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들불입니다.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한국여성학회 40주년을 맞아 출간된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반페미니즘적 백래시를 촉발시킨 사건들을 다시 살폈습니다. 2025년은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1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새해를 맞기 전,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페미니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백래시는 얼마나 심화되었는지 톺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허윤, 손희정, 이민주, 김애라, 김수아, 이지은, 임소연, 권현지, 황세원, 노가빈, 고민지, 장인하, 김미현, 김혜경, 엄혜진, 김보명, 김주희, 신경아 (지은이), 한국여성학회 (기획)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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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한국여성학회 40주년을 맞아 편찬된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입니다. 서문 「페미니스트답게 질문하기」를 쓴 허윤은 1990년대 영페미니스트들의 등장에 인터넷의 역할이 주요했던 것처럼, "2010년대의 '페미니즘 리부트'에도 디지털 미디어가 전면에 등장"했고, 이후 디지털 미디어가 페미니즘을 대중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밝힙니다. 이어 '페미니즘 대중화'('온라인 페미니즘'이라 불리는)는 점차 다양한 플랫폼으로 영향력을 확장했고, 이제 우리의 삶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덧붙이죠. 그렇기에 디지털과 페미니즘을 사유하는 일은 중요한 작업일 텐데요.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디지털+페미니즘을 톺아보"는 과정을 통해 디지털을 매개로 한 젠더 폭력의 역사를 페미니스트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디지털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지 독자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도록 담론의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는 작업물입니다. "페미니즘 지식을 생산하고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자리를 지켜온 한국여성학회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 여성학의 과제를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다루며, 질문을 던지고 변화를 촉구하는 고민의 과정에 독자 역시 참여할 것을 제안합니다.
오늘 〈들불이 만난 이야기〉에서는 크게 3부로 구성된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의 내용 중 세 편의 글을 골라 집중 조명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페미니스트적 시각을 정교하게 다듬고, "당면한 사회 문제를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레터 소개글을 읽고난 뒤 꼭 일독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그럼 오늘의 〈들불이 만난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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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 밥줄 끊기의 역사 온라인 소비 시장에서의 백래시와 남성 소비자 정치
이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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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 색출'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2016년 '넥슨 성우 교체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넥슨 게임의 성우가 교체 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메갈 색출'은 '서브컬처' 디지털 콘텐츠 시장은 물론, GS를 비롯한 사기업 및 공공기관으로 확산되며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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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모임장이 아카이브 중인 <집게 손가락 논란 기업 리스트> ⓒ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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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 밥줄 끊기의 역사 - 온라인 소비 시장에서의 백래시와 남성 소비자 정치」를 쓴 저자 이민주는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페미니즘이 시장에서 '금기'로 자리잡게 된 맥락을 살피고, '메갈 색출' 현상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자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 들이며 개입의 여지를 차단하는 방향이 아닌, "반페미니즘 백래시의 역사에 위치 시키는" 작업을 통해 페미니스트가 적극적으로 저항·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두 가지의 큰 줄기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합니다. 첫 번째 줄기는 '메갈 색출'이 소비자 피해 개념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전유한 남성들에 의해 '소비자 운동'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2015~2016년 사이 "코미디언 장동민의 여성혐오 발언 사과 및 <무한도전> 하차 요구, 힙합가수 블랙넛의 여성혐오 가사와 웹툰 <레바툰>의 여성혐오 장면 공론화" 등 여성혐오적인 콘텐츠에 문제를 제기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그동안 남성들이 선호해온 대중문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뀌어 버린 사건이었는데요. 이에 자신이 가진 주도권을 위협 당하기 시작하며 '분노와 복수심'을 갖게 된 남성들이 '메갈'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반발합니다. 그러면서 페미니스트들이 그간 전개해온 소비자 운동의 전략을 탈취해오죠. 그렇게 탈취 당한 전략은 '메갈 색출'이라는 탈맥락적 전유에 의한 소비자 운동으로 전개되었고요.
또 다른 줄기는 '남성 소비자'라는 지위를 획득한 남성들에게 정치적 행동에 있어서의 정동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에 관한 분석입니다. 저자는 '메갈 색출'을 그들의 '온라인 놀이문화'로 규정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어떠한 즐거움과 "공동체적인 쾌감", "정치적 효능감", "권력감" 등을 느끼는지 살핍니다. 또, '메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기들만의 유머 문화를 생성해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짤' 사용이 어떻게 커뮤니티 내부의 '친밀성'을 형성했는지 그 맥락도 간략히 짚습니다. 저자는 '메갈 색출'이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까닭 중 하나로 '메갈 색출'의 경험이 집단 지식이 되어버렸으며 이것이 "강한 집단적 정동을 포함"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는데요. 이 부분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2016년 여성혐오 논란이 불거진 장면들을 모아 소개한 기사입니다. 여성비하를 한 코미디언 장동민과 가수 송민호의 소식 역시 짧게 담겨 있는데요. 당시에는 여성비하를 한 코미디언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일이 있었군요! 반페미니즘 백래시로 인해 2024년 현재가 훨씬 처참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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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지어진' 개발자들과 페미니스트 인공지능 혐오와 차별을 넘는 기술의 가능성을 찾아
이지은·임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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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반 검색 엔진 퍼플렉시티 AI(Perplexity AI)에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이 뭐야?'라고 검색한 결과 ⓒ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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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지어진' 개발자들과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을 쓴 이지은, 임소연 두 저자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관점을 공유하고, 그 지향을 나누는 "페미니스트 인공지능-'하기'"를 제안합니다. 이때, '하기'란 "헬렌 론지뇨의 논문에 등장한 "페미니스트로서 과학 하기"라는 말에서 빌려온 것"으로, 인공지능을 젠더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물론, "페미니즘으로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며 "더 나은 과학기술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인공지능과 관련한 문제적 논의들을 개발자들은 페미니즘적으로 어떻게 분석하고 비판하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본 부분입니다. 두 저자는 개발 직군에서 작업 중인 실무자들을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의 교육 대상으로만 국한하여 바라보지 않고, 그들을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성과 역할을 가진" 이들로 바라보며 시야를 확장하는데요. 저자는 편향 없는 알고리즘, 혐오 발화의 대응 문제와 같이 몇 년 사이 전 사회적인 정치적 논란으로 급부상한 이슈들을 다루며, 이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실었습니다.
오늘 트위터(현 X)에서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동일한' 인터넷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인권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남학생들에게 공교육은 실패했다고 봐야하는 게 아닌지 한탄하며 쓴 트윗을 읽었는데요. 저는 이 트윗을 읽으며 과연 이들이 '동일한'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알고리즘이 극단적 편향을 이루고 있다면,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디지털 문법은 분명 차별적이고 혐오적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이 글에서도 이러한 알고리즘의 편향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인 개발자 김영미(가명)는 극단적으로 모아지는 개인화 알고리즘의 특성을 '중화'할 수 있을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이를 실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는 기업과 정부의 승인 혹은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한 일이라는 의견 역시 덧붙입니다. '성능'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알고리즘 내 편향을 '중화'시킬만한 해결책을 근시일내에 마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또, 차민서(가명)는 알고리즘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개발되고 여기에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에 편향을 제거하는 데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에 '경험의 총합'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단순히 '여성 개발자'를 추가하는 것이나 '전문 인력'이 만들어낸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위치성에서 비롯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경험의 '제한'은 달리 말하면 개발자 각각의 위치성에서 비롯되는 부분적 시각이며, '경험의 총합'이 좋은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 부분적 시각들이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낙관이기도 하다." p.156-157
인공지능의 '폭력' 문제가 대두된 챗봇 '이루다' 논란을 다룬 기사입니다. '이루다'가 일부 이용자로부터 학습한 '사회적 편향'이 차별과 편견을 재생산함으로써 더욱 강화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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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지 않는 몸을 가진 남성-피해자들 자산 불공정 감각과 여성-불로소득자 담론
김주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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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성인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잠입수사를 허용하는 법에 반대한 이준석 ⓒYTN, 국회방송 (아래) 딥페이크 처벌법이 아닌 '함정수사법'에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고소 예고를 하는 이준석 ⓒ이준석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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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지 않는 몸을 가진 남성-피해자들」은 페미니스트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그 이름(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깰 정도로 열받는 그 이름...), '이준석'이 '젠더갈등'으로 진단한 '안티페미니즘'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준석과 윤석열이 차별을 개인적 (불)운의 문제로 취급하며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이러한 논리를 여성 차별에 적용한 맥락을 설명해요. 저자는 그들이 여성이 차별을 겪는 것 역시 자연적인 것이며 '여성 할당제'와 같은 제도가 갖는 문제를 "자연비율"을 한참 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공정담론을 통해 '타고난 차이'라는 범주에 주목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채택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어 저자는 '인국공 사태', '조국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공정 담론에 있어 남성이 어떻게 '피해자'가 되었는지 그 맥락을 살핍니다. 저자는 그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대적 불공정 감각은 모두 "타고남·운·세습의 영역으로부터 촉발"된다고 설명하며, 여성에 대한 '역차별론' 역시 여성이 '타고난' 성별로 인해 이득을 본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음을 지적합니다. 우연에 의해, 운이 좋게, 타고난 성별에 의해 득을 본 사람들에 비해 '나'는 어떠한 기회도 갖지 못하고 대등한 몫을 누리지 못했다는 게 그들이 갖고 있는 '피해자'로서의 인식입니다.
그렇다면 공정 담론 혹은 능력주의 담론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는 남성들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과 무엇을 매개로 대결하고 있을까요? 저자는 2021년 등장한 여성혐오적 밈인 '설거지론', '퐁퐁남'을 예로 들며, "갈등의 주체인 남성은 현재 지닌 몸의 가치를 중심으로 여성과 대결"한다고 설명합니다. '설거지론'은 "마지막으로 식사를 마친 사람이 설거지하는 법칙을 패러디"한 밈으로, "순진한 남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과 결혼해 여성의 과거를 세탁하는 노릇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퐁퐁남'은 전업주부인 여성을 대신해 일도 하고, 설거지까지 담당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이고요. 앞서 언급한 밈에서 알 수 있듯 남성은 여성을 타고난 성별로 인해 혜택을 받는 존재들로 상상합니다. 취직이 되지 않아 소비가 위축된 남성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처분할", "상품화할 기회도 없"습니다. 이러한 남성들이 겪은 위기는 곧장 청년의 위기로 치환되며 자연스럽게 여성을 "위기를 경험하지 않는 존재로 격하" 시킵니다.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여성의 몸은 '불로소득'을 획득할 수 있는 일종의 자산입니다. 이때 자산은 교환, 노동의 논리를 통해 일시적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닌 지속성을 내재한 투자·투기가 가능한 자산입니다. '설거지론' 역시 이러한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소위 '알파남'이라 불리는 "우월한 남성"들과 연애를 즐긴다는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알파남들과의 연애를 즐긴 여성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며 남성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배할 것"이라는 게 동시대 남성 내부에 자리하는 불공정 감각의 핵심이라는 거죠.
그간 '공정 담론'을 페미니즘적으로 분석·비판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으나 여성의 '타고난 몸'이 '불로소득자'로서의 조건이 된다는 남성들의 관점을 분석한 이 글은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네이버 웹툰인 '이세계 퐁퐁남'의 여성혐오로 인해 웹툰 연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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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공정 담론'을 페미니즘적으로 분석·비판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으나 여성의 '타고난 몸'이 '불로소득자'로서의 조건이 된다는 남성들의 관점을 분석한 이 글은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또, 웹툰 '이세계 퐁퐁남'의 여성혐오로 인해 웹툰 연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 '퐁퐁남', '설거지론'과 같은 여성혐오적 밈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거쳐 '공정 담론'과 결합하였는지 살피는 과정 또한 주목할 만한 포인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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