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42화 안녕하세요! 들불 구구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인사를 나누기 전에 들불의 새로운 소식을 먼저 전하려고 해요. 그건 바로.. 들불레터가 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짝짝짝) 😊앞으로 종종 스티비 채널에서 들불레터의 이름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채널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무척 설레는 마음입니다 ;-> 12월의 들불레터는 아직 한 화가 남아있어요. 들불에 대한 궁금증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연말특집호를 마련했으니, 2021년에 발송될 마지막 레터를 기다려주세요! 들불은 요즘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1월에 오픈할 여러 모임들을 준비하느라 무척 분주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요. 여러분의 겨울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모쪼록 따뜻한 곳에서 편안한 자세로 레터를 읽고 계시길 바라며,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해보겠습니다 💌 들불이 만난 이야기 🌼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번역으로 읽는 여성 서사 - 민은영 번역가 편 💟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저, 민은영 옮김 수집가의 책장 🎒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부족의 시대』, 『죽어가는 자의 고독』,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해당 도서의 구매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생각해보면 일상과 환상의 영역은 모호한 것 같기도 합니다. 현실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엔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고단함을 조율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작은 사건으로 인해 나의 삶이 꿈인지 현실인지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이유리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명민하게 포착하여 작품에 그대로 녹여내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들을 환기시킵니다.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다보면 왠지 햇빛을 듬뿍 받아 뜨끈해진 강아지의 부드러운 몸통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포근하고 안락해서 계속 끌어안고 싶은 작품들이에요. 추운 겨울, 이유리 작가가 만들어놓은 포근한 환상 속에서 따뜻한 시간 보내실 수 있길 바라며,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인상적이었던 두 작품을 소개해보겠습니다! 🙌 👓 이유리 작가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클릭! * 이유리 작가 프로필 페이지 * 이유리 미니픽션 「투데이즈무드」 * 이유리 작가가 세 명의 작가와 함께 운영했던 웹진 '던전' 인터뷰 「왜가리 클럽」 양미네 반찬 가게를 운영하던 양양미는 지난달 십일, 폐업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도림천에서 출발하여 신도림역, 안양천에 이르기까지 무작정 걷는 생활을 시작하죠. 양양미는 걷는 동안 망한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처음엔 꽤 복작거렸던 반찬가게의 풍경, 개업 후 반년 정도가 지났을 때 슬금슬금 줄어들던 손님, 냉장 쇼케이스에서 차게 식어가던 반찬들.. 양양미는 자신이 망한 이유를 현실 감각이 전혀 없고 그저 낙관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로 중간의 벤치에 앉아 개천을 바라보던 양양미에게 김하영이 말을 걸어옵니다. '곧 성공할 것 같다'며 왜가리를 바라보는 하영의 시선을 따라 양미는 왜가리가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내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한 왜가리를 보며 양미는 어쩐지 조금 웃게 되는데, 하영은 이런 양미를 보며 '거봐요, 웃으니까 또 웃어지죠?' 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격주 주말마다 왜가리를 보는 모임이 있으니 한 번 나와보라고 제안합니다. 일요일 오후, 양미는 왜가리 클럽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심동미와 강희진을 만나게 되는데요. 양미는 이 세 사람이 자신의 반찬 가게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자신의 망한 가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온 마음을 쏟아도 안 되는 일이 있더라면서 양미를 위로하고, 그럴 때마다 왜가리를 보는 일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은 스스로 배워야만 해낼 수 있다는 것, 몇 번 사냥에 실패한 자리는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것, 성공과 실패를 비슷한 무게로 여기는 것. 왜가리의 사냥 모습을 보며 저마다 느낀 점을 털어놓던 그들은 양미가 만든 반찬을 나누어 먹기로 합니다. 저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요. 둘이 사냥놀이를 할 때면, 사냥에 실패하더라도 크게 좌절하는 법 없이 방법만 바꾸어 또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어딘가 숨어있다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점프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은 계속 도전하죠. 사냥에 성공하고 나면 크게 기뻐하는 내색 없이 사냥감을 몇 번 물어뜯다가 곧장 그 옆에 대자로 드러누워 잠들곤 합니다. 그런 걸 보면 고양이들에게 성공과 실패는 각기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일 만한 중대한 사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성공과 실패는 그저 그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 짓는 하나의 원인일 뿐이죠. 왜가리 클럽의 존재 이유는 어쩌면 제가 고양이들을 보며 느끼는 것과 비슷한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저 왜가리처럼, 잘 노려서 잘 내리꽂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 계속 왜가리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쩐지 저의 2022년 새해 신조는 '왜가리처럼 살기'로 정해야할 것 같네요 😆 「브로콜리 펀치」 표제작 「브로콜리 펀치」는 주인공 '나'에게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해버린 복싱 선수 원준과 함께 살던 앵무새를 떠나보낸 안필순 할머니의 연락이 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태평한 원준을 이끌고 가정의학과에 방문하게 된 나는 대기실의 사람들이 원준의 오른브로콜리를 보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라고 건네는 말들에 의아함을 느낍니다. 한편, 안필순 할머니는 나와 그의 애인 박광석 할아버지와 함께 앵무새 말자의 조촐한 장례식을 치뤄줍니다. 그 곳에서 박광석 할아버지는 원준의 병증이 '마음고생이 많아서' 생긴거라며 원준을 데리고 산에 가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날 밤, 나는 원준에게서 복싱을 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복싱을 잘하기 위해서는 집중을 해야하고, 집중을 위해서는 상대의 힘이 빠져가는 모습이나 피를 흘리는 모습을 떠올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요한데, 원준은 상대 선수를 미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그를 곤죽으로 만들거나 이를 상상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그는 할 줄 아는 것이 복싱 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미운 상대는 조금 더 쉽게 때릴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상대 선수를 미워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사람을 억지로 미워하다보니 어느새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해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네 사람은 함께 산에 오릅니다. 원준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 말이죠.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괴로움이 끝내 신체의 일부를 채소로 바꾸어버린다는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 단편 「브로콜리 펀치」는 괴로움을 해소하지 못한 채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재치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원준의 경우처럼 '괴로움'과 같은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눈에 보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핑계 삼아 우리가 힘든 이유를 가까운 사람에게 보다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채소로 변해버린 우리의 몸을 보며 세상이 우리의 고단함을 조금 더 알아줄지도,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괴로움을 애써 항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받으며 조금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달의 번역가 민 은 영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미국식 결혼』, 『어두운 숲』, 『거지 소녀』, 『곰』, 『프라이데이
블랙』, 『마블러스 웨이즈의 일 년』, 『안데르센 교수의
밤』, 『에논』, 『친구 사이』, 『불륜』, 『존 치버의 편지』, 『어떤
날들』, 『그의 옛 연인』, 『여름의 끝』, 『칠드런 액트』 등이 있음. 음… 저는 사랑의 역사가
이렇게 쓸쓸한 것일 줄은 몰랐어요. 쓸쓸합니다.
작품 마지막 장의 배경이 지는 계절이라서 그런 걸까요? 꼭 이 작품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저는 이맘때쯤 늘 쓸쓸한 기분을 느낍니다.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만, 저도 크리스마스는 더없이 반갑지만, 긴 겨울 크리스마스가
지나간 그 춥고 지리한 계절은 무엇으로 보내야 하는지 걱정하곤 합니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세 달, 네 달의 겨울이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작품 속 서술자 중 한 명인 레오 거스키는 이토록 막연한 겨울을 몇 차례일지 셀 수도 없이 지나고 다 끝난 것만 같은 인생의 끝에서 또 한
번 삶을 찾아내네요. 그를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제 눈에는 삶을 바라보는 유쾌한 태도, 삶을 짊어지면서 느끼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감, 그리고 삶 속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열의가 그 열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오가 자신의 삶에 대해 “쉽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 데서 보이는 것처럼요.
여기까지가
레오를 비롯한 나머지 두 서술자의 개인적 삶에 대한 감상이라면,
민은영 번역가의 옮긴이의 말 덕분에 또 다른 차원의 읽기가 가능함을 알게 되었는데요. 바로 이들 삶에
존재하는 크고도 작은 구멍들이 생겨난 원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 크고도 작은 슬픔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생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 과거의 비인간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떤 해를 입혔는지를 말하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건이 결코 인간과 관계없이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러므로 역사가 과거에 불과하다 한들 잊어서도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다시
개인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쨌든 저는 이 작품을 읽고 연말이면 만성적으로 느끼던 쓸쓸함을 떨쳐낼 방법을 찾은 것도 같습니다. 레오 거스키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방법이라고 말해준 것인데요. “발작적으로 웃다가, 더 나은 길이 뭐가 있을까. 웃으며 울고, 웃으며 노래하고, 웃으며 혼자라는
사실을, 인생이 끝났다는 사실을, 죽음이 문밖에서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는 것보다.” 일단은
저도 그렇게 웃으면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데 집중해보고요.
12월 31일이 지나고도 여전할 겨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직은 조금 숙제
같지만, 그 남은 춥디 추운 시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게 좋을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온기 가득한 연말 그리고 연초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함께 보면 더 좋아요 💖 ![]() ▶시리즈 정보 : 『증여의 수수께끼』를 시작으로 21년 12월에 출간된 『죽음과 오른손』까지 총 20권의 도서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래픽 듀오 '슬기와 민'이 시리즈 디자인을 맡고 있습니다. 별도의 띠지는 없지만, 독특한 형태의 표지가 덧대어져있는데요. '슬기와 민'에 따르면, 474 x 270밀리미터 크기의 종이를 매번 다른 각도로 접어 책마다 고유한 비대칭 덧표지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문학동네 인문총서는 2012년 컬처culture의 모태가 된 라틴어 '쿨투라Cultura'와 문화의 텃밭'에서(Ex)' 캐낸 사유, 문화의 교차로에서 찾아낸 '미지의(X)' 담론의 엑스가 결합한 '엑스쿨투라'라는 이름으로 총 9권이 출간된 바 있습니다. ![]() 👓 『부족의 시대』 미셸 마페졸리 지음, 박정호·신지은 옮김 '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추장 지도자가 있는 원시적인 친족 공동체가 떠오르는데요. 저자 미셸 마페졸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 '부족'이라는 용어를 그동안의 이해와 달리 개인보다는 조금 더 공동체에 가까운 단위로 사용합니다. 미셸 마페졸리에 의하면, 부족은 집합적 감정에 의해 구성된, '공감'을 기반으로 한 감정공동체입니다. 이러한 부족의 시대에서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모임('부족')이 활성화되며, 집단적인 분노와 슬픔, 열광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들어가기. 현대의 부족들은 바로 이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들은 도달해야 할 목적도, 실현해야 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기획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함께 있다는 즐거움 '속에 들어가기', 순간의 강렬함 '속에 들어가기', 있는 그대로 세상의 쾌락 '속에 들어가기'를 선호한다." (p.16) ![]() 👓 『죽어가는 자의 고독』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김수정 옮김 이 책은 '죽음'이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라는 자명한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과거에는 현재에 비해 도처에 죽음이 퍼져 있었고,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명화 과정에서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않도록 멀리했고, 이로 인해 죽음이 사회로부터 '배제'될 수 밖에 없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여러 성찰을 거치며 저자는 죽어가는 자에게 정서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 죽음의 과정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종종 노쇠는 그 병약함으로 인해 삶과 다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서서히 쇠락해간다는 사실이 그 사람들을 삶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 특히 선진 사회에서 빈번하게 죽음의 때 이른 격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p.8) ![]()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지음, 노서경 옮김 이 책에서는 파농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흑인이 '검둥이'로 지칭되는 모든 문장이 흑인이라는 존재를 여러 존재로 분열시키며, 흑인 또한 백인이라는 타자의 눈길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흑인은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며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며, 이는 흑인을 검은 피부색, 흑인의 신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날 갈피를 못 잡고, 가차없이 나를 가두는 타자, 백인과 떨어질 수가 없던 나는 나를 대상으로 만들면서 내 존재로부터 멀리, 참으로 멀리 떨어졌다. 그것이 내게 살갗 벗겨내기, 근원 잘라내기, 내 온몸의 검은 피를 쏟아내는 출혈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p.110)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답니다!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카카오 뷰 @들불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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