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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방어권' 안건을 의결한 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시점인 지난 2월,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지부가 근조 화환을 두고 안건 의결에 동의한 위원들에게 사과·사퇴를 요구하였습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내란 옹호 지적을 두고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라는 말로 일관했지요. 내란 옹호를 위해 '인권'이라는 개념을 꺼내드는 상황을 마주하고나니 과연 '인권'이란 무엇인가 새삼 질문하게 되는데요.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인권의 개념, 오해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는 책, 『디그니티 플랜』을 소개하고 저자 양정훈 님과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인권의 정의를 다시 세워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들불이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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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정쟁 수단의 하나로 대하거나 보편적 언어로써 멋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새삼 다시 떠오릅니다. “알고 보면 전부 다 인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인권을 마음가짐이나 선의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인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디그니티 플랜: 우리는 어떻게 나쁜 세상과 싸우는가』의 저자는 인권을 “특정 대상을 책무자로 규정하고 의무를 부여하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선의나 온정에 기대야만 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면 인권의 ‘핵심 책무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국가 권력입니다.
예컨대 지하철역에서 이어졌던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살펴볼까요? 이 투쟁은 국가에 이동권 보장의 인권책무를 이행하길 요청하는 운동이지만, 언론에서는 장애인과 출근길 시민의 갈등으로 묘사하였고, 이로 인해 사태의 본질이 오도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일의 본질은 정부와 지자체가 시민의 이동권 보장에 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황인데도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 사이의 갈등이나 소수자 간 갈등이 아닌, 국가 권력의 책무입니다.
『디그니티 플랜: 우리는 어떻게 나쁜 세상과 싸우는가』은 이와 같은 ‘국가책무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시도한 책입니다. 또, 인권운동 참여의 주요 동인을 분석하면서 실질적 ‘행동’으로 향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힘은 무엇인가 살핍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인디지니어스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입니다. “밀도 높은 일상의 연결”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정치적 목표나 집단적 이익보다는 일상의 구석구석에 밀착되어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방법과 사례들을 소개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역동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인권’에 관한 여러 개념과 사례를 깊이 있게 이해해보고 싶거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실천 방법을 고민하는 분들께 초점을 맞춰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을 읽기 전, 혹은 읽으면서 궁금한 점을 소화하실 수 있도록 오늘 들불레터에는 『디그니티 플랜: 우리는 어떻게 나쁜 세상과 싸우는가』를 쓰신 양정훈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담았어요. 인터뷰를 살펴보시고, 각자 다시금 여러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실텐데요. 그런 분들을 위해 들불에서 정훈 님을 모시고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청해 들을 예정이니, 많이 자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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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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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양정훈입니다. <디그니티 플랜: 우리는 어떻게 나쁜 세상과 싸우는가>을 썼고, 인권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들불레터 독자님들께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력은 책날개에 소개가 되어 있으니, 좀 더 일상적인 이야기라면 어떨까 싶어요.
저는 요즘 몸을 돌보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여기저기 건강에 안 좋은 신호도 와서. 뭐가 됐던 스트레스 상황을 줄이는 데 신경을 쓰는 중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편해요. 러닝, 자전거 타기, 요가도 조금씩 하고 있고요. 몸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제게는 나름 도전인 셈이죠.
그 외에는 아무래도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다른 작가들과 창작 동인 활동을 하며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어요. 내년 출간할 책들을 준비하는 거죠. 비평을 주고받으며 기뻐하고 또 절망하고 그래요. 진도는 느리지만 써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게 제 삶에는 꼭 이정표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올해 진행할 인권 교육은 그 대상이 다른 때보다 유독 다양해서 그것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기후 재난 연구원, 성폭력 상담사, 도서관 이용 일반 시민, 노동조합 활동가들까지 여러 영역의 사람들과 인권 이야기를 할 계획입니다.
인권 현안으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번 정권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지에 관심이 큽니다. 또, 인권위원 소임을 맡고 있는 지자체 인권위원회에서 구성원 사이에 드러나는 여러 갈등과 충돌을 흥미로우면서도 마음 아프게 마주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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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디그니티 플랜’이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이 제목으로 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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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존엄을 위한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혹은 존엄을 향한 계획이라 봐도 좋겠습니다. 계획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목표를 세우거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가용한 최선의 수단을 고민하고, 그 수단에 맞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짜죠. 이 책이 그런 흐름을 따릅니다. 존엄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는 나쁜 세상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여기에 맞서는 인권의 개념과 실천을 펼쳐보고. 다만, 존엄도 인권도 이게 참 만만한 말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책에서는 더 좋은 삶,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 의지, 역동, 몸짓에 빗댔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것도 하나 있습니다. 인권을 전공할 때부터, 그 전 NGO에서 일할 때부터, 더 앞서 20대 때부터 여러 경로로 저는 디그니티라는 낱말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꽤 익숙한 단어였는데, 출간하고 보니 주변에 많은 분이 책 제목이 어렵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럴 수는 없지만, 시간을 되돌린다면 더 편안하고 다정한 제목을 고민해 볼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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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집필하는 과정 중 가장 고민하셨던 부분, 어려움을 느끼셨던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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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도 아닌 인권서이기 때문에 표현 문제, 특히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언어에 더 주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용어라도 재차 다시 공부하고, 여러 번 바로 잡고요. 그럼에도 아마 제가 놓친 실수가 있을 겁니다.
또, 인권 영역에 제가 존경하는 여러 연구자, 교육가, 활동가들이 계시거든요. 치열한 인권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있고. 그들 앞에 크게 부끄럽지 않은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부담이 크더라고요. 그런 책이 되었는지 욕심에 그쳤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계속 그 바람을 품고 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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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롤로그에서 작가님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우는 현장에 선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과 이를 묶어 잇는 거대한 마음에 관해 펼쳐보려 한다.“고 쓰셨어요. 이 책을 쓰시는 작가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는데요. 책이 출간된 지금, 이 책을 완독한 독자의 마음에 무엇이 남길 바라시나요? 또, 어떤 얼굴들을 상상하며 이 책을 쓰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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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개념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이해, 인권이 나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또 어떻게 우리를 묶어내는지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딱딱한 대답 같네요.
어제 유튜브를 보는데 알고리즘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상 하나가 떴습니다.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불교에서 일컫는 사랑의 핵심은 자비이다. 자비는 크게 두 가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자애심과 비애심이다. 자애심은 타자의 행복에 함께 기쁜 마음이고, 비애심은 타자의 슬픔에 함께 아픈 마음이다.
스님의 말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또 아팠으면 좋겠어요. 혐오, 편견, 차별과 같은 나쁜 세상의 기제 앞에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인권을 가졌다는 걸, 또 서로를 가졌다는 걸 기억하고 기뻤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들의 이야기 앞에 함께 슬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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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의 3장까지의 내용은 인권 용어에 대한 정의, 이러한 뜻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혐오, 약자, 소수자처럼 익숙해서 명확한 뜻을 떠올려본 적 없는 단어부터 게토, 스테이터스큐처럼 대중에게 낯선 단어들도 등장하는데요. 독자 중에는 단어들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일이 꼭 필요한 걸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또, 책을 쓰시는 입장에서도 조금 지루해지는 건 아닐까 염려도 되셨을 것 같고요. 그럼에도 제법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쓰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며 알게 되는 단어들의 뜻을 정확히 아는 건 왜 필요한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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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이렇게 쓴 구절이 있습니다. 언어로서 인권은 빈 그릇과 다르지 않고 모호하기에 누구나 멋대로 끌어다 이것이 인권이다 억지를 쓸 수 있을 만큼 섬세하지 못하다고. 앞서 제 소개를 하며, 지역 인권위원회의 갈등에 요즘 관심이 크다는 말씀을 드렸죠? 이 갈등의 상당이 인권위원들이 저마다 인권을 달리 정의하고, 오해하고, 혼동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회 밖도 다르지 않고요. 그래서 인권의 주요 개념들을 세심하게 짚어보는 게 인권 이야기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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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력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스로 조건 없는 존엄〉 챕터의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자력화의 토대가 되는 자아존중감과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자기결정권의 경우, 반성폭력 운동, 연명의료 중단 등의 문제, 장애인의 자기결정 등에서 큰 쟁점인 개념인데요. 그만큼 오해가 많은 단어인 것 같아요. 정훈님께서는 자기결정권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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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의 정의나 개념에 대한 적확한 해석은 보다 전문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사회적 의제로서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라면 개인적으로 더 관심을 두는 측면이 있기는 해요.
제가 주목하는 건 자신에 관해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자체 못지않게 ‘그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는가’ 여부입니다.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인가? 결정의 의미와 결과를 당사자는 가늠할 수 있는가? 정보가 있는가? 그런 교육을 받았는가? 결정의 파장은 그 자신에게 제한되는가, 아니면 공동체로 확산하는가? 그의 존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그리 작동하도록 어떤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어떤 책임이 내버려졌는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쟁점의 핵심에 근접하는 질문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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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5장에서는 나쁜 세상의 변화를 위해 연대를 조직하기 위한 동기에 집단적, 보상적, 규범적 동기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중 정훈님께서 특히 주목하고 계신 동기가 ‘규범적 동기’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내가 집단행동에 참여함으로써 가족, 연인, 절친, 동지 등 나의 중요한 타자로부터 얻는, 혹은 얻을 것이라 기대되는 반응 때문에 촉발되는 동인“인 규범적 동기가 ”다른 어떤 동인보다 설득력 있게 이들을 연대의 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내용에 동의되면서도, 요즘처럼 ‘나’가 중심이 되는 세계, 타자의 얼굴을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에서 이러한 규범적 동기를 어떻게 품게 만들 수 있을까, ‘타자’가 내게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때 그 연대는 오히려 쉽게 느슨해지거나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등 여러 고민이 생겼습니다. 또, 온라인에서 연결감을 느끼고 접점을 만드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도 연대의 장으로 본다면, 사회운동에서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할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어요. 근래에는 ‘인디지니어스 네트워크’와 같은 밀도 높은 일상의 연결보다는 온라인에서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폭발적으로 결집하는 연대가 더 눈에 띄는 것도 같은데요. 제가 갖고 있는 전반적인 고민과 생각에 대한 정훈님의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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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가 높은 질문이에요. 다양한 층위의 담론도 섞여 있고요. 질문의 취지를 부디 제가 잘 이해했길 바라며 말씀드려볼게요. 우선, 분명히 전제할 게 있습니다. 다양한 동인의 작용에 입체적으로 다가서기 위해 책에서는 분절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 동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죠. 통합적이고 유기적입니다.
그럼, 의견 주신 영역에서 작용하는 규범적 동기에 관해 생각해 보고, 온라인과 인디지니어스 네트워크까지 연결해 보죠. 우리는 “‘나’가 중심이 되는 세계”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환경 때문에 외부와 연결이 점점 축소되는 세계를 말할까, 아니면 자기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더 커지는 세계를 말할까? 자의적 선택으로서 세계를 의미할까, 아니면 선택하도록 강제된 세계를 뜻할까? 각 의미에 따라 어떻게 규범적 동기에 접근할지 달라지기 때문이죠.
공동체와의 연결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 규범적 동기의 작용에 접근한다면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나’가 중심이 되는 세계”이기에 ‘타자’의 존재 의미, ‘타자’의 힘은 역설적으로 더 커진다고 볼 수도 있죠. 특히 우리는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그 가치가 특별한 타자들, 즉 ‘SIGNIFICANT OTHERS(유의미하고 중요한 타자)’에 주목하는 거니까요. 제한된 관계 속에서 SIGNIFICANT OTHERS의 영향력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접촉이 거의 없는 노인에게 정기적으로 만나는 단 한 명의 복지사는 어떨까요?
자아개념, 자존감, 자기애에 무게를 두고, 규범적 동기의 원천적 욕구를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존재가치, 영향력, 자아실현의 많은 부분 역시 역설적으로 타자를 통해 확인됩니다. SIGNIFICANT OTHERS와 관계에서 발아하는 동인에 주목한다고 하여 ‘나’라는 존재 중심이 흔들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딸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하나뿐인 친구에게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 내 사람들 앞에 더 당당하고 떳떳한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의 한복판에는 나라는 존재가 위치하지 않나요?
고립과 단절의 관점에서는 규범적 동기의 당위를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인권의 역동은 자력화에서 출발하여 연대까지 나아가죠. ‘나’가 중심이 되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호명하고, SIGNIFICANT OTHERs를 발견하거나 맺어 잇는 것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인권이 필연으로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책에서 규범적 동기의 영향력을 짚으며 주로 약자, 소수자 집단을 고려했습니다. 약자와 소수자 집단이라면 공동체와의 연결, 자기 범주화와 긍정 및 자존, 고립과 단절의 측면 모두에서 규범적 동기의 작용, 필요, 기능, 당위 모두 의미가 크다고 봐요.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디지니어스 네트워크는 논점을 더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구구 님의 질문을 통해 인디지니어스 네트워크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가능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더하여 이런 질문을 던져봐도 재밌겠습니다. 얼마 전에 BTS가 복귀했죠. 아미를 예로 들면, 이들의 세계는 온라인에 존재할까, 오프라인에 존재할까? 인디지니어스 네트워크의 특성들은 어떻게 투영되어 있을까? 여기에서 ‘나’가 중심이 되는 세계와 ‘우리’가 중심이 되는 세계는 이분될 수 있을까? 그것은 ‘타자의 얼굴’을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로 존재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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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활동가로서 집단행동의 내러티브에 대한 정훈님의 제안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여성이 나쁜 세상에 맞서 온 희로애락의 내러티브가 적극적으로 개발, 소개, 확산돼야 한다“는 내용을 비롯하여 전략적으로 큰 배움을 얻었어요. 다만 고민이 되는 지점은 대중에게 운동에서의 ‘스펙터클’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점인데요. 특히 부정적인 사건, 피해자가 명백한 사건일 때에 결집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긍정적인 메시지를 토대로 운동을 이어가려고 할 때에) 결집력과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를 단순히 현대 사회의 도파민과 같은 용어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고, 운동판에서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수년째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경우에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새롭게 구축하는데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요. 이에 대해 정훈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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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운동에서의 ‘스펙터클’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진다”라는 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자극적인 이슈를 다룰 때 더 결집력과 지속성이 높아 보인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아무래도 자극적인 소재라면 대중의 이목이 더 끌리겠죠? 그런데 더 오래 지속된다는 부분은 왜 그렇게 보실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오히려 쉽게 휘발되지 않는가 싶거든요. 이어, 덜 자극적인 내러티브,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내러티브에 관한 문제 인식이 ‘그 집단이 존재하고, 나쁜 세상에 맞서고, 오늘에 도착한 내러티브의 발굴 및 강화’ 앞에서 어떤 쟁점을 만드는지도 궁금하고요.
집단의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특히, 스토리텔링, 내러티브의 발굴 및 강화는 의지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술의 문제라고 봐요. 결국 우리가 소구하려는 대상이 어떤 스토리에 매료되는가에 대한 분석과 고민, 섬세한 전략과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럼, 고민은 이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기획,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얼마나 공부하고 연마하였는가? 세그먼테이션, 타겟팅, 포지셔닝 등 커뮤니케이션과 스토리텔링의 기술적 방법론을 어떻게 수용하거나 적용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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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은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를 비롯해 대중,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선 위치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자 시도하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지침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훈님께서는 쓰신 글을 통해 계신 자리에서 어떤 실천을 시도해보고 계신가요? 서술하신 전략들이 정훈님의 삶에서,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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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은 생태계를 짓는 것이죠. 가장 중요하고 귀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그 길 위에 계신 모든 분께 응원과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당장은 사회적 행복을 조명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집중할 거 같아요. 죽음, 특히 사회적 타살에 관해 책을 써보고도 싶고요. 애초에 <디그니티 플랜>을 계획하면서는 이후 존엄을 돌보는 도시 정책을 다루는 <디그니티 시티>, 존엄에 맞섰던 반인권 지도자들에 관한 <안티 디그니티> 연작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제 안에 쓰기의 욕망을 선택하고, 고치고, 또 새로 발견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나름 집단적 동기, 보상적 동기, 규범적 동기가 뒤섞여 작용하는군요.
인권 교육도 제게는 의미가 큽니다. 계속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더 입체적인 이야기로 닿으려고민하고 있고요.
책에 약자와 소수자로서 정체성, 집단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참 열심히 썼죠? 작가로서의 나, 노동자로서의 나, 교육가로서의 나, 이들이 어떻게 개인적이며 또 어떻게 집단적인지 살피며 계속 균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여전히 앎과 실천 사이에 거리가 멀어요. 아마도 먼 채로 한참 갈 테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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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데, ‘더 나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막막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나쁜 세상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대에서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무력감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제 주변에 많이 계시고요. 이런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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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건네지 않는 것보다 함부로 위로를 건네는 게 상처가 되기 쉽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말씀하신 막막함의 근원, 정도가 저마다 다를 테니 그분들께 막막함을 떨치라고 어떻게 감히 말하겠어요. 무력감에 대해서도요. 저 첨예하고 육중한 나쁜 세상 앞에서 물러서고 싶을 때, 자신에게 웅크림과 주저함의 시간을 주는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너지지만 않기로 해요.나쁜 세상이 딱 여기까지만 나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내가 모를 때, 물러설 때, 뒤돌아설 때 나 대신 알고, 견디고, 마주하며 나아간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내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미력한 힘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죠. 저도 구구님도 여러분도 그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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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에서 5월 중, 『디그니티 플랜』 북클럽과 저자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참여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들불 인스타그램(@fieldfire.kr) 팔로우하시고 소식 기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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