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구입니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차게 내린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키거나 차가운 고양이들의 발바닥을 만지며 더위를 잊고자 노력 중이에요. 더위로부터 완전히 달아날 순 없겠지만 소소한 행동들로 더위를 잠깐 까먹을 순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의 소소한 행동처럼, 들불레터도 여러분에게 더위를 잠깐 잊고 머리를 차게 깨우는 시원한 경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의 들불레터, 부채질하듯 경쾌하게 시작해보겠습니다!
덧. 레터 하단에 <불편한 시선> 도서 증정 이벤트'를 마련하였으니, 책 받아가세요! 💗
👏 들불의 PICK
- 『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 임은주, 국화, 미숙, 이지숙, 정아, 최송아
👓 번역으로 읽는 여성서사 : 권상희 편
- 『인간에 대하여』,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키워드로 만나는 여성작가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도서 증정 이벤트!)
- 『불편한 시선』, 이윤희
- 『불편한 시선』 증정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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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은귀는 책 『딸기 따러 가자』에서 토니 모리슨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우리는 죽는다. 그것이 삶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한다. 그것이 아마 우리 생애의 척도가 될 것이다.")과 시인 김혜순의 말("시를 '한다'")을 인용하며, 언어를 '쓰고 읽고 말한다'가 아닌 '한다'고 표현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어 저자는 언어가 있어 우리는 유한을 무한으로, 단독자라는 고립된 주체를 복수의 주체로 확장할 수 있으며, '언어를 한다'는 것은 쓰고 읽고 말하는 것을 포괄하는 동시에 가장 핵심적으로 행위의 능동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죠.1)
이렇듯 언어를 하는(do) 일은 한 개인이 살아가는 섬과 섬을 잇는 능동적, 주체적인 행위인데요. 여기 '전 생애적 차별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하고 세상에 연대의 손길을 먼저 내밀기 위한 시도로써' 언어를 '하기' 시작한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의 저자 임은주, 국화, 미숙, 차지숙, 이지숙, 정아, 최송아입니다. 이 책은 《실로암사람들》2)의 부설기관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강의실에서 시작한 장애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글쓰기 결과물입니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두고 SNS에서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인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 사안에 제 의견을 보태기보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더 찾아 읽고, 비장애인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을 찾아 읽는 것이 좋을지 헤매는 중인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에게 이 책 『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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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잔치가 열릴 때마다 우리집 바로 뒷집에 있는 친척집에 가 있어야 했습니다. 올케나 언니들이 잔치음식을 가져다주면 목울음 감추며 그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때 앞마당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는 지금도 들려오곤 합니다. 내 인생 중 가장 슬픈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 내 장애가 다리가 아니라 머리로 왔다면 이런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면 지금보단 더 마음이 편했을까? (...)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느끼고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늘 상상했습니다. 그랬다면 속이라도 시원했을 것 같은데. 잔치가 끝나면 나는 다시 방에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은 체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 p.146-147
"나는 이제 인생을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은 내 스스로 밀어야 열리는 문 같은 것이다. 나는 두드리고 밀 것이다." - p.133
"자립 후 내 통장을 내가 관리하게 되니 그리 뿌듯하고 좋을 수 없다. 행복하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겼다. 온전한 내 것들만 있는 내 공간이다. 나는 더 많은 유소유 인생을 꿈꾼다." - p.221
👀 함께 살펴보면 좋은 자료
-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기록집 <장애여성/배우/몸/쓰기>
장애여성 배우로서 연극을 준비하며 몸을 쓰기 위해 애쓴 경험을 담은 기록집입니다.
"춤추는허리는 몇 년간 장애와 몸, 나이듦, 통증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겪으며 생기는 고민들을 활동 안에서 이야기했다. 장애여성 신체훈련은 '배우로서 어떻게 몸을 쓰고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몸을 움직이고 살아가는 내 습관과 불편함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비장애중심이 아닌 각자의 장애, 움직임, 속도를 반영한 방법들을 찾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 장애여성 신체훈련은 정상성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딱딱해진 나의 몸을 풀어주고, 내 장애와 내가 관계 맺는 과정, 내 몸이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의 권력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 <장애여성/배우/몸/쓰기> 중
-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앞장서 노력하고 있는 박경석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 서명하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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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번역가
권 상 희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언어학, 독문학, 역사학을 전공, 석·박사학위를 받음. 2018년 TOLEDO 교류기금, 2017년 보슈재단과 베를린 문학 콜로키움의 번역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번역 활동의 지원을 받은 바 있으며, 역서로는 『타인의 삶』(2011), 『과거의 죄: 국가의 죄와 과거 청산에 관한 8개의 이야기』(2015), 『박테리아: 위대한 생명의 조력자』(2016), 『기린은 왜 목이 길까?』(2017), 『후성유전학: 경험과 습관이 바꾸는 유전자의 미래』(2017), 『머나먼 섬들의 지도: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 등이 있음.
『인간에 대하여』 (율리 체 저, 권상희 옮김)
이번 레터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제목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어 선정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화는 주로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나요? 저는 최근 들어, 아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화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사롭게는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원인인 적도 있고, 좀 더 사회적으로는 최근 인하대에서 발생한 강간살인 사건의 가해자 같은 범죄자들에게 품게 되는 분노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 같은 것들이 일기도 해요. 그래서 대체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조금 절박하기도 한 마음으로요. 그래서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쩌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는 점은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을 하나하나 그려보고 생각해보느라 현실의 제 옆에 존재하는 문제가 되는 인물들은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읽는 동안 ‘그렇지… 인간은 이렇게나 다양하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지.’ 싶더라고요. 물론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인간 이해를 단념하지 못하고 현실의 누군가 때문에 수많은 감정을 느끼겠지만요.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어려웠던 건 개인적인 현실보다 훨씬 복잡한 두 가지 생각, 사실은 두 가지 문제의식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는 도라의 상황 해결 방법, 그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일종의 인간 과잉으로부터 지친 도라는 자신이 겪는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골 마을 브라켄에서 살기로 합니다. 소제목 ‘페인트칠’이나 ‘파티’ 등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도라는 그 속에서 도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마을 사람들과 편안하고 전원적인 아름다운 일상을 경험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다시금 느끼고요. 디지털 시대 이전의 인간관계의 회복이 해결책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사실 베를린에서 도라는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조치와 기후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시민 사회에 요구되는 의무가 지나치게 강요되는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 것으로 보이거든요. 이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물론 너무나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 의무들을 외면하고 저버리는 게 궁극적인 해결 방식으로 권할 만한 것인지… 아니라면 개인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 동력으로 다시 의무를 다하고자 할 수 있으므로 괜찮은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결국 인간 한 명 한 명이 세상으로 통하는 창”일 텐데 어떤 창을 열고 어떤 창을 닫을지 우리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또 줄곧 고민했지만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를 이 작품과 함께 다시금 맞닥뜨렸는데요. 개인의 가치관을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에는 로베르트부터 고테까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치관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무척 많습니다. 인종차별, (이 작품에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성차별과 같이 ‘틀림’에 가까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물음표만 동동 떠 있었습니다. 이 역시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사가 말한 “인간의 본질, 공포와 고뇌, 편견과 약점, 그리고 위기 때 드러나는 강점을 통찰”하는 과정의 일부겠지요?
참 어렵습니다. 답을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들이 더 늘어난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상념들이 인간에 대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 동료 인간들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메리 읽고 씀.
🐚 메리 :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번역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한 달에 한 번 번역 덕분에 읽을 수 있는 여성 서사를 소개합니다. 여성 서사가 모두의 것이 되는 날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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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소개한 책들이 역사에서 배제된 여성들을 재평가하고 당시의 사회 규범을 분석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분석도 평가도 잠시 떠나 그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어찌보면 저자가 아닌, 책을 읽는 여러분의 손에 재해석의 실마리가 있다고 할 수도 있죠.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는 최초의 한국 서양화가라 불리는 나혜석이 1927년에 조선 여성 최초로 세계일주를 하며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나혜석이 해외 여행을 하는 와중에 조선 여성들의 자유와 해방에 대해 글을 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나혜석을 소개해온 수많은 상투적인 표현이 아닌, 본인이 직접 쓴 글으로 그의 여성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의 해석을 거치지 않은, 근현대 여성 작가의 모습을 보고 그와 일대일으로 마주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함께 읽는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의 문장
나혜석 : (참정권 운동) 회원의 표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S : 있지요. ‘여성에게 투표를 이라고 쓴 배지를 모자에 달고, 띠를 두르지요. 이것이 그때 두른 것입니다.
부인은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다 낡은 남빛 띠를 보여주었다.
나혜석 : 이것 나 주십시오.
S : 무엇하시게요?
나혜석 : 내가 조선 여권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p.169-170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윤선 읽고 씀.
🔍 윤선 :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나고, '우리'와 맞닿는 지점을 찾아 들불레터에 소개합니다. 미술계에서 주로 활동하며 책을 만들고 미술에 대한 글을 씁니다. 아트북 <[ o o o ]>을 제작하고, 《교-차-점 交叉點》을 공동 기획했습니다. (https://brunch.co.kr/@yunsu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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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아날로그(글담)출판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한 원고입니다. 레터 하단에 도서 증정 이벤트가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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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이윤희
우리의 시선으로 그림 바라보기
오늘은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여러분과 그림 몇 점 살펴볼까 해요. 다음 네 점의 그림을 보고 여러분은 무엇을 발견하였고,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혹시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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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오르게 그로츠, <그것이 끝난 다음,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1917
2. 장레옹 제롬, <노예시장>, 1866
3.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5
4.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터키탕>, 1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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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그림은 "여성을 살해한 후 카드놀이에 열중한 세 남성"(표시한 지점을 보면 여성의 잘린 몸통과 다리가 가구나 소품처럼 배치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매 의사가 있는 남성에 의해 머리가 젖혀져 치아 검사를 당하고 있는 여성 노예", "고대 로마의 건국 초기에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가 매우 부족하여 이웃한 사비니에 쳐들어가 그곳의 여인을 집단으로 납치한 이야기", "서로의 몸을 만지는 여성을 전면에 배치해 현실의 남성 관객을 대리하는 존재로 부각시킨 모습" 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특히 나체로 선 여성이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노예시장>이라는 그림을 볼 때 엄청난 불쾌감을 느꼈어요. 아마도 여성이 나체로 서 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으로서 이후 저 여성에게 벌어질 일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렇듯 우리에게 불편함을 불러온 이 그림들은 당대 미술계 안팎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남성 화가들의 작품입니다. 그 중 몇몇은 현재까지도 '위대한 화가', '현대 예술의 선구자' 칭호를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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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선뜻 떠오르지 않을까?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누드라면 왜 미술관에는 여성의 누드 작품만이 이렇게 많을까? 신화와 종교 이야기, 역사 속에서 남성을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여성들이 어느 시대에 한꺼번에 소환되어 나온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 명백히 소아성애를 담은 작품들을 우리가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남성 노인은 기품 있게 그려지는 반면, 늙은 여성의 모습이 추악하고 사악하게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불편한 시선』, p.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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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시선의 권력을 해체하다
『불편한 시선』은 붓으로 그려진 여성혐오의 궤적을 정확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책입니다. 여성이 무언가를(혹은 누군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은 남성들에게 몹시 불편한 일로 여겨져왔습니다. 수많은 감각 중에서 '시각’이 특히 특권화되어온 감각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권력을 점유한 남성이 시선의 객체가 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죠. 이러한 특권의식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예술 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위 작품 속 나체로 등장하는 여성, 납치되는 여성, 살해당한 여성의 모습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미술이 당대 사회상이 반영된 여성의 모습을 담아내는 방식은 미술을 남성의 전유물로 만들기 위한 문화적 방편으로 작용했습니다. 미술은 남성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미술계 내 남성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특권 강화의 수단이었고, 작가들은 이러한 남성관객들과 동료 화가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욱 폭력적인 여성 혐오의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작가들은 남성 관객들이 여성의 신체를 자유롭게 관음할 수 있도록 나체 상태로 누워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여성(알렉상드르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1863), 법정에 나체로 선 채 굴곡진 몸을 강조하기 위한 불편한 자세로 선 여성(장레옹 제롬, <법정에 선 프리네>, 1861) 등을 그림으로써 작품을 '바라보는' 일을 남성권력의 폭력성을 매개하는 일로 둔갑시켜 버립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그림은 벌거벗었거나 추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살해 당한 여성만을 오로지 관음의 객체로써 존재하게 만드는 권력의 도구가 됩니다.
새로운 시각 : 여성의 눈으로 끈질기고 집요하게 바라보다
『불편한 시선』은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예술적 기법을 이해하고 감상하기보다 작품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철저히 해부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들여다봅니다. 작가는 여성혐오 문화를 담고 있는 많은 작품들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분석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불편한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독자 역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데요. 관객으로서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나의 교양과 지식이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하던 기존의 자아성찰적 관념을 벗어던지고, 작품을 보다 더 정확하고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얻은 용기를 발판 삼아 관객은 과거의 작품들을 다시금 세밀하게 관찰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시각 이미지들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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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폭력, 그러니까 여성 납치와 성폭행 그리고 성적 살해 등의 주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려져 왔던 미술의 역사를 보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신화나 역사의 이야기라는 배후 맥락이 강렬한 폭력성과 에로티시즘을 용인하는 방패가 되었고, 맥락이 사라진 현대에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남성 작가의 자기 폭로적 고백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되었다. 이미 걸작으로 칭송되고 있는 이러한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은 여성만 가지는 편협한 견해의 소치일까? (...) 여성에 대한 폭력이 예술의 한 주제로 '승화'된 것을 용인하는 것은 누구의 시각인가?"
- 『불편한 시선』, p.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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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작가의 책 『불편한 시선』은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의 총 10개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챕터는 위 키워드와 관련된 남성 화가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해당 시기를 지배했던 차별적 인식이 녹아든 작품을 해체하고 분석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던 여성 화가의 작품과 그의 일화를 소개하며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그들만의 리그'를 돌파하고자 했던 여성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마무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여성 화가'라는 직업적, 존재론적 지위를 지키고자 했던 여성화가들의 힘에 고양감을 느끼며 임파워링이 되는 기분이었는데요. 그 중 제 마음 속에 선명하게 남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짧게 소개하며 마무리해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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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 여성은 지지 않는다
- 바지 입는 여자 : 로자 보뇌르(Rosa Bonheur, 1822~1899) (p.51~57)
보뇌르는 <마시장>과 같이 동물의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렸던 화가입니다. 당시 보뇌르의 작품은 야생의 강렬한 기운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 있어 그 명성이 자자했죠. 하지만 성공한 여성화가인 보뇌르조차 여성에게 어김없이 따라붙던 외모에 대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요. 치마 대신 바지를 즐겨 입던 보뇌르에게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마다, 보뇌르는 '자신의 바지 차림은 단지 작업복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해명해야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보뇌르는 바지를 입는 일이 자신의 미술 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 이렇게 회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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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원에 있는 로자 보뇌르의 사진, 1880~1890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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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는 나의 위대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나는 바닥에 끌리는 치맛자락 때문에 전통적으로 삼가되어 오던 일들을 과감히 해냈고, 그로 인해 인습을 깨뜨렸다는 것에 곧잘 자축했다." - p.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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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벽과 전통을 깨뜨린 여자 :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 (p.296~304)
발라동은 르누아르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으로, 모델 일을 전업으로 하면서 어깨 너머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발라동은 자신의 첫 <자화상>을 남기게 되는데, 이 자화상은 그간 르누아르의 그림에 묘사되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발라동이 둥글고 순진한 소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됐다면, <자화상>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날카롭고 예민한, 한편으로는 다부져보이는 인상으로 묘사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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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동은 이후의 <자화상>에서도 역시 자신의 구석구석을 미화시키지 않은 모습으로 담아냅니다. '자신의 모습을 미화하는 법 없이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여성화가에게는 큰 저항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 여성은 아름다운 몸과 얼굴로 남성관객들을 만족시키거나 악의적으로 묘사된 추한 얼굴로 그려져 웃음거리가 되어야만 했거든요. 그렇기에 여성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대적 저항이 되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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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불편한 시선』에는 여러 여성화가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어요. 여성들이 그리는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을 함께 느끼고 임파워링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또, 미술관에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불편함을 느꼈지만 내가 잘 몰라서 그렇게 느낀 건 아닐지,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채 편협한 시각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는 일이 잦았던 분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여러분의 불편함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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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싸한 기린의 세계> 북클럽
들불레터 56화에서 소개해드렸던 <알싸한 기린의 세계>를 함께 읽고, '페미니스트의 기쁨과 슬픔'에 관해 글로 써보는 시간을 마련하였어요. 페미니스트로 사는 일의 즐거움과 슬픔, 괴로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사회의 시선 때문에 또는 페미니스트 동료를 찾지 못해서 삼켜야만했던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프로그램 일시 : 8/10(수) 오후 8시 30분
▪️ 진행 : 김지효(민음사 <한편> 7호 '중독' <인생샷을 찾는 사람들> 지은이)
▪️ 방식 : 온라인 진행(패들렛, 줌)
▪️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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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시선> 북클럽
오늘 소개한 <불편한 시선>도 함께 읽는 자리를 마련해보았어요. 미술 작품을 보며 느껴왔던 불편함의 정체를 파악하고, 어려운 시대를 돌파하며 살아온 여성 화가들의 그림을 살펴보며 임파워링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프로그램 일시 : 8/14(일) 오후 8시 30분
▪️ 진행 : 최희정(여성시각예술인네트워크 《루이즈더우먼》 멤버, 여자 얘기만 듣고 보고 싶은 팟캐스트 《여기듣보》 멤버)
▪️ 방식 : 온라인 진행(패들렛, 줌) ▪️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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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레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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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레터 지난화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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