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 이어 이번 들불레터에서도 '여성이 쓴 역사'를 키워드로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와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그 안에서 여성 개인이 겪어야했던 수모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 과정에서 '재일동포'의 호칭에 대해 알아보고 '조선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짧게 알아봅니다.
이어 외부 필진인 윤선 님의 글을 통해 캐롤 던컨의 책, 《미술관이라는 환상》이 소개하는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의 모습을 살피고, 남성 권력 중심의 미술사에 대해 이해해봅니다.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인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분량이 다소 긴 편이에요. 바쁜 일상에 치여 긴 글을 소화할 시간이 없는 구독자 분들께서는 레터 하단의 링크(오딕)를 통해 오디오로 들어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오늘 소개한 책 중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라는 제목은 '위안부' 피해 사실과 국제법 위반은 인정됐지만 청구는 기각된 고등법원 판결이 있은 뒤 보고집회에서 송신도 할머니가 부른 노래의 가사의 일부입니다. ("나는야 에헤- 진 재판 괜찮아 좋아 그렇지만/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으니/여기 모인 분들 잘 들어요 두 번 다시 전쟁은 하지 말아주세요/도시코(송 씨의 일본 이름)는 지금도, 100년 살아도, 내일 죽어도 할 때는 한다/돈이 없어도, 입을 것이 없어도, 장식품이 없어도 해내겠어/이 정치가 거지들/아, 힘내고, 아, 힘내고, 힘내")
재판은 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녹슬지 않는다'는 각오가 담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여러분도 들불레터를 읽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녹슬지 않는 힘을 얻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더불어 구독자 여러분께서 남겨주시는 피드백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확한 언어로 구체적인 큐레이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들불레터도 힘차게 시작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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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비 책타래와 들불의 만남!
총 두 편의 책타래에서 저는 《야만의 꿈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작품 세 권을 소개했어요. 《야만의 꿈들》을 읽으셨거나 읽을 예정인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큐레이션입니다 💓 다음 책타래에서는 《오웰의 장미》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소개할 예정이니, 놓치고 싶지 않으시다면 미리 책타래를 구독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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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타 후미코 지음, 안해룡·김해경 옮김
197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최초로 증언한 배봉기 씨와 만난 가와타 후미코는 식민지 조선의 빈곤이 성노예제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깨닫고, 일본군의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후 가와타 후미코는 ‘위안부’ 할머니, 재일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필생의 작업으로 삼기로 결심합니다.
“삼베를 짜는 작업은 실을 뽑는 일부터 시작하나요?” “아니야. 씨를 뿌리는 일부터야.” 가족의 옷을 만드는 작업이 씨를 뿌리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노인들의 인생담에 귀를 기울이는 즐거움을 배웠다. 남자가 아닌 ‘할머니’다. 왜 ‘할머니’인가? 할머니들은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던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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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는 정착할 곳 없이 낮은 임금 조건에서 어린 나이부터 노동을 시작했던 재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쟁 전부터 ‘여성 노동자의 선구자’였던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할머니들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고 착취했던 당시의 상황을 ‘공장법’과 ‘취학 정책’의 분석을 통해 면밀히 살핍니다.
또, 전쟁 시기 공습이 잦았던 오사카에서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특수 폭탄으로 인해 화상을 입어 구더기가 들끓는 몸으로 생존해야했던 기억을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며 전쟁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차별과 폭력, 억압과 착취의 구조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곪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죠.
우리는 직접적인 전쟁을 치르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현재의 상황을 ‘평화로운 상태’로 쉽게 단정 짓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특정 시기에만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닙니다. 전쟁은 (종전 이후에도) 생존자들의 기억과 아픔을 통해 전 세대가 계속해서 겪는 과정이며, 모두가 손을 잡고 빠져나와야 하는 어두운 통로입니다. 그렇기에 국가는 ‘진정한 평화’라는 목표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전쟁 이후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정부는 어떤가요? 정부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시기야말로 바로 이 질문이 필요한 때입니다.
“뉴스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말이 아파요. 과거 일본이 조선인을 괴롭힌 적 있잖아요?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죽은 조선인이 아주 많지요? 납치 문제도 핵 문제도 있지만 서로 양보하고 대화하면서 평화조약을 맺으면 아시아도 일본도 미국도 평화스러워지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좋으련만.” (p.275)
👓 재일동포의 국적
재일동포의 국적은 '한국' 국적과 '조선' 국적으로 나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의 국적은 모두 '일본'이었으나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게 '조선' 국적이 부여되었습니다. 이 때, '조선' 국적이라 함은, '조선 출신자' 라는 뜻으로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적임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한국' 국적이 생겨나게 되면서 '한국' 국적은 '대한민국'의 국적이라는 뜻을, '조선' 국적은 이전의 뜻과 동일하게 '조선반도 출신자' 라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조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정부이므로, 국적을 나타내는 뜻이라기보다 하나의 기호로서 이해됩니다. 그렇기에 '조선'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는 법적으로 무국적자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재일조선인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쓴 정진성 교수는 이 호칭에 대해 "일제시기에 '조선'으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과 그 후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역사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호칭으로 분석합니다.
또, '재일', '재일코리안', '재일동포'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서경식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에 살고 있는'이라는 상태를 기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애매함이 우리 민족과 일본 사이에 역사적이며 또한 현재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의 답답함을 덮어 버리기 때문인지 이 말도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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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최초 증언자 배봉기 할머니의 모습
ⓒ 개인소장자 김현옥, 서울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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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배봉기(1914~1991)
1914년 출생의 배봉기 할머니는 29살이 되던 해,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가 있다. 누워만 있으면 입으로 바나나가 떨어지는 곳에 간다"는 '위안부' 모집 업자의 꾐에 속아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의 일본군 위안소에 가게 됩니다. 소위 '빨간 기와집'이라 불린 그 곳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배 할머니는 일본 패전 이후에도 미군 수용소에서 미군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하며 갖은 고초를 겪게 됩니다. 이후 할머니는 그간의 일들로 심신이 허약해져 두통, 신경통, 신경쇠약, 대인기피증 등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배 할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터에서의 '일'이 창피해서 전후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이국땅에 남게 되었는데요. 이후 오키나와가 일본 땅으로 복귀되면서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게 된 할머니는 강제추방이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했습니다. 이 때, 할머니는 지인에게 자신이 '위안부'로서 겪었던 일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조선인 '위안부'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배봉기 할머니의 증언은 한국 '위안부' 운동의 출발점인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보다 16년 앞선 것이었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할머니는 개인사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일본의 출입국 정책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게 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통 때문에 때로 언론을 기피하기도 했던 할머니는 이후, 앞서 소개한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의 저자 가와타 후미코의 책 《빨간 기와집 -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1987)에 담길 '과장도, 꾸밈도 없는 증언'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배봉기 할머니의 참혹한 상처와 기억들을 드러내며 할머니들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여성의 몸에 전쟁이라는 큰 상처를 남긴 국가의 존재와 책임에 대해 되묻습니다.
"봉기 씨가 본 ‘나라‘는 늘 이방의 국가였다. 봉기 씨가 태어났을 때 한국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다. 미군 지배하의 오키나와에 살던 전후 시절에도 그랬고,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뒤에도 봉기 씨에게 ‘나라‘는 이방의 국가였다. 봉기 씨가 ‘나라‘라고 할 때 그것은 늘 고향을 의미했을 뿐 국가를 상기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봉기 씨는 ‘나라‘를 넘어 이 계곡에서 죽어 간 사람의 영령을 향해 합장했을지도 모른다." (《빨간 기와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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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지음, 인예니 옮김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가족 다큐’ 3부작(〈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그리고 〈수프와 이데올로기〉)을 만든 양영희 감독의 장편소설입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운영하는 민족학교인 조선대학교의 1980년대 풍경을 담은 이 책은 연극에 대한 꿈과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엄격한 규율의 기숙학교를 벗어나길 꿈꾸는 주인공 박미영의 이야기입니다. 학교의 규칙과 세상의 차별에 위화감과 불만을 갖고 있던 미영은 ‘자유’를 위해 고난을 자처하기로 결심하는데요.
이 책은 재일조선인인 ‘미영’을 통해 조선대학교 내에서 겪어야하는 전체주의 교육과 봉건적인 분위기, 학교 밖에서 마주하는 사회의 차별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독자는 미영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사회와 환경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미영은 담장 밖에서는 차별주의자와 대립하고, 담장 안에서는 민족주의, 전체주의와 맞서야 하는 혼란은 결국 혼자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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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자신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이 폭력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미영 역시 자신을 설명할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 좌절합니다.
“가족은? 국적은? 어느 나라 사람? 간단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조차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학교에서 주어졌던 ‘정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적합한 단어를 찾으려 할수록 짜증이 났다. (…) 미영은 ‘바깥세상’ 사람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자신에 말을 잃었다.”
하지만 미영은 좌절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로 결심하죠. 고난이 예정된 길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 조선 학교
'조선 학교'의 경우,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교육기관으로 조선, 한국, 일본 국적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습니다. 조선 학교의 학제는 유치반부터 대학교까지 총 다섯 개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 학교는 북한의 교육원조로 운영되어 왔으나 최근 경제난으로 조선 학교의 재정난 역시 심해졌습니다. 조선 학교 재학생들의 약 70%가 한국 국적이고, 그 외에 조선적(해방 이전의 조선)과 일본 국적의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 학교 학생들은 '고향은 한국, 조국(혹은 우리나라)은 북한'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BS 스페셜 〈어느 편이냐 묻는 당신에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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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010년부터 '고교 무상교육 정책'을 시작했지만, 조선 학교의 경우 북한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보류하다가 2013년 아예 그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당시 무상화 대상에 현지 고교는 물론 외국인 학교까지 포함됐음에도 조총련계 조선 학교들을 제외시킨 일본 당국의 결정에 반발한 학생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이 소송은 2021년 모든 지역 최종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이에 똑같이 세금을 내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권 및 재산권 침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최근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에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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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던컨 지음, 김용규 옮김 (『Civilizing Rituals』, Carol Duncan)
2020년에 열렸던 전시 《올해의 작가상 2020》이 작품 선정의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일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 사건이 우리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미술 작품을 독립적인 대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작품이 어떤 공간에 놓이는지, 그리고 어떤 제도적인 지지를 받고, 어떤 사회적인 배경에서 전시되는지, 나아가 그 작품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술 작품이 전시되는 다양한 공간 중에서도 ‘미술관’은 그 공간에 발 디딘 사람들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이념을 주입하는 권력을 가진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죠. 즉, 우리는 ‘미술관’을 정치적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캐롤 던컨은 일찍이 ‘미술관’이 어떻게 정치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술관이라는 환상』에서 “이 연구에서 나는 미술관을 오브제를 위한 중립적 보관 공간이나, 일차적으로 건축 디자인의 산물로 간주하지 않는다”(p.14)고 말하며 “미술관이 사회적·성적·정치적 정체성에 관한 가치와 믿음을 생성하고 직접적인 경험의 형식으로 제공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p.14)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술관’이 어떻게 우리를 문명화된 시민으로서 정체화하는지, 사회적 구별 짓기의 장을 만드는지, 선형적인 미술사와 이념, 남성을 특권화하는 의식을 주입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공공미술관의 예시로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 뉴욕 메트로폴리탄, 보스턴, 시카고 미술관, 기증자 기념 미술관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데요. 여기서 미술관의 구체적인 각본에 따라 관람자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의례ritual’입니다. 이 의례는 미술관을 일상과 전혀 다른 공간으로 구분된 ‘경계적’ 시간과 공간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관람자가 미술관의 각본을 수행하게 합니다.
“미술관에서 의례를 실행하는 것은 바로 관람자들이다. 미술관의 연결된 공간과 오브제의 배치, 조명과 건축적 세부장식들은 ― 모든 미술관에서 똑같은 효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 무대와 각본을 제공한다. (...) 미술관은 잘 구성된 의례적 각본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연쇄적인 공간을 통해 펼쳐지는 미술사적 서사의 형식을 자주 띤다. 관람자가 미술관에 들어가서 오직 선별된 작품들만 볼 때조차 미술관의 더 거대한 서사구조는 하나의 구조로 기능하면서 개별 작품들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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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미술관을 순회한 뒤 도착하는 곳은 ‘남성의 세계로서 현대미술관’입니다. 캐롤 던컨은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여성의 육체를 그린 그림들을 통해 미술관의 젠더화와 그 안에 함축된 거대한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미술관에서 다루는 작품 속 여성은 ‘성적 특징’과 ‘유혹하기 쉬움’, ‘낮은 사회적 신분’이라는 정체성으로 드러나지만, 남성은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시된다는 점이 논지의 한 근거입니다. 현대미술이 정치와 도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으나 사실은 그 이면에서 위와 같이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을 작동시키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미술관의 전시는 그 자체로서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꾸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적 공간의 한 형식으로서 미술관은 한 공동체가 전통적인 진리와 가능성들을 시험하고 검토하고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진리와 가능성을 타진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의식 없이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고 종종 얘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역시 진실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는 유용한 과거를 구성할 수도, 거기에 접근할 수도 없다. 미술관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이런 과정의 중심에 위치한다.” (p.270)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도 미술관에 자주 갈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미술관의 각본과 이념을 마주할 것입니다. 때로는 미술관을 향한 성명문이나, 각종 미술관의 비젼을 전해 듣게 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문화적인 시민으로서 개인을 정체화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들의 역동을 목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캐롤 던컨의 책은 그러한 미술관과 관람자의 욕망, 그리고 그 안에 잠재된 거대한 세계를 조금 더 분명하고 날카롭게 바라보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윤선 읽고 씀
🔍 윤선 :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나고, '우리'와 맞닿는 지점을 찾아 들불레터에 소개합니다. 미술계에서 주로 활동하며 책을 만들고 미술에 대한 글을 씁니다. 아트북 <[ o o o ]>을 제작하고, 《교-차-점 交叉點》을 공동 기획했습니다. (https://brunch.co.kr/@yunsu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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