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들불입니다.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탄핵안 가결 이후 우리가 고민해야할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하였습니다. 또, 피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부과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린 도서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도 소개하였습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정국에 모두 몸과 마음 잘 살피시길 바라며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해보겠습니다.
📚 들불의 PICK!
- 『좌파의 길』, 낸시 프레이저 (서해문집)
- 『기억·서사』, 오카 마리 (교유서가)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가브리엘르 블레어 지음, 성원 옮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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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문집)
이 책의 5장 「도살당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의 분할 - 왜 정치 위기는 자본에게 붉은 살코기인가」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자본의 속성이 정치위기를 촉발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본이 무엇에 의존하는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은 '공적 권력'에 의존합니다. 공적 권력은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을 실행하게 만들며, 분쟁을 심판하고, 반란을 진압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이견을 관리하며, 자본에게 혈액을 공급하는 화폐 체제를 지탱하고, 위기를 방지하거나 관리하려고" 노력합니다. 국민국가로서 '누구'에게 주체적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가 국가의 법률 시스템이며, 이것이 자본주의와 만났을 때 자본이 허용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죠. 또, 인프라 건설 및 유지, 사회적 재생산 장려, 경제 위기 완화 등 경제 위기와 결부된 정치적 부수 효과를 관리함으로써 자본이 이윤을 축적하는데에 유리하도록 지지합니다. 이제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 패권국과의 군사력과 조직력에 의존하면서 그 규모를 더욱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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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본주의가 공적 권력이 동일한 영역을 통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정치적인 속성으로 인해 공적 권력과 분리된 주체가 되는데요. 즉, 자본주의는 "생산을 조직하는 권력"으로써 "사유화되어 자본으로 발전"하지만, 공적 권력은 "축적의 외적 조건을 제공하고", "'정당한' 국가 폭력과 법률이라는 '정치적 매체'"를 사용하는 주체가 되죠. 이러한 분리는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며, 자본주의가 사회의 '질서'를 형성하도록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것'의 범위는 제한되죠. 이러한 제한은 "사회생활의 지대한 부분을 '시장'의 지배에 맡김으로써 민주적 의사결정이나 집단행동, 공적 통제에 출입 금지 명령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기반으로, 어떤 종류의 사회관계를 통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길 원하는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할 능력을 빼앗"기게 되죠. 이것은 결국 우리가 미래와 어떠한 관계를 맺을 지 결정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그 내적 구조로 인해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인 것입니다.
정치의 위기는 자주 '정경유착'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자본주의라는 구조가 어떻게 반민주주의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데에 있어 많은 부분을 누락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큰 사건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기도 하고요. 사실 구조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오랜 기원을 가진 상호작용 때문인데도 말이죠. 더 나아가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잡아 먹고 있다고 말하니... 지금의 공적 권력이란 오직 자본을 떠받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과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의심을 품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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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이 책의 1부 제2장 「사건의 표상」에서 저자는 발자크의 《아듀》를 언급합니다. 《아듀》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인물은 '필립'(필립 드 슈시 대령)으로 나폴레옹전쟁에 종군하게 되었다가 돌아온 군인입니다. 또 다른 인물은 '스테파니'로 필립과의 과거 연인이자 전쟁을 통해 남편 방티에르 백작을 잃고, 이후 적군에게 붙잡혀 2년여 간 '위안부'로 이리저리 떠돌다 돌아온 백작부인입니다.
어느 날 길을 걷던 필립은 광기 서린 스테파니를 마주합니다. 그녀는 '아듀'라는 말만 할뿐이었는데, 이 말은 과거 전쟁에서 필립과 헤어질 때 건넸던 말이에요. 이후 그녀는 기억을 잃고 미쳐버렸던 것인데요. 필립은 스테파니가 백작 부인이던 시기의 우아한 모습을 복원하고 자신을 연인으로 인지시키기 위해 스테파니가 남편을 잃고 필립과 헤어지던 그날의 기억을 그대로 재현해냅니다. 농민들에게는 군복을 입히고, 장대한 세트는 당시의 겨울 러시아 평원과 베레지나강을 모방한 모습을 하죠. 이를 본 스테파니는 순간 기억을 되찾지만, 그 즉시 죽어버리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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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는 기억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육체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잊어야만 폭력에 유린당한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육체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기억이 회귀한 순간, 육체는 그것을 거부하고 죽음에 도달하고야 맙니다. 이때 우리는 스테파니가 경험한 '사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폭력적이기에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건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죠. 오카 마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폭력적인 '사건'의 본질이 그 폭력의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데 있는 것과 같은 사건, 당사자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언어를 잃을 수밖에 없는 '사건'을 어떻게 하면 타자와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라고요.
필립도, 스테파니도 모두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전쟁은 병사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 폭력을 경험하기 때문에 잔혹성을 갖고 있죠. 그러나 개별적인 폭력의 경험은 전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경험'에 포섭되고 맙니다. 특히 언어를 잃은 사람, 폭력의 깊이를 언어화하는데 거듭 실패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더욱 쉽사리 지워지죠. 12.3 내란 사태 이후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국적'인 나라의 흐름은 개별 주체들이 경험하는 '폭력'의 기억을 하나의 '사건'으로 일축시킵니다. 우리가 시위를 하며 탄핵을 외치는 순간조차도 우리는 현장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재인식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수히 많은 응원봉을 통해 여성-케이팝 팬의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다른 경험 속에서 우리는 훗날 이 기억을 타자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공유하게 될까요? 광장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표상할 수 없는 기억'으로서 훗날 어떻게 공유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스스로에게 묻고, 사회에게 물어야할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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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이 '질외사정법'과 같은 실패율 높은 피임법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요?
- '질외사정'을 하는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전적으로 남성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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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연세 메디컬 저널'에는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피임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지식 및 국내 피임 사용 동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한국 여성들이 대체 피임법에 대한 지식과 사용률이 낮으며, 질외사정법과 같은 실패율 높은 피임법을 상당수 사용(52.4%)한다는 것이 위 연구의 주된 내용인데요. 해당 연구의 제1저자인 이경욱 교수(고대안산병원 산부인과)는 '청년의사'와의 인터뷰에서 미레나와 같은 장기 지속형 가역적 피임법(ex) Long Acting Reversible Contraception, LARC)을 여성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대해 '지식 부족'을 근거로 듭니다. 장기 피임제의 안정성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부족하며, 이물질을 질에 삽입하는 형태의 피임법에 부담을 느끼는 여성이 많다는 것이죠. 이 교수는 이어 LARC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법인 것은 물론, 월경과다, 자궁내막증 등 월경 관련 질환이 있는 여성에게 특히 필요한 시술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보건의료적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고요.
위 인터뷰에서 LARC의 사례로 '미레나'를 들었으니, 미레나가 어떤 시술인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미레나는 자궁 내 '루프'(피임 기구)의 한 종류로, 레보노르게스트렐이라는 황체호르몬이 자궁내막에 소량씩 방출되어 1회 시술로 약 5년 간 피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황체호르몬이 자궁내막에 방출되면 자궁 경부의 점액이 끈끈해지고, 이 때문에 자궁 내로 정자가 통과하지 못해요. 또, 자궁내막이 얇아지게 되어서 수정란이 착상하기 어려워지고요. 부작용이 적은 시술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의료계는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일쑤니까요. (이에 대해서는 마야 뒤센베리의 책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를 참고해 주세요) 포털 사이트에 '미레나 부작용'을 검색하면 부정출혈, 통증 등을 호소하는 꽤 많은 양의 경험담이 존재하는 걸 확인할 수 있거든요.
위 보고서의 내용과 미레나의 부작용에 대해 살펴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아니, 이럴거면 남자들이 콘돔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아? 콘돔은 피임 성공률이 98퍼센트나 되는데?"
그럼 한국의 콘돔 사용률을 한 번 살펴볼까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한국의 콘돔 사용률은 최하위(2017년 기준)입니다. 2017년 박주현 서울대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2004~2014년까지 10년 간 콘돔 사용률은 35.2%에서 11%로 급감했고, 질외 사정 비율은 42.6%에서 61.2%로 높아졌습니다. 또, 질병관리본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2019년)에 따르면 청소년 성관계 시작 연령은 평균 13.6살, 2019년 기준 고3 남학생의 경우 14.6%, 여학생의 경우 7.2%꼴로 성관계 경험이 있지만 그 중 피임 실천율은 58.7%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 결과, 2018년 15~19살 여성이 출산한 건수는 총 1292건에 달하고요.
이제 또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위 연구가 한국 여성이 질외사정법과 같은 피임법을 사용한다는 '안타까운' 분석을 내놓을 때, 남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 하는 의문이요. '질외사정'은 남성의 몫이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닌데도 왜 그것을 마치 여성이 '선택'한 것처럼 서술할 수밖에 없었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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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다
-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겨냥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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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진 의문은 오늘 소개할 가브리엘르 블레어의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한 권으로 충분히 반박 가능합니다. 저자는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총 28가지 근거를 이 책에 담았는데요.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남성으로 돌리는 '초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제 주장의 핵심은 임신중단의 99퍼센트는 원치 않는 임신 때문에 발생하고,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라는 거예요. 임신중단을 둘러싼 지금의 논의는 전적으로 여성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지죠. 여성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있는지, 여성의 몸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식으로요. 임신중단을 확실히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성에게 초점을 두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거예요. ① 임신중단 불법화는 임신 중단을 줄이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분명한 데이터가 존재하고 ②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들이니까요.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건 시간 낭비랍니다." (p.9,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앞서 언급한 연구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보겠습니다. 여성의 무지가 더 효과적인 피임 시술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 이전에 남성의 무지와 자신의 쾌락, 경험만을 우선하는 이기심이 여자의 질 내에 이물질을 삽입하고, 호르몬제제에 관한 불안감을 갖고, 부정출혈이나 아랫배 통증 등의 고통을 야기하는 것이라는데 먼저 집중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한국의 콘돔 사용률이 지나치게 낮은데다 청소년 여성의 임신 및 출산의 경험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데에 경각심을 갖고 의료계 역시 이에 대해 남성을 적극적으로 일깨워야할 책임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가르이렐르 블레어는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다」에서 "남자는 자신의 정자를 언제, 어디에 배출할지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여자는 자신의 난자를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면 남녀 모두에게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그렇지 않다. 아무리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 해도 최종 결정권은 남자에게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단계: 여자가 성관계에 동의한다.
2단계: 남자가 책임감 있게 사정할지 결정한다.
여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 해도 남자가 자신의 질 안에 사정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아무리 여자가 "제발 콘돔 없이 하자. 당신이 내 몸 안에 사정해주면 좋겠어"라고 해도 남자가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해 여자의 질에 사정하게 만들 수 없다. 여전히 남자는 선택해야 한다. (...) 남자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 여자가 남자에게 무엇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든 여자는 자신의 몸 안에 남자가 사정하도록 만들 수 없다. 남자가 하는 일은 100퍼센트 남자의 책임이다." (p.94-95,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통쾌하면서도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 챕터는 「사회는 남자의 쾌락이 성관계의 목표이자 일순위라고 가르친다」입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교육, 미디어 등을 통해 사회가 성관계에서의 남자의 쾌락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온 탓에 '콘돔을 사용하는 게 남성의 쾌락을 줄어들게 만든다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콘돔을 썼을 때의 성관계는 쾌락이 전무한 상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쾌락이 적은(정도로 따지자면 10에서 8정도로 줄어드는) 상태일 뿐"이며, 고작 약간의 쾌락을 위해 남자들이 "여자의 몸·건강·사회적 지위·직업·경제적 지위·인간관계, 심지어는 생명"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하죠. 이때 저자가 '음식'이라는 쾌락에 빗대어 이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전에 간단한 조치를 취하면 가까운 사람에게 고통을 유발할 위험이 사실상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가까운 사람에게 고통을 유발할 위험(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게 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당신은 이 간단한 타협을 기꺼이 하겠는가? 물론 그럴 것이다. 당연히 당신은 그렇게 할 것이다." (p.82-83,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불법 행위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속 입법 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안전한 임신 중지를 보장하는 의료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인데요. 임신 중지와 관련하여 '미프진' 등의 도입, 임신 중지 방법에 대한 정보접근성 강화, 성·재생산권리 보장 기본법 개정 등의 조치 역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임신 중지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남성들의 피임에 대해서도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해야합니다. 콘돔 사용 혹은 정관절제술을 통한 피임이 이루어져야만,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에게 더 큰 부담과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보세요. 그들의 무지와 편견, 이기심을 박살내는데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만큼 좋은 책은 없을 거라 자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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