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이루어졌던 한·일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 양국의 관계 회복을 꾀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날 이루어진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에 대해 직접적인 사과나 유감을 표하지 않는 한편,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일방적 퍼주기 외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은 ‘미래지향적’ 논의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고 이야기했으며,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며 국민을 설득하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기시다 총리의 이러한 태도와 과거사의 제대로 된 청산 없이 미래만을 지향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과거를 잊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들불레터는 2회에 걸쳐 '역사'를 주제로 여러 도서들을 소개하며,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제대로 된 과거사 규명과 해결을 위한 관심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또, 여성작가가 쓴 여러 분야(문학, 미술)의 책과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소개하며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는 우리가 그간 알아 온 이야기와 어떠한 방식으로 다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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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만화가 김금숙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그래픽노블입니다. 2020년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하비상 최고의 국제도서 부문 수상작으로 뽑히기도 한 이 작품은, 2017년 출간 이후 특히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과거 여성이 억압 받았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미학적 감각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죠.
《풀》의 주인공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이옥선 할머니*입니다. 1934년 학교를 가고 싶었던 옥선이 공부를 시켜준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수양딸로 부산 우동집에 보내진 후 다시 울산 술집으로 팔려간 과정, 1942년 심부름을 가던 길에 군인인지 순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연길 동비행장에 위치한 위안소로 끌려간 일, 일본의 항복으로 위안소를 탈출해 길을 헤매다 새 가족을 꾸리고 정착한 이야기까지. 현재의 할머니의 모습과 과거 옥선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그간 알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여성차별적인 시대적 풍습과 계급적인 문제의식을 함께 담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서술한 ‘여성 인권’ 만화입니다.
이 작품은 흑과 백 두 가지 색만으로 표현되었는데, 이 두 색깔의 대비가 주는 효과가 상당합니다. 먹으로 그려진 흑과 백의 장면들은 할머니의 슬픔과 분노, 고단함을 담고 있는 상처나 주름의 묘사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물론, 옥선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윤리적인 방식으로 재현해내는 데에도 주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그간 ‘위안부’ 문제를 미디어가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꾸준히 있어왔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대비되는 두 컬러의 활용만으로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을 고통을 삭제하지 않으면서 윤리적인 재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다룰 뿐 아니라 ‘빈곤’, ‘여성차별’, ‘계급’의 측면에서 함께 조명한다는 점입니다. 《풀》은 식민지 시기 ‘위안부’로 징모되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징모업자에 의한 취업사기나 인신매매’, ‘수양녀(수양딸)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수양딸 제도’는 조선의 하층계급이 수양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13~20세의 딸을 수양딸로 넘기면서 그들이 어린 여성들을 착취하는 것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계급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야하는 제도로, 그간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하고 재현하는 방식에서 누락되거나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은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과정 속에서 여성이 차별적인 문화 속에서 착취 당하며 삶을 지속해야했던 지점들을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반인륜적인 사건 정도로 이해되었던 '수양딸 제도'를 빈곤과 계급의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합니다.
* 범죄성·폭력적 성격을 은폐하는 단어의 본래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위안부’처럼 따옴표를 씁니다.
* 이옥선 할머니는 1993년 정부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신 후 수요시위 참가 등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셨던 분으로, 2022년 12월 26일 밤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1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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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문예출판사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한 원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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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한승혜, 박정훈, 김용언, 심진경, 이라영, 조이한, 정희진, 장은수 지음
고등학생 때, 저는 학교 도서관에 살다시피하며 정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취향이랄 게 없이 제목이나 표지가 눈에 띄면 무작정 읽는 독자였습니다. 그렇게 한참 책을 읽느라 잊고 있던 시험 걱정에 초조해질 때면 청소년 필독서나 추천 고전도서를 모아 둔 서가에 가서 한 번쯤 들어 본 제목의 책들을 들춰보곤 했죠. 이것도 다 공부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당시 그 서가에는 《위대한 개츠비》, 《롤리타》, 《달과 6펜스》 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여럿 꽂혀 있었습니다. 또, 〈날개〉, 〈운수 좋은 날〉, 〈무진기행〉 같은 한국 문학들도 다수 있었죠. 저는 이 책들을 오랜 시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했고, 그 중 몇 권을 인생책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누구나 읽어야하는 고전’, ‘이 시대의 걸작’으로 꼽힌 작품들을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 들이고 흡수했습니다. 문학을 이해하는 데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보다 세계적인 권위가 세운 기준에 나를 맞췄죠.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경험 역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단순하고 납작하게 읽기보다 좀 더 풍성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성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느라 놓친 여성 인물들의 사정을 생각해보았다면, 풍경처럼 스쳐간 여성들의 감정을 헤아려봤다면, 남성 화자가 누리는 자유를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도, 함께 누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었더라면, 남성중심적인 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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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저뿐만 아니라 여러 여성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걸작들을 비판적으로 다시 읽고, ‘걸작’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을 자격과 기준에 질문을 던지며 고전의 의미를 재정의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다시 읽는 작품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 《위대한 개츠비》, 《그리스인 조르바》, 〈날개〉와 같이 누구나 접해봤을 ‘위대한 책’들로, 의심의 여지 없이 오랜 세월 추앙 받았던 이야기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며 읽는다면 어느 정도 흥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의 서문을 쓴 예술사회학자 이라영 역시 이러한 측면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이 묻고 싶은 건 이 작품들이 여러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독해됐을 때, 여전히 ‘고전’, ‘걸작’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소수자의 시선에서 고전을 다시 읽고 비평하는 작업이 작품을 납작한 틀에 가두고, 그 가치를 삭제해버리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페미니즘 비평은 젠더 관점에서의 분석이 지엽적, 표피적이며 이 때문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로는 “고전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제시되곤 했고요.
물론, 작품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읽는 일은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관점에서 작품을 재해석하지 않고 특정 시대의 유물로 고정시키는 독서야말로 고전의 가치를 훼손하는 단선적인 읽기의 방식은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대의 관점에서 여러 정체성을 가진 독자들이 고전을 다시 읽는 시도는 작품을 보다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오랜 세월 특정 계급과 성별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문학을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시도인 동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그간 조명되지 못했던 훌륭한 작품을 발굴하고 복원하며 문학사의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터주는 작업입니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변화는 환영할 일입니다. 권력의 주체인 남성 화자에 이입하지 못해 이방인 신세로 이야기 주변을 겉돌며 불편함과 모욕감을 느끼는 일보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이후 출현할 다양한 화자와 이야기를 기대하는 일이 훨씬 즐거우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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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걸작’으로 불려온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다시 읽는 과정을 통해 문학사 바깥에 분리된 독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여성 인물들이 느꼈을 분노와 억울함에 공감하고 우리가 느낀 모욕감을 정의하며 그들의 곁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만들고 싶으시다면 지금 바로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읽어보세요! 필진들이 ‘고전 다시 읽기’를 통해 제시하는 문제의식과 비평의 언어가 문학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거예요.
“예술적 남성 동맹이 추구해온 자유, 아름다움의 개념과 방향성을 의심하지 않으면 전위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자유를 갈구하지만 여성을 착취하는 현실은 외면한다. 권력을 분석하지 않고 자유를 말하는 것, 타자를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예술적 사기다. 자유와 아름다움이 타자를 모욕하며 형성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구속이며 추함이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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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권보드래 외 12인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젊은 독자들이 새롭게 장착한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토대로 한국문학사를 다시 읽는 작업을 시도한 책입니다. 기획과 글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문학을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비평하는 작업이 품는 메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더 이상 주류 문학사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규정한 ‘문학(성)’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것. 한국문학(사)에서 유일하게 문학적 시민권이 부여된 이성애자 남성, 그의 관점에 동일시해야만 ‘문학’이라는 세계에 겨우 접속할 수 있었던 그 지긋지긋한 “해석 노동”(김미정)을 이제는 과감히 멈추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좋은 문학’이고 ‘문학적인 것’인지, 어떤 작품이 한국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데 필요한 자원인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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