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타라나 버크의 책, 『해방』을 다룹니다. 또, '일기라는 장르'를 주제로 4권의 책을 소개했는데요. 레터 하단에서 이연숙(리타) 작가의 책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도서 증정 이벤트에 참여하실 수 있으니, 레터 끝까지 읽으신 후 이벤트에도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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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불의 PICK!: 일기라는 장르 (+도서 증정 이벤트)
- 『매일을 쌓는 마음』, 윤혜은 (오후의소묘)
- 『해독 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안온북스)
- 『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열린책들)
-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이연숙 (난다) (+도서 증정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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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타라나 버크 지음, 김진원 옮김 (디플롯)
한국의 미투 운동은 2016년 트위터 내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시작되었고, 이후 #문단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등의 운동으로 이어지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고발로 본격적으로 공식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연대의식과 책임감의 토대가 되었고, 사회적 인식과 법, 제도의 변화를 이끌며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후폭풍을 불러 왔습니다.
미투 운동은 2006년, 저소득층 노동자계급에서 자란 흑인 인권 운동가인 타라나 버크가 시작한 운동입니다. 타라나 버크는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성폭력 경험을 토대로 공동체의 회복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소녀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다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고발로 '#미투'라는 해시태그가 사용되면서 타라나의 운동이 좀 더 광범위하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에 타라나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미투 운동이 여성의 자유를 위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에서 슬로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Black Lives Matter'와 같은 말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가장 간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인 동시에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담아낸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슬로건은 무브먼트를 이끄는 데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며, 차별과 억압의 역사뿐 아니라,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 이야기되지 않고 있는 소수자의 감정들을 연결하는 대안적 역사의 바탕이 됩니다. 그런데 소수자 운동의 슬로건을 그 의미를 달리하여 전유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아이유가 'Love wins'라는 제목의 신곡을 발표한 일, 백인 극우세력이 'Black lives matter'라는 슬로건을 가져다 'All lives matter'로 변형한 일이 바로 그러한 사례인데요. 이런 문제로 인해 슬로건의 출발점을 명확히 하고, 누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을 만들었는지 파악하는 일이 특히 온라인을 매개로 한 사회운동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출처를 바로하고, 그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전 세계를 강타한 '미투' 운동이 타라나 버크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아는 것 역시 우리가 이 운동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고 지속해나가는데 중요한 지점일텐데요. 그런 의미로 오늘은 타라나 버크의 책 『해방』을 통해 미투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그의 삶을 살펴보고, 그가 미투 운동에 담고 싶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이해해보면서, 그의 용기를 따라가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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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하고 못생긴 아이'라는 정체성
『해방』은 타라나의 유년시절, 약국에서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타라나는 약국 앞에 줄을 서 있는 동안 어느 부녀와 대화를 나누는데요. 그때, 부녀가 자신과 멀어지면서 "못생겨도 저렇게 못생길 수가 있나."라는 말을 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이 일은 타라나의 유년시절을 지배하는 거대한 명령이 되어 계속해서 그를 쫓아 다닙니다.
흑인여성은 백인 중산층 여성을 전제로 한 여성 이미지(바비인형과 같은)를 기준으로 외모를 평가 받는 일이 잦습니다. 흑인여성의 외모 경험에 대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쓴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에 대한 여러 통제적 이미지는 기존의 사회제도 속에 단순히 접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너무 농밀하게 스며들어 있어서, 이 이미지들 자체가 변한다고 하더라도, 타자로서 흑인여성의 이미지는 끈질기게 지속된다. (...) 흑인여성은 잘 인식되지 않는 일련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서 지배 이데올로기와 대면한다."(p.162)라고 말하는데요. 타라나는 약국에서의 일처럼 일상에 농밀하게 스며든 통제적 경험을 계기로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못생긴 부류에 속한다고 그냥 받아들"입니다.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마을의 '큰 오빠'에게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는 과거 약국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성폭행을 "못생긴 여자아이한테나 일어나는 일"로 이해하게 됩니다.
타라나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더 '착한 아이'로 거듭납니다. 정확히는 '착한 아이'를 흉내냈던 것이었지만요. 불안과 외상 후 사고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에도 그는 엄마와 (엄마의 애인인) 웨스 아저씨 앞에서 착한 아이로 지내며 '했어야 하는 말'을 삼켰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그다지 결백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못생긴 아이'인 내가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어린 나이에 혼자 감당하기 힘든 분열을 경험하면서 말이죠.
"정말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만큼이나, 어린아이였던 내 마음속에서 적어도 내가 결백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했다. 내 참모습이, 엄마나 가족 앞에서의 다정하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아니라 시커먼 비밀을 품은, 행실이 천하고 상스럽고 못생긴 여자아이라는 참모습이 새로운 현실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사춘기가 오기 전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미소를 지으며 착한 아이 역할을 해내는 법과, 진짜 나라고 여기는 지저분하고 더럽고 헤픈 여자아이를 숨기는 법." - p.59, 『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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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문학동네)
『헝거』는 『나쁜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록산 게이의 회고록으로, 스스로를 몸에 가두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던 생존의 기록을 담은 작품입니다. 제목처럼 '허기(hunger)'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이 책은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을 경유해 인식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록산 게이는 『해방』의 타라나 버크와 마찬가지로 유년시절, 성폭행을 당하고 이 경험으로 인해 "먹고 또 먹으며" 몸을 부풀려 하나의 요새로 만듭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가장 안전한 상태로 만들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뚱뚱한 몸'을 그저 '교정이 필요한', '부적절한' 것으로 바라봅니다. 타인의 무례한 외모 지적이 타라나를 분열하게 만들었다면, 록산 게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더욱 더 작아지게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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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븐과의 만남
고등학생이 된 타라나는 중학교 때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고등학교의 분위기에 놀랍니다. 그야말로 "야생 그 자체"였던 학급에서 여자아이들은 타라나의 치마를 놓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타라나는 엄마의 여동생인 세실리아 이모를 찾아가는데요. 이모는 타라나에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항상 맞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건넵니다. 한 달 뒤, 한 여자아이가 타라나의 손가방을 훔치는 일이 발생하면서 타라나는 세실리아 이모의 조언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때 타라나는 자신을 놀린 여자아이를 때리는 경험을 잠시나마 자유를 맛봅니다.
이 책에서는 타라나가 싸운 기억들이 제법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는데요. 인권 운동에 있어 '비폭력'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오셨던 분들에게는 타라나가 행한 '폭력'이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청소년기라고 해도,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 여자의 모습을 목격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더욱 낯설고 부적절하게 느껴지기도 할테고요. 하지만 이 역시 소수자의 관점에서 새로운 독해를 해볼 수 있습니다. 엘자 도를랑은 자신의 책 『자신을 방어하기』에서 "소수자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폭력의 활용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특정 몸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화되면서도, 어떤 몸들은 자기방어의 권리조차 빼앗기고 있으며 이것이 불평등의 구조를 유지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에게 자기방어는 "가장 강렬한 정치적 의식화"로서 자신의 몸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자기 기획의 일종인데요. 그는 '돌봄'과 같이 '여성적'이라고 여겨져왔던 '비폭력 행위'들이 실은 여성에게 폭력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한 채 소진만 되어가는, 기회의 박탈과 다름 없다고 주장합니다. 엘자 도를랑의 견해에 따르면, 타라나의 행동은 "폭력에 둘러싸여 있어 폭력이 습관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가장 가까운 문제해결 수단이자 최후의 자기방어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마칠 때까지 적어도 여섯 차례나 싸움이 더 붙었다. 대개는 다른 사람이나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교외 정학과 교내 정학을 다 합쳐 정학 처분을 일곱 차례나 더 받았다. 새로운 페르소나가 생겨났다. 중학교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던 여자아이가 두려움을 모르는 길을 찾아냈다. 기분이 좋았다." p.94, 『해방』
타라나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흑인 청소년을 지원하는 21세기청소년리더십운동의 캠프를 이끌게 되는데요. 이 곳에서 자신의 청소년기와 똑 닮은 모습을 한 헤븐을 만납니다. 헤븐은 캠프 내 사람들이 문제아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반항적인 인물입니다. 마치 고등학교 때의 타라나처럼요. 하지만 헤븐이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드물었고, 그의 행동은 불의를 참지 못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타라나는 헤븐의 모습을 보며 "그 나이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타라나는 헤븐을 자신과 같다고 여기며, 가족처럼 살뜰히 그를 챙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붓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을 고백한 헤븐 앞에서 타라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헤븐의 고백 앞에서 다시 어둡고, 웅크리고 있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었죠.
"나는 모범이 되어 이끌고 누군가 가능성으로 한 발 내디뎠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어야 했다. 나는 거기 있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사기꾼으로.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열두 살짜리 어린아이가 나를 내동댕이쳐 산산이 부숴놓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 나는 헤븐이 내게 일깨우는 모든 것, 배신과 상실과 수치로부터 죽을 둥 살 둥 도망치려고만 했다. 집에 불이라도 난 사람처럼 마음속에서 이 방 저 방 도망만 쳐댔다. 내 뇌는 내가 훈련해뒀던 그대로 움직였다. 보호 상태로 들어갔다." - p.214, 『해방』
이후 자신을 피하는 헤븐의 모습을 보며 타라나는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먼저 오랫동안 이야기하지 못한 말, 헤븐처럼 용기를 내서 해야했던 말, "나는 성폭행을 당했다. 나는 성추행을 당했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나는 싫었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이었다."는 말을 했어야 한다고 말이죠.
"엄마가 한 번도 묻지 않던 진실.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몰랐던 진실.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던 진실. 오랫동안 외면하던 진실.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듯이 내가 풀어야만 하는 진실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나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 p.219, 『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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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이아몬드와의 만남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타라나는 21세기청소년리더십운동에서 캠프 참가자로 만난 베벨 목사의 활동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베벨 목사는 "시민권 운동 역사에서 가장 대담하고 중요한 운동을 설계하고 조직한" 사람이었지만, 연쇄 아동성추행범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셀마*에 오면서,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 방식이 교묘하게 달라졌고, 이를 인지한 타라나는 이러한 교육 행태가 아이들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라나는 '얌전한 아이'가 될 것을 요청 받는 수업 방식으로 인해 밀려난 여자아이들을 조사하게 되는데요.
그때 타라나가 만난 아이가 바로 다이아몬드입니다. 그 아이는 헤븐과 마찬가지로 타라나의 청소년기를 몹시 닮아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크게 싸움을 벌이고, 어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그랬죠. 그렇게 다이아몬드와 타라나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던 어느 날, 타라나는 싸움을 벌인 다이아몬드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그 아이가 심각한 문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 타라나는 자신의 유년기, 청소년기에 "올바른 질문"을 해주지 않았던 어른들의 존재를 떠올리며, 다이아몬드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질문을 해주기로 결심합니다.
"어렸을 때 항상 나는 누군가 내게 올바른 질문을 해주기를 바랐다. 차마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질문을 받았다면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한 줄기 빛처럼 여겼을 것이다. 속내를 풀어놓을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털어놓고 싶었다. 정말 그게 다였다." - p.270-271, 『해방』
다이아몬드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타라나는 변곡점에 도달합니다. 그 지점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여자아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헤븐 때처럼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야한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지점이었죠. 타라나는 이 일을 계기로 비로소 자기 자신마저도 가치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 힘은, 앞으로 타라나가 흑인 여자아이들의 자유를 위해 해 나갈 가치 있는 일들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흑인 여자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무엇 때문에요?"나 "상관하지 마세요"라는 말만 주문처럼 외워야 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나 자신을 딱 그렇게 느끼며 살아왔다. 마침내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는 해결책은 누군가가 내 얼굴에 반짝이는 거울을 비추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도 못했다. 눈부신 빛에 눈이 시려와서 눈을 꼭 감아야 할 때조차도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헤븐은 보듬지 못했지만 이 아이들은 보듬어야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다." - p.273, 『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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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제도적 변화들도 주목할 만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변화는 '나도 말한다'라는 행위가 나눈 용기였습니다. '미투 운동'이 있기 전까지 여성들은 교육에 의해, 사회적 인식에 의해, 제도에 의해 입을 틀어막힌 채 침묵을 강요 당해왔습니다. 그러다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품어온 이야기를 용기 내 발설하기 시작했죠.
지금 우리는 타라나가 'Me too'라고 새긴 용기 위에 우리의 용기를 새기는 중입니다. 이렇게 새겨진 용기는 거센 백래시의 역풍 속에서 또 다른 변곡점이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 조금 더 힘내서 조직하고, 투쟁하고, 이겨내요. 우리의 곁에 수백, 수천, 수만 명의 타라나 버크가 함께할 것이라고 믿으면서요!
"나는 계단 우물에 앉아 있던 그 어린 여자아이, 약국에 줄 서 있던 그 못생긴 여자아이, 스스로를 저 더럽고 낡아빠진 행주 같다고 여기던 그 여자아이였지만, 동시에 열심히 책을 읽던 여자아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싸우는 아이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아이로 성장한 여자아이, 한 여성으로 당당히 서며 지도자로서 강한 목소리를 내게 된 여자아이였기도 하다. 조직하고 투쟁하고 교육하는 여성이며, 온갖 역경에 부딪히고 내면의 상처와 맞닥뜨려도 우리가 치유하는 법과 스스로의 가치를 찾을 때까지 이 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여성이다.
나는 당신이다.
당신은 나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다." - p.333, 『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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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는 키워드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윤혜은 작가입니다. 윤혜은 작가는 '쓰는 일'을 통해 시간을 감각하는 사람입니다. 길게 늘어진 하루를 버티고, 시간을 넘어서고, 내일을 맞이하고, 또 그 다음 날의 나로 넘어가는 모든 작업이 쓰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죠. 그의 일상 한가운데에는 '쓰기'가 있습니다. 다짐으로, 위로로, 즐거움으로 '쓰기'는 그때그때 모습을 달리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내내 그의 곁에 있죠.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저는 무엇이든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즐겁게 쓰지 못하더라도, 잘 쓰지 못하더라도 그저 살아내기 위해 쓰는 일이 필요하다고, 매일 죽고 싶다는 일기를 쓰는 나도 어쩌면 살기 위해 지금껏 일기를 써 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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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내 글들과 함께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괜찮을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나를 등지고 쌓아온 이야기들이 필요한 순간 눈앞에 나타난 느낌이다. 적어도 지금 같아서는, 무엇이 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의 내일로 넘어가는 것일 테니까. 그곳에서 마침맞게 만날 나의 이야기를 쌓아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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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독이 큰 화두입니다. 청소년 문제로 떠오른 마약 문제부터 우리의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도파민 중독까지, 중독의 역사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인간의 일상에 너무나도 쉽게 침투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을 지배하며 인간의 일부를 완전히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을 쓴 사강 역시 중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사강은 치료를 위해 모르핀을 투여했다가, 이에 중독되었거든요. 이후 사강은 중독 치료를 받으며 일기를 쓰는데요. 그 결과물이 바로 『해독 일기』입니다.
고통스럽고 괴로울 땐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죽음이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기 시작할 때, 그래서 두려움이 나를 구성하는 기본값이 되어 버렸을 때 '쓰는 일'은 유일한 돌파구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아마 일기를 꾸준히 써 오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물론 일기를 쓰는 일이 정말 돌파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붙잡을 것이 없을 때 연필이나 키보드라도 붙잡으면 작게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강에게도 '일기'가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요. 사강은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 동안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계속해서 일기를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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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틀림없이 1958년 어느 행인이 정신분열로 이렇게 천천히 추락하는 걸 막아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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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일기'에 어떤 내용을 쓰시나요? 저는 일기를 쓸 때, 그 날 있었던 일 그리고 그 일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 등을 두서 없이 나열합니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말들을 배설하듯 노골적으로 쏟아내기도 하고요. 제 일기는 말하자면 '내면 일기'입니다. 일기의 주인공은 '나', 정확히는 '나의 감정'입니다. 어떤 날은 외부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사람처럼, 오직 나로 이어지고, 나의 감정으로 귀결되는 글만 씁니다. 이 일기는 신체와 감정의 목소리를 놓치는 일이 많은 제게 큰 도움이 된 '쓰기'였습니다. 그런데 점차 '공동체', '연결'과 관련된 텍스트들을 읽으며 이제는 내가 나를 알기 위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장 안에서 독백하는 나는 내가 만들어둔 무대 위의 나일 뿐이라는 것을, 무대 밖, 현실세계에서 나는 오직 나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된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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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열린책들에서 펴낸 두 권의 책,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을 읽으며 이 생각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르노는 '내면 일기'보다는 '바깥 일기'를 쓰는 일이 "더욱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생각으로 『바깥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나의 바깥에 놓인 일들, 주변, 타인,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급적 간결한 단어로, 그러니까 "지배 계급의 유려한 언어를 해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기를 쓰죠. 에르노는 타인에 대해 쓰고, 제도에 대해 쓰면서 그들(혹은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위한 증언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바깥 일기』를 읽다보면, (지배 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가 우리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소거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염된 것, 불결한 것, 시끄럽고 정신없는 것, 불편하고 위험한 것들, 권력에 절대 가닿지 않는 목소리들. 에르노는 바깥을 관찰하는 기록을 통해 그 현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불편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찾아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일기를 1992년까지 써나갔다. 르포나 도시 사회학적 조사가 아니라, 집단의 일상을 포착한 수많은 스냅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현실에 가닿으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욕망과 욕구 불만, 사회 문화적 불평등이 읽히는 것은 바로, 내 생각엔, 계산대에 서서 자신의 쇼핑 카트에 담긴 내용물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하거나 그림을 평가하려고 입에 올리는 말들에서다. 고객에게 모욕을 당하는 계산원과 사람들이 피해 가는 구걸하는 노숙인, 사회의 폭력과 수치에서 ─ 너무 익숙하거나 흔해서, 하찮고 의미가 결여된 듯 보이는 그 모든 것에서.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는 경험에 위계란 없다. 장소나 사물이 자아내는 느낌과 사유는 그것들의 문화적 가치와 무관하며, 대형 슈퍼마켓 역시 콘서트홀만큼 의미와 인간적 진실을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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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처음 읽은 글은 2016년 8월 22일에 쓰여진 「아무것도 아니고 싶지 않다」였습니다. 저자가 추해지지 말자고, 최선을 다하자고, 돈을 벌고, 집세를 내고 죽지 말자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저는 문득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제가 느낀 허기는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감각입니다. 죽을 것 같은 매일매일, 어쩌면 곧 죽게 될 지도 모를 하루를 지나는 와중에도 빌어먹을 허기를 느낄 때, 저는 제 몸을 야속해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낯설게 경험하고 또 내일도 이렇게 살아가고야 말 것이라는 데에 좌절합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지만, 지금 누가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에야 남은 숫자를 세면서 이빨로 손톱을 물어뜯는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말에 저도 손톱을 물어뜯는 일로 허기를 대신하면서... 잔인한 4월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럼에도 살 수 밖에 없다면 적어도 추해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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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소수(자)적인 것들의 존재 양식에 관심을 가져 온 저자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블로그와 메모장에 쓴 일기 중 일부를 모아 낸 결과물입니다. 저자는 '지은이의 말'에서 이렇게 씁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일기를 썼다. 일기가 나를 살렸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름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관계를 맺어주어서, 나를 견뎌주어서 고맙다."고요. 제가 앞서 저자의 글을 읽고 배고픔을 느꼈다고 했는데요. 이때의 배고픔은 생의 감각이기도 하지만, 세상과 교류를 시작하게 만드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것을 섭취하려면 손을 내밀어야하니까요. 제가 아는 한, 이연숙 작가는 자주 배고프고, 그래서 자주 손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계속 배고픈 상태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까지 기어코 들여다보고야 마는 집념을 가진 사람이죠. 그래서 저는 그의 글과 얼굴을 볼 때면 늘 배고픔을 느낍니다. 저도 그처럼 계속해서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도서 증정 이벤트
감사하게도 '난다' 출판사에서 들불레터 독자들을 위해 도서 증정 이벤트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총 열 분께 이연숙 작가의 책,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을 증정해 드린다고 해요! 아래 내용을 읽은 후, 하단의 버튼을 통해 이벤트에 참여해주세요.
- 이벤트 참여 기간: 4/5(금) ~ 4/11(목)
- 증정 인원: 총 10명
- 당첨자 발표: 4/12(금) 개별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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