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들불'이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소개해달라는 인터뷰 요청을 받습니다. 대체로 많은 인터뷰에서 저는 제 자신을 '들불 운영자' 쯤으로만 가볍게 소개하고 넘어가지만, 운이 지독하게 나쁜 날엔 제가 누구인지 속속들이 파헤치려는 인터뷰어를 만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때마다 제가 나고 자란 곳부터 학력, 경력, 혼인 여부, 성적 지향까지 집요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2023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한국 사회가 선호하는 이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털어놓고, 급기야는 인터뷰어가 요청하지 않은 추가적인 사실들(예컨대 제가 암 생존자라거나 오랫동안 공황장애를 앓아온 이력 등)까지도 덧붙입니다. 제게 '사실'을 말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곤란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을 말한 그 다음부터입니다. 저를 두르고, 구성하고, 지탱하는 정체성들은 '나'라는 사람을 낱낱이 드러내보일 수 있는 적절한 이름들 같지만 사실 나를 제한하는 울타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밝힌 정보들은 분명 '사실'이지만 아주 단순화해서 전달한 것이므로 결코 나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ADHD 진단을 받은 사실을 오늘 처음 만난 인터뷰어에게 털어놓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는 제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ADHD의 틀로 관찰하고, 관찰 당하고 있는 저는 그 관찰이 몹시 못마땅하다고 느끼면서도 이 느낌의 저변에 ADHD의 영향이 있으리라 믿고, 그 때 내가 느끼는 수치스러움과 모욕을 상대방은 ADHD '환자'의 증상 중 하나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자신의 정체성을 전부 내보인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그의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조심스레 만류하곤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밝히려는 것은 분명 '사실'이겠지만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고속삭이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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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 『차이에서 배워라』는 넷플릭스 스페셜 「나네트」로 전세계적 스타가 된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해나 개즈비는 「나네트」의 모양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자폐'를 떨어뜨려놓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제가 ADHD 진단을 예로 든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일단 「나네트」를 그리는 데 사용한 생각 팔레트에서 자폐증과 내 몸이라는, 이제까지 나에게 매우 중요했던 이 두개의 아이디어는 빼고 가기로 했다. 내 자폐는 쉽게 떨어져나갔다. 자폐를 대화에 가져오면 다른 주제에 대해 내가 하는 모든 말도 사람들 머릿속에 내장된 자폐에 대한 무수한 편견과 잘못된 정보를 기준으로 평가될 때가 많았다." (p.491)
세월이 흐르면서 제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분열되거나 중첩된 정체성, 뭉뚱그려 설명하기 어렵고 대체로 '진단명'으로 명명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대체로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맥락 없이(진단명이든 대강의 설명이든) 나열한 다음, 그 정체성에 주렁주렁 딸려나오는 수많은 기억들을 이야기 보따리에서 꺼내 놓았습니다. 저는 과거에 이 과정을 약점이나 치부를 드러내고 일찌감치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버리는 일처럼 여겼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 과정을 약점으로 여겼던 제 안의 이상한 시선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타인과의 대화와 관계, 이야기에서 '판단', '분류'를 하는 것은 내 정체성에 붙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에서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칭하는 것처럼, 단 한 가지 모양만을 가지고 있을리 없는 누군가를 단 하나의 이름으로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사실 그것은 오랫동안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해나 개즈비는 저보다 훨씬 오래 이 문제를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자폐와 함께 자신이 「나네트」에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던 '몸'에 대한 고민을 해소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네트」에서 나의 자폐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신경생물학적인 편견을 사라지게 하는 일은 그래도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나의 육체적 존재는 대체 무슨 수로 사라지게 한단 말인가.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서 의미로 전환되기 전에, 먼저 내 몸이라는 렌즈와 이 몸이 낳은 왜곡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했다. 이에 나는 내 몸을 설명하려는 노력, 그렇게 해서 나의 애매성을 줄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냥 사람들이 알아서 나를 분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결국 그 사람들 문제일 테니까 말이다." (p.491-492)
그리고 해나는 마치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일종의 '선언'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방식으로 나를 정체화한 적이 없다. 내 안에는 거대한 우주가 있다. 그 우주에는 성별이 없다. 어디에도 성별이 붙어 있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아픔이 시작되는 건 언제나 내 피부 안이 아니라 바깥이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퀴어임이 자랑스럽다."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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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개즈비의 책, 『차이에서 배워라』는 해나가 자기 안의 '거대한 우주'를 스스로 꽉 끌어안기위해 일관된 서사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설명하기까지의 고민과 그 에피소드들을 담은 책입니다. 자신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에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젠더퀴어이자 질소유자로 소개하는 해나는 자신을 소개하는 이 문장 사이사이 각인된 트라우마를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훌륭한 공연예술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그들 역시 무언가를 달리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바로 '안티코미디'의 방식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나네트」를 "코미디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흡수한 다음 그것을 낱낱이 해체하여 사지를 이어붙여 만든 괴물"이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안티코미디의 방식이 왜 필요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는 관객들에게 내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이 트라우마 비슷한 감정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방에서 공통의 공감 경험을 자아낼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비단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코미디 쇼에 갔다가 어떤 이들의 마이크를 통과해 전세계로 쏟아지는 강간 찬양과 폭력,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오 등의 막말을 듣고 상처 받는 이들을 위해서였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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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해나 개즈비는 「나네트」 안에 웃기는 농담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웃음을 통해 신뢰를 쌓는 과정이 '트라우마'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관객들이 나를 신뢰해주는 것,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꼭 필요했다. 내가 관객들의 안전망을 빼앗은 다음 되돌려주지 않을 수 있으려면 우선 그들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야만 했다.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p.47)
"내가 하는 일이 뭘까요? 긴장을 조성했다가 여러분을 웃기죠. 그러면 여러분은 안도해요. 여러분은 고맙다고 말하죠! 웃고 싶었는데 잘됐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을 긴장하게 했어요! 학대 관계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왜 나하고 같이 있나요? 보이세요? 나는 방금 가정폭력으로 여러분을 웃게 했는데요. 코미디란 끔찍한 겁니다." (「나네트」 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