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 캐비닛: 기후 소송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 『숲으로 간 여성들』, 오애리, 구정은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연금개혁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전혜원, 오건호
- 『인구 미래 공존』, 조영태
- 『함께 산다는 것』, 아브람 더 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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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내에서 '기후소송'이 제기된 지 4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첫 공개 변론이 열렸습니다. 공개 변론의 쟁점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부실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는데요. 기후소송 4건(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을 병합해 열린 이번 공개변론에서 청구인(요구하는 사람) 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며 이는 국제사회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고, 후속 입법 부실로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를 미래세대에게 떠넘김으로써 그들의 헌법상 환경권과 생명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이에 정부 측은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다른 주요국과 유사하다"고 대응했습니다. 한국은 현재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할 정도로 선도적인 위치에 있으며,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의 무리한 감축 목표를 세우기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요. 그러자 재판관들은 정부 측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을 위한 세부 규정과 기준이 있는지, 이행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물었는데요. 정부 측은 이에 '녹록지 않은 목표'라거나 '이행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다소 부실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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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기후행동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유엔여성기구는 23년 12월, '페미니스트 기후 정의: 행동의 틀' 보고서를 통해 "기후위기 상황에서 여성이 더 큰 위험과 빈곤에 노출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전 세계적인 성차별적 규범과 법률, 정책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의 자원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탄소 배출로 인한 식량 위기 등 다양한 문제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젠더리뷰 기획특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쓴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WEDO(Women's Environment and Development Organization)의 내용을 근거로 〈기후변화가 여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미지로 제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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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여성은 더욱 더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데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죠. 사실 환경운동, 기후행동에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미 많은 국가들이 동의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도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문'을 발표하며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고요. 오늘 들불도 전 세계적인 흐름에 적극 동참하는 의미로 기후행동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접근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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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정은 기자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출간되자마자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책입니다. 구정은 기자는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과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등의 저서를 통해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꾸준한 관심을 두어 온 작가인데요. 이번 작품에서 그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힘써온 여성 환경운동가들과 사회운동가들, 생태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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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는 여러 지역, 인물, 활동 등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모르는 세상이 이만큼이나 넓다는 사실, 또 그곳에서 연신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이는 한편, 이들의 투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쓰여지고 알려질 수 있도록 '기억하는 일'에 동참하는 작업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허리를 바짝 곧추세우게 되었습니다.
"(...)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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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을 연구하고 실천해온 15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데요. 이 부제는 지은이들이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나는 미래가 아니라,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되돌릴 방법에 집중하겠다는 결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천적 방법을 안내하며 '희망적인 미래상'을 제공하는데 주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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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챕터는 3부 「몸의 안팎을 횡단하기」였습니다. 3부에서 저자들은 '생산성', '돌봄' 등 여성의 신체를 관통하는 화두를 다루는데요. 그간의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파행을 비판하는 방식이 제게는 기후행동과 생산성 담론을 연결 짓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좋은 마중물이 되어주었습니다.
"시간 체감이라는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하층부를 이루는 존재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마리아 미스는 자본주의의 빙산의 일각으로 보이는 가시경제에는 자본과 임금노동이 속하지만, 빙산의 아래에 해당하는 비가시적인 경제에는 자연과 여성, 가내수공업, 미성년자의 노동, 그리고 주로 남반구에 있는 식민화된 민족과 영토가 속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무보수 재생산노동이 지구가 제공하는 공기와 물과 햇빛과 같이 여성의 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자유재로 간주되는 것처럼, 자연 자체도 자본 축적을 위해 "비용을 전혀 치르지 않거나 적은 비용만을 치른 채 이용하고 착취할 수 있는 '자유재'로 취급"된다. (...) 여자 사람과 여자 동물의 해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의 변혁이나 폭력적인 육식문화의 종식 등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나는 종속된 시간에서의 해방도 논하고 싶다. (...) 이로써 감금틀에 갇힌 어미 돼지가 잃어버린 재생산노동의 다소 느린 순환적 시간성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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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총 4회에 걸친 연금개혁 공론화1) 500인 회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23일에는 숙의 공론조사2)에 참여한 시민대표 500인의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민대표 500인은 보혐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소득 보장을 중심에 둔 안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국회 연금특위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개혁안을 만들어 21대 국회 회기(5월 29일) 전에 이를 통과시켜야합니다. 언론은 각 정당마다 연금개혁에 대한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입법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은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지만, 국민연금을 둘러싼 입장 차이, 국민연금과 관련한 용어들(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은 낯설게 느끼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또, 연금개혁과 숙의 공론조사가 무엇인지, 시민대표 500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현재와 미래의 변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신 분도 많이 계실테고요. 그래서 오늘은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중심으로 연금개혁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공론화: 여럿이 모여 의논하는 것
2) 숙의 공론조사: 학습과 토론을 통해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갖춘 의견
*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국민연금 기초 쌓기'의 내용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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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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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1988년생 《시사IN》 전혜원 기자와 1964년생 사회학자인 오건호가 함께 쓴 책입니다. 제가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건, 뒷표지에 실린 안온 작가의 추천사 때문이었는데요. 『일인칭 가난』을 쓴 저자는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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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 작가의 말은 꼭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연금개혁을 운운하는 사람들의 언행에 국민의 자리, '나'의 자리는 빠져 있는 것 같았고, 이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신뢰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추천사에서 느낀 공감은 프롤로그에서도 이어집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 전혜원은 연금 기사를 처음 쓴 2018년을 회상합니다. 그는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발표된 그해 8월 17일부터 열흘간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국민연금 기사를 추려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을 살핀 후 시민들이 어떠한 지점에서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파악하게 됐는데요. 전혜원 기자가 파악한 주요 댓글들의 유형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싫다는데 왜 의무가입을 강제하나? 자유 가입으로 돌려라.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다.
- 국민연금은 다단계 사기, 폭탄 돌리기다. 먼저 가입한 사람만 이익을 보고, 젊은 세대는 연금을 못 받거나 쥐꼬리만큼 받을 거다.
-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해야 한다.
- 국민연금보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개혁이 먼저다.
- 국민연금공단은 기금 관리도 못하면서 고연봉에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아마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만한 내용일 거라 생각합니다. 꼬박꼬박 납부해온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된다니... 분노가 터져 나올만 하죠. 그리고 놀랍게도 2018년의 분노는 2024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에서도 비슷한 질문들이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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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 사회가 명목상의 '연금개혁'만을 논하는 동안 놓치고 있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내는 책입니다. 국민연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 책 한 권만으로 어느 정도 현재의 국민연금과 한국 사회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쉽고, 유익합니다.
또, 이 책은 기존 진보 진영의 입장에 대해 숙고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제가 지난 특별호에서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를 소개하면서 '진짜 좌파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이번 책에서는 '연금에서 진짜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 오건호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기존의 진보 진영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보며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왜냐면 그는 우리가 '진보'라 여기는 정당이나 단체(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소속이었고, 현재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활동가거든요. 그런 그가 연금에 대한 입장에서 진보 진영 주류 입장과 결별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왜 '변절한 신자유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까지 진보와 결별해야했을까요?
오건호는 한국인의 노후보장을 위한 공적연금에 '국민연금'만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존 진보 진영은 "한국인의 노후보장 논의 테이블에 오직 국민연금만 올려두려는 경향"을 가집니다. 그 결론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고요. 오건호는 이 방안이 나름의 명분을 가진 주장이라고 설명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않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어질 내용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는 명목상 소득대체율 인상이 아닌,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포함한 세 공적연금의 재설계를 통해 실질적 소득대체율 인상이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저자 전혜원은 "소득대체율 인상 반대론자와 대담하고 책을 낸다면 '편향된 기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하고 우려합니다. 하지만 그는 '오건호라는 질문'이 지금의 한국사회에 가지는 의미를 믿는다고 말해요. 또, 그의 주장을 통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이 과연 노동시장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지", "저성장-고령화라는 시대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고 말하죠. 그 질문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평균 근속연수가 6년에 불과한 한국사회에서 40년간 꼬박꼬박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기 위해서 국가재정을 투입한다면, 결과적으로 그 돈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보는 계층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프리랜서인가?
- 나아가 국민연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노인빈곤율의 당사자인 바로 그 노인들에게 가닿는 혜택이 맞는가?
- 국고를 투입하면 된다는 주장은 일견 정의로운 듯하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미래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은 아닌가?
-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보험료율이 현저하게 낮다는 사실이나 한국이 처한 절망적 인구 조건, 이를 바탕으로 한 기본적인 연금 재정계산 자체를 불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는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따라가다보니 저는 오건호의 주장에 크게 감응하게 되었는데요.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그 중 일부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레터는 이 책의 극히 일부 내용만을 담고 있으니, 가급적 직접 읽어보신 후에 나는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고 싶은지 판단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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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무엇일까?
앞서 계속 언급됐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먼저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보험료율은 월소득 대비 우리가 납부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비율을 의미합니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입니다. 사업장가입자의 경우에는 사업자와 각각 절반씩(4.5%씩) 납부하고,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9%를 본인이 납부해야 합니다. 건강보험료가 월소득의 7.09%(사업장가입자는 3.545%)니까 이보다 높은 금액을 납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소득대체율은 은퇴 뒤 받는 연금액이 일할 때 벌던 소득의 몇 퍼센트를 대체하는지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2024년 현재 소득대체율은 42%이고, 해마다 0.5%p씩 낮아져 2028년부터 소득대체율은 40%가 됩니다.
2️⃣ 국민연금은 정말로 고갈될까? 청년세대는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까?
국민연금에 대한 강한 불신은 '2055년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한국 국민연금은 2003년부터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첫 재정계산 때는 연금고갈 시점을 2047년으로 예상했었죠. 그런데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단행한 연금개혁 때문에 고갈 시점은 2060년으로 밀립니다. 그러다 4차 계산(2018)년에는 2057년으로 앞당겨졌고, 5차(2023)에서는 2년이 더 당겨졌죠. 이러한 재정계산에 의해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2055년에 고갈된다고 예측합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에는 나름 타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국가는 미래에 국민에게 지급할 연금액을 확정해 놓습니다(확정급여형 방식). 이렇게 약속된 금액을 조달하려면 돈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그 원천인 연기금이 2055년에 바닥나니, 그 시기에 돈을 벌고 있는 세대가 연금 지급을 위한 보험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그 금액은 지금의 3~4배 정도라고 해요. 그러니까 보험료율이 현재 9%에서 2055년에 26~35% 가량 인상되어야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거죠. 수익의 1/3을 국민연금으로 납부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세대는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될 겁니다.
3️⃣ 공적연금에는 국민연금만 있을까?
공적연금에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퇴직연금, 기초연금이 있습니다. 먼저 퇴직연금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업주가 1년 이상 고용한 노동자 월소득의 8.33%를 퇴직금으로 적립하도록 하는 연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시 수령을 하고 있기 때문에 퇴직연금이 유의미한 금액까지 쌓이지 않지만, 노후 대책을 위해 이를 노후대비 자산으로 가져갈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오건호는 말합니다.
또,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33만원 가량을 지급하는 국고 지원 연금으로, 납부할 보험료가 없어서 "국민연금 울타리 바깥에 있거나 국민연금만으로 살기 힘든 빈곤 노인에게 유일한 안전망인 제도"입니다. 오건호는 노인빈곤율이 40%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 금액이 충분치 않다고 말합니다.
4️⃣ 소득대체율이 인상되면 가장 혜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전혜원 기자는 2022년 12월 기준 1인당 평균 수령액이 월 58만 6000원에 불과한 현실을 지적하며, '용돈 연금'이라는 비난이 일견 타당한 것으로 들린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이에 오건호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2020년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한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18.6년에 불과해요. 그래서 한국의 가입자들이 실제로 받는 평균 연금액은 은퇴 전 소득의 20%대 초반에 그칩니다. 이를 '실질 소득대체율'이라고 해요. (...) 한국 노인들이 적은 액수의 연금을 받는 건 명목 소득대체율(40%)이 낮아서라기보다는 가입 기간이 짧아서 실질 소득대체율(20%대)이 낮기 때문이에요." (p.113-114)
그리고 실질 소득대체율이 이렇게 낮은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해요.
"우리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이 낮은 건,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안에서 기인해요.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 은퇴자의 연금 가입 기간이 30년을 훌쩍 넘는 데 비해 한국은 미래에도 20년 중반대에 머무른다고 예상되는 거죠." (p.121)
오건호는 '명목 소득대체율'의 인상의 혜택이 고소득-장기 가입자에게 향한다고 말합니다. 국민연금은 "소득이 많고 오래 가입한 사람일수록 순혜택이 커"지는 제도이기 때문이죠.
5️⃣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인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까?
2020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9%로 OECD 가입국 중 1위입니다. 노인빈곤율이란 "65세 이상 노인 중 벌이가 기준 중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상대적 빈곤 지표"입니다. 한국에서는 "2024년 기준 월 소득 111만5000원이 안 되는 노인의 비중"이죠.
오건호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삶은 무관하다고 단언합니다. 그가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 이유는 제도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노인 두 사람 중 한 명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이미 은퇴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따라서 소득대체율 인상은 "현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 60세 미만의 가입자들이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올리자는 얘기"라는 것입니다.
이에 전혜원 기자는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이들을 포함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잠재적 빈곤 방지책'으로서는 의미가 있지 않을"지 묻습니다. 오건호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대적 빈곤선 아래에 놓인 노인들은 최소 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해 국민연금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거나 소득이 적고 가입기간이 짧아 충분한 연금액을 지급받을 수 없을 것이라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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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건호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국고를 투입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며, 이른바 '공적연금 삼총사'를 "노후를 위한 세 개의 지팡이"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를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로 제안하는데요. 그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보겠습니다.
"공적연금의 목표는 노후소득보장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만 보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삼총사를 모두 활용해야 해요. 하위계층 노인은 기초연금과 소액의 국민연금으로, 중간계층 이상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거예요. (...) 소액의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현재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올려야 해요. 그 대신 미래 재정을 감안해서 지급 범위는 점차 줄이고요. (...) 현재의 70% 노인에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하는 방식에서, 더 가난한 노인에게 더 많이 주는 방식의 최저소득보장 연금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 (p.203)
또, 그는 명목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국민연금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계층에게는 국가가 개입해 가입 단절을 막아야 해요.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지원한다면,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 있어요.(...) 출산, 실업, 군복무 연금크레딧도 가입기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에요. 제한을 풀어야 하죠. (...) 복무 기간 전체로 확대해야 해요." (p.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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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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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오건호는 줄곧 세 공적연금(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정책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은 기초연금액 인상이 조세부담으로 이어지거나 퇴직연금을 일시에 수령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빠른 기간 안에 해소할 수 없어 노후 대안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의견 역시 납득가능한 지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건호는 현재 한국의 저출생-고령화 문제로 인해 노년부양 부담이 크게 가중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를 빠르게 해소할 즉각적인 해결책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기다려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연금 제도 전반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고쳐 나가야한다는 거죠. 또, 모두를 위한 개혁을 위해서는 국가-기업-사업장가입자-지역가입자가 "모두 현세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나누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내다보는데요. 한국의 정치와 정책은 그의 관점처럼 더 먼 미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 같아요. 연금개혁의 초점이 "현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 60세 미만의 가입자들이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올리자"는 데 맞춰져있을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게 전해지고 그 결과 우리의 미래 역시 더욱 불확실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니까요.
그러나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내린 결론은 사회적 연대를 모색하는 길보다는 정의롭지 않은 방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좌절하기엔 이릅니다. 국민 모두가 연금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때, 우리와 우리 미래세대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늘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책을 읽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지 못했던 자리까지 빛을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에 대해 국민 한 사람으로서목소리를 낼 수 있길 희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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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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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는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연금 수입-지출 계산(재정계산)에 고려해야 할 변수로 인구와 소득을 꼽습니다. "연금을 낼 사람, 받을 사람의 수를 알아야 하니 합계출산율과 65세 이후의 기대여명을 알아야" 하고, "경제성장률과 임금상승률"을 통해 소득을 추정해야한다고 말하죠.
국민연금 논의에 있어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빠지지 않는 이슈입니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속해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가 필요한데, 출생율이 낮아짐에 따라 그 인구도 줄어들기 때문이죠. 또,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될수록 연금을 지급받을 노인의 수도 증가하기 때문에 이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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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출생율의 하락을 반기기도 합니다. 이때의 반가움은 출생율의 하락 그 자체보단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당연히 여기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데 대한 긍정이기도 하고,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기후변화의 원인도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기대이기도 합니다. 『인구 미래 공존』의 저자 조영태 역시 '인구가 줄면 더 좋은 것 아니냐'는 반문을 적지 않게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구학자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그 근거로 두 가지를 듭니다. 먼저 가장 큰 이유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적응할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예로 '2017년 학령인구가 줄어 발생한 초등교사 임용대란"을 소개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문제는 단순히 임용을 앞두고 있던 초등교사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교사 고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교대에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 문제까지 사슬처럼 연결"되는 것은 물론, "대학으로 옮겨가고, 청년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상권도 영향을 받게"되죠.
그다음은 "인구감소의 영향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인데요. 그는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나라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특정 연령, 특정 지역, 특정 산업, 특정 재화에 차별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신생아 관련 사업 종사자들이 직면한 위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몇몇 독자들은 그 사례가 지나치게 협소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생각보다 더 멀리 뻗어갑니다. 신생아 관련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고급화와 사업 다각화"일텐데요. 이때 피해를 입게되는 건 신생아와 그 부모입니다. 신생아 관련 용품은 비싸지고, 구하기도 쉽지 않게 될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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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오건호가 말한 '사회적 연대', 『인구 미래 공존』의 저자 조영태가 말한 인구감소의 영향에 여전히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크게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왜 그것까지 고려해야해?라는 질문을 가지실 수도 있죠. 이러한 의문을 품고 계신 분들에게는 아브람 더 스반의 책 『함께 산다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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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가 외부에서 강연이나 워크숍을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추천하는 사회학 입문서인데요. 명쾌한 문체로 쓰인 이 책은 읽기도 쉽고, 그 내용도 좋습니다. 아브람 더 스반은 '의존'이라는 키워드로 사회의 기원과 작동원리를 이해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모든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태어나고(!),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자기에게 필요하지만 스스로 만들 수 없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어야 한다. 서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p.16)
그는 '의존'이라는 자못 간명해보이는 키워드를 사회학적 틀로 규정하고, 사람들이 생존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지, 사람들이 서로에게 갖는 기대와 관계를 맺는 방식, 서로를 어떻게 구분하거나 차별하는지, 경쟁과 협력의 작동원리는 무엇인지, 생산, 교환하는 화폐경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또, 결론부에서 전 인류를 포함하는 '우리'라는 인식과 연대감이 형성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얽혀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이러한 감각을 잊지 않도록 자주 의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그러고나면, '사회적 연대'나 '공존'을 이야기하는 사회학자, 인구학자의 서술이 좀 더 쉽게 이해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뒷표지에 실린 저자의 논의를 압축한 내용 덕분이었는데요. 여러분도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 내용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 '독립적'이란, 타인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받은 걸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
- 타인이 나에게 가장 의존하고 있을 때가 내 삶의 '전성기'다.
- 어떤 사람에 대한 존경은 다른 이에 대한 경멸을 뜻한다.
- 재산이란, 그 재화를 타인이 쓰지 못하도록 배제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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