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두 명(命)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주변인들은 제게 일어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마치 제 일처럼 기뻐해주었습니다. 원가족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다는 제 사정을 알고 있거나 혼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안 가족'을 찾은 지인들은 고양이들과의 만남을 환영하는 한편, 이제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동거인'만 찾으면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그 때마다 저는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입되지 않고, 위급한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이 관계를 '가족'이라 부르는 것에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이 때 제가 이해한 '가족'은 어떤 관계를 총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단어라기보다 서로에게 법적인 의무를 가진, 그러니까 법적/경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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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가족'을 대하는 제 생각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가족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며 다양한 모습의 가족을 떠올릴 수 있었죠.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정확히는 개인과 개인 혹은 동물과의 만남이나 관계를 '가족'이라는 사회적 기준 안에서만 이해하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어색함을 느낍니다. 왜 우리는 대안을 찾으면서, 여전히 그것을 '가족' 안에서만 꿈꾸는 것일까요?
소피 루이스는 《가족을 폐지하라》에서 '대안 가족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가족'이 대안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족은 혈연적인 관계든 대안으로 선택된 관계든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므로 이제 '가족이 없는 자리'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죠. 그 자리에 꼭 무언가를 놓지 않고, '아무것도 없음'을 상상해볼 수는 없을지를 혁명적이고 선언적인 방식으로 제안하면서요. 소피 루이스의 이러한 제안은 제가 그동안 가족이라는 단어에 (마치 알러지와도 같은) 어색함을 느껴왔던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접근인데요. 여러분은 '가족'이 빠져나간 텅 빈 자리를 상상하실 수 있나요? 어떤 관계든 '가족'을 기준으로 고민해왔던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이 책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가족 폐지 운동은 아무 걸림돌 없는 완벽하고 보편적인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신이 각본을 뒤집어서 오히려 가족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가족은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 하고, 우린 모두 경쟁적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하는 작은 생물학적 팀의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비행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가족의 짐이 된다. 관념적으로, 이런 경험은 우리가 가진 건 가족밖에 없음을 (그게 마치 좋은 것이라는 듯이) 상기시킴으로써 우리를 재구성한다." (p.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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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회차에 접어든 (심리)상담에서도 저는 줄곧 타인에게 그래왔듯 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제 일부이기도 했기에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실도 아니었죠. '진정한 나', '진짜 나' 같은 것을 꺼내 놓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론 '진짜 나'를 보여주었을 때 상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게 될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진짜 나'를 잊어버렸다거나 어쩌면 아예 알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이 쯤이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든 날조차도 저는 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바닥에 가라 앉은 '진짜 나'를 찾은 건, 그래서 사회적 체면이라는 거름망에 여러번 걸러 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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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고백》의 저자 크리스티 테이트는 12단계 모임(섭식장애 회복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마니가 소개한 '로젠 박사'를 만나 그룹 상담을 받게 됩니다. 로젠 박사는 '비밀을 지키는 건 유독한 과정'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 그룹 구성원들은 원하면 어디서든, 무슨 얘기든 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에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로젠 박사의 그룹 상담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령 그것이 비밀이라고 해도 모조리 드러냅니다. 트라우마, 중독, 슬픔, 관계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비밀들을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노골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지나칠 정도'의 고백이 가능한 크리스티와 그룹 구성원들이 부러웠습니다. 고백이란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또 상대방을 믿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이 수치스럽고 불쾌하기까지 한 비밀들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건 '진짜 나'를 꺼내놓아도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테니 이런 곳을 찾은 그들이 부러웠어요. 그리고 그들이 '진짜 나'를 잊지 않고 고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신의 욕망을 분명하게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러웠습니다. 저처럼 오랜 시간 '진짜 나'를 억누르며 입을 틀어막아 온 사람들은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 조차도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만약 여러분이 크리스티와 함께 로젠 박사의 그룹 상담을 받았다면, 진실한 이야기, '진짜 나'를 꺼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디까지 나를 알고 있고 또 드러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로젠 박사는 브랜든의 비밀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내가 비밀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확인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의 비밀을 지켜주는 데 동의하면, 그 사람 몫의 수치심을 당신이 품게 돼요." (p.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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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엄마를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면 약간의 긴장으로 떨렸습니다. 여행이라면 여행일 수 있는 짧은 서울 나들이에 꼼꼼하고 섬세한 엄마가 실망하지 않도록 동선을 체크하고 계획을 점검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엄마의 취향을 가늠하기 어려워 제 선택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찾은 식당, 카페, 미술관에 갈 때마다 엄마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티나지 않도록 정면을 바라본 채로 흘깃대면서, 엄마가 제 수고로움을 알아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킬까 조심하면서요. 엄마는 하루종일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었고, 저는 내내 그 마음을 짐작만 했습니다. 엄마는 집에서의 모습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는데 저는 그 모습이 어색해서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내심을 에둘러 표현하는 식으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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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서야 그 날 엄마도 제 마음을 짐작하느라 분주했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화도 띄엄띄엄 어색했던 거였죠. 엄마는 그 때 제가 어린이였던 시절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서울이 낯선 엄마를 위해 어른처럼 구는 제 모습을 보면서 딸 옆에 선 미숙한 어른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고도 했죠. 엄마는 역할이 바뀐 우리 사이가 낯설고 서운했지만, 애쓰는 제 모습을 보며 기특한 마음도 들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함부로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고, 무슨 말이든 제 마음에 응답하기에 충분치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이면서요.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영영 몰랐을테죠.
제시카 아우의 책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는 어느 10월, 도쿄, 오사카, 교토를 함께 여행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본 관광을 제안한 딸에게 엄마가 머뭇거리다 동의하는 것으로 여정이 시작되는데요. 이 '머뭇거림'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둘 사이의 대화에서, 눈빛에서, 기억에서 머뭇거림들이 나타나죠. 그러나 이 머뭇거림이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나 미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부족하게나마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생각하기 위한 짧은 쉼표였다는 걸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들은 알게 됩니다. 마치 엄마와 제가 어색함 속에서도 서로를 염려하고, 서로에게 다정한 시선을 던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더 이상 춥지 않았고, 대신 엄청난 피로가 덮쳤다. 어쩌면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보고 보듬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겠다는 둔탁하고 고단한 한 줄기 생각이 스쳤다." (p.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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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김청귤 지음
여름이 되면 육지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다로 향합니다. 육지의 인간에게 바다는 특정 시기, 휴식과 재미를 위해 놀러가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큼직한 튜브를 허리에 끼고 푸른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에 와다다 뛰어드는 순간은 상상만으로도 시원합니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때쯤 뜨겁고 폭신한 모래사장에 드러누우면 그만한 휴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죠. 이 순간,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아름다운 장소로 낭만화됩니다.
그럼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서 ‘낭만’이라는 필터를 걷어내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물에 잠겨 바다가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지각변동으로 인한 해일이든 이상기후로 인한 폭풍우든 인간이 초래한 원인에 의해 지구에 바다만 남았다고 상상해보는 거죠. 우리가 발 딛고 설 수 있는 땅은 어디에도 없고 온통 물 뿐인 곳에서 살아남아야한다면,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내가 살아갈 공간은 한 평도 안되는 낡은 배 위 뿐이라면… 여전히 바다가 아름답게 느껴질까요? ‘바다’라는 장소가 휴양지의 풍경에서 생존의 운명을 가름 짓는 포식자로 전환되는 순간, 그 곳은 무한한 가능성이 아닌 위험한 비밀을 품은 곳으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 찬란하게 빛나던 푸른 빛깔은 속을 알 수 없는 어두움으로, 탁 트인 전망은 끝 없는 절망으로 변모하여 우리를 위협할테죠.
김청귤의 연작소설,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바로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다만 작가는 상상의 시점을 재난이 도래한 직후에서 조금 더 먼 미래로 이동시킨 다음, 바다에서 나고 자란 인간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독자는 기후위기로 인해 육지에서 바다로 삶의 터전을 이전해야했던 세대가 아닌 땅이 모두 물에 잠겨 바다만 남아버린 지구에서 태어난 새로운 인류의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게 되죠.
『해저도시 타코야키』에 실린 여섯 편의 이야기 속 화자들은 바다와 공존하고 협력하며 어른들이 이기심으로 둘러 놓은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에게 바다는 어느 곳보다 평등한 장소이면서 ‘순환’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주는 세계입니다. 이들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바다로부터 강한 유대감을 느끼며 바다를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 마땅히 돌아가게 될 곳으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바다는 이 세상을 언젠가 멸망에 이르게 할 예견된 위험이 아닌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함께 하는 공존의 공간인 셈입니다.
이러한 신인류의 모습은 땅에서 태어나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재난을 목격하고 경험한 어른들은 바다에 두려움을 느끼며 공존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존을 명분으로 다른 생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합니다. 또, 해저도시를 ‘돔’의 형태로 만들면서 바다와의 경계를 만드는 우를 범합니다. 두려움과 오만함으로 쌓아 올린 경계는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차별은 새로운 죽음을 불러 온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죠.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과 공존의 가치를 아는 신인류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여러 차례 독자를 멈춰 세웁니다. 그렇게 멈춰 선 독자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폭력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가려 온 착취의 구조에 대해 반추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그 누구의 시선도 아닌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 바다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삶과 죽음을 경계 짓는 분리가능한 영역이 아닌 삶과 죽음 그 자체이자 ‘나’ 자신인 바다의 모습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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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저도시 타코야키』 미리보기
- 「파라다이스」
‘파랑이’는 배 인간과 달리 물에서 살 수 있는 인간입니다. 돌고래, 상어와 같은 바다 생물들과 대화도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죠. 이런 파랑이의 모습에 엄마는 배 인간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욕심 많고 이기적인 배 인간들이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파랑이를 괴롭힐 수도 있다고 염려하면서 말이죠. 이러한 엄마의 경고에도 파랑이는 물살에 휩쓸린 또래의 배 인간을 도와주면서 결국 이들과 엮이게 되는데요. 그들이 탄 배의 이름은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파라다이스’입니다. 과연 그들이 머물게 된 배 위는 ‘파라다이스’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재난 이후에도 여전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비추는 작품입니다. '파랑이'와 '파랑이'가 구한 연희는 바다로 돌아감으로써 비로소 어른들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데요. 「파라다이스」는 오직 인간만을 위한 파라다이스가 아닌 지구의 모든 생명을 위한 파라다이스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씁쓸한 마음으로 자문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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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죽은 바다 밑 해저도시 ‘태양’의 돔 벽 청소부인 ‘문’은 돔 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돔 벽 청소를 하는 개량 인간입니다. 청소부는 자원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존재로, 최대 수명이 기껏해야 3년 정도이고 살아 있는 동안 공장에서 지급 받은 에너지바만 먹으며 생존합니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돔 벽 청소를 하던 ‘문’의 눈에 빛을 뿜어내는 작은 식물이 들어옵니다. 돔 밖에서 자라나는 이 식물을 보며 ‘문’은 왠지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끼죠. (p.189, “너나 나나 시한부지만, 죽기 전까지는 열심히 살아보자.”) 그리고 그 날, ‘문’의 앞에 또 다른 빛이 나타나는데요. 바로 타코야키를 만드는 ‘루나’입니다. ‘루나’는 노릇하게 익힌 타코야키를 ‘문’에게 건네고, 둘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집니다.
에너지바가 아닌 음식을 처음 먹어 본 ‘문’은 타코야키 덕에 새로운 맛에 눈을 뜨게 되면서 더 이상 에너지바를 먹을 수 없게 되죠. 이 때문에 ‘문’은 ‘루나’를 기다리지만, 웬일인지 ‘루나’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에너지바를 먹을 수 없게 된 ‘문’은 점차 말라가는데.. ‘루나’는 과연 ‘문’의 앞에 나타나게 될까요? 죽은 바다 밑에서 타코야키를 만드는 ‘루나’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일부 인간을 위해 고안된 '개량 인간'의 목소리를 통해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떠올리게 하며 가격표처럼 부여된 노동의 가치와 쓸모가 다 하면 버려지는 존재의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던집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바다로 가득했다."(p.238)는 마지막 문장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어야함을 암시합니다. 다른 존재를 착취하지 않고 바다처럼 모두를 포용하는 삶을 그린 우리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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