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의 PICK!
-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 이태영, 신승철 지음 (알렙)
-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김영화 (메멘토)
- 『동등한 우리』, 매기 도허티 지음, 이주혜 옮김 (위즈덤하우스)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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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필요와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말과 글들이 넘쳐나는 시기입니다. 저 역시 사적·공적인 자리에서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갖는 편인데요. 어느 날은 문득 사람들은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져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어요. 행복을 나누는 곳,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는 곳, 다양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곳, 유사한 정동을 토대로 형성된 자리... 이런저런 답을 듣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라는 단위가 이 사람들의 정의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관계의 장이 맞나? '행복'이 공동체의 중요한 전제라면, 우리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우리'로서 이 자리에서 공동체에 대해 함께 사유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그래서 요즘은 공동체에 관한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도 다시 들춰보고, 신간 중에서 눈에 띄는 책들도 뒤적여보는 방식으로요. 들불레터 107화와 108화에서는 제가 읽은 공동체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고,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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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는 공동체 활동가와 생태철학자가 '공동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각자의 성찰을 담아 쓴 책입니다. 먼저 이태영은 우리가 공동체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양한 주장들을 나열합니다. 인간이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날 때부터 '공동체적 자아'라는, "본능과 이성, 도덕의 차원에서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 공동체가 국가 등 외부의 개입 없이 "자발적 집합 행동과 자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공동의) 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주장,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공동체를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미래 세계의 희망"이 놓인 협력적 마을에 있다는 주장 등을 이야기하죠. 그리곤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정말 간디의 말처럼 미래 세계의 희망은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을까? 정말로 공동체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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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저자는 "문화적으로 소환되는" 공동체가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유를 제약하는 ("다소 구시대적인 것") 경향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또, "낭만의 대상이 된 공동체"가 권력의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고 밝힙니다. 그는 이에 대한 사례로 도시의 마을공동체 활동을 드는데요. 제도화된 도시의 마을공동체 활동이 "다양한 성과지표를 통해 공동체성의 함양을 측정하지만 도시 공간에서 한 장소에 오래 정주한다는 것이 갖는 권력적 위계를 그러한 지표 안에 반영하지 않는다"(26)는 것입니다. 가령, 집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한 장소에서의 거주 기간의 차이가 있겠죠.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금세 또 다른 집을 찾아 떠나야할테니까요. 또,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1.5시간인 한국 사회(2019년 기준)에서 생활 공간에서의 정주시간이 긴 사람의 상황은 '공동체성'으로 설명하지 못할 변수를 가진 사실일 것입니다.
한편, 낭만화된 공동체는 가부장제의 문제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많은 공동체가 여성의 돌봄노동을 기반으로 지탱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렇듯 가부장제 내 존재하는 배제, 차별의 논리를 직시하지 않는 공동체는 사실 (저자가 이야기한대로) "여러 가지 모순들이 모여 있는 영역"인 건 아닐까요?
저자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인 산안마을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 답을 대신합니다. 산안마을은 1984년 경기도 화성에 실현된 대안공동체, 생태공동체 사례로, "'무소유 일체 사회', 즉 무소유, 공용, 공활의 사회 원리를 적용한 장소"입니다.
저자는 생태주의자이자 철학자인 펠릭스 가타리가 "마음생태, 사회생태, 자연생태"라는 도식 중 "마음생태"의 영역을 특히 강조한 점을 짚어냅니다. 가타리에게 마음생태는 곧 주체성 생산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세계 자본주의와 대중 매체가 부여하는 동질성과 획일화로부터 벗어나려는 특이성, 예외성, 희소성"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자세로 의미화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야마기시즘 사회의 핵심에 "연찬"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연찬이란, 야마기시즘에서 "의사결정 방식이자 생활 방식, (...) 사유 방식으로서 작동"하는 것으로, "'무엇이 옳은가?'를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는 사유 방식"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사실을 분리하는 '자기 변혁'을 통해 사회적 혁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야마기시즘의 핵심 구상인데요. 저자는 이러한 야마기시즘의 구상이 새로운 사회의 주체를 상정하고, 주체성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요인임을 이야기합니다. "혐오와 단절의 시대"에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하는 '연찬' 과정은 결국 소통을 위한 과정이자 공동체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다양한 당사자들의 고민을 통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시사점을 가진다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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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가 산안마을의 사례를 통해 '공동체성'에 대한 질문에 다시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는 다문화사회의 대표적 사례인 '울산'의 1년을 되짚으며 갈등이 공동체적 역량을 강화하는데 어떠한 쓸모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2021년 8월, 한국은 일명 '미라클 작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분쟁 지역에서 390명을 구출했습니다. 이들이 구출한 사람들은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아프간인들과 같은 '특별기여자'였는데요. 저자는 이 중 157명의 아프간인들이 울산에 정착하게 된 후 그곳에서 있었던 갈등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면서 한 사회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과 공존의 노하우를 담아 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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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울산 동구에서 확인한 것 중에는 갈등의 쓸모가 있었다고 밝힙니다. 그는 기존의 다문화 갈등이 악덕 사용자와 이주 노동자 간 갈등만을 다루거나 법무부와 이주 인권 단체의 대립으로 이야기되어왔던 데 반해, 울산에서 만난 이야기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없었다면, 이 많은 인력이 한데 모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회고를 통해 조금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반발이 거센 만큼 지역사회의 공적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모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각 주체가 제 구실을 다하면, 다문화 사회의 불화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는 것이죠.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갈등을 해결하고 친구로, 이웃으로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공동체를 형성한 울산의 사례는 큰 시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뉴스탭을 클릭하기만 해도 너무 많은 갈등을 발견할 수 있는 혼돈의 시대, 너무 많은 이해관계와 욕망 사이에서 무엇 하나 또렷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는 좌절에 주저 앉은 사회, 희망과 낙관을 기대하지 못한 채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줍니다. 또, 앞서 언급했던 '주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울산 정착 사례는 한 사회가 공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는 과정을 겪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실행해야만 가능한 일이란 걸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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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소개할 책은 문학가이자 역사학자인 매기 도허티가 쓴 『동등한 우리』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미국국립과학재단 학교조사위원회의 유일한 여성 위원이었던 더글러스대학 학장이자 미생물학자 메리 번팅이 뛰어난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 자신의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국가 과학기술력의 낭비"라고 보며 "기혼유자녀 학생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인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기 전과 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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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메리 번팅의 이야기뿐 아니라,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의 1~2기 장학생이었던 다섯 명의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이들은 시인 앤 섹스턴과 맥신 쿠민, 소설가 틸리 올슨과 화가 바버라 스완, 조각가 마리아나 피네다로, '동등한 우리'로서 여성이라는 정체성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들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지점은 남자만의 세계에서 배제와 박탈을 경험해온, '공통의 경험'을 나누고 있는 여성들조차 저마다 놓인 상황이 다르고, 세계를 바라보는 틀 역시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짚어낸 부분들입니다. 예컨대, 공산주의 활동가이자 노동계급 작가인 틸리 올슨은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섹스턴은 글쓰기와 생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갈 필요가 없었고, 자유 시간도 너무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에게 래드클리프 연구소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올슨에게는 연구소의 지원이 확보해 줄 시간이, 섹스턴에게는 남편의 눈치를 보던 상황에서 벗어날 구실과 시를 쓸 조건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저자는 마치 '여적여'라는 용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시대의 문학계에도 "여성들이 (...) 다른 여자들과 사악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몰랐고 친구가 되는 법 또한 몰랐습니다. 여자들은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일이 곧 시대와 반목하겠다는 선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이 때문에 스스로에게조차 거짓말을 해야했죠.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섹스턴과 올슨의 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태도와 상대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우정은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거짓과 기만에 갇히길 강요 받고 또 스스로에게도 강제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안겨 줍니다.
동일성에 집중해서 관계를 맺는 일이 외따로 존재하던 여성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그리고 그것을 진실되게 나누면서 지속가능한 관계도 있다는 걸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그래서 올슨과 섹스턴의 사례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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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등한 우리』 북클럽 (마감 임박!!)
『동등한 우리』에는 앞서 소개한 올슨과 섹스턴의 우정 외에도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에서 나눈 여자들의 우정과 그 안에서 재능을 꽃피웠던 여자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공동체(성)'에 대해 어떠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을 보다 더 '동등하게' 이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그 답을 『동등한 우리』를 옮긴 이주혜 번역가와 함께 찾아봐요!
- 일시: 7월 11일, 18일(목) 오후 8시
- 장소: 온라인(줌)
- 이끔이: 이주혜 작가(『동등한 우리』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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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축구를 하는 건 물론, 경기를 보는 것조차 무시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남성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너 오프사이드off-side가 뭔 줄 알아?"라는 질문을 던지며, 여자들이 축구선수의 외모에 꽂혀 경기를 보는 것 아니냐는 조롱을 일삼았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 사이에서는 '축구를 사랑하는 일'이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여자'라는 수식 앞에 '축구하는'이라는 표현이 붙는 것도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풋살을 즐기는 여성들이 많고, 여성 조기 축구회를 운영하는 동료도 생겼으니까 이제 여자들에게 축구는 보는 영역에서 하는 영역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어 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반가운 책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노해원 작가의 『시골, 여자, 축구』입니다. 오늘 들불이 만난 이야기에서는 시골에서 축구를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흥미를 가질 수 있을만한 몇 가지 지점들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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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울어진 세상도 축구를 향한 나의 사랑과 열정을 꺾을 순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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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자축구의 간판 선수였던 박은선 선수의 성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WK리그 6개 구단이 박 선수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가 경기에 뛰지 못하도록 결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인데요. 이들이 결의한 이유는 선수의 체구가 소속팀 선수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박 선수의 소속팀인 서울시청은 강하게 반발했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선수에 대한 인권 침해와 차별 여부 등을 조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성별 논란은 스포츠가 남성적이라는 성별이분법에 매몰된 사회규범으로 인해 생겨난 사건입니다. 6개 구단이 보기에 박은선 선수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공식을 깨뜨린 여성으로, 그들이 규정한 성적 규범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또, 이를 통해 실력 있는 선수를 견제하려는 계산도 있었겠고요. 이에 박 선수는 자신의 SNS에 성별 논란으로 인한 수치심이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스포츠가 어떠한 방식으로 여성을 배제하고 밀어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2019년에는 첫 '엄마 국가대표'가 된 황보람 선수가 화제가 됐습니다. 아기를 낳고 대표팀 선수가 된 게 황보람 선수가 최초라니 (그것도 2019년에!) 놀라웠는데요. 외국의 경우에는, 출산 후에도 국가대표가 되는 사례가 많다고 하니 한국은 늦어도 한참 늦은 편입니다.
또, 대한축구협회(KFA)에서는 2021년 최초의 여성 부회장(홍은아 이화여대 교수)이 나왔습니다. 이로써 축구협회의 여성 임원은 4명이 되었습니다. 축구협회는 이로써 '성평등한 스포츠 협회로 한 발 내딛었다'고 자평했지만, 총 인원인 28명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에 '성평등'을 운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저자는 위 사건들을 바라보며 "세상은 언제쯤 평평해질 수 있을지", "스포츠를 하지 않거나 보지 않는 수많은 여성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고, 씁쓸함을 삼킵니다. 이때 저자는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이 쓴 《축구란 무엇인가》를 인용합니다.
"발로 차는 것은 몸의 정상적 자세를 잃게 만들고 '다리가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니까 '여성의 치마가 지니는 의미와 정반대'이다."
저자는 허무주의를 갖기 쉬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 같은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을 향한 애정이 '여자'와 '축구'를 만나게 한다고 말합니다. 있는 힘껏 다리를 벌리고 경계를 넘어서는 여자들! 그들은 오늘도 필드를 누비며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을 다른 여자들에게 일깨우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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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제게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계'입니다. 협업하는 동료와 손발이 잘 맞지 않아서, 그들과 제 마음이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서,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서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충분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빠른 문제해결보다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한대도 천천히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죠. 전에는 '효율'을 중시하는 한국인답게 저 역시 빨리빨리를 미덕으로 삼았고, 지금도 어떤 날은 조급한 마음에 그게 잘 안될 때가 있지만... 페미니즘을 알고 난 뒤 되도록 관계를 잘 쌓아 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왜 작업과 관계의 이야기를 꺼냈냐면... 팀 스포츠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시골, 여자, 축구』에서 제가 가장 많은 메모를 끄적인 챕터는 바로 「같이 축구하는 사이」입니다. 「같이 축구하는 사이」는 포지션 훈련을 마친 뒤 진행한 경기에서 팀 수비수 중 가장 선임인 '비빔'과의 에피소드를 다룬 챕터인데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상황을 만들길 바라는 코치의 코칭과 앞으로 치고 나가는 비빔의 플레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저자는 비빔에게 계속해서 "자리 지켜요, 자리!"라는 말을 던지게 됩니다. 이때 저자는 자신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비빔을 계속 혼내는 것 같은 상황이 불편하진 않을지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생각이 많아지니 몸은 그에 맞춰 뚝딱거리게 되고, 그렇게 혼란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비빔은 이렇게 말합니다.
"해원이 계속 얘기하고 있는 거요, 제 성격 때문인 거 같아요. 제가 원래 남한테 지시를 잘 못해요. 제가 센터백이니까 뒤에서 사람들한테 지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제가 자꾸 뛰어나가는 거 같아요."
저자는 이에 비빔의 플레이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비빔은 느린 사람이고, 자기만의 타이밍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 저자는 주변 사람들을 자꾸 의식하는 사람이고, 또 처음 진행해보는 포지션 훈련에 혼란을 겪고 있었죠. 저자는 친구들의 플레이와 나의 차이를 가늠하며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런 걸 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팀 스포츠의 운영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드를 정신 없이 누비는 저자와 비빔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대화'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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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자기계발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합니다. 들불에서 여러 차례 자기계발이 얼마나 강박적이고 통제적인 문화인지, 각자도생의 논리가 기입된 잘못된 문화인지 이야기한 것 같은데 여전히 어떤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의 계발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거라는 불안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많은 자기계발서의 목표는 '승리'입니다. 자기계발서들은 우리의 현실이 불가피한 경쟁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하고, 이기고 지는 치열한 전투에서 오직 이기는 싸움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죠. 이기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장은 그 결과가 '승리'일 때에만 인정 받습니다. 패배한 사람의 성장은 패배하는 즉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병리적으로 구성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입니다.
「우리의 적들은 다정하다」는 홍동초와의 경기에서 참패한 날을 이야기합니다. 그날, 홍동초 축구부의 코치인 '레알'은 반반FC의 선수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13:0으로 졌으니까 다음 목표는 뭐여야 할까요?"
패배로 잔뜩 풀이 죽어 있던 선수들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승리...?" 라고 답합니다. 이에 레알은 말합니다.
"아니죠. 앞으로도 저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번엔 13:0으로 졌으니 다음엔 12:0으로 지고, 그다음엔 11:0, 10:0 이런 식으로 격차를 줄여가는 거죠. 그러다 한 골 들어가면 훌륭한 거고요."
그날부터 반반FC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한 골'이 됩니다. 목표가 승리에서 한 골이 되면, 우리의 성장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꾸준히 누적됩니다. 목표의 전환은 곧 기쁨을 증폭시키는 방편이 됩니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내가, 우리 팀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시골, 여자, 축구』를 읽다 보면, 축구라는 스포츠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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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언젠가 '축구하는 여자'가 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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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저는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빠를 따라 해외축구(참고로 아버지는 리버풀의 팬이었습니다...)를 열심히 보긴 했지만, 경기를 보면서도 '축구는 나와 먼 얘기'라고 생각했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골, 여자, 축구』를 소개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습니다. 나처럼 축구를 모르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일까? 고민하면서 말이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이 책을 읽고도 여전히 축구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축구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축구가 나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 저 또한 '축구는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골 때리는 그녀들〉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때조차도 '저건 운동을 잘하는 여자들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시골, 여자, 축구』를 읽고 나서는 나의 삶과 그들의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겹쳐 보게 되었습니다. 필드에서 벌어지는 일들, 필드 밖에서 저자가 부딪혀 온 경험들은 나의 매일을 구성하는 것들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두려움의 허들이 낮아졌어요. 당장 축구를 시작할 결심이 생긴 건 아니지만, 언젠가 나도 공을 차고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고요.
책을 읽는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가 실은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는 일,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일. 『시골, 여자, 축구』를 읽고 오랜만에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겨 가슴이 뛰었는데요. 여러분도 『시골, 여자, 축구』를 통해 가슴 뛰는 삶의 조각들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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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불 경험박람회 01. 축구 편
앞선 레터에서 들불의 〈직업박람회〉 목수 편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와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가 바로 〈경험탐방회〉입니다. 직업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해버린 소중한 경험들, 그 중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생경할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경험탐방회〉 첫 번째 시간에는 『시골, 여자, 축구』의 저자인 노해원 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해요. 자세한 사항은 들불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 ⚽
- 일시: 7월 21일 일요일 오전 10시(120분)
- 장소: 온라인(줌)
- 이끔이: 노해원(『시골, 여자, 축구』 저자)
- 함께 읽을 책: 『시골, 여자, 축구』 (도서는 흐름출판에서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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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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