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구입니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지만, 그 안의 크고 작은 기쁨, 따스함이 우리의 존재를 계속해서 살아가게끔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나의 일상 속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부지런히 관찰하고 알아차리며 살아야겠다고도 다짐하고 있어요. 오늘 들불레터에서 소개할 작품은 저의 다짐과 비슷한 결을 가진 한국 소설입니다. 잔잔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하루도 좀 더 따뜻해지길 바라며,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하겠습니다.
덧. 레터 하단에 '<지구를 구할 여자들> 도서 증정 이벤트'를 마련하였으니, 책 받아가세요! 💗
👏 들불의 PICK
🏷️ 키워드로 만나는 여성작가
-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도서 증정 이벤트!)
- 『지구를 구할 여자들』,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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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양이들의 아파트> GV 사회를 맡게 되어 군산에 다녀왔습니다. 함께 내려간 친구와 저는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친구의 친구가 추천해 준 카페에 갈 요량으로 호텔을 나섰습니다. 버스정류장 앞 풍경은 조금 쓸쓸했는데, 텅 빈 건물이 민둥산처럼 자리하고 있는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우리 밖에 없던 정류장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어요. 정류장의 낡은 의자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말 없이 쳐다보았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처럼 신기루 같은 얼굴들이었습니다. 깊게 패인 주름도, 한껏 말아올린 파마머리도 이방인인 제겐 흐릿하게 기억될 뿐일거라고,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눈에 익은 광경이므로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잊혀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중 할머니 한 분께서 혼잣말인듯 아닌듯 살기가 어렵다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가만 듣고 있을까 대꾸를 해드릴까 망설이다, 돌아오는 말이 없으면 적적해하실 것 같아 가벼운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그래요, 그렇죠, 에구 같은 추임새 사이사이로 할머니의 한숨이 흘러 들었고, 저는 무엇이 우리를 한숨 짓게 만드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덩달아 한숨을 내쉬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정류장 맞은 편 건물이 한 때는 잘 나가는 곳이었다며 웨딩홀로 쓰였던 곳이었다고 하셨고 노인 복지와 관련된 돈이 줄어 살기가 힘들어졌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라도 하소연하고 싶을 그 마음이 이해되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다보니 어느새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께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바삭 마른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습니다. 할머니는 떠나는 우리의 등 뒤로 ”즐겁게 살아 즐겁게”라고 하셨어요. 할머니의 말소리는 빈 플랫폼에 들어서는 열차처럼 묵직한 소리를 내며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타인의 목소리, 눈빛, 손짓 같은 것들이 저를 그 자리에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존재해왔으면서도 타인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있게’ 된 것처럼 새삼 저라는 존재를 실감하곤 하죠. 이렇듯 내 존재를 타인을 통해 감각하는 비밀스런 사건은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버스정류장에서 할머니가 말을 걸어올 때, 누군가 길을 물어올 때, 밥을 먹다가 누군가 문득 냅킨 드릴까요 말을 건네올 때가 그렇습니다.
이주란 작가의 책 『수면 아래』의 화자 '해인' 역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는 인물입니다. 해인과 우경은 어린 시절부터 오래 알아온 사이로 결혼에 이르지만, 아이를 잃는 사고를 겪은 후 상실감에 이혼을 택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아이의 상실에 대해 해인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해인은 가까이에서 온기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과 매일매일을 살아갈 뿐이죠. 하지만 문득 해인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에서, 해인이 오랜만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장면에서, 그리움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해인의 맘 속 깊은 곳에서 찰랑거리는 슬픔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해인은 상실이 머무는 자리를 소소한 일상으로 채우면서, 다시금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감각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유진과 해인의 대화 장면이었어요. 해인의 엄마가 딸이 걱정되는 마음에 그의 집에 들렀을 때, 해인의 집 바닥에 떨어진 깨를 발견하여 안도했다는 이야기를 유진이 해인에게 전하는 장면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어머니는 그 깨가 눈에 들어온 순간에 겨우 안도감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해인씨가 그래도 깨를 뿌린 음식을 한 번은 먹었구나. 깨라는 건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 뿌리려면 안 뿌릴 수 있는데, 깨를 뿌릴 마음이 남아 있구나. 그도 아니라면 해인씨가 뿌렸든 남이 뿌렸든 어쨌든 깨를 뿌린 음식을 먹긴 했구나. 잠시나마 안도했다는 것."
요즘은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유행인 것 같습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면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죠. 이러한 콘텐츠들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자극적인 작품들만 보다보면 가끔은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마음 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주란 작가의 책을 읽어보세요. 사건과 감정을 직접 드러내보이지 않고도 무언가를 전달하는, 마법 같은 일상의 힘을 경험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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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즐기면 좋은 책
-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 이유운
'시산문집'이라는 장르로 소개되는 이 책은 '시'로 이야기를 열고, 일상적 언어의 '산문'으로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는 책입니다. 이유운 작가의 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음을 모두가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서술하며, 우리의 마음 속 사랑의 형태에 대해 질문을 던지도록 만듭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글은 할머니와의 사랑을 이야기 한 「사랑의 뼈」 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사랑"인 할머니의 사랑은 살아온 흔적이 뼈마디 구석구석 스며 들어있는, '몸'을 매개로 전달되는 '등'과 '뼈'의 사랑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할머니 집에 앉아 그의 주름진 손을 주물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몸과 몸이 만나 만드는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었거든요. 저는 오랫동안 그 손에서 사랑을 느꼈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이유운 작가의 글을 읽고 비로소 언어로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영원한 삶과 부활하는 육체를 약속하는 신이 아니라 나의 살갗을 만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읽는 능력을 배웠다. 그 손들의 감촉을 신앙으로 삼았다. 모든 것을 오래 기억하고 만지며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겠다는 말을 나의 기도문으로 세웠다. (...) 나의 탄생과 함께 그들은 나에게 늙은 여자가 되었다. 늙은 여자가 되어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나의 가장 오래된 사랑."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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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이아 에켈뢰브가 스웨덴 출판사에서 진행한 ‘정치소설 공모전’에 응모하고 수상을 하면서 알려진 일기소설입니다. 작가는 대우가 좋지 않았던 청소 노동을 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고 공부하며 일기를 썼는데요. 당시의 전쟁이나 빈곤과 같은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녹아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삶에 대한 사명감까지도 느낄 수 있어 풍부한 감상을 줍니다. 이 책과 관련해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글로 여겨지는 ‘일기’라는 형식으로 ‘정치소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점인데요. 자신의 삶을 높은 해상도로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수행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기록이 어디에 닿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우리도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만나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 마이아 에켈뢰브처럼 계속 말하고 계속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겨주는 글입니다.
윤선 읽고 씀.
🤓 함께 읽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의 문장
아무도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기에 나는 말을 쏟아낸다.
내 방 벽 앞에서. 벽은 얄궂게도 미소를 짓지 않는다.
벽은 아무런 다정한 조언도 해주지 않는다.
벽은 무덤처럼 말이 없다.
하지만 벽은 있다.
- p.106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윤선 :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나고, '우리'와 맞닿는 지점을 찾아 들불레터에 소개합니다. 미술계에서 주로 활동하며 책을 만들고 미술에 대한 글을 씁니다. 아트북 <[ o o o ]>을 제작하고, 《교-차-점 交叉點》을 공동 기획했습니다. (https://brunch.co.kr/@yunsu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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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출판사 부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한 원고입니다. 레터 하단에 도서 증정 이벤트가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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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적어 제출하라며 종이를 나눠주셨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선생님과 부모님께 잘 보이기 위해 그럴듯한 꿈을 적어낼 궁리만 하는 어린이였는데, 짝꿍 남자아이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꿈을 '발명가'라고 적고 있더라고요. 그 때 짝꿍이던 남자아이는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와 엉뚱한 실험을 즐기는 천방지축 어린이였어요. 잘 어울리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명가가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무척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발명가'를 머릿 속으로 떠올려봤어요. 두꺼운 안경을 끼고 특이한 복장을 한, '남자' 발명가를 말이죠.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발명가 역시, 여자가 해낼 수 있으리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만 생각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이제 제출해야한다고 말씀하실 때가 되어서야 급히 '현모양처'라고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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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업특허청의 특허통계정보(PATSTAT) 분석, 2018》, BBC에서 재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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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상을 발명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제가 '여성 발명가'를 쉽게 떠올릴 수 없었던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여성 발명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IPO에 따르면 여성 발명가의 비율은 1998년 6.8%였다고 하니(위 자료 참고), 인터넷도 거의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해봤을 때 초등학생이던 제가 여성 발명가의 존재를 모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성 발명가는 어째서 이렇게 적은 걸까요?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를 경험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정말로 '남성' 뿐이었던 걸까요? 이 질문의 해답은 카트리네 마르살의 책 『지구를 구할 여자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고래 지방은 빛을 밝히는 주요 원료였기 때문에, 많은 고래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고래에게 오랜 시간 매달려 있어야하는 고래잡이의 특성상, 이 일은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대신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죠. 그래서 자산가들은 고래잡이에 투자하기를 망설였습니다. 이 때 탄생한 것이 바로 '벤처 캐피털'입니다.
벤처 캐피털은 "벤처 투자가들이 소액의 돈을 모아 펀드를 만들고, 이 펀드를 이용해 배를 사서 선장을 고용"(p.152)한 뒤, 선장이 돌아오면 그 수익을 투자자들과 나누어 갖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고래잡이였던 벤처 투자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지금 '실리콘밸리'라고 알려진 곳에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래를 잡는 일은 미국의 테크 업계로 전환되었습니다. 테크 업계 역시 고래잡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큰 곳이니까요.
고래잡이와 벤처 캐피털의 역사가 여성 발명가의 수가 적어진 데에 무슨 영향을 주었냐고요?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보행 보조기에 바퀴를 달고,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했던 여성 발명가 '아이나 비팔크Aina Wifalk'의 이야기를 말이죠.
비팔크는 당시 '가을의 유령'이라고 불리던 소아마비에 걸려 몸이 마비되었고, 이후 15년간 목발을 사용하여 보행해야했습니다. 그는 41세가 되던 1960년대 말, 디자이너 군나르 에크만에게 연락해 바퀴가 달린 보행 보조기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것을 세계 최초의 보행 보조기라고 장담할 순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비팔크가 만든 보행기가 가장 유행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전 세계 보행 보조기 시장의 가치는 약 22억 달러입니다. 이 가치를 생각한다면, 비팔크도 돈 방석에 오른 뒤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는 사업가로 불려야 마땅했겠지만 그는 오늘날의 약 750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과 특정 제조사의 판매량에 대한 2퍼센트의 로열티에 자기 아이디어를 팔았습니다. 왜일까요?
문제는 "우리 금융 체제가 조직적으로 여성의 아이디어를 배제하기"(p.145) 때문입니다. 『지구를 구할 여자들』의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영국에서 벤처 캐피털 자금의 1퍼센트 미만이 오직 여성들끼리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흘러든다"(p.156)고 말합니다. 남성에게 치우친 벤처 캐피털 분배에는 단순히 여성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데 대한 문제 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 적용되는 게임의 규칙을 정할 힘을 (투자를 받은) 회사들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벤처 캐피털 투자의 대부분을 남성들이 가져간 결과, 과거 실물경제에서부터 현재 실리콘밸리가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 시장까지 모두 남성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렇듯 여성은 비팔크의 경우처럼,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투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설령 '동물 생태계를 파괴하는 고래잡이'가 아니라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보행기'의 발명이라고 해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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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차'라고 불렸던 전기차 휘발유차에 비해 사용이 편리하여 상류층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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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은 어떻게 인류의 혁신을 가로막는가
『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책으로 여성과 경제학,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던 카트리네 마르살의 신작으로,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수많은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혁신을 방해했는지 낱낱이 파헤친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위에서 소개했던 비팔크의 사례처럼 여성이 기술 혁신의 장에서 배제 당한 역사를 밝히는 것은 물론, '캐리어'(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 '전기차'의 사례처럼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착화된 젠더 관념으로 인해 기술 발전에 저해가 됐던 사례를 살펴봅니다. 또, 책에는 디지털 혁명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중요한 질문을 앗아갔는지 알아보고, 팬데믹 이후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착취적 산업 논리를 비판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기술 혁신의 최고 아웃풋으로 여겨지는 '스마트폰'과 그 안에 담긴 '앱' 역시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신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모두가 간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앱을 통해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 받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앱을 통해 실시간 통제를 받고 있으며 전산화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업무를 해내야합니다. 인간들이 마치 로봇처럼 자기 일을 해내길 바라는 양, 디지털 스케줄의 지시에 맞춰 움직여야하죠. 저자는 이렇듯 "인간을 기계처럼 부리는 것을 혁신"이라고 부르는 산업에 비판을 가합니다.
여성들이 긱 이코노미* 덕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나, 그들은 아프더라도, 신체적으로 안전감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디지털 지시에 따라 일을 해야합니다. "앱을 만들었다고 해서 노인을 돌보는 여성을 로봇 취급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이 시대의 산업 모델은 여성을 끊임없이 착취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발견된 문제들, 이를테면 '돌봄의 영역'에 대한 고민들은 아직까지도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차별적 젠더 관점으로 설계된 기술 혁신은 또 있습니다. 바로 AI 기술입니다. AI는 개발 단계에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신체적 지능'을 간과합니다. 예를 들자면, '청소'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청소를 하는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며 가장 적은 급여를 받고, 차별받는 피부색을 가진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듯 낮은 지위를 가진 청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기 십상이죠. 하지만 청소는 사실 무척 복잡한 작업으로, 단순하게 '빨래'라는 명령어를 입력한다고해서 한 큐에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를 '여성'과 결부시킴으로써 하찮은 일로 취급합니다.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로봇 공학의 세계에서 신체적 지능은 사고 능력에 비해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신체적 지능은 '자연'과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고, 자연적인 것은 곧 여성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그 결과, AI는 체스에서 이길 순 있지만 청소는 할 수 없는, 인간의 '몸'과 엄청난 단차를 가진 존재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 긱 이코노미 :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의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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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구하러 온 발명의 어머니
저자는 기술의 역사에서 '젠더'가 다양한 방식으로 혁신을 방해해왔으며, 이제 '기후 위기'라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 우리 사회가 새로운 기술 혁명을 해내려면 반드시 성차별적 관념을 타파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연을 계속 '여성적'인 것으로, '여성적'인 것을 기술이라는 남성적 힘에 종속되어야"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을 끊임없이 훼손하게 만들며, 이것은 곧 자기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경제적인 혁신을 위해 "발명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남성적인 힘(폭력, 희생, 파괴)을 강조해왔지만, 새로운 혁신을 위해서는 이제 "발명의 어머니"를, '짓밟고 장악하고 착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 돕는' 존재를 우리의 세상 중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계신 것 같나요? 환경, 기술처럼 얼핏 보기에 우리 생활 속 성차별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사실 거대한 남성적 기반 위에 구축된 것임을 알게 되면 우리는 세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간 지워져왔던 여성들이 우리의 서사로 복귀할 때, 세상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혁명'은 본래의 모습을 돌려놓은 순간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혁명'에 동참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카트리네 마르살의 책 『지구를 구할 여자들』을 읽어 보세요!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들을 되찾고, 진정한 혁신과 창의성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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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사에 여성이 가진 도구를 포함하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만약 인류 최초의 도구가 사냥 도구가 아닌 뒤지개였다면, 인류의 발명이 언제나 짓밟고 장악하고 착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성을 잃는다. 우리가 여성을, 여성으로 상징하고자 한 것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경제,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서사 전체가 달라진다. 우리가 밟고 선 땅이 움직이고,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다.
여기 발명의 어머니가 있다.
발명의 어머니는 이제 집에 돌아올 시간이라고 말한다."
- p.339, 『지구를 구할 여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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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구할 여자들> 함께 읽어요!
<지구를 구할 여자들> 북클럽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지구를 구할 여자들> 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부터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활동까지 다양한 구성의 북클럽을 지금, 들불에서 만나보세요!
- 일시 : 10/23(일) 오후 8시(120분 진행)
- 장소 : 온라인(줌)
- 진행방식 : 길잡이의 짧은 강의 및 참여자 감상 공유
- 진행 : 구구(들불 운영자)
- 참가비 : 15,000원
(정가 18,000원의 도서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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