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를 클릭하시어 읽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을 『자기이론』,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경유해 읽고, 함께 읽으면 좋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하였습니다. 수잰 스캔런의 책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작업에 동참해보세요!
📚 들불이 만난 이야기 (*레터 하단에 소개한 단독리뷰대회에도 참여해 보세요!)
- 『의미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엘리)
- 『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마음산책)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민음사)
|
|
|
구독자분들도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저는’ 혹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자주 씁니다(지금 이 문장도 그렇네요). 책을 소개할 때도 되도록 제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편이고, 북토크나 행사 진행 시에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향해가는 길목마다 제 삶의 작은 조각들을 흩뿌려 둡니다. 특히 당사자가 아니라면 짐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 오직 ‘나’만이 이해하고 있는 신체화된 경험을 나눠야 할 때 이 방법을 자주 씁니다. 타인의 세계는 나의 세계를 초과하는 낯선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그 타인이 나의 세계 바깥에서 겪은 일을 쓸 때,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가 쓴 글의 핵심에 닿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할 때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유용합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자주 실패합니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 쉽고, 때로는 거리두기에 실패한 ‘침입’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슬픈 순간은 제 이야기를 전달할 언어가 제게 없단 걸 깨달을 때입니다. 그럴 때 저는 제 삶의 지표가 되어준 몇 권의 책을 꺼내 인용하며 제 언어를 보충합니다. |
|
|
오혜진 평론가는 뉴스레터 <책과참치>의 글, <‘자기이론’에 구멍 뚫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런 포니에는 매기 넬슨의 글쓰기를 ‘자기이론’의 견본으로서 상세히 분석한다. 매기 넬슨이 애호하는 ‘인용’이라는 장치가 특히 주목된다. 인용은 ‘자기이론’에서 ‘자기’가 타인의 삶과 긴밀하게 연루돼 있음을 지시하는 표식이고, 특히 인용의 대상이 저명한 백인 남성 이론가들이 아니라 자신의 연인 도지 및 넬슨에게 깊은 영감을 준 "복수 젠더 어머니들"이라는 점에서 ‘이론’이 지닌 남성중심적 권위를 전복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기이론』의 저자 로런 포니에는 이 책에서 기존 이론이 가진 권위에 질문을 던지며, 이론의 대상에서 밀려난 존재들⎯“여성, 선주민, 유색인, 성소수자, 만성질환자”⎯등이 어떻게 자신의 삶과 글쓰기, 예술작업을 연결하고 ‘자기이론’화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오늘 소개할 수잰 스캔런의 책 『의미들』은 삶이 글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읽기가 어떻게 돌봄이 되는지”를 증언하며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출판사(엘리)는 이 책을 “회고록과 문학비평을 아우르는 에세이”로 소개했는데요. 저 역시 이 표현에 동의하면서도, 이 책이 회고록이나 문학비평, 에세이 어디에도 꼭 맞는 형식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우리는 이 책을 어떤 장르로 명명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에게도 이러한 형식을 명명할 새로운 장르가 필요한 때인 걸까요? 로런 포니에가 ‘자기이론’이라는 말로 작가들의 글을 설명했던 것처럼요. |
|
|
『의미들』은 “유럽-미국-백인-시스젠더-남성”으로 구성된 이론 혹은 철학의 주류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실천의 일환으로,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왔다고 여겨지는 여성 작가들의 글을 경유해 자신의 삶을 다시 해석해 냅니다. 저자는 정신병동에 장기입원했던 경험,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의 경험을 실비아 플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샬럿 퍼킨스 길먼 등의 작품과 겹쳐 읽으며, 그 경험을 섬세하게 언어화하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렇듯 성찰적이면서도 예술적이고, 동시에 실천적인 글쓰기는 글이 가지는 진솔함과 대담함으로 읽는 이의 마음에 큰 마찰을 일으킵니다.
“어쩌면 그의 이야기(『누런 벽지와 다른 단편들』, 샬럿 퍼킨스 길먼)가 내게 중요하지 않앗던 건지도 모른다. 그 책은 내 대학 수업의 읽기 과제로 지정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 다른 책들, 다른 작가들이 중요했던 방식으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교육과 교육의 권위에 너무 집착했고 그 집착이 내 독서를 제한했다.” (p.205, 『의미들』)
“강사가 된 나는 문학과 삶의 가장 명백한 연결점들조차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자주 되새기게 된다. 아니 그보다는 좋은 독자, 좋은 학생이 그 연결을 인식할 수는 있더라도, 그 연결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과 그 의미를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 또한 완전히 다른 일이다. (...) 힐턴 앨스가 표현했듯이, 내가 그걸 느낄 수 없다면 그걸 쓸 수도 없다.” (p.206, 『의미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타인의 텍스트를 자신의 삶에 들여오며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저자의 경험과 공명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 과정 속에서 저자가 삶을 의미화하는 방식은 독자 자신의 내면에서도 일어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삶을 재배치하고 수정하며, 삶의 언어를 새로 짓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의미들』 뿐만 아니라 한 권의 책이 더 남는 셈입니다. 바로 ‘나의 삶’이라는 책입니다. 비록 그것이 듬성듬성 불가해한 구멍을 남기더라도... 성기게나마 남겨진 하나의 책으로서요.
“많은 경우에, 많은 사람에게 진단이 실질적인 고통의 경험을 포착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이미 주어진 상태 안에서도 위안을 찾을 방법이 우리에게는 많이 있다. 이는 어느 수준에서는 늘 불가해한 부분이다.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다. 이것이 내게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이유다. 내가 이 의사도 그들을 알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p.501~502, 『의미들』) |
|
|
동시에 이 책은 ‘읽기’라는 작업과 더불어 ‘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여성 작가들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의 삶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실비아 플라스는 글쓰기를 생존의 문제로 여겼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상력의 죽음이라고 생각된다. 바깥의 하늘이 단순한 분홍색에 불과해보이고, 지붕이 단순히 검은색에 불과하게 되는 그날. 세계에 대해 역설적으로 진실을, 하지만 가치 없는 진실을 말하는 사진 같은 정신이. 그건 내가 욕망하는 하느님보다 더 왕성한 창작력으로 풍요롭게 싹 틔우고 번식하며 자기 나름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합성의 힘,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힘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플라스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닌,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선과도 같았습니다.
“분노에 목구멍이 메고, 온몸에 독소가 퍼져나간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흩어져 글자의 형체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글쓰기는 치료법인가?”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저자는 이성적이지 않고, 광기에 휘둘리며, 그럼에도 이해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말합니다.
“아웃사이더들. 항상 혹은 어쩔 수 없이 바깥에 자리한 사람들. 수줍거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거나 쉽게 우울증에 빠지거나, 때로 혹은 만성적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거나, 과거의 이야기에, 트라우마에, 상실에, 아니면 그저 혼란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들. 이해받고 싶어서 과거에 관해 쓰고 또 쓰고, 매번 다시 바로 잡아보려고, 제대로 이해해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 글쓰기 자체가 살아가는 일의 실패,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 실패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당신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더는 바라지 않게 된다.” (p.448, 『의미들』)
“삶은 가두어지지 않고, 오히려 관계들의 무수한 선을 따라 세계 사이로 길을 누비듯이 나아”1)갑니다. 스캔런의 읽기-쓰기 작업은 이처럼 흐르고 교차하는 삶의 성질을 극대화한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그는 삶을 특정 시기나 장소에 고정하지 않고, 무장소성 속에서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갑니다. 삶과 텍스트를 서로 관계 짓고, 삶을 하나의 점이 아닌 다양체로 상상하며, 그 복잡한 움직임을 담기 위해 자신만의 장르로 글을 씁니다. 그의 글쓰기는 과거의 한 시기를 완벽하게 의미화하거나 타인을 설득할 만큼 명료한 자기이해에 도달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결국 이 책을 읽는 독자, 관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나’입니다. 스캔런은 영영 불가해한 자기이해의 작업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그렇게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섬처럼 존재하는 개인들을 서로 연결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불가해하게 남아 있는 순간들을 떠받칩니다. 그것이 바로 스캔런이 지난 경험과 책읽기를 통해 마련한 ‘삶을 긍정하는 틀’을 독자에게 건네는 일입니다.
“책들은 나에게 다른 삶을, 더 크고 더 잘 떠받쳐주는 틀을, 삶을 긍정하는 틀을 알려주었다. 당시라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알 수 있다. (...) 그 책이 붕괴로부터, 무의미로부터, 전할 수 없는 사별의 슬픔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보루였다는 걸.” (p.314, 『의미들』)
1) 『라인스』, 팀 잉골드 지음, 김지혜 옮김 (2024, 포도밭출판사) |
|
|
|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마음산책)
이 작품은 실비아 플라스가 자신의 삶과 지나치게 가까운 것으로 읽히는 것이 염려되어 가명으로 출판했을 정도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이 책의 제목인 '벨 자'는 종 모양의 유리 그릇을 의미하는데요. 플라스는 화자인 에스더가 삶을 답답하고 혼란스럽게 느끼는 순간을 꼭 '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에스더는 한 잡지사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뉴욕에서 한 달간 인턴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잔뜩 부푼 기대감을 안고 도착한 뉴욕에서 그는 삶에서의 가장 큰 혼란을 경험하고 허무한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에스더는 자살을 결심하지만, 이는 실패로 끝나고 결국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
|
|
《의미들》의 저자 수잰 스캔런은 스무 살이 다 되어가던 시점에 《벨 자》를 읽습니다. 그는 에스더가 갖고 있던 음식과 섹스에 대한 허기, 욕망에서 에스더가 느끼는 역겨움을 곧 자신의 것처럼 이해하고 받아 들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원했던 것, 원하기 때문에 너무 두려워했던 욕망에 《벨 자》가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과 멀어지기보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갔던 지난 날을 회고합니다. 수잰 스캔런은 자신을 파괴하는 이야기, 독자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이 이야기에 왜 끌렸던 걸까요?
"나는 허기를 품고 읽었고, 무언가를, 밑바닥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집어삼킴이었다. (...) 에스더의 역겨움은 나의 역겨움이었다. 에스더의 소외, 희망, 절망, 그 역시 나의 것이었다. 플라스의 책은 나의 일부가, 내가 살아갈 한 장소가 되었다." (p.182-183, 『의미들』) |
|
|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민음사)
《벨 자》와 더불어 수잰 스캔런에게 한때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책이 또 있습니다. 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일흔 살의 나이가 되어,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경험한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 작품입니다. 스캔런은 뒤라스가 "이제야 (...) 자기 삶에서 이 시기(어린 시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청춘을. 그때는 그걸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 뒤라스는 현재의 자신과 소녀였던 자신의 시간 사이를 무너뜨리고, 책의 시간으로 만듭니다.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 한 권의 책으로 말이죠. 스캔런은 그 욕망을 갈망했고, 욕망으로써 자신을 형성하기에 이릅니다.
"《연인》은 위대한 책이지만, 그 책이 내 안 깊이 와닿아 나에게 형성적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책이 그런 책이 되는 것을 내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p.96, 『의미들』) |
|
|
🔥 알라딘 단독 『의미들』 리뷰 대회
알라딘에서 《의미들》 리뷰 대회를 진행 중입니다! 개인 SNS와 알라딘 도서 페이지 마이리뷰를 써주신 뒤 이벤트 페이지 댓글창에 SNS 리뷰 URL을 남겨주시면 응모가 완료된다고 해요. 응모기간은 11월 16일 일요일까지이고, 분량은 500자 내외로 짧습니다! 알라딘 적립금을 최대 4만원까지 받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바로 알라딘으로 달려가 보세요! 👀 |
|
|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답니다! |
|
|
들불레터 지난화 다시 보기
친구에게 들불레터 추천하기 아래의 링크를 주변에 공유해주시면, 들불의 내일에 큰 보탬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