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들불입니다. 오랜만에 인사 드려요. 들불은 그간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며 어떤 책을, 어떻게 다룰 지 고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들불레터는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인 오늘부터 주 1회, 놓치지 말아야 할 이슈들과 이와 관련성이 있는 신·구간 도서들, 들불이 만난 사람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립니다. 더불어 12·3 내란 사태 이후 분노로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계실 구독자 여러분께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 오늘 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를 클릭하시어 읽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 들불의 PICK!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엑스트라 볼드』, 엘런 럽턴·페라 카페이·제니퍼 터바이어스·조시 A. 할스테드·컬리나 세일스·레슬리 시아·발렌티나 베르가라 지음, 정은주 옮김
- 인터뷰: 그래픽 행동가 모임(GAA) 김희경 디자이너, 이정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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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이후 광장에 참여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들불의 PICK!에서는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개의 활동들을 전달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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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이하 민구페퀴)
"여성 혐오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기 위해, 광장에서 벌어지는 소수자 혐오에 맞서기 위해 열린 연대체"를 구성한 조직 단위입니다. 현재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한국여성의전화, 장애여성공감, 불꽃페미액션 등 13개의 단체가 함께 하고 있는 민구페퀴는 구체적인 구호가 담긴 피켓을 만들고 광장에서 이를 나누어주거나 전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민구페퀴의 활동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지에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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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웨이즈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에 참여한 2030 여성에 대한 격찬과 같은 반응에서 더 나아간 의견을 제시하였는데요. 2030 여성들이 '참여'하는 존재에 머물고 호명되기보다 주류감각을 갖고 직접 정치권력을 쥐어봐야 한다고 제안한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 '정치 이건 아니지' 유튜브 채널에서는 "2030 남성과 여성은 정말로 다를까?"라는 주제에 관해 '리서치 디자이너' 정한울 님을 모시고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남녀 갈등 구도'을 키우고 있는 언론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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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웨이즈 홈페이지
- 인터뷰: [W체인지메이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 "2030 여성, 주류감각 갖고 정치권력 쥔 주체로 변신해야"
- 유튜브: "정치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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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빛
"빛나는 광장의 말들"을 기록하는 아카이브하는 계정입니다. 극우세력의 이화여대 난입에 대한 영상 공유부터 광장에서 시민발언대에 올랐던 분들의 발언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진행한 3.8 여성파업 전야제에서 결의를 다지며 나누었던 발언 등 광장에서의 '말'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류 역사가 권력을 쥔 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온데 반해, 말빛의 아카이브 활동은 소수자들이 주도적으로 역사의 어수선한 타임라인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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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케이팝 뉴스레터'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에 시리즈로 연재 중인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선 2030여자들'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저 역시 인터뷰어로 동료들과 함께 참여 중인데요. '빠순이'라는 이름으로 무시와 비웃음을 샀던 존재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광장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집회에서 빛나던 응원봉이 한국의 운동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1편에서 5편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놀랍도록 흥미로우니 꼭 시간을 내시어 전체 회차를 열람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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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국의 여자들 (페미니스트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시국의 여자들>은 페미니스트 필름메이커를 연결하는 비영리단체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FFF'의 독립 프로젝트입니다. 주류 언론에서 지우고 있는 광장의 2030여성들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모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이 작업은 그간의 역사가 여성의 목소리를 배제해온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대항이라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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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래픽 행동가 모임(GAA)
권리단체에게 연대의 방식으로 그래픽 노동을 제시하는 디자이너 모임입니다. 12.3 쿠데타 이후 권리단체 활동가들의 과중한 업무를 우려하며 결성된 이 모임은, 단체의 활동가가 '연대요청서'를 작성하면 그래픽 업무에 한해 작업물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GAA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본 레터 하단의 인터뷰를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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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볼드』를 살펴보기 전에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디자인'하면 떠오르는 단어, 이미지가 있나요? 제 경우에는 케이팝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감도가 높다'며 팬들뿐 아니라 대중의 극찬을 받았던 앨범, 뮤직비디오, 무대효과가 떠올라요. 이러한 작업물들을 떠올리다보면, 디자인이란 나의 일상과는 유리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 특정 인물과 상황을 눈에 띄게 만들고 멋지게 구현하기 위한 고민이 반영된 고도의 기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디자인'이 정말 이런 것만을 의미할까요? 이번엔 저의 하루를 돌아보겠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간밤에 온 카톡을 확인합니다. 제가 바라보는 휴대폰 시계, 카톡의 폰트는 제가 보기 편한 방식으로 각각 다르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또, 바쁜 아침 시간에 확인이 용이하도록 자주 사용하는 어플 역시 제게 맞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출근 준비를 마치면 이제 지하철을 타러 갑니다. 아직 출근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자주 헤매는데요. 특히 지하철을 갈아타는 일이 익숙치 않아요. 이때 절 도와주는 건 환승구간에 크게 붙은 지하철 노선도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장치죠. 이 역시 해당 노선의 색깔과 모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제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출근하자마자 오늘 해야할 일을 다이어리에 정리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다이어리는 24시간이 한 시간 간격으로 기입되어 있는 버티컬 형태인데요. 시간 순으로 해야할 일을 정리하기에 용이합니다. 몇 년째 업무용으로 같은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중입니다.
이처럼 디자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거창하고 화려한 것만이 디자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걷는 길, 익숙하게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고 차를 멈춰 세우는 사거리의 루틴 모두 디자인입니다. 그러나 단지 규칙과 편안함만을 만드는 게 디자인은 전부는 아닙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디자인이 대체 뭐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제 일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합니다.
제 눈은 굉장히 나쁩니다. 안경 없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안경을 써도 보이지 않는 게 있어 금방 피로감을 느껴요. 그래서 제 휴대폰 글자 크기는 남들보다 1.5배 크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또, 제가 자주 쓰는 다이어리에 적힌 글자들은 굉장히 작아서 가끔 시간을 잘 못 보고 엉뚱한 데에 기록을 하곤 합니다. 끝으로 평일 출근길에 반드시 지나야 하는 환승구간의 에스컬레이터는 자주 고장이 나요. 하루는 발에 반깁스를 한 분이 고생스럽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디자인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좋은 실천입니다. 하지만 배움과 성찰 없이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거나 '멋'에 치중하느라 접근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등으로 문제를 촉발·강화시키는 것 역시 디자인이죠.
『엑스트라 볼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페미니즘, 인종주의, 장애, 이분법적 사고, 접근성 등 디자인을 할 때 고려해야 할 포용적 이론들을 설명하고, 각자의 몸과 마음에 맞는 도구와 정보를 통해 이미 실천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신념과 작업을 짧은 인터뷰의 형태로 소개합니다. 이 책은 '그래픽 디자이너를 위한 페미니스트, 포용주의, 반인종주의, 비이분법 현장 가이드'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배울 점이 많은 실용서인데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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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볼드』는 「이론」, 「역사」, 「일」 총 세 파트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첫 번째 챕터인 「이론」에서는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교차성 등 페미니스트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개념들을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풀어 쓰고,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실천하면 좋을지 그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용어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 안에 스며든 백인·유럽 중심의 사고를 지적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제안합니다.
"페미니즘은 실천이다. 즉,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다. 디자인 또한 실천이다. 페미니즘 디자인을 실천하는 데는 자기 자신의 편견과 특권을 면밀히 살펴보고, 다양한 존재 방식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며, 과소 대표되는 목소리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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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챕터는 「역사」입니다. 이 챕터에서는 "선별적으로 기록되고 전승된 서사의 모음"인 기존의 역사가 간과해온 인물, 실천의 성취를 연구해 "탈식민화된 역사, 퀴어 역사, 젠더화된 역사, 지역사, 장애사, 대중문화사"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 파트에는 '생애'라는 소제목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소개되는데요. 창작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인도의 페미니즘 디자인 작업물부터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가구 중 몇몇을 디자인한 샤를로토 페리앙, 선주민의 유산을 출판 분야의 디자인에 통합하고자 했던 에인절 드코라, "중성만이 내게 항상 어울리는 유일한 성별이다."라고 선언한 클로드 카엉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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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파트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퀴어의 역사를 도식화한 인포그래픽이었습니다. 어지러운 타임라인 안에는 "충돌하는 사상, 박해, 항쟁" 등이 촘촘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가 매끈한 타임라인으로 표상되는 선형적인 시간관에 기초한 것이 아닌 어수선하게 얽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한다는 건 게이 같다고 늘 생각했다. (...) 본질적으로 일탈적이니까. 디자인은 주류에서 내놓는 것, 눈앞에 이미 존재하는 것과 다른 무언가를 구상하고 그게 멋지고도 필요할 수 있다고 상상해야 하는 일이다. (...) 우리는 사람들이 LGBTQIA+를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고민하는 대신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p.111, 디자이너 미샤 블랙의 말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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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챕터인 「일」에서는 유급 고용된 디자이너부터 독립 제작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일의 다양한 방식을 살핍니다. 이 파트에는 졸업 후 인턴십, 프리랜서, 독립 스튜디오, 박물관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한 디자이너들의 목소리를 여럿 담겨 있어 구체적인 일로서의 '디자인'을 체험해볼 수 있는데요. 신입 디자이너가 눈여겨볼만한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직무 전환을 고려 중인 분들, 또 여러 방식과 다양한 도구로 일을 경험 중인 작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파트입니다.
"나는 여자라고 다 여자를 지지해 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사회는 여성들을, 넓게 보면 주변화된 사람들을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진실은 여럿이 모이면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서로 끌어올리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이 지극히 잘못된 시스템을 타파하기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133, 발렌티나 베르가라의 목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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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볼드》를 읽으며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질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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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엑스트라 볼드』
일러스트레이션: 제니퍼 터바이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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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vs. 형평
컬리나 세일스는 자신의 강의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흑인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교육 기자재의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아 전문 기술을 익히는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평등, 형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이 글에서 저자는 1896년 '분리 평등' 원칙 지지 판결(백인과 분리되는 흑인 전용 공공시설 접근을 허용함), 짐크로법Jim Crow Law(흑인의 정치적, 경제적 힘을 제한함)에 관해 이야기하며 말뿐인 '평등'이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고 강화하는데 사용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는 디자인 업계에도 이러한 인식이 만연해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형평'을 목표로 설정해야한다고 제안합니다.
"'평등' 대신 '형평'을 목표로 설정하면 모두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관념보다 개인과 집단의 필요를 기반으로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 (p.24)
평등은 인권 보장의 기본 전제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균형 해소를 위한 형평 원칙이 필요할텐데요. 우리 사회에서 '평등'이라는 말만으로 평등이 보장된다고 이야기하는 권력자들의 이데올로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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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베슬에서 진행한 계단 반대 클럽 라운지(2019)
출처: 디자이너 섀넌 피네건Finnegan Shannon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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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향한 경계
섀넌 피네건과 에이미 햄라이는 장애인권, 장애정의를 옹호하는 디자이너입니다. 이들은 짧은 대담을 통해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이라는 표현을 경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요.
"피네건: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누군가 그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한계를 고려해 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p.48)
이어 디자인 실천에서 포용성과 접근성에 대한 약속은 계속되지만, 장애당사자들을 계속해서 배제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이러한 약속이 '구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의 개념 혹은 단어를 그저 좋은 의미로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온갖 차이를 최대한 많이" 알고, 이를 고려하여 약속을 정해야한다는 거죠. 산업 전반에서 인권, 환경 등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중요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추상적이고 선언뿐인 약속 말고 보다 더 구체적인 방안으로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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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엑스트라 볼드』
일러스트레이션: 제니퍼 터바이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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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전략: 응용 예술
퇴사를 하게 된 디자이너를 위한 조언이 서술된 페이지에는 '응용 예술' 편이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온라인 입사 지원 시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라는 익숙한 조언도 언급되지만, 제가 이러한 내용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시간과 재능을 공익을 위해 사용해라. 조직에 서비스를 제공해라. 서로 돕는 일에 기꺼이 응해라. 내면의 활동가를 활성화해라."
"스스로를 돌봐라. 숨을 쉬어라. 산책해라. 운동해라. 엄마한테 전화해라." (p.181)
'내면의 활동가를 활성화'한다는 건 조금 어렵고 낯설게 들리는데요. 그래픽 행동가 모임(GAA)에서 활동 중인 두 디자이너 분의 인터뷰를 통해 그 힌트를 발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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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행동가 모임(GAA) BI 디자인 (디자이너 이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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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행동가 모임(GAA) 인터뷰 ①
김희경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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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소개와 함께 작업 중인 정치적 디자인 실천을 소개해주세요.
디자인이 유용성에 대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실천과 가까울 수 있는 예술이라고 믿는 디자이너 김희경입니다. 12월 3일 쿠데타 이후로 과로하는 권리단체 활동가에게 그래픽 노동을 통해 연대하는 ’그래픽 행동가 모임(이하 GAA)‘을 결성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의 분노와 정치참여 의사가 어떻게 유용한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한 이 디자이너들의 모임은 12명(김국한, 김명준, 김희경, 남선미, 문동혁, 박도환, 손도연, 윤수영, 이시현, 이정아, 이현경, 조아영)의 ‘그래픽 노동을 통한 연대’를 통해 각 권리단체들과 만나왔습니다. 계엄 사태에 대해 권리 단체의 의견을 내는데에 필요한 그래픽 결과물들(피켓, 깃발, 카드 뉴스 등)을 저희가 제공하면, 단체로부터 단체의 가치(아카이브북,굿즈,공연 티켓 등)을 받는 방식으로 연대는 이루어졌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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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A는 계엄 사태 이후 과로하는 활동가들과의 연대가 목적으로 모인만큼 단발적인 활동기간이 예견되어있었습니다. 다음 주 헌재 판결에 따라 추후 활동양상이 다르겠지만, 시간의 차이일 뿐 끝은 정해져 있는 셈이죠. 이처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유의미한 경험인 ‘실천을 위한 디자이너 공동체‘가 그 목표를 다 했을 때, 그 다음으로 어떠한 액션을 제안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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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소수자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워크숍 <Left Food>의 기록 사진 (사진: 최희수) |
명동 재개발 2지구 후원 파티 <칩과 종이접기>의 기록 사진 (사진: 신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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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디자인이 ‘정의’라고 하는 것과 연관되었을 때, 디자인만이 도달 가능한 지점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정치적 이념적 실천을 위해서라면 제도나 행정에 기여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제도나 행정은 명확한 대신 정부기관과 같은 거대한 상부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가, 느리기까지 하지요… 반면에 예술이나 디자인의 분야에서 그것들을 초월한 실천을 행하는 모습들이 관찰되어오곤 합니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작은 범위와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인디(indie)한 예술 실천들에 관심이 많이 간 것 같습니다. 특히 그런 작은 실천들에는 지금까지 산업과 예술에 한 발자국씩 걸쳐져 있는 특성, 미술과 비교해 유용성이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는 특성 덕에 가능했던, 디자인이 가진 기획적 면모가 효과적인 전략책이 될 수 있을 꺼라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이 (제도만큼)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유로울 수도 있다는걸 의미 할 수 있을텐데요. 그렇기에 이 자유로움이 가진 횡단성을 긍정하는 일이 ‘정의’ 혹은 ‘실천’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고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아카데믹한 교육기관에서 구분해놓은 디자인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래픽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의 경계들로 디자인이 좁은 범위에 머무르는 일을 디자이너 스스로가 주시하고 고민하는 일에서 그것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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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행동가 모임(GAA) 인터뷰 ②
이정아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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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소개와 함께 작업 중인 정치적 디자인 실천을 소개해주세요.
이정아는 언어와 비언어의 경계를 탐구하며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인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소리·움직임·기호 등의 요소를 활용해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언어와 상징, 문화와 번역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의미를 형성하는지에 주목하여 디자인이 메시지를 조형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조정하고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GAA에서 그래픽 노동으로 권리단체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GAA는 권리단체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나누고, 디자인을 통해 운동의 흐름을 연결하는 디자이너 연대체입니다. 저희는 봉사나 시혜가 아닌, 연대의 순환적 가치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노동의 대가로 권리단체의 책·굿즈 등의 결과물을 받습니다. 이와같이 그래픽 노동이 단순한 지원을 넘어, 연대 속에서 더 크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디자이너는 시각적 전달자에서 나아가 사회적 맥락을 읽고 의미를 조정하는 번역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성과 개입 방식을 계속해서 성찰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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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울진 군민 행동' 촛불집회 포스터 디자인 |
월간 디자인 2월호 '시대유감 굿즈' 프로젝트 Run for Next 피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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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디자인은 특정한 메시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은 서로 다른 관점이 모이고 공존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광장’을 형성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광장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지속적인 논의와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연대이며 서로의 동일하거나 다른 입장을 부담 없이 존중하며 듣고 말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광장은 새로운 논의를 열 수 있는 편안하고 열린 자리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광장은 특정한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각이 교차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열린 구조를 지향해야 합니다. 디자인이 소수의 목소리를 증폭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누구의 경험이 중심이 되는지, 어떤 시각이 쉽게 배제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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