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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불레터에서는 《피메일스》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롱 추의 비평집, 《권위》를 소개하였습니다. 또, 이 책을 읽기 전, 먼저 읽어보면 좋은 두 권의 작품을 소개하였습니다.
📚 들불이 만난 이야기
- 『권위』, 안드레아 롱 추
- 『리틀 라이프』, 한야 야나기하라
- 『아르고호의 선원들』, 매기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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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 소개에 앞서 먼저 평론과 비평의 차이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평론과 비평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비평은 평론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평론을 비평의 한 형태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대상을 분석 후 평가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를 비평으로, 이를 글로 써낸 결과물을 평론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여러분은 시집을 읽을 때, ‘해설’을 읽는 독자인가요? 시를 읽고 난 뒤 해설이 필요한 이유는 해석할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라는 난감한 장르 앞에서 독자는 그저 느끼는 것 이상의 독서 경험을 욕망하게 됩니다. 시를 나의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시를 꼭꼭 씹어먹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씹어먹기 위해서는 단단한 턱과 이빨이 필요한 법. 언어를 이해하는 효과적인 수단은 또 다른 언어입니다. 이를 위해 독자에게 단단함을 선사하는 게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의 역할입니다. 이는 국어시간에 배운 것처럼 특정 시어나 시구에 밑줄을 그어 그 뜻을 주입받는 과정과는 좀 다릅니다. 제 아무리 어렵게 쓰여진 해설도 독자의 자리를 열어두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해설은 일종의 가능성입니다. 여러 개의 문 중 몇 개의 환한 문을 열어젖혀 초대하는 일이죠. 초대에 그대로 응하는 것도, 다른 문을 만들거나 여는 일도 모두 독자의 몫입니다.
비평에는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독자반응 등 다양한 해석의 틀이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롱 추의 첫 비평집 《권위》에서 롱 추는 비평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약 비평이 정말로 하나의 예술이라면,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저급하고 가장 구체적인 예술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비평이 고상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사전 편찬이나 번역처럼 매슈 아널드가 “잡역부가 하는 문학 관련 일”이라고 부른 것의 좀 더 고상한 예시가 아닐까.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반드시 기능적이어야 하는 것.”
저자는 이어 ‘비평가’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술작품을 본래의 세속성으로 되돌리는 것, 이것이 바로 비평가의 최대 과제이다. 예술가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떼어내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되돌려놓는 것이 비평가의 일이다. 나는 영원과 역사, 여가와 노동,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차이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원하는 만큼 찬란한 창조의 천국으로 올라가도 좋다. 그를 땅으로 다시 끌어내리는 일은 비평가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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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 자주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는 ‘비평이 위기를 맞았다’입니다. 사실 이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누구나 별점을 매기고, 누구나 리뷰를 쓰고, 누구나 자신의 감상을 SNS에 올리는 시대에 비평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독자들이 더 이상 평론을 찾아 읽지 않는 시대, 평론가들이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대중비평’의 장을 새로이 펼쳐야 한다고 말하죠. 평론가들의 엘리트 의식이 담긴, 인텔리를 향해 쓰여진 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비평 독자의 확보를 위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독자들이 비평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서 비평의 의미와 비평가의 자리에 대해 쓴 롱 추는 자신의 몸과 욕망을 이론의 재료로 삼아온 비평가입니다. 그는 《권위》에서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라는 케케묵은 명령에 맞서, 냉소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평의 위기를 비평으로 답합니다.
이 책의 표제작인〈권위〉에서 롱 추는 “어째서 우리는 비평가에게 권위를 요구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롱 추의 글을 읽기 전에 머릿 속에 우리가 비평가에게 요구하는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확신에 가득 차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로 일관하는 톤, 다양한 문헌들을 경유하며 자신만의 관점과 완벽에 가까운 언어 감각으로 행간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능숙함, 시대를 조명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의무까지 갖춘 비평가의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이 중 하나라도 떠올리셨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비평가에게 바라지 않는 모습도 있을 겁니다. 롱 추는 독자가 비평에 요구하는 것이 “또 다른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 판단”이기에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돌아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죽은 남성 이론가를 너무 많이 인용하지 않기를, 설령 글이 개인적으로 읽힐 지라도 자기 경험에서 출발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요지는 롱 추가 비평의 위기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는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비평가가 될 수 있다는 제안도, ‘비평은 이래야 한다’는 절대적인 상을 파괴하고 비평가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자는 이야기도, “권위적인 문체를 만날 때마다 거부하자”는 투쟁으로의 초대도 아닙니다. 롱 추는 말합니다. “권위를 갈망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뤄내야” 한다고요.
그리고 비평의 위기를 논하기 이전에 ‘위기의 시대’에 어떤 비평이 필요한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이때 롱 추는“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예술의 자율성은 필연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비평가의 책임에 의존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우리의 모토를 “예술을 위한 예술, 그리고 그밖의 모든 것을 위한 비평”으로 바꾸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때 비평가가 책임, 책무를 갖는 대상은, 비평을 듣고 읽고 경험할 모든 사람들에게로 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술, 국가나 추상적인 전체로서의 사회”말고, 다른 모든 이들 말이죠.
비평집을 추천하는 건 난감한 일입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동의하기 어렵고, 또 짜증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추천하는 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 자신있게 건넬 수 있는 말은 여타 비평집에 비해 (롱 추의 전작(《피메일스》)이 그랬듯)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웃음뿐 아니라 짜증이나 한숨을 동반하는 조마조마하고 드라마틱한 감정을 소설이 아닌 비평을 통해 느껴보고 싶다면 (그리고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또, 'PC' 묻어서 예술(게임, 영화, 만화 등)이 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면, 노골적인 사회비평의 짜릿함과 경이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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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시공사)
끊임없는 학대와 폭력 속에서 성장한 인물, '주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랑이야기인 《리틀 라이프》는, 한 남성의 슬픈 얼굴 표지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틱톡 영상들이 화제가 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습니다. 롱 추는 게이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이 책의 인물관을 분석한 비평(〈한야의 소년들〉)으로 2023년,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리틀 라이프》가 다시금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하면서, 롱 추의 비평 역시 많은 이들이 찾아 읽으면서 해외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 책에서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서사를 이끌어가는 스타일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야나기하라에게 질병이 죽음의 사자라면, 남성 동성애자야말로 완벽한 환자다."(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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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넬슨 지음, 이예원 옮김
(플레이타임)
이 책은 장르로 치자면 뭐랄까요, 회고록이나 자서전처럼 읽히는 동시에 비평집으로 읽히는 작품입니다.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로런 포니에가 본인의 저서에서 핵심 이론으로 주장하였던 '자기이론'이라는 개념을 널리 퍼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이기도 합니다. 매기 넬슨은 자기이론을 통해, 손쉬운 이분법적 논리와 이러한 논리가 관계에서 작동하는 방식으로부터 빠져 나옵니다. 롱 추가 《권위》에서 비평의 대상으로 다루는 작품은 아쉽게도 한국에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 《자유에 관하여》(On Freedom)입니다. 그러나 롱 추의 글에서 《아르고호의 선원들》 역시 "숨어만 있던, 공부해온 걸 보여주려 안달난 대학원생의 모습"이 《자유에 관하여》에 드러나있다는 서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읽어보고 나는 롱 추와 얼마나 생각이 같고 또 다른지 각자 판단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넬슨이 비평적 에세이 대신 자신의 개인적 삶에 대해 글을 쓸 때 가장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렇다곤 할 수 없지만, 넬슨의 경우에는 사실이다."(9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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