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의 여정을 당신과 함께합니다 💌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는 책들 중 구구가 특히 좋아하는 네 권의 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따가운 햇빛 아니면 눈 앞이 흐릿해질 정도의 뜨거운 공기, 그것도 아니면 쉴 새 없이 퍼붓는 비 때문일까요. 여름은 왠지 주변을 살피기 쉽지 않은 계절입니다.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과 땀, 젖은 어깨만 신경 쓰게 되는 까칠한 계절이죠.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더위와 장마를 피할 요령 하나 없이, 땀이 눈 앞을 가리는지도 모른 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추천할 책들은 나만 알게 되는 계절에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쓰고 얽힌 글들입니다. 지독한 이 여름, 당신에게도 누군가와 다정하게 얽히고 싶은 마음의 자리가 생기길 바라며, 오늘의 책 보따리 풀어보겠습니다 💌 🌴 『여름의 빌라』, 백수린 책 속 한 장면 : 우리 사이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연약한 것마저 부숴버리려는 듯 집요하게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 무릎을 꿇고 박하와 레몬으로 마사지를 해주던 마사지사의 피부색, 우기에는 배수 시설이 좋지 않아 홍수가 난 것처럼 물에 잠기는 마을, 낡은 팬티조차 없이 작은 보트 위에서 장난을 치던 그을린 피부의 아이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름'하면 당연하게 떠올리게 되는 낭만적인 여행지의 장면들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추억하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올 여름은 여행지의 풍경들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언제든 떠나고 싶을 당신에게 기억 속 여행지를 다르게 추억하는 일은, 또 다른 여행의 경험을 선사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 『아무튼, 여름』, 김신회 책 속 한 장면 : 상큼한 채즙이 입안을 적시고, 혀 위를 구르는 알갱이를 살짝 깨물면 시원하게 톡 터지는, 여름의 존재이유 '초당옥수수'! 사실 저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덥고, 끈적하고, 찝찝하고, 마스크 너머 찡그린 미간만 겨우 보이는 계절이 좋을 리가 없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여름이 조금 기다려지기 시작했어요. 바로 초당옥수수의 존재 때문입니다. 초당옥수수의 강렬한 첫 경험 덕에, 저는 여름의 좋은 것들을 조금 더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가 이 옥수수처럼 놓친 게 또 있진 않을까해서요. 그러다보니 여름이 조금 더 좋아지고, 기다려지더라구요. 여름을 싫어하는 봄/여름/가을파 여러분! 여러분도 <아무튼, 여름>에서 여름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들을 발견해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1년이 한층 더 풍성하고 사랑스러워질 지도 몰라요.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책 속 한 장면 : 햇빛이 일렁이는 무더운 한낮, 무지갯빛 셀로판지를 통해 스며든 무지개 여름이 깊어지는 시간, 우리가 무심하게 스쳐 온 이웃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과 필연적으로 만나고 겹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주 떠올리지 못합니다. 조해진 작가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자신만을 혹은 타인만을 살피는 이들을 대신해 '우리'를 기억해주는 작가입니다. 자본의 논리와 그로 인한 팍팍해진 일상 탓에 타인의 고통에 조금 둔감해진 당신을 위해 마련된 공감의 자리, <여름을 지나가다>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에게 『여름을 지나가다』에서 가장 아끼는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 문장은 이것입니다. "남자는 죽었고, 한 인간의 죽음을 우리는 다리인 양 건너갈 수가 없으므로......"(156쪽) 한 사람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죽음이 끊임없이 환기될 수 있도록 문장들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책 속 한 장면 : 물풀이 느껴지는 물 속, 반짝이는 섬과 바다, 해안의 돌과 풀의 이끼들 <여름의 책>은 할머니와 손녀 소피아의 이야기입니다. 둘은 계절의 풍경들을 관찰하고 그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면서 한 시절을 오순도순 보냅니다. 소피아는 할머니에게 기발하고 심오한(어쩌면 철학적이기까지 한) 질문들을 계속 던지고, 할머니는 침착한 어투로 이에 응답하는데요. 이 둘의 대화를 읽다보면 신선하고 재밌는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무척 그리워지기도 해요. 상대가 가족이나 친구여도, 동물이나 자연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구구 읽고 씀. 『달걀과 닭』 (클라리시 리스펙트로 저, 배수아 옮김)
“이
글은 (독자들이)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작가에 의해) 쓰이고 있다”.
- 『달걀과 닭』의 ‘옮긴이의 말’ 중
어떤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 작가가 의도한 바를 읽어내는 걸 더 선호하시나요, 아니면 감상자인 본인이 느끼는 바에 초점을 맞추시나요? 저는 후자인데요. 이런 성향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위에 붙인 인용글은 클라리시가 자신이 죽기 직전 발표한 마지막 소설 『별의 시간』에서 언급한 내용인데요. 저는 이 메시지가 결국 클라리시의 글은 독자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이것도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 감상자인 저의 개인적인 해석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요. 이렇듯 『달걀과 닭』을 읽는 내내 사실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걷는 사람인 제가 안개 속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그
안개가 실은 전혀 무섭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고 할까요. 오히려 보이지 않아서 더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처럼, 마구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달걀은
삶을 말하는 걸까, 닭은 사람일까, 이 단편집 전체를 달걀과
닭이 관통하는 걸까, 결국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이렇게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큰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사실
녹록지는 않은 글들이었습니다. 분명 짧은 문장에 잘 따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멈춰 서서 내가
읽은 게 맞는지 확인한 게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배수아
번역가는 대체 이걸 어떻게 번역한 거지, 원 저자가 정녕 이렇게 쓴 게 맞단 말이야?’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배수아 번역가조차 처음 클라리시의 글(『G.H.에 따른 수난』)을
접하면서 열 페이지까지 읽을 때에도 기이하기만 해서 ‘중단된 독서목록’에
들어갈 뻔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결국 클라리시의 글에 빠졌고, 「달걀과 닭」으로는 번역 수업까지 진행했다고 합니다. 번역을 매개로
하는 고유한 독서 경험을 통해 유일무이한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트로의 글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그러니
들불레터 독자 여러분들도 어쩌면 처음 마주할지도 모르는 ‘기이함’을
한 켠에 가지고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배수아 번역가의 말처럼 “희게 번득이는 빛의 칼날”을 경험할지도 모르니까요. 클라리시의 글에 대한 엘렌 식수의 말로 여러분을 한 번 더 초대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메리 읽고 씀. “마치
카프카가 여자인 것처럼, 릴케가 우크라이나 출신 브라질 유대인 여인인 것처럼, 만약 랭보가 어머니였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리스펙토르의 글쓰기는
시작된다.” 🐚 메리 :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번역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한 달에 두 번 번역 덕분에 읽을 수 있는 여성 서사를 소개합니다. 여성 서사가 모두의 것이 되는 날을 바랍니다. 1화
: 책 어디서 읽어요?
버스에 타서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시집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손미의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는 민음사의 시집입니다. 얇고 가벼워서 외출 시에 들고 나가기 좋아요. 민음사의 시집들은
판형이 길쭉해서 이동 중에 읽기 좋아요.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전람회의 일부를 소개해드릴게요. 한 문장을 바람과 함께 오래도록 음미해보고 싶다면 저와 함께 읽어보아요. 한번 만나요
매일 멸망하고 있으니까 안 그러기로 했는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요
북반구가 흩날리는 미술관에서
등에 붙은 꿀벌은 비상구로 날려 주고
한번 만나요 버섯 읽고 씀. 👻 버섯 : 종이와 활자를 먹고 살아요. 폭신한 이불과 벽 사이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지금! 그대들의 이불에 있을 수도… ![]() 6월부터 들불레터는 구구, 메리, 버섯 세 명의 동료들이 10일 간격으로 발행할 예정이에요! 앞으론 메일함에서 자주 찾아뵐게요. 고맙습니다 💛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피드백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답니다. 당근과 채찍 모두 환영 환영 대환영!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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