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41화 안녕하세요! 들불 구구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잘 지내셨나요? 💌 저는 요즘 매일 조금씩 다른 기분으로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어떤 날은 한 해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아 절망하며 울적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다가올 새해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절대 이루지 못할 계획들을 세우며 들떠있기도 하면서 말이죠 😵 여러분의 연말은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지도 무척 궁금하네요! 12월에는 오늘 발송해드리는 41화를 포함, 총 세 편의 들불레터를 발송할 예정이에요. 42화는 기존의 포맷대로 발송될 예정이고, 43화는 2021 특별호로 꾸려질 예정인데요. 특별호에서는 들불레터를 운영하고 있는 저의 짧은 자문자답 인터뷰와 함께 들불의 2021년 연말정산과 다가올 2022의 계획을 짧게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모두 따뜻하고 안전한 연말 되시길 바라며, 저는 42, 43화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들불의 PICK! (11/25 ~ 12/15 여성작가의 신간 소개)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임솔아 💫 『밤이여 오라』, 이성아 🚶 『산책소설』, 오은경 💬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리베카 솔닛 저, 노지양 옮김 👑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린다 노클린 저, 이주은 옮김 번역으로 읽는 여성 서사 - 민은영 편 🌲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저, 민은영 옮김 들불 조각모음 - <썬-데이시네마> 영화 《디바》편 참여자 피베리님의 글 / 잼인님의 글 수집가의 책장은 한 회 쉬어갑니다! 💥 11월 25일 ~ 12월 15일 여성작가의 신간을 소개합니다. 💥 ![]() 누구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하나쯤 갖고 있을 겁니다. 제 경우에는 문장을 '아니'로 시작하는 버릇이 있죠. 누군가가 자주 하는 말을 듣다보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저는 세상에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 그걸 통째로 부정하고 회피하기 위해 '아니'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아요. 또, 제 친구 중 한 명은 회사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때 '일단'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하는데요. 무슨 말이든 '일단'을 붙여 상황을 정리하듯 이야기하면, 그 순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임솔아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입버릇처럼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상대방이 걱정할까봐, 아니면 상대방이 내 얘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다고 판단될 때, 그럼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애써 삼켜야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거죠. 저도 그들처럼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분명 그 친구와 어떤 한 시기에는 누구보다 가까웠고 그렇기에 지금 나의 힘든 일들을 털어놓고 싶지만, 이제 우린 서로가 무얼 하고 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으니까, 친구와의 간격이 벌어져가면서 내게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는 데에 힘이 부쳐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게 되는거죠. 이렇듯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느라 침묵을 택하고 '괜찮음'을 연기하는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라고 믿는 이 어긋난 세상에서 무척 별난 존재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란과 문경은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이 말을 반복해왔다. 아무것도 아냐. 어떨 때는 미세한 한숨을 섞어 이 말을 했고, 때로는 단호하게 잘라 말하기도 했다. 반복할수록 서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되어갔다." p.204 ![]()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시나요? 저는 책 소개나 멋진 표지보다 목차를 먼저 보는 편인데요. 눈길을 사로잡는 챕터가 하나라도 있는 책은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편이죠. 이성아 작가의 『밤이여 오라』도 이렇게 목차만 보고 덜컥 구매한 책 중 하나입니다. 목차에는 도시와 국가의 이름들이 적혀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 몬테네그로. 나열된 이름들을 따라가다보면 아름다운 관광지를 적어두었다기엔 조금 스산한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조금 더 생각하다보니 이 장소들이 모두 발칸반도에 위치한 지역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지역은 전쟁으로 언론에서 종종 언급되던 곳이잖아요. 스산한 마음의 정체를 알 것 같아 얼른 책 표지를 다시 보니, 그제야 조그맣게 적힌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국적인 장소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행이 아니라 국가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며, 작가는 이를 발칸반도의 내전과 제주4·3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현대에 와서 국가폭력은 확실히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국가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소설에 누군가는 거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국가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는 문화적 폭력이 주를 이룬다는 김동춘 교수의 말처럼, 국가폭력에 대해 이해하고 저항하는 일은 과거의 비극만이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일일 것입니다. 🐚 "국가폭력이라니, 나는 그 말도 받아들일 수 없다. 때릴 수도, 침을 뱉을 수도, 그가 가진 꿈과 사랑을 짓밟고 망가뜨릴 수도 없는 국가가 가해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의 원한은 어디를 향해야 한단 말이냐.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의 설계란 말이냐.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극단의 고독이 나를 집어삼켰다." p.200 👓 함께 읽어보면 좋은 자료 [김진호의 세계읽기]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 - 라트코 믈라디치는 과연 '발칸의 도살자'였나 [김진호의 세계읽기]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2 - 포퓰리즘의 원형, 보스니아 전쟁 ![]() 산책의 묘미는 아무래도 익숙한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발견하거나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산책에서 마주한 장면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순간들이 언제나 예기치 못한 때에 우연히 찾아오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지나고나면 다시 같은 풍경을 마주하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산책 소설』을 쓰신 오은경님은 무언가를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장면장면을 놓치지 않고 글로 남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산책 소설』에는 작가가 응시하는 찰나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루는 추어탕 가게 앞 강아지들의 모습을, 다른 하루는 화병이 놓인 책상 위를 바라보다 쌓여 있는 양말로 돌린 시선을 담았습니다. 저는 생각에 잠겨있느라 자주 주변의 풍경을 놓치는 사람이었는데요. 『산책 소설』을 읽곤 주변을 조금 더 돌아봐야지 다짐하게 됐어요. 내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그 자리가 곧 세상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퍼즐조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 낯설음은 장소가 아니라 대상에서 비롯된 건지도 몰랐다 진흙 같은(눈 더미가 폐기름에 덮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양말들, 더미에 다다를 수 없어 다가갔는데 다가간다는 사실을 알릴 방법이 부재했다 과연 이동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유도 목적도 불분명하다면 ― 오래전 그 집이 기억에 선명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맡았던 장판 냄새, 형용할 수 없다 ― 나는 나를 제어하고 싶었으나 이런 마음은 숨기는 편이 좋았다 - 「멀고도 가까운」 중 p.57 ![]() 4.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리베카 솔닛 저, 노지양 옮김 맨스플레인을 비판한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국내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리베카 솔닛의 신간입니다.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2017년 이후의 다양한 현안들을 포착하여 날카롭게 지적한 작업물이에요. 리베카 솔닛은 어둡고 그늘진 자리에 의도적으로 핀 조명을 비춰 모두가 그 자리를 주목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가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힘을 소외된 이름과 목소리들에게 실어주는 훌륭한 작가인 것 같아요. 이번에 그는 어떤 목소리를 집중하여 들었을까요? 리베카 솔닛의 주파수를 따라가며 우리도 세상의 외연을 조금 더 확장해보면 좋겠습니다. ![]() 5.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린다 노클린 저, 이주은 옮김 린다 노클린이 1971년 발표한 논문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이 발표 50년을 맞아 완역본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입니다. 이 논문은 지금은 절판된 도서 『페미니즘 미술사』에 실리기도 했는데요. (이 책을 가지고 들불에서도 워크샵을 진행한 적이 있답니다!) 미술계에서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미술계의 편견과 무지를 깨려는 의미있던 시도였던 이 논문은, 앞으로 미술계가 달라져야 할 지점들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게 합니다. "미술가 개인의 발전부터 미술품 자체의 본질이나 질적 차원까지 모두, 미술품을 제작하는 전반적인 상황은 사회적 상황에서 일어난다. 사회적 상황은 모호하거나 피상적인 사회적 힘이 아니라 구체적이면서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회제도에 의해 중재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p.45 이 달의 번역가 민 은 영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미국식 결혼』, 『어두운 숲』, 『거지 소녀』, 『곰』, 『프라이데이
블랙』, 『마블러스 웨이즈의 일 년』, 『안데르센 교수의
밤』, 『에논』, 『친구 사이』, 『불륜』, 『존 치버의 편지』, 『어떤
날들』, 『그의 옛 연인』, 『여름의 끝』, 『칠드런 액트』 등이 있음. 어느새 가을이 지나가고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노란빛 은행나무 잎이 무성했던 가을, 잘 보내셨나요? 이번
레터에서 소개할 작품은 오테사 모시페그가 쓰고 민은영이 옮긴 『내 휴식과 이완의 해』입니다. 샛노란
표지가 벌써 지나가 버린 가을을 연상케 할 텐데요. 일단 제목부터 굉장히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휴식과 이완의 해라니…. 저는 홀린 듯이 이 시기를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남은 한 달 마무리를 잘하고 다음 한 해는 말 그대로 나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면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나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볼 수 있을지 떠올려보면서요.
이 책의 주인공인 한 여자는 그 방법으로 수면을 택합니다. 무려
1년 동안 잠을 자기로 계획하고 이를 위해 약의 도움을 받기로 하지요.
그래서 최소한의 생명 유지 활동과 약을 구하기 위한 외출을 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 전부를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장을 향하는 내내 독자는 이 계획을 실천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읽는 동안 이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주인공의
의식 속 세계에서 벌어지는 건지 그 두 세계가 혼재된 건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단지 1년 동안 동면에 들어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주인공의 서술일 뿐인데도요. 특별할
것 없이 잔잔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다소 격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몰입하여 읽다
보면 어느새 이 여자의 계획과 실천은 끝이 나 있었습니다.
민은영 번역가가 「옮긴이의 말」에서 말하는 것처럼 주인공이 한 시도의 성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지독한 현실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따라해보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따라할 만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다만 한 가지 배워볼 점은
자신이 휴식과 이완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알아보고, 그를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했다는
점이겠습니다. 이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스스로를 아끼고 돌보라’는 말을 한번 더 해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작품 말미에 주인공이 말합니다. “노란색이 겁쟁이 색깔이라고? 아니다.” 노란색의 계절을 잘 지나온 우리도 결코 겁쟁이가 아니겠지요. 다가오는 한 해에는 지금보다 많은 그리고 좋은 휴식과 이완이 가득하도록 용감한 마음으로 함께 준비해봅시다. 파이팅! 💖 함께 보면 더 좋아요 💖 같은 작가가 쓰고 같은 작가가 번역한 다른 책도 함께 소개합니다. ![]() 들불에서 진행 중인 <썬-데이시네마>의 두번째 프로그램에서는 조슬예 감독의 <디바>를 보고 친구에게 시기, 질투를 느낀 경험이나 친했지만 멀어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조각 모음에서는 썬데이시네마에서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탄생한 두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두 분의 글을 읽고, 가까웠지만 모종의 이유로 멀어져버린 시절인연들을 떠올리며 그 때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던건지, 또 지금의 나는 그 때의 관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관계는 어떻게 꾸려나가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 들불 조각모음은 들불 참여자인 불씨들의 이야기를 모아 발행하는 코너입니다. ![]() 여전히 마음에 걸린 순간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고민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며 괴로워하는 시간을 보낸다. 다만, 그 시간이 조금 더 짧아졌고 어떤 방법으로든 내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결국은 말하고야 마는 것 같다. 지금껏 이어온 인연이라면 내가 꺼낸 말로 인해 관계가 당장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말로 다 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다. (이것도 알 수 없는 거지만) 건강하게 유지하거나 안전하게 마무리하는 방법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 주길.. ![]() 영화 <디바>는 오래전부터 꼬여버린 친구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지만,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특히 입시, 취업, 결혼 등 중대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상황이 너무나 달라질 때마다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 중심이 단단히 서 있지 않을 때일수록 친구의 상황에 열등감을 느끼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며 점차 망하는 관계로 후퇴하기 쉽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동안의 망한 친구 관계를 떠올리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답니다!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카카오 뷰 @들불 수신거부 Unsubscribe |
독서 공동체 들불이 발행하는 뉴스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