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구입니다. 가끔 어떤 책은 '아 나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제게는 오늘 소개할 <코펜하겐 삼부작>이 바로 그런 책이었어요. 인간이란 결핍이라는 토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삶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존재란 걸 이해하고, 타인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던 저자의 책은, 나와 타인에게서 완벽한 모습만을 추구하던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는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는 건 제게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읽는 행위가 저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 믿고 있어요. 여러분은 책을 펼칠 때 무슨 마음이 드시나요? 여러분도 읽는 행위가 우리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언젠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날이 오겠죠?(어쩌면 곧...) 얼른 그 날이 오길 바라며, 여러분에 대한 궁금증을 잠시 접어둔 채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해보겠습니다.
👏 들불의 PICK
- 코펜하겐 삼부작 『어린 시절』, 『청춘』, 『의존』,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번역으로 읽는 여성서사 : 정아영 편
-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바버라 J.킹 지음, 정아영 옮김
🏷️ 키워드로 만나는 여성작가
- 『먼 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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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매체 인터뷰는 처음이라 무척 긴장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신 김소원 에디터님께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들불의 이야기가 궁금해하신 분들은 위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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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어둠이 짙게 내려앉을 무렵이면 침대 맡에 엉성하게 기댄 채 무언가 쓰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무언가'는 사람들이 '일기' 또는 '회고'라 부르는 것들보다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단편적인 기록들입니다. 이 기록들은 언제나 오늘은... 으로 시작됩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을 쓰고 나면 한참 동안 종이를 노려보게 됩니다. '오늘'은 그 무엇도 관통하지 못한 채 빠르게 날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소명인 양 멀어져가는 총알 같습니다. 저는 오늘의 일을 자세하게 떠올리길 일찍부터 단념하고, 스케쥴러와 사진첩을 바쁘게 오가며 무언가 적습니다. 겨우 쫓아간 기억들은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파편적이지만 하루를 잊는 일만큼 두려운 일은 없기에 일단 무엇이든 적어둡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제가 일기를 쓰는 방식과 비슷할 테지요. 하지만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이 주욱 잡아 늘리고 싶을만큼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기억을 헤집는 수고로움 없이도, 너무 많이 떠올려서 마치 방금 전의 일처럼 선명하게 느낄 정도로요. 오늘은 제가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 일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섬세하게 과거의 기억을 묘사해 낸 토베 디틀레우센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토베 디틀레우센은 꽤 많은 작품을 남긴 덴마크의 인기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작품으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의 이름을 보고 무민Moomin 작가 토베 얀손부터 떠올렸는데요. Tove는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파생된 스칸디나비아 이름이라고 하니, 스칸디나비아반도에 포함되는 사람들에게는 토베Tove가 익숙한 이름이겠구나 짐작하게 됩니다. (참고로 토베 얀손은 핀란드의 예술가이자 작가입니다)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작가의 유년기부터 서른 즈음까지를 회고한 작품으로 어린 시절, 청춘, 의존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회고록에 '코펜하겐 삼부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책을 쓴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이 나고 자란 곳이 코펜하겐이기 때문입니다. 토베 디틀레우센은 20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작가로,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시를 쓰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이에 선생님도 고등 교육을 권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최소한의 교육 말고는 받을 수 없었죠. 이 시기는 여자들이 견진성사를 받고난 후, 고등교육을 받는 대신 하숙집의 가정부나 사무원으로 일하다 서둘러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디틀레우센은 시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결혼을 하는 것보다 시인이 되는 일을 더 간절히 고대합니다. 그가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독립을 해야했고, 독립이 가능할 그 날까지 어머니가 소개해준 일자리에서 꾸역꾸역 매일을 버티기로 합니다. 어린 시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창턱을 생각하며, 언젠가 자신에게도 오로지 시에만 몰두할 수 있는 그 날 그 밤의 창턱 같은 시간이 오리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디틀레우센은 자라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납니다. 그는 이 인물들을 손수건에 정교한 수를 놓듯 공들여 설명하는데요.이 작업의 목적은 그들이 저자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규명하기보다 그들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하는 데에 있습니다. 디틀레우센은 본인처럼 모든 사람에게 결핍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찍부터 인간이라는 존재의 토대를 결핍으로 상정했던 저자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과오들 역시 이러한 결핍으로부터 출발했음을 이해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시선은 그들을 원망하며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행을 겪어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결핍이라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아슬아슬 버티며 살아가고 있음을이해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저자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냉정함보다는 따뜻함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저자의 관찰자적 태도는 가족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는데요. 특히 저자가 애착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가장 결핍을 느껴야했던 대상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머리 염색을 하고 1주일에 한 번씩 한증막에 가는데, 이런 노력들은 나를 일종의 연민으로 가득 채운다. 그 노력들은 어머니의 내면에 있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공포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p.102, 2부 청춘
""네 젊은 남자 친구는 어떻게 됐니?" 한때 학교 선생님의 장모가 되는 꿈을 꾸었던 어머니가 묻는다. "다른 사람이랑 사귀어요." 내가 대답한다. 그러자 성격상 모든 일에 아주 구체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붙여야만 하는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너 외모에 신경 좀 더 써야겠다.(...)" 어머니는 내게 상처를 주려고 이런 말들을 하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철저히 무지할 뿐이다." - p.70, 2부 청춘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시리즈를 출간한 을유문화사의 홍보 게시글 덕분이었습니다. 게시글에서 을유문화사는 이 책을 '암실문고' 시리즈의 첫 책으로 소개하는데요. 암실문고라는 시리즈명도 흥미롭지만 이 시리즈의 목표는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가능한 많은 종류의 어둠을 수집하기, 그러므로 가능한 서로 다른 부류의 작품들을 고르기, 한두 가지의 스타일에 경도되지 않기'라는 목표가 바로 그것입니다.
<코펜하겐 삼부작> 중 먼저 출간된 『어린 시절』과 『청춘』에 대한 미국 여성주의 문학계의 평가에 따르면 이 작품들이 ''불의를 깨닫고 정의를 추구(해야)하는 여성'이라는 정치적 프레임마저 벗어던지고 오류와 불안에 기꺼이 노출된 여성-인간을 출현시켰다"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현재까지도 여성들이 정의와 윤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그렇기에 꺼내놓지 못하는 깊은 어둠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여성 작가의 진실한 어둠을 담아낸 이번 작품이 암실문고 시리즈의 첫 책으로 꼽히기에 손색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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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번역가
정 아 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국제협력단(KOICA)에서 활동함. 한겨레 어린이·청소년 책 번역가 그룹에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성인과 청소년, 어린이 등 모든 계층을 위한 다양한 도서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음. 번역한 책으로는 『초생산성』 『만화 스토리 창작의 모든 것』 『세상이 확 달라지는 정치 이야기』 『오줌 X파일』 『세상의 모든 국기』 『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 등이 있음.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바버라 J. 킹 지음, 정아영 옮김)
최근 들어 심심찮게 동물 학대 소식이 들려옵니다.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를 유기했다, 길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했다는 이야기는 매일 들어도 분노가 가시질 않고요. 얼마전 복순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라서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합니다. 동물을 함부로, 그리고 못되게 대하는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어차피 짐승인데’ 괜찮은 걸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심정에서 비롯된 추측일 뿐, 동물 학대가 아주 악질의 행동이라는 걸 뒷받침할 근거는 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바버라 J. 킹이 쓰고 정아영이 번역한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를 발견하고 정말 기뻤습니다. 동물이 어떻게 슬퍼하는지를 살펴본다는 건 곧 동물이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을 전제하니까요. 그리고 책장을 펼쳤을 때 상상치도 못한 동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보통 우리가 반려하는 강아지, 고양이뿐만 아니라 코끼리, 염소, 말, 새 등 평소에 감정과 관련하여 생각해보지 못한 동물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한 종에 속하는 모든 개체가 동일한 방식으로 슬픔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저자도 그러한 현상들을 감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기 위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모든 코끼리가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해서, 슬픔을 느끼는 한 마리 코끼리의 존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인간 역시 슬픔을 느끼는 정도,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 등이 모두 다 다른데 아무도 인간이 슬픔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리고 만약 동물은 기본적으로 슬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일부 개체만 돌연변이처럼 슬픔을 느끼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라 한들, 그게 동물을 학대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학대당한 그 동물이 슬픔을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으니까요.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도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그 전에 당장 지금부터 인간은 동물이 감정을 느끼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혹은 같은 지구상에 고유한 양식을 발달시켜가며 존재하는 개체로서, 그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슬픔과 사랑을 경험할 줄 아는 존재이니까, 동물 학대, 이제는 정말 근절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메리 읽고 씀.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이 책에서 많이 인용되는 제인 구달의 작품을 함께 보기로 추천합니다.
번외로, 신시아 모스도 함께 인용되는 동물 연구자인데, 국내에는 번역된 도서가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 메리 :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번역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한 달에 한 번 번역 덕분에 읽을 수 있는 여성 서사를 소개합니다. 여성 서사가 모두의 것이 되는 날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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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던 책을 잠시 덮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봅니다. 저는 지금도 더 오래 이야기 하고 싶어, 빨리 도착하는 길 말고 '먼길로 돌아' 걷고 싶은 친구가 몇몇 있습니다. 만약 30년 후에도 이런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은 긴가민가해요. 확신이 들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았던 '중년의 우정'이 주로 여성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0-40대 여성의 삶은 '결혼'과 '육아'로 바빠 우정이 끼어들 틈 없는 시절으로 묘사되어왔고, 그 이후의 삶은 자식의 독립으로인해 허망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죠. 이 책에 나오는 캐럴라인 냅과 게일 콜드웰의 이야기는 위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중년이 된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건 여전히 '글쓰기'였고, 서로에 대한 우정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이었습니다. 여전히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자신의 삶을 살았거든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가로막힐 때면, 여기 게일 콜드웰의 나이듦에 대한 풍요로운 증언을 권합니다.
🤓 함께 읽는 『먼 길로 돌아갈까』의 문장
“집까지 먼길로 돌아갈까?” 차에 오를 때면 캐럴라인이 말하곤 했다. 그럼 우리는 서둘러 헤어지지 않으려고 서머빌이나 메드퍼드의 혼잡한 길로 접어들었다. 긴 드라이브 끝에 클레먼타인이 뒷자리에서 가볍게 코를 골 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차에서 내려야 할 사람 집 앞에 앉아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각자 집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전화기를 붙잡았다." - 『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p.40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윤선 읽고 씀.
🔍 윤선 :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나고, '우리'와 맞닿는 지점을 찾아 들불레터에 소개합니다. 미술계에서 주로 활동하며 책을 만들고 미술에 대한 글을 씁니다. 아트북 <[ o o o ]>을 제작하고, 《교-차-점 交叉點》을 공동 기획했습니다. (https://brunch.co.kr/@yunsu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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