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5·18민주화운동이 45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지난해 4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일부 계엄군이 자행한 성폭행 정황에 관한 조사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요. 당시 상황을 겪은 피해자들은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함께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5·18과 작년 12·3을 마주한 광주·전남 청년 10명을 인터뷰한 무등일보의 한 기사에서 5·18 당시를 직접 겪은 가족이나 주변 어른들이 지금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국가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뿐 아니라, 성범죄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는 생존자들도 그 수가 상당합니다. 성착취 피해로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에 대한 기사나 스토킹 피해로 인해 개명·성형까지 감행해야했던 피해생존자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 구독자 분들 중에도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는 당사자 혹은 그 주변인이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들불레터는 범죄 피해자의 회복 및 치유를 돕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지역 '스마일센터'의 센터장으로 계신 세 저자의 '트라우마 치유'에 관한 제안이 담겨 있는 책,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를 인터뷰 형태로 풀어 소개해보았습니다. 본 인터뷰와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를 통해 트라우마 생존자가 조금이나마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또 트라우마에 갇힌 한국 사회가 현실을 좀 더 날카롭게 자각하고 회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인터뷰는 들불이 질문하고 인천 스마일센터를 맡고 계신 배승민 교수님이 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부터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방법,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해 사회 공동체가 해야할 고민과 노력을 회복적 정의와 변혁적 정의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셨어요. 트라우마 생존자 또는 주변인으로서 '트라우마'에 관심을 두고 계신 분에게 일독을 적극 권합니다. 또, 인터뷰에 담긴 내용은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인터뷰를 읽고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지신 분들께서는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그럼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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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배승민, 백명재, 유성은 지음 (글항아리)
저자 '배승민'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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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배승민 교수님.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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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가천의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배승민입니다. 세부 전공은 소아 청소년 정신건강입니다. 트라우마 분야 치료를 본격적으로 맡게 된 것은 저희 병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천해바라기아동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게 되면서부터인데요. 2009년도 센터 개소부터 관리와 진료까지 맡게 된 것이 인연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지금은 법무부 산하 범죄 피해자 심리지원센터 ‘스마일센터’ 가운데 인천 센터를 맡고 있고, 해바라기센터에서는 자문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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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어떤 책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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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센터 중 인천 센터를 맡고 있는 저와 총괄지원단 및 서울 서부 센터를 맡고 계시는 경희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백명재 교수님, 청주 센터를 맡고 계시는 충북대 심리학과 유성은 교수님 이 모여 저술한 책입니다. 각각의 센터에서 트라우마 피해자를 지원하며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좀더 일반인이 다가가기 쉬운 형태로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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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전보다 깊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여전히 트라우마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트라우마는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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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과거에 비해 트라우마라는 개념과 용어가 전문 분야나 유관 영역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죠. 관련자뿐 아니라 일반인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진 시기 같습니다.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이렇게 모두의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전문가의 시선에선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는데요.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그저 ‘정신적 스트레스의 일종’이라는 의미로 뭉뚱그려질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저마다의 정의와 이해도가 달라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트라우마’는 단순한 마음의 상처, 스트레스, 일상에서 부딪치는 괴로움과는 다릅니다. 굳이 질병에 비유하자면, 누구라도 컨디션이 나쁘면 겪을 수 있는 몸살과 말기 암이 유발하는 통증을 ‘몸이 아픈 것’이라는 하나의 의미로 묶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죠. 보통 트라우마 사건이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도로 충격적인 사건을 말하며, 이 때문에 뇌의 정상적인 방어 체계와 더불어 기억이나 감정 등의 심리적인 부분, 전반적인 인지 능력과 신체까지 몸과 마음 전반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반응을 트라우마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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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트라우마의 사회적 이해가 깊어진 데는 'PTSD'라는 단어의 일상적 사용도 한 몫 할 것 같습니다. 일부 대중들에게서 트라우마와 PTSD를 같은 말로 이해하고 혼용해 사용하는 경우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요. 두 개념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또 다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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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란 인간의 뇌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의미하며, ‘PTSD’는 그로 인한 뇌의 시스템 이상으로 발생하는 정신 질환입니다. 짚어주셨듯 인지도가 높다보니 트라우마 사건이 일어나면 PTSD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치료자로서 현장에서 경험한 바를 돌아보면 PTSD 외에도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다양한 질환이 트라우마의 후유증으로 발생합니다. 즉 PTSD는 트라우마 사건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정신 질환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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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에 맞는 회복 매뉴얼을 제안하는데 주안점을 둔 책입니다. 당연히 전문가의 도움을 전제해야겠지만 생존자 스스로가 일상해서 실천해볼 수 있는 쉬운 방법들을 제안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사례에 따라 다양한 매뉴얼이 등장했는데요. 그중 트라우마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만한 '기본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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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트라우마는 마음의 병이니까 힘들어도 마음을 굳게 먹으면 된다’라든지 ‘이렇게 힘든 건 내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다’와 같은 왜곡된 생각을 반드시 버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겪은 당사자든 그 주변인이든, 이런 선입견 때문에 2차 피해를 만들거나 고통을 키울 때가 많습니다. 사실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이 사실만 알려드려도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는 분들이 많고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면서도 ‘더 강해져야 한다’ ‘강하지 못해서 문제다’라는 식으로 상처를 헤집으며 힘들어하시는 걸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거창한 무엇을 하기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규칙적이며 안정감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셨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트라우마의 타격을 받은 당시에는 이런 생활이 가능해 보이지도 않고 실천하기도 어렵죠. 그러니 주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우리의 몸을 최적화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트라우마 반응은 뇌, 즉 몸으로 발현되는 반응이니 그만큼 몸의 건강을 돌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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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이 트라우마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줄 모르고 그저 과로해서, 우울증이 있어서, 심한 PMS 때문에 그렇다고 여기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내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단 걸 알려주는 단서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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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소개된 내용이지만, 트라우마에는 PTSD를 유발하는 ‘빅 트라우마(생명을 위협하거나, 실제로 그 정도의 심각성을 띄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건 당시에는 그렇게 느꼈을 만한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것, 또는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가까운 사람이 그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직업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반복 노출되는 것)’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일상에서의 안녕을 침해당하는 경험이 반복되는 ‘스몰 트라우마’의 누적 역시 트라우마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떠올리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기억은 일반적인 기억 체계와 달리 병적인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스스로 인식하고 잘 찾아보지 않으면 왜곡된 기억만 남거나 자칫 사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충분한 휴식과 자기돌봄 뒤에도 호전되지 않는 피로감,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우울이나 불안 증상, 감정의 불안정, 신체적 이상 등이 지속되고 있다면 자신에게 빅 트라우마나 스몰 트라우마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심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런 트라우마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많이 호전됩니다. 그러기 어려운 중증의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치료의 거대한 첫걸음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 이번 책을 읽으면서 수십 년간 놓치고 있던 트라우마 경험을 찾아낸 후 오랜 우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감사한 후기를 전해 듣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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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 주변에는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지만 전문가를 찾아가기를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관련 기관을 방문하여 상담, 치료를 받기까지의 절차를 설명해주시면 친구들이 두려움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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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온라인이나 유선을 통해 상담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관이 나의 상황과 딱 맞지 않는다고 주저하시거나 무시나 다른 문제가 괜히 생길까봐 꺼리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건이 확인되면 더 적절한 기관으로 안내해드리기 때문입니다.
저희 책에서도 부록으로 한 번 더 안내했지만 해바라기센터와 스마일센터는 홈페이지로 전국 센터들의 현황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가까운 지역의 센터에 연락하시면 되고, 센터에 접수되면 사례관리 담당자와 기관에 따라 담당 치료자나 의료진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심리적인 평가를 받으시고 그에 맞는 관리를 안내받게 됩니다.
또는 상담 기관이나 병원의 홈페이지를 보면, 해바라기센터나 스마일센터와 같은 공공 기관에서 운영하는 일들에 협력 기관이나 자문의로 기재된 곳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는 곳이라면 트라우마에 더 민감하고 전문화된 서비스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런 곳을 먼저 찾아가신 뒤 필요에 따라 공적 기관에 연계를 요청하셔도 됩니다.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찾기 어려운 지역도 있을 수 있는데, 보통 대다수의 상담센터와 정신과 병원이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도우며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기관으로 연계합니다. 정보를 찾기 어려우시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문의해 보시길 권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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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1장 「마음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챕터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개인의 중요한 능력임을 짚어주셨습니다. 이어 각 개인에게는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을 돕는 '개인적 자원'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이러한 개인적 자원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 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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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여정은 지지 자원을 최대한 회복하여 자신을 위한 지지 체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회복하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생각보다 길고, 중간중간 악화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려운 구간이 있기도 해요. 여정을 잘 버텨내는 데는 적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 외에도 다양한 안정화 방법 가운데 자신에게 잘 맞는 것들을 찾아서 숙련시켜두는 게 도움이 됩니다. 책에도 간단히 소개해두긴 했지만, 이것만으로 각각의 방법을 충분히 숙지하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힌트만 얻으시고 책에 실린 정보를 매개로 더 전문적이고 자세한 방법을 안내받아 연습해두시길 추천합니다.
첨언하자면, 이미 심각한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난 급성기에는 이런 안정화 작업을 전문가의 도움 없이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 않은 분들, 피해자 주변에 있는 분들이 미리 연습을 많이 해두시고 이를 대신 활용해주셨으면 합니다. 전문가로서는 누구나 학교에서 이런 안정화 기법을 충분히 배울 수 있게끔 제도화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물에 빠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 수영법을 배우듯이, 정신적 위기에 빠졌을 때 스스로를, 나아가 서로를 돕는 응급처치법도 어릴 때부터 익숙해지면 좋거든요.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귀여운 아이들은 ‘국영수가 밥 먹여주냐’라는 농담들을 하곤 하는데요. 저 또한 그보다 마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법을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뇌를 지켜주는 기본 중의 기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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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3장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 챕터에서 '트라우마 치유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언급하셨습니다. 당사자가 전문가를 바로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트라우마 생존자의 친구나 동료는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해당 챕터에서 적어주셨지만, 위로나 지지를 표현할 때 해야할 말이나 해서는 안 될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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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누군가의 가해로 발생하는 ‘대인성 트라우마’와 자연재해 같은 ‘비대인성 트라우마’로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많은 연구를 종합해보면, 인간에게 더 큰 후유증을 남기는 건 대인성 트라우마라는 결과가 일관되게 제시됩니다.
인간이 만든 트라우마인 만큼 그 후유증으로부터 혼자 벗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조직적인 폭력을 혼자 헤쳐가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죠. 이런 상황에 피해자의 주변인으로서 꼭 해주어야 할 것은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언어적 기능의 마비나 저하를 일시적으로라도 겪는 게 보통인데요. 말 그대로 ‘말문이 막히는’ 상태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뇌에 대고 무슨 좋은 말을 한들 잘 전달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당신 옆에 있다는 것, 당신을 돕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뜻만 전달될 수 있다면 굳이 말을 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다만 하지 않아야 할 말은 분명합니다. 피해자보다 ‘나’나 ‘내가 속한 집단(직장, 가족, 모임 등)’의 입장을 앞세우는 말은 하지 마세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그래도 걔가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만 용서해주는 게 어때? 옆에서 보기 안쓰럽더라고” “걔가 오죽하면 그랬겠니. 말 들어보니까 걔도 사정이 있더라” “서로 오해한 게 있어 보이던데,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지 그래”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더불어 “걔가 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달래”라며 가해자가 해야 할 말을 대신 해주거나, “걔도 죄책감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라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공감하고, “이번 일로 정신 차렸으니 다시는 안 그럴 거야”라며 섣불리 추측하는 말은 금물입니다.
그 외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면,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도 사건에 대해 자세히 묻거나, 원하지 않는 도움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있습니다. 민감해져 있는 피해자에겐 이 역시 일종의 가해로 느껴질 수 있거든요. 또한 피해자의 언행이나 선택을 탓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표현도 피하셔야 합니다. 물론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피해자의 뇌가 트라우마 때문에 취약해진 상태라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심하게 다친 부위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프듯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뇌는 상대의 말을 또다시 자신을 공격하려는 시도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아주 작은 단서에도 민감해질 수 있으니 주변인들이 더 배려해야 합니다.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엄청나게 힘든 수준의 일은 절대 아닙니다. 누군가 감기로 아파하고 있으면 찬바람을 막아주고 쉴 수 있게 배려하는 게 자연스럽죠. 마찬가지로 타인의 악의 때문에 뇌와 몸의 시스템에 병이 났다면 회복할 때까지 그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지켜주고,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가 필요로 할 때 적절한 도움을 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됩니다. 상대방이 도움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괜찮습니다. 그것도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다면 알려달라고 말한 뒤 기다려주세요. 아직 아픈 상태의 사람과 소통할 때는 최대한 짧고 단순한 언어를 쓰는 게 도움이 됩니다. 대화가 어려운 상태라면 상대가 준비되었을 때 볼 수 있게끔 간단한 메모나 연락처 정도를 남겨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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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디스 허먼은 저서 『진실과 회복』에서 '회복적 정의'를 이야기합니다. 윤리 공동체가 생존자의 발언을 경청하는 일과 더불어 가해자가 생존자가 바라는 방식의 보상은 물론 그의 재활을 돕는 과정까지 함께 해야함을 일컫는 말인데요. 이를 실천하고자 시도한 사례가 김고은 작가의 『불화와 연결』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사례) 이와 같이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여러 공동체들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개념에 기반한다면, 가해자를 공동체에서 내쫓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 역시 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시키고 공동체에서 방출하는 게 생존자의 회복을 돕는 첫 단계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가해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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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통찰이 어린 질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매 순간, 매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한데요. 어떤 피해자 가족분들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며 피해자 가족들이 분노하기도 하시는데요. 가해자를 단순히 분리하는 것은 피해자의 진정한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을뿐더러 재피해를 일으키거나 다른 집단에서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회복적 정의’가 진정으로 이루어지려면 좋은 제도만큼이나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는 다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가해자의 목소리가 피해자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을 겨누지 않도록 하는 데도, 역시나 무뎌지지 않고 냉철하게 깨어 있는 다수가 있어야 하죠. 단순히 보복의 차원을 벗어나 자기가 소속된 공동체 전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야 합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로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학교폭력을, 또 정신 질환을 다루는 방식에 많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해왔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더 노력한다면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희망을 놓지 않고 싶습니다.
인간에게는 인지적 취약성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보기에 고통스러운 현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할 일이 많고 책임질 게 수두룩하고 숨 가쁘게 달라져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잘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와중에 복잡하고 힘들어 보이는 게 눈에 띄면 그저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도 일견 이해가 돼요. 그래서 힘 있는 다수의 생각에 묻어가거나, 이런 고통이 자신이나 주변에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없는 일로 치부하거나, 심지어는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들기도 하죠.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피해자를 외면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깊이 있는 성찰 없이 ‘나는 그런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세상을 개선하겠다’ 하는 마음에 무작정 걸음을 내딛는 태도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를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무조건 집단에서 쫓아내거나 배제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는데요. 가해자를 몰아내는 데에만 집중하는 이들의 모습은 피해자의 정반대에 선 사람들과 섬뜩한 데칼코마니를 이룹니다. 섣부른 ‘타자화’를 취하는 태도죠. 피해자나 가해자 본인과 그들이 겪은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 그들이 주는 불안과 걱정으로부터 주변을 분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겁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 등장하는 ‘타자화’ 및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인 태도가 겹쳐 보일 정도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편의에 따라 분리하고 겉으로 보이는 대책에 집중하곤 하니까요.
‘피해자든 가해자든 일단 ‘나’와 ‘우리’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데서 시작하는 타자화는 사건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성찰과 공감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있는 다수’라는 표현을 쉽게 쓰는데요. 이렇듯 ‘깨어있으려면’ 많은 고민과 논의가 꾸준히 이뤄져야 합니다.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공적으로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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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동체 내에서 영화, 드라마 혹은 책 등의 콘텐츠를 함께 볼 때면 따로 '트리거 워닝'을 언급하곤 합니다. 참여자들이 먼저 트리거 워닝 표시를 요청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는 트리거 워닝이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콘텐츠라는 약속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해요. 트리거 워닝이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경고문이 아닌, 콘텐츠의 자극도를 판단하는 기준처럼 사용하는 예를 꼬집어주신 것 같습니다. 들불을 포함해 여러 공동체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여러 규칙들을 고민하고 만들고 있는데요. 트라우마 생존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규칙을 만든다고 할 때, 어떤 점이 고려되면 좋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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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의 바탕엔 현재의 상대와 나와의 거리가 영원히 불변할 거라는 착각, 또는 영원히 불변하기를 바라는 거의 주술적인 생각이 깔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스스로의 내면을 잘 살펴보면 앞서 설명드린 ‘트라우마 사건’에 준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유난히 자신을 자극하고 힘들게 하는 단서들이 있을 수 있어요.
저 역시 당사자가 아님에도 어떤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루다가 우연히 관련 뉴스나 영상 접하곤 상당히 충격을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헌이든 영상이든 접하는 게 갈수록 더 조심스러워지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천편일률적으로 ‘트리거 워닝’을 붙이는 게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로 아주 민감해져 있는 상태라면 구체적인 콘텐츠가 아니라 이렇듯 트리거 워닝만으로도 이미 심리적 고통과 정신 증상을 겪기 때문입니다. 또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상당수 피해를 입은 것이 피해를 피하지 못한 자신, 더 강하고 더 제대로 된 방식으로 처신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는 왜곡된 믿음을 갖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피해자들이 ‘트리거 워닝’을 잘 못 챙겨보고 노출되거나, 콘텐츠의 강도를 간과하고 괜찮을 줄 알고 보았다가 증상을 겪는다면 ‘바보처럼 트리거 워닝의 의미도 잘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경고가 있는데도 조심하지 못한 나는 정말 문제가 많다’라는 식으로 과도하게 자신을 자책하게 만드는 이중 고문의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단서는 너무도 많습니다. 제가 치료했던 한 피해자는 가해자가 살았던 지명이 노선도에 쓰여 있는 교통수단을 타지 못해서, 버스를 타면 금방일 길을 걸어가느라 몇 시간씩 허비하기도 했습니다. 종교기관 관계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는 종교와 관련된 건물만 봐도 과호흡이 일어나서 그 동네 종교기관들을 다 피할 수 있는 길을 파악하지 못한 낯선 곳은 갈 엄두도 못 내기도 했고요.
따라서 모든 트라우마 단서를 제한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며, 불가능한 통제를 시도하기보다는 아주 사소한 단서조차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피해자가 이를 잘 다룰 수 있게 도와주는 전문가를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상당수의 사람들이 심리적 고통을 겪을 정도의 충격적인 정보가 포함된 영상이라면, 이것을 ‘알 권리’라는 느슨한 라벨로 넘기지 않게끔 해당 자료를 관리하고 배포하는 언론인과 관련자들의 민감함이 필요하겠죠. 아직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자살 관련 보도 언론 관련 가이드라인’ ‘기자 윤리 강령’과 같은 것이 좋은 예시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언론가뿐 아니라 1인 미디어와 댓글 등의 기능을 통해 의견을 공유하고 전달할 수 있는 수많은 대중 역시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죠. 주류 언론보다는 누군가 무심코 쓴 표현이나 영상의 공유 등이 피해자에게는 더 충격적인 여파를 남길 때도 있고요. 사회적 취약 계층과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온오프라인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우리 모두가 더 민감하고 시선과 세심한 존중과 배려를 더해간다면, 일방적이고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트리거 워닝’보다 더욱 효과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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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제는 회복적 정의에서 나아가 '변혁적 정의'를 실천할 때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변혁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 등 여러 방면에서 다각도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텐데요.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어려워하시는 것 중 하나가 일상,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적 활동에 문제가 생겨 '생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 사회가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제도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러한 지원 체계에 어떠한 아쉬움과 보완되어야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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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 좋아지고 있기는 하나, 아직도 피해자가 스스로의 피해를 매우 적극적으로 증명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유발하곤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경제적인 것’을 언급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하거나 자신이 2차 이득을 바라고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오해를 사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서 받을 수 있는 도움, 피해자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지원조차 받기를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피해자 주변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는 곳과 언론에서조차 간혹 그러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아서, 이런 이유로 지원을 꺼리는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피해자를 지원하는 저희에게조차 고민될 때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지원을 얼마를 어떻게 받았는가에 대해 불필요한 관심이 더해지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도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듯이, 피해로부터의 회복은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몸이 회복해야 하며, 이런 몸의 회복과 안전에는 경제적 도움과 물리적 안전, 적절한 자유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지원의 수위 역시 피해자들마다, 그 상황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니 피해자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를 면밀하게 잘 살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과 이러한 부분에 깨어 있는 국가의 보조가 함께 이인삼각처럼 균형을 맞추며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직장 등의 경제적 활동이나 학교, 가사 등 다양한 기능 면에서 트라우마 이후 바로 이전의 기능과 상황으로 복귀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해 관련 기관(직장, 학교 등)과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와 이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지원책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싶어도 생계와 안전 등의 사정으로 시간적·물리적 여유가 없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고 있어서, 지원을 포기하셨던 피해자분들을 도와 관련 기관에 소통을 시도하며 적절한 도움과 지원을 받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희망으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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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해바라기센터 인력 부족 문제 등 정부가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지원 체계 마련에 여러모로 아쉬운 점을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차기 정권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해 어떠한 정책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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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일은 학술적인 역량뿐 아니라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깊이의 충분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함께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가끔은 한 기관의 힘으로 불가능한 영역에 흩어져 있는 트라우마의 여파를 관리하기 위해 다기관이 동시에 협력해야 하기도 하는, 매우 복합적이며 고도로 섬세한 작업이죠. 피해자의 회복 또한 단기간에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일부 시범 기간이나 임기 동안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고 수년간 쌓인 전문가와 기관의 역량이 무시되거나 뛰어난 인재들이 떠나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관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고 반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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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2장 「무너진 일상」 챕터에서 '많은 연구와 치료법이 원래의 역할을 완수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원래의 역할을 완수해내라는 명령은 자기 자신에게 가하기도 하지만 사회나 타인이 강요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 인식의 개선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인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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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뉘앙스에 따라 정말 좋은 말이기도, 끔찍한 말이기도 하다고 느끼는 문장이 있는데요. 바로 ‘살 사람은 살아야지’입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지금 현재, 이 순간, 살아 있음’에 집중하게 한다면 그 어떤 격언보다도 치료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표현이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 혹은 누군가의 피해와 상처는 외면하고 당장 사회가 굴러가게 해야 한다는 집단주의적인 시선에서 쓰이곤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을 위해서는 관련 기관과 소통하고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구하며 이런 부분을 제도화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트라우마의 모습과 여파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가지각색이기에, 트라우마에 대해 잘 모르면 피해자의 모습이나 증상을 잘못 이해해서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사실 주변이 아니라 피해자 스스로도 자신에게 그런 ‘문제’ ‘결함’이 있다며 낙인을 찍는 일이 많지요. 따라서 적절한 지원이 잘 이뤄지도록 소통이 되고 제도가 개선되려먼 피해자나 그 주변인뿐 아니라 사회의 각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트라우마’를 잘 이해하고 이를 잘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에게 이를 좀더 쉽고 사례 위주의 현실적인 면을 안내하고자 책을 쓴 것도 이러한 생각이 기반이 된 것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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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월호 참사 등 전국민적 트라우마를 낳은 참사들이 있습니다. 책에 적어주신 '기념일 반응'처럼 특정 기간이 되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여요. 그런데 국가적 참사의 경우, 참사 당사자나 유가족이 아니면서 트라우마를 호소한다는 게 조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어떤 방식을 통해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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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트라우마도 그 여파가 빙산의 일각으로만 드러날 뿐 매우 심각하지만, 국가적인 참사의 여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 사회와 미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의 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참 다양한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 참사와 피해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대하고 어떤 지원을 하며, 얼마나 진정성을 보이고 있는가’입니다. 많은 국가와 사회가 집단적인 참사를 겪고 있으며 이런 위협은 전세계적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처럼 뇌와 몸을 지배하며 치명적이고도 만성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심각하고 여파가 큰 사건일수록, 지진의 진원지에서 멀리 있어도 그 영향을 받듯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충격을 받고 영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회복하려면 책에서도, 이 인터뷰에서도 반복하여 강조하듯이 그것이 ‘트라우마 반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한 자기돌봄과 안정화를 통해 흔들린 내 뇌의 체계를 다시 정리해야 합니다. 집 안 대청소를 해야 할 때, 때 청소가 필요한 부분과 순서에 대해 계획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맞게 정기적으로 잘 관리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정리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전문가를 불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있겠네요. 한 번 전문가가 치워주었다고 해도, 이후에 집(나의 몸과 뇌)을 관리하는 것은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한 관리(자기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러한 사회적 참사에서 회복하는 것은 곧 내가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것도 좋고, 내가 있는 곳에서 주변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컨대 도움이 되는 좋은 자료를 주변과 공유하고 지인들과 토론하거나, 예방을 위해 가능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겠죠. 이렇게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극복하며 나보다 더 힘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작은 걸음일지언정 멈추지 않고 힘을 모을 때, 나의 고통뿐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함께 연결되어 있는 공동 구성체인 사회, 나아가 미래의 고통 역시 조금씩 덜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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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끝으로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를 통해 만나게 될 독자 분들, 또 이 인터뷰를 읽게 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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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예상치 못한 경험에 의한 여파이며 그 여파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모두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다보니 일반인만이 아니라 전문가조차 트라우마 반응을 다루는 것을 어려워할 때가 있죠.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그 트라우마 반응의 심각성이 상상 이상이라 충격적일 수도 있을 텐데요. 반대로 인간의 뇌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 역시 우리의 섣부른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을 느끼셨으리라 믿습니다.
트라우마,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의 종류와 깊이가 너무 심각하다고들 느끼는 요즘입니다. 하루하루 끝도 없는 혐오의 여파는 또 어떤가요. 하지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이 피해를 예방하고 치료하고 돕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으며, 피해자를 돕기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비전문가들의 수 역시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아 우리가 모를 뿐, 그 넓이와 깊이 면에서 광대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아는 것이 힘’인,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잘 다룰 수 있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이 트라우마라는 낯선 영역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여정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여정들이 모여 의미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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