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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들불레터는 시 읽기 좋은 계절, 봄을 맞아 교유서가 시인선 시리즈 중 네 권의 책을 소개하였습니다. 시와 함께 봄 날씨 만끽하시길 바라며,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하겠습니다.
📚 들불이 만난 이야기
- 『그 책은 내 빈 심장에 끼워둘게』, 송하얀
-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소후에
- 『비극의 재료』, 원성은
-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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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의 복화술』, 김혜순
- 『내가 없는 쓰기』, 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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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쓸쓸한 아이가 시를 쓰진 않겠지만, 제겐 왠지 시를 쓰는 아이는 쓸쓸할 거란 편견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아이여서 편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어요. 내내 쓸쓸했다기보다 생의 순간순간, 사무치도록 쓸쓸한 어떤 장면을 확대경을 대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아이는 누구의 인도가 없이도 스스로 시의 세계로 걸어갑니다.
좁은 횡단보도 맞은편에 선 아버지에게 ‘아빠, 아빠!’ 부르며 손을 흔드는데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닫힌 얼굴, 축 처진 입과 붕 뜬 눈을 볼 때의 결락감이 제 어린 시절을 지배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시로 썼어요. 얼핏 보기에 이 시는 나의 이야기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아버지, 내게서 너무 먼 타인에 대해 쓴 것이었습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감정으로도, 심상으로도, 사람이나 물건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시 읽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없는 장르이기 때문일 겁니다. 쓸쓸함도, 횡단보도도, 아버지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의 전부일까, 시가 도달하고 싶은 방향은 어디일까 생각하다보면 시는 그 무엇도 아니게 되기도 합니다. 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 본인이 시를 정의할 때, 그리고 그 정의가 실패하는 중이라거나 미끄러지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시는 비로소 마음에 들어와 앉습니다. 다만 시는 완결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에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이 없습니다. 서성이는 시, 내달리는 시, 미쳐 날뛰는 시, 그러다 부딪히는 시, 멈춰서는 시. 시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교유서가 시인선 중 총 네 권의 작품을 'OO하는 시'로 정의해보았습니다. 그 다음 여러분에게 각각의 시집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는지 묻고 그 답을 통해 우리에게 시란 무엇인지,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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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러내는 시
『그 책은 내 빈 심장에 끼워둘게』, 송하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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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달리기와 테니스에 몰두하면서 새삼 느끼고 있는 감각이 있습니다. 바로 내게 몸이 있다는 감각입니다. 운동을 통해 몸을 감각하는 건 제게 무척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몸을 감각하는 순간은 주로 누군가 나를 만지거나, 더듬거나, 움켜쥐거나, 쳐다보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손길이나 시선을 통해 내 몸이 자리하고 있다는 기묘하고도 불쾌한 감각은 저를 오래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시집의 처음 몇 장을 넘긴 이후, 다음 시를 읽기까지 며칠이 걸렸습니다. 마치 제 몸에 누적된 경험과 시간의 연속선상에 자리한 듯 느껴지는 이 시집이 저는 조금 두려웠던 것도 같습니다. 뜨겁고, 끈적하고, 축축한 감각들이 저를 꽉 끌어안는 것 같았거든요.
“(...) 행인이 내 가슴을 꼭 쥐어보곤 갈 길을 간다. 식상하고 어이가 없어 멈춘다. 뒤에서 엉덩이를 더듬는다. 행인들 사이 정지해 있는 사람들. 치마를 찢고 간다. 도축업자는 상점 안에서 묵묵히 작업을 진행중. 천장에 걸린 고깃덩어리들이 핏물을 뚝뚝 흘린다. 머리. 심장. 다리. 하얀 뼈. 태아. 환경미화원이 검은 봉지를 들고 간다. 이건 영화가 아니야. 정지한 인물 중 누군가 소리지른다.” - 「오버타임」
그러나 빛은 상처를 통해 새어 나오는 법. 송하얀 시인은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거나 치유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벌려 환하게 드러내 버립니다. 더 크게 드러내야만 빛이 우리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요.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상처와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온 시간이 길잡이가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마치 이 시집처럼요.
“(...) 너는 제사장이 되어 내부의 창을 모두 열어젖힌다. 안개가 순식간에 밀려들고. 나는 방화하고 싶은 마음을 부른다
우리는 시험에 들기로 한다. 불꽃 안으로. 없는 세계를 그린다. 더욱더 선명하게 그리고 함께 걸어들어간다. 연기에 휩싸여
땅에서 허락되지 않은 우리의 집이 하늘에 있으니”
- 「구름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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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송하얀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게 됩니다. 나를 할퀴고 지나가는 시, 상처의 한복판으로 나를 내던지는 시, 그러나 다 읽고 나면 묘한 개운함이 느껴지는 시. 이처럼 미친(!) 시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건지 궁금할 때, 《공중의 복화술》을 펼쳐보면 좋습니다.
“시는 일종의 무언의 대화이고, 다수가 웅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요동하는 일종의 소음이다. 이럴 때 시인은 분열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정동으로밖에는 그 ‘목소리’를 견디어낼 수 없다. 나는 그 중에서도 여러 번 내쫓김과 죽임의 세계를 거쳐 온 여성시는 자율적인 주체가 아닌 물질이며 신체인, 다양한 기관들의 응집체, 자신의 몸처럼 여러 기관들을 주렁주렁 매단 결집체, 그 기관의 유령들이 모두 중얼거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시를 읽는 독자는 자신의 자아의 장소에서 나아가 그 의미의 공백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 「Tongueless Mother Ton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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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 시인이 쓴 날짜 없는 일기 시리즈의 첫 책입니다.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길어올려 종이에 한 자 한 자 박아 넣은 이 책은 일기 같기도, 문학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문학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문학이게 하는 것, 문학이 아니게 하는 것의 구분은 무엇일까? 시인 것, 시가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 경계와 구분에 대한 모호한 답이 이 책에 있습니다.
“(...) 오전의 빛이 깊이를 가지고 있다면 사양은 흔들리며 넓게 퍼진다. 그것은 민감하고 낮은 목소리로 계속 무언가를 고백한다. 그 위태롭고 불안한 모습에 숨죽이고 멈추어 서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이 불안도 사라질 것이다. 어둠이 오는 것이다. 불안은 우리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죽음의 신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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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어젖히는 시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소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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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는 질문이 많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묻는다’는 건, 그 답이 궁금해서잖아요. 근데 소후에 시인의 질문은 잘 모르는 것을 그냥 모르는 채로 두고 싶어서 묻는 질문 같습니다. 어떨 때는 ‘안다’는 사실보다 주먹을 꽉 쥐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인 양 모른 척 하는 것도 같습니다. 저마다의 확신과 장담이 넘치는 세계에서, 모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는 세상에서 모르기 위해 질문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그러나 그 말의 파급력은 엄청납니다. 닫힌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는 질문, 그 안에는 불확실성과 미지의 가능성, 두려움과 온기가 불안하게 공존합니다. 이 시집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한 채로 ‘모른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선생님, 정말 가능합니까? (...) 미래는 칠판 위에 있다는 듯, 아이들이 펜을 잡고 한 줄 한 줄 따라갈 때, (...) 뜬금없는 말을 해대며 창밖만 내다보던 짝꿍의 질문에 모두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 잠결에 내가 가능성을 가능섬이라고 들었을 땐, 짝꿍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무엇으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주먹을 하고선, 뒤따라 주먹 쥔 아이들이 쏟아지듯 복도로 밀려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목덜미가 잡힌 채로.” - 「가능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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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계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인가를 해마다 실감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빨간 햇살도, 푸른 새싹도 제 안의 슬픔을 완전히 녹이기는 어렵다고 고집스레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어느 시간이나 관계에 못 박혀 얼어붙은 제 일부는 부러지거나 깎여나갈지언정 녹아버리길 거부합니다. 이런 제가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녹아버린다는 건 곧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만 같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으며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보기로 했습니다. 얼어붙은 채로 살아가는 일이, 내가 나이길 가장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녹아서 물이 되고 나면, 그렇게 세상을 만나면 나는 무엇이 될까요? 이 시집은 여기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한발짝 더 나아가 묻죠. 녹아버리는 일을 사랑의 일부라고 볼 수 있을까요? 나는 물이 되어 얼어붙은 또 다른 ‘우리’를 포옹할 수 있을까요? 이 시집을 통해 그 답을 찾아 헤매보면 좋겠습니다.
“폭우, 사랑에 빠진 사람의 발목은
취약하고 노출되어 있다
보호받지 못한 그 발목이 하염없이 젖고 있다”
- 「재난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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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다리는 시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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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로운 산책로를 발견했습니다. 대신 이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려면 평소보다 몇 배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길기 때문인데요. 제게는 오래된 에어팟이 있는데, 40분 정도를 사용하면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립니다. 갈 땐 괜찮지만, 돌아오는 길은 적막해질텐데. 나는 그걸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고민 끝에 나서길 수차례. 그래도 이 여정이 가능한 까닭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돌아와서 오늘의 산책이 어땠노라 이야기할 친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약간의 쓸쓸함이 해소되었어요. 가장 외롭고 슬픈 일은 기다리는 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여기가 최종 목적지인지, 내가 영영 머무르게 될 장소인지 알지 못한 채 서 있는 일. 리산의 작품에는 돌아가길 원하지만 어디로 향해야할지 몰라 기다리기를 택한, 침묵하는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용할 수 없는 슬픔에 도달했을 때, 마침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긴 싸움이 지나고 한 세기가 지나도 잡초는 우거지지 않으리
잉크 한 병과 깃털 펜 한 자루
세상의 길이 한 점에서 만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매일매일 너를 기다렸네“
- 「광대를 보내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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