을 찾습니다. 이들은 "디너 파티에서 신문 칼럼을 놓고 나누는 대화, 정치적 견해와 그린피스 지지를 나타내는 범퍼 스티커, 농민 직거래 시장에서 장보기"나 "<이코노미스트>를 보거나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을 듣거나 요가 강습을 받는" 행위를 통해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이들의 행동양식 속에서 지식과 생산성은 일종의 화폐로 기능합니다. 이는 현대인의 소비 양식을 돌아보는 아주 중요한 분석이 될 수 있습니다. 야망계급이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활용해서 사회와 환경을 의식하는 가치관을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소비 그 자체로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문제(가령 불평등의 구조 등)를 가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거든요. 현대의 트렌드인 '가치소비'를 둘러싸고 이러한 행동양식이 기업에게 유리할 뿐이라는 비판, '가치'가 있는 소비라는 이유로 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소비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 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책과 함께 그러한 지점들을 함께 고민해봐도 좋겠습니다. 또, 내가 남들과 나를 구분 짓기 위해 어떠한 지식, 가치관을 두르고 있었는지에 대해 성찰해봐도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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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한겨레출판)
블루칼라는 제조업, 광업, 건설업 등 현장의 육체노동 종사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흰 셔츠를 입고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들을 화이트칼라라고 부르고, 이에 대비되는 청색의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을 일컫던 말이 현대에 이르러 위 직업군을 통칭하는 단어가 된 것이죠. 블루칼라 노동자는 '육체노동'이라는 단서 때문인지 '남성'의 모습으로 자주 연상되곤 합니다. 여성보다 남성의 힘이 강하다는 통념 때문에 '힘을 써야 하는 직업 = 남성적인 직업'이라는 공식이 당연하다는 듯 통용되고 있죠. 블루칼라 노동자의 고착화된 이미지는 수많은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을 지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결과,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이나 차별과 편견, '표준 남성'에 맞춰진 작업 환경과 규격들에 대한 논의도 이제야 구체화되기 시작했죠.
오늘 소개할 『나, 블루칼라 여자』는 차별적인 남초 현장의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된 책으로, 10명의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남초 직군에서 고강도의 육체노동뿐 아니라 여러 편견과 차별을 직면하며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투쟁기를 들으며, 차별 속에서 숨죽여 일하고 있을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또, 일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과 사랑, 진실한 직업의식을 목격하고 전달함으로써 '블루칼라' 직업군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해소하고 감동을 선사해요.
앞서 말씀 드린 이유들과 더불어 『나, 블루칼라 여자』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이 책이 일 담론의 편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일'과 관련한 책들이 정말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 책이 이야기하는 '일'은 사무직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가 되기 위한 자기계발 시장에 쏠려 있습니다. 또, 일을 말하는 단어들이 스타트업 문화로부터 파생되어 다른 노동자를 소외시킨다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이러한 일 담론은 일터에서의 노동환경 개선, 노조 설립이나 노동 정책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개인의 역량 강화와 성공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 일부 직군(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만이 인정 받는 '직업'으로서 자리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측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 블루칼라 여자』는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개개인의 투쟁이 구조적 고민으로 뻗어가면서 노동환경 개선과 구성원들의 차별적 인식의 변화까지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일 담론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들불이 만난 이야기〉에서는 『나, 블루칼라 여자』에 담긴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계발이나 스타트업의 문법으로 일에 접근하고 설명하는 관행에서 노동의 외연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일 담론을 넓혀가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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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 씨 (ⓒ 황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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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것
부산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정정숙 씨는 남편이 내버려둔 레미콘 차를 처분할 수 없어 시작한 레미콘 기사 일을 26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정숙 씨는 레미콘을 모는 일을 '남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에 가족들의 싸늘한 반응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또, 현장에서는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뺏었다는 남성 동료의 황당한 말도 들어야 했죠. 그러나 정숙 씨는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업계 관행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데도 주저 없었죠.
"법인 기사로 일할 때 부산 문현동 한 현장에 들어갔는데 땅이 질어 바퀴가 빠졌어요. 여기 바퀴가 빠져서 못 들어가겠다고 하니까 건설회사의 젊은 직원이 와서 '여자가 운전을 X같이 해서 못 들어가는 거지' 이러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그럼 니가 한번 해봐라"하고 차 시동을 끄고 나와버렸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현장에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포클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가는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 p.123, 『나, 블루칼라 여자』
부산의 여성 레미콘 기사는 1,000명 중 두 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정숙 씨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가 적은 것을 '인간관계'에서 찾습니다.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여성을 무시하는 문화가 여성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숙 씨가 겪은 것처럼, 여자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묻고, '아줌마', '아지매' 등으로 부르며 노동자로서의 인격을 무시하는 환경 속에서 여성 노동자가 버티기는 분명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정숙 씨는 부당한 상황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이에 인터뷰어가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면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말하자 정숙 씨는 자신도 '여자라서' 무시하는 것까지는 그냥 지나갔을 지 모르지만, 그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현장에서 '을' 취급을 받는 레미콘 기사가 주변에 피해를 줘서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그 책임만 가중해질 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정숙 씨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함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말이죠.
사람들은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선 '협업 스킬'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협업 스킬'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포함되는데요. 이들이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에는 정작 자신의 부당함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하기는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을 진행시키는 데 방해가 된다거나 효율을 떨어뜨리고, 팀원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정숙 씨는 이러한 측면에서 남다른 협업 스킬을 가진 사람입니다.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일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되, 자신의 부당함 또한 해소하는 방향으로 주관을 담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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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 씨 (ⓒ 황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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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한 일터: 변화를 위해 조직이 가장 먼저 추구해야하는 것
여행을 떠나거나 고향을 방문할 때 자주 찾게 되는 무궁화호와 ITX 새마을호. 우리가 당연하게 타고 내리는 이 교통수단을 정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하현아 씨와 같은 철도차량정비원입니다.
현아 씨가 근무하는 사업소의 여성은 총 180명의 직원 중 7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관리직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철도차량정비원은 그야말로 철저한 '남초' 직군입니다. 현아 씨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문화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고 털어 놓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정숙 씨의 사례가 여자라서 무시하는 케이스였다면, 현아 씨의 사례에서는 오히려 지나친 배려가 문제였습니다. "내가 일 다 해놨으니까 너는 그냥 와서 쉬기만 해"라고 말하는 남성 동료들 사이에서 현아 씨는 자신이 그들의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 불편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무시의 또 다른 패턴입니다. '이 일은 여자가 할 수 없겠지'라는 편견이 동료로서의 존중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만든 것이죠.
현아 씨는 남성중심적인 일터에서 '여자라서 그렇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씩씩한 척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픈 내색을 보이거나 우는 법 없이 남성 동료들에 비해 좀 더 오버하면서 일에 덤벼들었죠. 사람이기에 못하는 일도있을 수 있지만, 현아 씨는 여성에게는 자그마한 실수 하나 용납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현아 씨가 몸 담고 있는 일터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과 이해의 부재입니다. 동료들은 현아 씨를 포함한 여성동료들을 아주 좁은 틀을 통해 바라보고, 이들이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동화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또, 업무를 대신하는 등 불필요한 배려를 건네면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는 선을 일찌감치 그어버리기도 했고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아 씨가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자신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진정성을 보여주면 일터에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현아 씨는 일터의 변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서로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 고립되지 않도록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동료의 존재가 절실한 것이죠. 사람들은 조직의 변화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인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등한 일터가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주눅 들지 않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공간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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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진소녀의 성장일기> 유튜브 채널에서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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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더: 앞장서서 '용기'를 지을 것
아진 씨는 집을 짓는 빌더 목수입니다. 빌더 목수는 나무로 집을 짓는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로, 한국에서는 주로 '노가다'라는 편견 섞인 말로 설명되곤 하는 직업입니다. 목수 일을 '노가다'라는 말로 폄하하는 데에는 목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바 없기 때문인데요. 사실 외국에는 여성 빌더 목수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특히 호주의 경우, 여성 목수들의 수가 많아요. 그래서 여성 목수가 일하는 작업 환경도 평등하고 조화로운 편이죠. 그런데 한국은 여자 목수는 커녕 젊은 목수도 없는 상황으로, 평등한 일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래서 아진 씨는 '목수'로 활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한편 새로운 직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로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바로 SNS와 <전진소녀의 성장일기>라는 유튜브 채널 운영이었습니다. 이 채널에서 아진 씨는 목수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공부, 여행 등 자신의 삶을 다양하게 펼쳐 보이면서 '목수'라는 직업 역시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특수하거나 기피해야 할 직업이 아님을 보여주죠. 직업에 대한 편견과 낯선 시선을 걷어내는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SNS에서 자신의 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들 중 화려한 일상을 영위하고, 좋은 아이템을 전시하는 직업군에 특히 열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과 관심은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직업군을 희망하게 만들어 직업다양성을 현저히 떨어 뜨리게 됩니다. 또, 화려한 일면 뒤에 숨은 여러 문제들을 놓치게 되어 전반적인 노동 환경의 개선을 지연시키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일부 직업 종사자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등의 반동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아진 씨처럼 일에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일을 드러내보이기로 시작한 소수 직업 종사자의 용기를 새롭게 바라보게 돼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때, 세상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가진 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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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블루칼라 여자』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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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에 소개된 노동자 대부분은 일터에서 '아줌마', '아지매' 등으로 불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아가씨'나 '아줌마'와 같은 호칭이 문제적인 이유는 상대를 무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드러내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호칭 뒤에 가려지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습니다. 여성을 직업인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철저하게 배제된 호칭인 거죠. 《기록되지 않은 노동》은 《나, 블루칼라 여자》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가씨', '아줌마' 등으로 불렸던 야쿠르트 아줌마, 행사도우미, 여성 트레이너, 여성 대리운전기사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어떤 일이든 전문 지식과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며, 소수자들 역시 '표준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경력과 전문성을 동등하게 평가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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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 반짝이다》는 조합원 18만명에 달하는 전국금속노조 중 단 6퍼센트인 약 1만 명에 해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책입니다. 금속노조 내 여성위원회가 조합원 69명을 인터뷰한 내용에서 그들은 주로 제조업 생산직에서 근무하며 임금 차별, 승진 배제, 성희롱과 같은 부당한 처우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불의를 인식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바로 잡으려고 노력한 투쟁의 과정 역시 담겨 있죠.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라도 이 사람들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제가 《나, 블루칼라 여자》를 처음 읽었을 때 그런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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