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를 클릭하시어 읽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윤석열 탄핵 선고가 있기 전까지 정치권은 이번 광장의 주역을 '여성과 소수자'로 이야기하며 이들을 상찬했습니다. 그러나 파면 이후 진행된 대선에서 몇몇 후보는 여성과 소수자의 존재를 진작에 잊은 듯 차별금지법 등 여성,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외면하고 여성혐오를 공격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지난 5일에는 '혐오표현금지법' 제정과 관련, 더불어민주당 조인철 의원은 '성적 지향' 문구를 빼고 재발의하겠다는 뜻을 밝혀 파장이 일기도 했는데요. 차별금지법도, 혐오표현금지법도 모두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발을 빼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면 그걸 이끌어내는 것 역시 정부와 국회가 해야할 일일 텐데요. 또, 그간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날치기로 통과된 법안들이 있다는 걸 떠올려본다면 '사회적 합의'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민주당의 결정은 오랜 기간 광장을 메웠던 여성과 소수자의 뜻을 무시하는 행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광장이 열리는 어느 날, 여성과 소수자를 '정치적 주체'로서 새롭게 발견하며 의미 없는 상찬만 늘어 놓겠지요.
이번 들불레터는 총 세 차례의 시리즈 연재를 통해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광장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된 한편, 우리조차 잊고 있던 과거 여성, 소수자들의 실천들을 조명하고 이를 역사의 큰 줄기로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리즈의 첫 화는 <다시 쓰는 타임라인>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와 『다시 만날 세계에서』를 통해 윤석열 탄핵 타임라인이 아닌 광장의 타임라인으로 시계의 축을 조정해보려고 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여성과 소수자에게로 놓일 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오늘 들불레터와 앞으로 이어질 연재 글들을 통해 변화의 밑그림을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 빨간 색으로 처리한 박스에는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의 내용을, 검정 색으로 처리한 박스에는 『다시 만날 세계에서』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기존 들불레터 톤에서 벗어나 기사 혹은 재구성된 인터뷰의 형태로 도서의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으며, 소개 사이사이 제 개인적인 감상을 담았습니다. 오늘 소개하지 않은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하시거나 오늘 소개된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시리즈 1. 다시 쓰는 타임라인
- (광고)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이유정, 신지현, 최윤주, 이지윤, 탐, 박수빈, 김후주, 생강, 엄지효 지음 (롤링다이스)
- 『다시 만날 세계에서』,
강유정, 김후주, 오세연, 유선혜, 이슬기, 이하나, 임지은, 전승민, 정보라 지음 (안온북스)
(예정) 시리즈 2. 광장과 젠더
- 『광장과 젠더』, 소영현 (갈무리)
-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권명아 (갈무리)
(예정) 시리즈 3. 광장 이후
-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오월의봄)
- 『광장 이후』, 신진욱, 이재정, 양승훈, 이승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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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를 만든 출판사 롤링다이스에서 100부 한정으로 배송비 3,000원만 받고 도서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오늘 들불레터를 읽고 이 책이 궁금해지신 분들께서는 참여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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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도서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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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주 과거로 돌아가는 책이다. 현재를 냉소하며 그때가 더 좋았지 식의 추억에 잠기는 이야기나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광장에 모인 여성들의 기원을 찾기 위함이다.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사건은 단지 그간 참아온 울분을 폭발시킨 하나의 기폭제에 불과했다. 사회와 언론은 앞다투어 2030여성을 새롭게 발견된 정치적 주체로 상찬하기 바빴지만, 사실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의 필진들을 포함해 광장에 나선 여성들은 모두 과거의 사건을 통과하며 투쟁의 씨앗을 품은 채 자라난 사람들이다. 이 책은 광장에 품 속 여러개의 씨앗 중 하나를 심고 작은 결실을 보게 된 여성들의 한 페이지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조직화의 경험이 없던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적, 문화적 역량을 토대로 이루어낸 성취를 담았다는 점이다. 광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깃발들이 보여줬듯,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강력하게 연동되어 있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를 단지 향유하는 것처럼 보였던 혹은 사회적으로 '오타쿠', '케이팝 팬'쯤으로 여겨지며 '한심하다'는 조롱을 받아온 여성들이 실은 문화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정치성을 매순간 감각·경험하고 있었으며, 광장이라는 사건을 통해 문화와 광장을 연결할 수 있었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 시민들을 한데 모아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또,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이때의 차이란, 우리가 통상 이야기해온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에 대한 요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이러한 요구를 말하는 여자들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이로 인한 긴장과 어려움, 난감함을 말한다. 그러니까 '차이', '다름'이라는 건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팽팽한 긴장감, 어쩌면 더 많은 다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차이를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그리고 페미니즘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아마 모든 앤솔러지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일텐데 각각의 이야기나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기 전에 챕터가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정치권, 학계, 시민사회단체의 구성원이 이 책을 리뷰하고 그 글이 함께 실렸다면 저자들이 만들어낸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구성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의 개입이 중요하다. 독자가 깊이 있는 리뷰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독자가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이 책을 독해하고 그 이야기를 또 한 번 나누어야만 이 책이 또 한 번, 사회운동의 매개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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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윤석열 탄핵 선고가 있기 약 한 달 전인 3월 6일에 출간되었다. 이번 광장의 여성들을 다룬 책으로는 처음 출간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 탄핵 정국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온 책이라 다소 시기상조라는 인상을 받았다. 출간 시기에 대한 약간의 의문을 제외하더라도 광장에 나선 평범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아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들, 나아가 이전에 몇 차례 자신의 글을 발표할 지면을 얻었거나 책을 낼 수 있던 기회가 있던 사람들이 '책'이라는 상품의 형태로 광장이나 탄핵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책을 연 강유정 전 국회의원(현 대통령실 대변인)의 글은 특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을 쓸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광장의 빛이 가지는 호위성과 무해성을 극찬하며 "빛의 호위, 다정한 서술자들의 연대"로 칭한다. 광장의 빛이 연대의 뜻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나, 넓고 환한 빛 내부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이 그늘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광장의 빛을 아름답게만 독해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할 일이 아니다.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만 했던 여자들이 무엇을 원했고, 각각의 빛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듣는 일, 그리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에 옮기는 일이 바로 국회의원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강유정의 글에는 구체성과 책임이 탈각되어 있다. 어둠을 물리치는 건 수많은 빛의 행렬이기도 하지만, 그에 따르는 정부와 국회의 구체적인 응답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기획과 강유정의 글 외에 다른 글들은 여러 생각할 여지를 남겨 주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언급하며 이번 시국이 어떻게 이들을 포함한 많은 정체성들의 "근본적인 실존의 층위를 위협"했는지 분석하고, 광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차이를 인지하고 다름을 품는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었는지 그 가능성을 살피는 전승민 평론가의 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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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이지윤
"내가 '여자'라서 미칠수밖에 없었다는 점, 그것이 어떻게 지금의 나를 만들고 나아가 미치게 해서 현장으로, 광장으로 움직이게 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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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던 지윤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단어가 휴대폰에 뜨자 즉각 여의도로 향했다. 계엄을 '공부'하며 자란 세대인 그에게는 계엄이 초등학생이던 무렵부터 20대까지 거쳐온 수많은 테러, 재난, 참사(9.11 테러, 세월호참사, 에라완 사원 폭탄 테러 등)와 겹쳐 보였다. 그는 비상계엄이 이러한 참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의 일상을 파괴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오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20대 무렵의 그는 두려움 때문에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이루어지던 애도의 현장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이번에는 두려움 없이 계엄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죽을 각오를 하고 여의도를 향했다. 어떻게 두려움을 억누를 수 있었던 걸까? 20대의 지윤과 30대의 지윤은 어떻게 다른 걸까? 그는 이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생각 끝에 내가 '미친년'이 되었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다다랐다. 난 미쳐 있었다." (p.110,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그는 자신이 '미친' 이유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수식어가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성질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서, 부모님이 좌파라서와 같은 "기억, 경험, 관계, 정보"가 그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이야기한다. 바로 "여자"다.
'여자 됨'은 분열된 자아, 조각난 관계, 혼자가 된 느낌을 계속해서 감각하게 만드는 정체성이다. 지윤은 여고에서의 경험을 통해 여자들의 연대가 가능하다는 걸 체험했지만, 그것은 "일시적 유토피아에 불과"했다. 20대가 되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게 된 그는 "집단적 여성 연대"에 대한 참여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여러 행동에 동참했고, '주류됨'의 바운더리 바깥에 놓인 '비주류'로서 타자화를 경험하며 견뎠다. 이제 그가 목소리를 내며 요구하고, 외치고, 싸워온 세월이 어언 10년이 되었다. 그는 오랜 기간 억눌렸던 감정들이 병리적인 과정을 거쳐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계기로 폭발하였다고 말한다.
"나의 고통이 발견되거나 이해되거나 존중받지 못할 때 인간은 누구나 무력감에 빠지고 그럴 때 무기력을 학습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억눌렸던 분노와 여러 감정들이 극단적인 무언가로 표출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미쳐버리고 만 여성들을 거리로 모이게 만들었다." (페이지 표기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사회에 의해 감금 당했던 미친 여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쳤고, 서로를 덜 미워하기로 결심하며 연대했다. 지윤은 곁을 지키던 여자들의 존재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분명 사회는 그들이 억압했던 미친 여자들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 이제 사회가 그들에게 응답할 차례다.
"미쳐 있는 2030 여성들의 힘은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미래를 움직이는 힘일 테다. (...) 이런 여자들의 진짜 실체가 무엇인지. 이 미친 여자들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결국엔 폭발해 미칠 수밖에 없었던 나, 그리고 동료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난 그들의 진짜를 알게 되었다. 2030 여성들은 이 나라의 진짜 미래다." (페이지 표기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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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신지현
"응원봉이 가진 '평화성'은 계엄이라는 '폭력성'과 가장 반대되는 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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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서' 광장으로 향할 수 있었던 지윤이 있었다면, '케이팝'을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용기를 냈던 지현도 광장에 있었다. 그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른바 '찍덕'(찍는 덕후)이다. '홈마'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는 광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사람들을 참여하고 싶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현이 게시한 SNS의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광장에 나가야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와 함께 연대의 뜻을 밝혔다. 분노를 연료로 삼아 금방 지치기보다 우리를 단단하게 서 있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중심을 통해 연대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기세를 몰아 12월 7일, 같은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을 모아 합동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했다.
'조직'은 규모와 조직력, 인적 네트워크와 집회 노하우를 두루 가진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광장에서는 일반 대중 역시 '조직화'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현 역시, 합동 시위를 위해 참여자들에게 나누어 줄 물품을 준비하고, 깃발을 배포하고, 그들을 현장으로 인솔하고, 질서를 정리하는 일을 맡으며 조직의 경험을 이어갔다. 합동 시위에 참여한 참여자들은 핫팩, 방석, 응원봉 건전지 등 자신이 나눌 수 있는 일을 하겠노라 다짐하며 헤어졌다.
그는 한강진 밤샘 시위가 있던 1월 3일부터 3일간 친구들과 다시 그 자리를 지켰다. 윤석열 체포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함께였다. 그는 "어두운 밤하늘에도 별이 있다"며 희망을 놓지 말자고 한 민주노총 소속 간호사의 자유발언을 듣고 별의 모습이 꼭 응원봉의 빛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지현에게 그날 밤은 춥고 고되지만 가장 뜨거운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싸웁시다.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외로워 마십시오. 광장으로 나오십시오. 함께하겠습니다. 제가 앞에 올라와서 바라보니 오늘 밤하늘의 가장 높은 별들이 가장 낮은 이 땅에 내려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별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시민 여러분입니다. (...)" (페이지 표기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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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지킨 'K팝 팬덤'이 대선 후 꿈꾸는 세상은 (여성신문)
탈정치화되었던 케이팝 팬덤이 광장을 계기로 정치적 집단으로 거듭났다는 세간의 평에 대한 반박과 함께 광장의 구체성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인터뷰 기사. 지현의 이야기를 포함해 보다 더 많은 '광장으로 향한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이 퐁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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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탐
"나는 산 자로서, 앞서 나간 조상들을 마땅히 따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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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곳곳이 응원봉 불빛으로 가득 메워지는 동안 외국에서도 윤석열 탄핵을 위한 집회가 진행됐다. 탐은 내란 사태가 발발했을 무렵 일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었다. 그는 계엄 선포 직후 SNS에 ‘일본 집회’를 검색했다. 두려움과 부채감으로 어지럽게 얽힌 마음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일본 내 윤석열 퇴진 집회 정보 공유‘ 오픈채팅방에서는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집회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하루 뒤에는 더 많은 인원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집회가 가까워질수록 연대는 확장됐다. 탐이 참여한 첫 집회는 12/6 신오쿠보에서 진행된 집회로, 피켓도 구호도 모두 한국의 집회 문법과 같았다. 발언은 모두 일본어로 외쳤지만 윤석열 퇴진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였다.
탐은 내란 사태를 계기로 친구의 친구도 처음 만나게 됐다. 계엄 직후 놀란 마음에 탐에게 보낸 ‘원’의 다이렉트 메시지가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는 원과 ‘세’, 그리고 정보 공유에 도움을 다른 분까지 만나 누군가 몸 대신 보낸 대용량 커피를 싸들고 또 한 번 거리로 나섰다.
그는 12월 7일, 동료들과 함께한 집회에서 탄핵 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암담한 심정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라는 거대 팀 프로젝트의 공중분해를 막고 어떻게든 이어가기 위해“ 12월 8일, 그는 비상 조직 위원회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집회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홍보 포스터 및 피켓 제작, 집회 신청, 참여 수요 조사, 플레이리스트 구성과 음향 장비 대여까지 집회와 관련한 디테일들에 관여하고 개입하면서 집회를 조직해나갔다. 그리고 12월 14일이 되었다. 그날은 도쿄에서 세 번째 집회가 열리는 날이자 탐이 동료들과 함께 여는 첫 번째 집회였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분주히 움직였고, 탄핵안 가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원활히 집회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들려온 탄핵안 가결 소식. 그는 단상에 올라 환호하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윤석열)가 가볍게 말한 ‘두 시간짜리 내란’은 그 여느 때보다 긴 두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나는 타지에 있지만 나의 기반, 가족과 친구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나의 조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 광주에서 태어난 저는 1980년 광주에서 나의 조상들이 피로 써 내려간 민주주의의 역사를 압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압니다. 저에게는 두 시간이었으나 조상들에게는 열흘이었습니다. 계엄의 시간 동안 타지에 있던 저조차도 너무나 무서웠는데,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광주에 고립되어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국가와 군인의 총칼에 맞섰을까요. (...) 나는 산 자로서, 앞서 나간 조상들을 마땅히 따를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들에 맞설 것이고, 그들에게서 피로 쓰인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입니다.“ (페이지 표기 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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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내란죄 윤, 탄핵 때까지 촛불”…일 시민단체도 연대
도쿄 우에노 인근에서 진행된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에 관한 기사. 이날 집회에는 재일동포와 시민단체, 학생, 노동자 등 25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국에서도 퇴진을 염원하던 동포, 동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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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전승민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한 명 한 명의 '우리'일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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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의 글에는 질문이 있다. 그는 현재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는 동시에 타진을 위해 과거와 미래를 구체적으로 사유해야한다고 말한다. 그가 "붙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지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이 '계엄'의 임계점을 넘게 했는가? 둘째,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원하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것의 도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가?" (p.191, 『다시 만날 세계에서』)
이 글은 윤석열의 계엄 내란이 차이들의 경합과 갈등을 발생시키기 위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내란수괴가 차이들이 인지될 수 있는 장 자체를 파괴해버렸다는 것이다. 분리된 환경에서 살아오던 우리가 장의 파괴로 인해 어지럽게 뒤섞였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우리는 전승민의 말마따나 "답보 상태로 머물러 있던 정체성 정치의 공황을 타개할 새로운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광장을 겪은 우리가 경합할지언정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정치를 이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낙관을 갖게 된다.
"나는 지금 우리가 함께 통과하고 있는 이 n개의 뒤섞임이 서로를 몸으로 이해하는 경험이기를, 각자의 몸에 누적된 미시적인 차별과 배제의 비의도적인 습관이 떼창의 다상성 안에서 조금씩 녹아 이전과 달라지기를 바란다. (...) 각자의 전선에서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발생하더라도 치열하게 경합하되 서로가 역사와 차이를 온전하게 존중하는 정치이기를 바란다." (p.200, 『다시 만날 세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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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정보라
"우리의 소수자성이 언제나 우리를 연결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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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응원봉이 예쁘기 때문"에 2030 여성의 참여 비율에 사람들이 뒤늦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 분석한다. "여성은 젊고 예뻐야 하고 데모도 예쁘게 해야 한다"는 발상이 여성 혐오적이며 이를 체화하고 있는 K-아저씨들에게는 응원봉을 든 여성들 역시 그러한 식으로 비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더해 나 역시 분석을 더해보자면, 그들은 이른바 '응원봉부대'가 무해해보였기 때문에 여성들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은 아무도 해칠 수 없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응원봉을 직접 들어본 자라면 알겠지만 그것은 거의 무기에 가깝다. 크기도 제각각인데다 뾰족한 모양도 있어서 휘두르기 편하고(...) 더군다나 그것을 든 여자들은 이미 팬덤 내부에서 치뤄지는 여러 전쟁들에 뛰어든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이다. K-아저씨들은 여성들을 너무 우습게 혹은 얕게 봤다.
정보라의 글은 '포항시민 비상행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1월 4일, 포항 영일대 해변에는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 약 50명이 모여 들었다. 그날은 윤석열 체포가 무산된 날이라 분노에 차 자유발언을 하는 시민이 많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유발언대에 올랐지만, 서울에서 논바이너리 혹은 성소수자라고 자신을 밝히던 발언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그 누구도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았다. 당연히 포항에도 성소수자가 있겠지만, 그 사실을 밝히면 포항에서의 삶이 힘들어질테니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 저자는 이해한다. 경북의 "보수적인 소도시"인 포항은 아직 자신을 드러낼만큼 마음이 놓이는 공동체가 아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비장애인 청년 남성이 실명과 얼굴을 밝히고 발언대에 오를 수 있었던 반면, 이십대 삼십대 여성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발언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이날의 기억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소신을 밝힐 만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한국 사회에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 지 고민한다.
앞서 내가 문화와 정치의 연결고리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라는 연대도 활동도 '생활'이라는 점을 짚어낸다. 정치가, 투쟁이, 연대가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있다는 것. '여성이 의제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직력이 약하다'는 비판을 일축할 수 있는 중요한 깨달음이다.
"의제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즉 팬덤 정치를 이미 넘어섰다는 뜻이다. (...) 조직력이 약하다는 평가는 무슨 근거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386세대가 원하는 방식의 조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의 연대는 넓고 느슨하고 유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앞뒤에서 음으로 양으로 연대할 수 있다. 광장에 나온 청년 여성에게 정치 참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생활이다. 연대와 활동도 생활이다." (p.70-71, 『다시 만날 세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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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노잼'인 지역 탄핵집회에 나가는 이유
부울경, 강원도처럼 보수 색채가 짙어 집회가 열릴 때마다 화제가 됐던 곳과는 달리 '청주'는 화제성이 다소 떨어지는 도시였는데요. 공연도, 다채로운 깃발도 없는 '노잼' 집회에 계속 나가야했던 이유를 살핀 좋은 기사입니다.
ⓒ허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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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박수빈
"동덕여대는 광장에 계신 모든 시민을 동지로 호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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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새벽, 동덕여대 학내 커뮤니티에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수빈은 학우들과 마찬가지로, 설마하는 마음을 갖고 학교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날 돌아온 총학생회의 입장문은 당혹 그 자체였다. 대학 본부가 아이디어 단계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하고 있었으며, 총학생회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재학생들이 그간 학교에 갖고 있던 불만은 이 소식으로 폭발했다. 그들은 과잠을 깔아 학생들의 존재를 보여주고, 근조 화환, 포탈 민원 총공 등으로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남녀공학 전환 사안을 정치권과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권을 위해 학교를 이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빈은 당시의 '정치적 거리두기'를 이렇게 회고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거리두기는 오히려 우리의 요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페이지 표기 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그러나 학생들의 이러한 선택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2030 여성들이 정치적 의사를 내비쳤을 때 사회가 저지른 과오, 예컨대 의사를 철회하려는 압력이나 조롱이 꾸준했기 때문이다. 내몰린 학생들은 보수적인 입장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할 방도가 없었다. 학내 사태에 언론이 주목하면서 학내의 정치 혐오는 더욱 강해졌다. 수빈은 인류학자 김현경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현경의 말처럼 "'사회적으로 죽어 있다'는 것이 자신을 위해 나서줄 제삼자를 갖지 못했음을 뜻한다면", 우리는 살기 위해 사회적으로 죽었다. 우리와 연대하고 투쟁할 수 있는 제삼자를 상상하지 못했고... (...)" (페이지 표기 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학내 민주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던 12월 3일 이후, 광장이 열리면서 시민들은 동덕여대의 투쟁과 "대한민국의 내란 종식을 한 흐름으로 놓고 봐주기 시작"했다. 동덕여대생들은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섰고, 시민들은 그들을 응원했다. 연대와 지지에 응답하듯 동덕여대생들은 2월 9일,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라는 학외 시위에서 처음으로 모든 깃발을 허용했다. 많은 시민과 소수 정당들이 뜻을 함께 하며 깃발을 들었다. 수빈에게 광장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수빈은 광장에서의 연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말로 이 연대를 믿는다. 내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깃발과 피켓들이 곧 희망이다. 함께하면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는 그 역사를 꼭 이루고 싶다. 광장의 불빛과 목소리를 내 안에 차곡차곡 모아 뚜벅뚜벅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동덕여대는 광장에 계신 모든 시민을 동지로 호명합니다." (페이지 표기 예정,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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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교육 그리고 동덕여대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금 되물으며 동덕여대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가 나누게 될 논의가 한국 사회의 대학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기대를 담은 기사.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생과 사회의 요구에 있고, 변화도 그 필요에 맞춰야 한다"는 우정은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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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최윤주
"그 노래와 그 이야기가 다할 때까지는 이 세계에, 그리고 당신 곁에 남아 있겠다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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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는 2017년 종현, 2019년 설리와 구하라가 떠난 일을 떠올리며 그 상실이 자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2019년 이후 얼마나 크게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지, 슬픔과 괴로움의 무게가 일상을 어떻게 손상시켰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워 감정의 요철들만 겨우 더듬을 수 있었던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의 끝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있다.
윤주에게 '다시 만난 세계'는 맑고 환한 목소리 속 숨겨진 슬픔을 자꾸만 발견하게 되는 곡이다. 그러한 슬픔에는 실체가 있다. 여러 아이돌 멤버들을 죽음으로 이끈 케이팝의 폭력적인 작동 방식과 그 안에서 팬으로서 느껴야했던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우리 세대가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경험한 상처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슬픔은 전혀 다른 구성물질들로 이루어져 우리를 또 한 번 덮쳐온다. 그들의 현실과 내가 발 딛고 선 세계의 분명한 낙차감이다. 월 200을 못 버는 나와 130억짜리 아파트를 매매하고 통장 잔고 50억 이상을 가진 그들의 생활이 주는 균열이다. 이렇듯 아이돌을 향한 마음은 복잡다단해서 한 줄로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은 또래 여성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느끼곤 했다.
"우리는 때로 우리 밖을 난폭하게 배척할 만큼 가깝고 애틋했지만, 가까운 만큼 서로를 미세하게 알았기에 자주 서로 다른 처지를 실감해야 했다. (...) 하늘의 별처럼 먼 스타들이 나를 막막함과 무기력으로 주저앉히는 쪽이었다면, 또래 여성들과의 관계는 서서히 안쪽에서 좀먹는 느낌이었다." (p.88,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부채감으로 떠밀려 갔던 광장에서 윤주는 다 함께 케이팝을 부르는 일에서 인정과 수용을, 응원봉과 조공 문화를 연상케하는 선결제 문화에서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친근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광장의 편의와 재미가 "내가 속한 세대가 사회와 시장의 주류가 될 때 부여받는" 것임을 날카롭게 인식한다.
"광장의 언어와 방식이 특정 집단에 유난히 익숙하고 편했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겐 그러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었다." (p.92,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라는 집단성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엄청난 동질감과 끈끈함을 느끼게 된다. 끈끈함은 조직을 강화시키는 결속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조는 일순간 우리가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광장이 만들어 낸 '우리'는 같지 않다. 이 점을 망각하거나 착각하기 시작하면, '가짜 평화'에 매몰될 가능성이 있다. 윤주 역시 이러한 점을 지적한다.
"완벽하게 균일한 것이 평화라면 그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했고, (...) 우리가 다음으로 가기 위해선 '우리'로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동일시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p.94,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응원봉 시민은 평화로운 연대를 가능케하는 거대한 빛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계속해서 국지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광장에서 이루어진 연대를 '허상'처럼 볼 이유 또한 없다. 그곳엔 분명 연대와 성취가 있었다. 우리는 이제 광장에서 배운 경험들을 어떻게 "불화 속"에 녹여내고 대화를 이끌어낼 지 고민해야한다.
"(...) 광장에서 따로 또 같이 서며 느슨하게 '우리'로 있는다면 조금은 타격감이 덜하지 않을까. 어떤 세계는 다시 만날 수 없고, 다른 어떤 세계는 새롭기만 할 뿐 이곳저곳이 산산조각 나 있겠지만, 나눠 갖기엔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어울리지 않는 낙관을 해봤다." (p.95,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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