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의 여정을 당신과 함께합니다 💌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어릴 적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이야기 속 성차별적 요소와 가부장적 시선을 뒤집는 시도를 통해 새롭게 쓰여진 동화들을 소개해보려합니다. 여러분이 쉽게 떠올릴만한 이야기들을 기발하고 재미있는 형태로 바꾸어 쓴 이 책들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이 얼마나 기울어져있었는지 깨닫게 만드는 일종의 균형추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힘차게 도약하게 만들어주는 발구름판 역할을 하는데요. 새로 쓰여진 동화들을 읽은 우리가 할 일은 이 책들을 지지대 삼아, 평등의 노래를 입에서 입으로, 널리널리 전하는 일입니다. 옛날 옛적 구전설화처럼 그렇게 말이죠. 💌 💪 『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해방자 신데렐라>의 기본 서사는 기존의 신데렐라와 유사합니다. 처음엔 기존의 신데렐라와 어떤 점이 다른 거지? 라고 생각하며 조금 의아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2장을 지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돼요. 자신을 돕기 위해 모인 동물들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진짜로 이것을 원하고 있을지'를 궁금해하는 신데렐라의 모습, 여자 마차꾼과 여자 말구종의 출현, 언니들보다 튼튼하고 큰 발을 가진 신데렐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자매들과 왕자의 모습까지. 어떤 장면에선 조금 울컥하기도 해요. 성인이 된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거든요. 내가 지금 무얼 원하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 막막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정말 큰 용기를 선사할 거예요. '우리 시대에 맞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려면, 혹사와 모멸적 노동의 해결책이 왕자비가 되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일을 안 하고 사는 것일 수는 없고, 대신 존엄을 지킬 수 있으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런 이야기 속에서 마법이란 우리 모두가 혼자 힘으로 늘 이루어야 하는 스스로의 변화의 과정과 다르지 않지요.' - 작가의 말에서 💥 『선녀는 참지 않았다』, 구오 이 책은 표지부터 압도적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선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인상 쓴 얼굴에 주먹을 쥔, '조신하지 않은' 모습을 한 선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책 속 이야기는 표지의 그림보다 더 급진적입니다. 선녀의 옷을 훔친 나무꾼을 많은 선녀들이 포위하고 결박하는 장면, 옷 없이도 위풍당당하게 나무꾼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녀의 모습, 결박 당한 주제에 여전히 여인의 몸가짐을 따져 묻는 나무꾼의 한심한 모습, 선녀와 나무꾼의 나무 베기 대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쳐서는 안될 장면들입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너무 통쾌한 나머지 소리 내어 크게 웃게 돼요. 나무꾼을 비웃던 선녀들의 화통한 웃음처럼 말이에요. '글쓴이 또한 어린 시절 <선녀와 나무꾼>을 읽으면서 나무꾼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나무꾼을 두고 하늘로 올라가버린 선녀가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무꾼이 중심이 된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선녀에게는 이입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탓이다. 전래동화는 수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에 접하는 이야기로서 가치관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 속에 담긴 맥락을 비판 없이 수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 『여왕의 변신』, 피에레트 플뢰티오 책의 첫 이야기인 <식인귀의 아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식인귀의 아내는 살코기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여자들은 그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일들을 그들이 원하든 원치않든 수행하곤 하는데, 이 문장은 바로 이 점을 꼬집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그녀는 자신을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존재들이 땅 아래 묻히고 나서야 부엌 너머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게 되죠. 이렇듯 원작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가부장제에 의해 채택된 요소들을 제거하여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진작에 떠났어야 할 올바름을 향한 여정의 첫 걸음이 되어줍니다. 💭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어맨다 레덕 우리가 읽고 보았던 동화나 영화 속 악당들은 왜인지 하나 이상의 '결함'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곤 합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안대를 쓰거나, 다리 한 쪽을 잃어 구부정한 자세로 세상을 향한 저주의 말을 읊는 모습으로요. 또 주인공의 모습은 어떤가요? 주인공이 후천적으로 갖게 된 장애는 행복한 결말을 위해 반드시 딛고 일어서야 할 역경처럼 그려집니다. 주인공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장애에는 요정이나 마술 혹은 신의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묘사되죠. 어떤가요? 당신이 제 글을 읽으며 떠올릴 등장인물 혹은 이야기도 역시 그렇지 않은가요? 이 책은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비장애인의 서사가 행복과 장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주조했는지 알아보고, 기존의 동화 속 문법을 해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구구 읽고 씀. 이 달의 번역가 : 배수아 작가이자
번역가. 2004년 『나의 첫번째 티셔츠』 번역을 시작으로, 『불안의 서』, 『G. H.에 따른 수난』, 『꿈』, 『산책자』,
『현기증.
감정들』 등을 옮김.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아글라야 페터라니 저, 배수아 옮김)
제목
속의 폴렌타는 곡물과 물, 소금만을 끓인 것으로, 여러 곳에서 존재하여 여러 이름을 가진 국제적인 음식입니다. 페터라니 혹은 모니카가
태어난 루마니아에서는 머멀리거(mămăligă)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해요. 사실 처음에는 폴렌타를 죽이라고 번역해도 되지 않았을까, 이국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폴렌타라는 어휘를 그대로 둔 걸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읽어보니 폴렌타와 죽은 먹는 방식도, 사람들에게 가지는
의미도 다른, 서로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은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폴렌타처럼 페터라니의 글도 단순한듯 보이지만 낯섭니다. 익숙한 어휘들로
가득한 것 같지만 그 사용은 이미 알던 것과는 다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덤벼들었다(55쪽)”라든가 “고향 사람들이 외국으로 달아날 수 있게 되면(71쪽)” 같은
문장을 읽으면 잠깐 멈춰서 곱씹어보고 ‘아하’하고 넘어가는 것처럼요. 추측해보건대 페터라니는 신중하게 언어에 접근하고 골몰히
표현을 고르는 작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저자에게 언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페터라니는 망명 이후 수많은 나라를 오가며 국제적인 삶을 살았으나 정작 15살이 될 때까지도
문맹이었습니다. 이후 독일어를 택하여 독학하면서 자신의 언어를 갖게 되었고요. 읽고 쓸 줄 아는 언어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페터라니는 ‘나와 어머니에게 “도와줘!” 외에는 단 한 줄도 대사를 주지 않지만, 주인공인 아버지는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는 아버지의 영화’의 언어를 버리고, 배수아 번역가를 끌어당긴 “시-산문 형태”의 축약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합니다. 과연 아버지의 언어가 곧 자신의 언어가 되었다면,
그 언어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기존의 언어는 기존의
질서를 반영하고, 하고 싶은 말이 기존의 질서와 다르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질서에 맞게
구겨 넣지 말고요. 페터라니 본인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단지 아방가르드에 그 계보가 있길 바랐을 뿐 이민 문학이라는 장르로 국한되길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처음 생각처럼 이 이야기를 번역할 때 살려야 할 것이 ‘이국적임’이라고 단순히 생각한다면 페터라니에게 실례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의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이야기의 피부”인 페터라니의 언어 자체이겠지요. 페터라니처럼 우리도
우리의 언어를 갖게 되기를 응원하면서 배수아 번역가의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 배수아 번역가가 번역할 작가들을 지칭함. 메리 읽고 씀. 🐚 메리 :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번역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한 달에 두 번 번역 덕분에 읽을 수 있는 여성 서사를 소개합니다. 여성 서사가 모두의 것이 되는 날을 바랍니다. ![]() 💥 온탕 서포터즈 발족! 💥 온탕 서포터즈란, 들불의 루틴 프로그램인 ‘온탕 프로젝트’에 참여한 불씨들이 루틴을 지키지 못했을시 적립되는 기부금을 여성 청소년을 위한 도서 지원금으로 활용하는 들불만의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여성 청소년들이 지금 꼭 읽어야하는 또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구매하여 읽을 수 있도록 들불이 돕겠습니다. 첫 기부금의 주인공은 🍋유럽언어자습교실 <유자교실> 1기🍋입니다. 참여자들의 기부금과 들불 몫의 수익을 더한 금액 총 22,000원을 적립했어요. 해당 기부금은 온탕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적립될 예정이며, 활용 방안은 숙고 후 별도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 본 프로젝트의 활용방안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청소년 단체 혹은 각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단체 등이 있다면 메일 주세요!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피드백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답니다. 당근과 채찍 모두 환영 환영 대환영!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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