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진행한 언리미티드에디션(UE15)에서 선보였던 『작업자의 사전』이 새 옷을 입고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와 해인 님이 조직 안팎의 작업자로서 통과해온 시간과 그 과정 중 생겨난 문제의식을 담아낸 결과물로, 작업자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재정의한 '사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언리밋 버전에서는 단어 50개를 소개했는데요. 이번 책은 단어 50개를 추가하여 총 100개를 소개했고, 에세이도 각자 두 편씩 썼습니다.
책을 함께 쓴 해인 님과 저는 만나면 책 얘기로 반나절, 일 얘기로 반나절을 보내는 사이입니다. 좋아하는 도서의 장르도, 작가도, 일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오히려 그 덕에 늘 대화가 즐거웠어요. 그러다 문득 우리가 나눈 '일' 얘기를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쓰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 『작업자의 사전』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 프리랜서 혹은 마케터나 기획자 같이 특정 직무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닌 '작업자'였을까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프롤로그 「우리의 일을 보다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 같은 명칭은 세금 분류를 위해 편의상 엮은 제도 내 단위이자, 하나의 조직에 속하지 않고 감독을 받지 않는 계약상 신분을 의미하는 언어로 상주 근무자도, 아르바이트생도, 계약직도 아니지만 수익이 발생하는 개인이 세금 제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분류한다. 이와 달리 '작업자'는 제도가 규정한 '일'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용어다. 당장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작업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며,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조직 바깥에서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 역시 사용할 수 있다." (p.7)
이 책을 통해 두 사람이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건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환경입니다. 이때 소외란 사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에 개입하며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사용해온 단어들은 바로 이러한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죠. 이를 통해 만들어진 관점은 중요한 문제들을 보여주지 않거나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은폐합니다. 그래서 저희 두 사람은 『작업자의 사전』을 통해 언어가 현상을 대표하게 되면서 은폐하게 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짤막한 단어 정의를 통해 얼어붙은 우리의 관점에 균열을 내는 작업, 그게 『작업자의 사전』의 목표인 셈입니다.
해인 님의 글을 읽다보면 일종의 쾌감이 느껴집니다. 딱 들어맞는 레퍼런스 인용, 현상을 해석하는 날카로운 관점 등 여러 탁월한 지점이 있죠. 제가 작업자가 지속해오고 있는 노동의 한 장면을 시니컬한 유머를 섞어 묘사했다면, 해인 님은 작업자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여러 작업자들의 작업을 통해 이해하고자 시도했기 때문에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 일 연대기나 작업자가 쓰는 도구에 대한 에세이의 서술도 판이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독서를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은 독자 분들께서 자신의 작업과 그를 둘러싼 언어에 대해 돌아보고, 보다 명확한 언어로 작업을 정의해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해보는 작업이 필요할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