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자 행성》과 《마이크로코스모스》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로 평가받는 린 마굴리스의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크로코스모스》는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 함께 쓴 책으로, 40억 년에 걸친 미생물 진화사를 담은 작품인데요. 출간 당시 과학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관점을 담고 있어 여러 학술지로부터 퇴짜를 맞은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한 이 작품은, '세포 내 공생설'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 생물의 역사를 상호 의존적인 관점에서 '공생'을 내세워 파악하고 있는 것이죠.
저 같은 문과인간에게 '미생물'은 인간과 무관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물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이 책에서 린 마굴리스는 인간 역시도 '미생물'에 포함시켜 이해합니다. 린 마굴리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여러 박테리아들로 구성된 재조합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논지에서 린 마굴리스는 '인간성humanity이란 무엇인지' 되물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합니다. 그러면서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건설된 지구의 입장에서 지구의 생물들을 이해하고, "인간 중심적이고 자화자찬격인 생각"들이 불러온 전 세계적인 생태계 재난에 대해 지적하며 '생태학적인 겸손'을 전파하고자 노력하죠.
🌍
제가 린 마굴리스의 책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공생'을 통해 지구를 바라본다는 관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에밀리 디킨슨'을 자주 인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이크로코스모스》에서는 저자 서문 말미에, 《공생자 행성》에서는 각 장의 첫 머리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죠. 과학을 잘 모르는 저도 디킨슨의 시구를 읽으며 책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어 무척 좋았답니다.
"모두 공통의 세균 조상으로부터 30억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진화하여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고등한 존재'도, '하등한 동물'도, 천사도, 신도 없다. (...)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영장류 친척들 역시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화라는 무대에 최근에야 등장한 신참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차이점 보다는 유사점이 훨씬 더 많다. 기나긴 지질 시대를 거치며 맺어 온 깊은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생물들에게 혐오감이 아니라 경외심을 보여야 마땅하다." (p.15, 《공생자 행성》)
"실제로 생물은 마치 대도시와 같다. 로스앤젤레스와 파리는 그 이름으로, 그 시 경계선에 의해, 그리고 주민들의 일반적 생활양식 등에 의해 구분된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도시 그 자체는 전 세계에서 모인 이민, 이웃, 범죄자, 박애주의자, 도둑고양이, 비둘기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개개의 생물들도 경계가 뚜렷한 관념적인 형태가 아니다. 생물은 스스로 충족할 수 있는 다수의 작은 부분들을 가지고 무정형의 경향을 띠는 축적적 존재이다. 그리고 한 생물이 여러 종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생물 그 자체도 더 큰 초생물의 움직이는 한 부분이 된다." (p.167, 《마이크로코스모스》) |
|
|
김명희 외 지음
세월호 참사는 많은 질문을 품은 채 현재까지 계속하여 진행 중인 사회적 고통입니다. 이렇듯 현재 진행형인 세월호 참사가 던진 질문들에 열네 명의 인문사회과학자가 학문적 응답을 시도한 책이 바로 2016년 출간된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입니다.
책의 서문에서 김명희 교수는 제목에서 언급된 '이후'라는 표현에 대해 '그것이 단순히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지칭하는 연대기적인 의미가 아닌',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사회적 병폐를 키우는 데 일조해 왔던 파편화된 분과 학문의 모든 지적 관행과 단절하겠다는 인식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회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불가능한 이상에 기대어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을 외면하는 지적 병폐를 더 이상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라고 덧붙이죠. 즉, 이 책은 '현재 진행형의 참사로서 세월호'를 다양한 분과 학문을 배경으로 연구하거나 분석하겠다는 목적을 넘어,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에 동참하겠다는 학자들의 결연한 결심을 담은 것입니다.
🗣️
이 책에서 제가 특히 관심있게 읽은 챕터는 세월호 트라우마를 집단 트라우마로 바라보며 죽은 자들과 '연대'를 통해 관계를 맺는 과정이 비록 고통스러운 애도의 과정이 될지라도 사회의 치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사유'임을 이야기한 「세월호 트라우마와 죽은 자와의 연대」(김종곤)인데요. 이 챕터에서 저자는 '정치적 애도'가 '존재와 비존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여는 것은 물론, 트라우마를 원한의 감정으로 전이시키는 과정 속에 탄생하는 '정치적 멜랑콜리'와 단호히 단절하고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데에 중요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챕터가 세월호 참사 이후 무수히 많은 고통을 마주해야했던 우리에게 '애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게 만드는 중요한 챕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상속할 기억을 가진 타자로, 국가 폭력의 흔적으로, 유령으로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들과 관계 맺기를 함으로써 더 정의롭게,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다면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절박함은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에게 죽어 간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것 역시 과거로부터 그 기억을 현재화해 지금 우리를 진단하고 반성하며 미래의 삶, 다시 말해 국가와 자본의 욕망에 따라 질식된 현재와 같은 삶이 아니라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그런 삶을 기획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p.126) |
|
|
5.18이라는 사건 이후 그 사건과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5.18에 접근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직접적 피해자만이 아닌, 유가족, 일선대응인, 목격자, 사후노출자들이 5.18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서 마주했던 이야기를 통해 5.18 트라우마가 '집단 트라우마'로서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현재 들불에서는 <5.18 다시 쓰기>라는 이름으로 5.18을 새롭게 조명하는 북클럽 신청을 받고 있어요. 신청하신 분들께 《5.18 다시 쓰기》를 보내드리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립니다. |
|
|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박경희 옮김
《머나먼 섬들의 지도》로 알려진 유디트 샬란스키의 작품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인류사에 존재했지만 사라지거나 파괴로 인해 소실된 것들에 대한 목록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책의 가장 첫 페이지인 '일러두는 말'입니다. 저자는 한 장짜리 '일러두는 말'의 한 면에 사라지고, 희생되고, 소실된 것들을 나열하고, 다른 한 면에는 과거의 기억이 발견된 사례들을 나열합니다. 사라지거나 발견된 것들의 목록을 전/후 맥락의 설명 없이 나열한 이 한 장짜리 페이지에서 우리는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카이브 작업에 동참한 이름 없는 역사가가 된 것 같은 고양감을 느끼게 되죠. 책의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최고의 첫 페이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상실을 통해 그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됩니다. 한 존재의 빈자리를 '기록'을 통해 강렬하게 채우고자 열망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무언가는 계속해서 사라지고 또 사라집니다. 이렇듯 인류가 출현과 상실의 반복적인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상실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유디트 샬란스키의 책에서 찾아보세요.
"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파될 확률이 높은 매체이자, 기록되고 인쇄된 이후의 시간의 흔적이 새겨지는 열린 타임캡슐이며, 모든 판본이 저마다 폐허와 무관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공간임을 증명한다. 그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말을 건네고, 과거가 살아있으며, 활자는 진실하고 시간은 잘 보존되어 있다." (p.29)
"소중한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는 고인의 유품과 더불어 고통과 슬픔, 후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남는다. (...) 남겨진 유산 중의 어떤 것은 보관되지만,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잊히고, 왜곡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괴의 과정을 겪는다. 이 책은 이러한 상실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옮긴이의 말 중) |
|
|
🖋️ 소소문구 전시 《아임디깅 2023 I'm Digging : 나름의 성실로 열매 맺는 쓰는 생활》
소소문구에서 진행하는 쓰는 사람 23인의 쓰는 생활을 담은 전시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특히 '김신식' 님이 '타인일기'라는 제목으로 남긴 기록이 인상 깊었는데요. 작가들이 보내 온 책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적어내려간 기록에서 저는 글쓴이가 작가와의 소소한 기억을 떠올리고, 책과의 만남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들이 무척 귀하다고 느꼈어요. 타인의 기록을 읽으며 어떠한 존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답니다.
전시가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네이버를 통해 예약 후 방문해보세요! |
|
|
홍은전 지음, 훗한나 그림, 비마이너 기획
《전사들의 노래》는 '시작'을 만들고 '다음'을 조직한 전사들, 그 중에서도 여섯 명의 싸움꾼(박길연,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박경석, 노금호)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을 계속해서 기록해 온 《비마이너》와 《그냥, 사람》,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등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 온 인권기록활동가 홍은전 작가의 글, 따뜻하고 단단한 그림들을 그려 온 훗한나 작가의 그림이 만난 이 책은 장애인 권리 투쟁의 역사를 저항하는 장애인의 삶 속에서 뚜렷하게 조명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투쟁에 뛰어든 전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장애인 권리 투쟁을 시작한 사람들이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울 때 우리는 무고하고 선량한 시민이 되어 열차 안에서 문제를 관망할 것이 아니라 멈춰 선 지하철이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도록 연루자가 되어 모두를 태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플랫폼과 열차 사이, 투명한 막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 틈 안 쪽에서 편안하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슴없이 선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에 깊이 연루되고, 물들고, 이어져야겠죠. 이러한 출발점에 바로 이 책이 있습니다.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지금 우리는 승강장에 서 있다. 시설에서, 집구석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22년이 걸렸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 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자고 외친다. 도래하지 않은 내일을 오늘로 견인해오는 물리적 힘은 함께하는 당신께 있다. 함께함이란 다음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고, 이것은 나의 행위에 당신이 응답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휠체어를 굴리며, 때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갈지자로 휘청이며, 비관하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갈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 사회가 응답해주길 바란다." ('기획의 말' 중) |
|
|
*(광고) 바람의아이들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한 원고입니다. |
|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도서 구매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
|
『미치도록 시끄러운 정적에 관하여』 사라 데센 지음, 박수현 옮김
수능이 끝난 후 돌아온 첫 등교날, 이제 곧 스무살이 될 우리는 학교에서 준비한 작은 의식을 함께 치렀습니다. 구령대 앞에 분리수거 트럭이 오고, 학년주임 선생님이 '문제집을 들고 나오라'는 방송을 하면 손때묻은 문제집들을 한아름 껴안고 구령대로 달려가 버리는 의식이었죠. 너나할 것 없이 분주했던 그 순간, 저는 쌓아둔 문제집 귀퉁이를 만지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문제 사이사이 남아 있는 친구와 나눈 필담들, 떠오르는 생각들을 휘갈겨 쓴 메모들이 아까웠거든요. 이 기억들을 버리고 나면 우리 모두 학교를 떠나 흩어지게 된다는 걸 받아들여야할 것 같아 두렵기도 했고요.
그 날, 긴 고민 끝에 대부분의 문제집들을 버렸지만 끝내 버리지 못한 한 권이 있었어요. 엄마나 친구가 읽을까봐 일기장에도 쓰지 못한 진심을 적어 둔 문제집이었는데요. 아무도 들춰보지 않을 따분한 문제집 구석구석마다 저는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적어두곤 했습니다. 급식실에서 새치기한 친구에 대한 험담부터 공부도 잘하고 잘 노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마음, 나를 서운하게 했던 친구를 이기고야 말겠다는 치기 어린 결심 같은 것들을 빼곡하게 적어두었죠. 답답하고 지겨웠던 수험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엉성하게나마 내 마음을 담았던 그 문제집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떠올라 펼쳐 본 문제집에서 저는 유치한 문장 사이사이에 숨겨진 외롭고 초라한 나를 발견했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아왔던 속마음들, 사소하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이야기들을 적은 문제집 안에는 우리가 학창시절 겪었던 외로움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남아있었죠. 그 때의 우리는 진심을 듣지도, 묻지도 그렇다고 먼저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 위에 핀 꽃처럼 그저 겨울이 오기만을, 시간이 지나 이 마음들이 자연스레 시들어버리기를 기다릴 뿐이었죠.
🎵
『미치도록 시끄러운 정적에 관하여』의 주인공 애너벨은 문제집 속에 남겨진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참고 억누르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무력하게 기다리죠. 애너벨은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고, 때로 말보다 행동이 앞서기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며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탓합니다. 또, 개성이 강한 두 언니와 슬픔에 잠겨 있는 엄마,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아빠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많은 문제들을 회피해버리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애너벨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번번이 자신의 마음을 놓치고 맙니다.
"화를 낼 만한 상황이 어떤 건지도 잘 몰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익혔다. 뭐가 뭔지 분간이 안 갈 때는 아예 얼씬거리지 않는 것, 불러도 소리가 안 들리는 곳으로, 집 바깥으로 나가는 거였다. 그런다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p.40)
그러던 어느 날, 애너벨은 매일 점심시간 학교 안 담장에서 마주치는 오언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엄마에 대한 예의로 도시락을 싹싹 비우는 애너벨과 달리 오언은 단 한 번도 점심을 먹지 않는데, 이 모습에서 애너벨은 오언이 다른 사람이 뭘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죠. 애너벨은 서서히 자신과 다른 오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
애너벨은 오언과 가까워지면서, 그가 무척 정직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됩니다. 또, 오언이 스스로 정직함을 추구할뿐 아니라, 함께 하는 상대에게도 정직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죠. 상대방이 안전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거짓을 말하거나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도록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주는 오언 덕분에 애너벨은 점차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게 됩니다. 애너벨은 이러한 변화를 낯설어하며 오언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이렇게 솔직할 수 있다는 사실에 후련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언 암스트롱은 어쩐지 두려운 존재였다. 오언은 정직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정직하기를 바라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오언이 나는 몹시도 두려웠다.
오언에게서 벗어나자 처음에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부정하지 못할 사실은 오언을 잘 알지 못하지만 살아오면서 그 누구보다 오언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솔직했다는 걸 그날이 지나며 깨달았다는 거였다." (p.166)
💥
오언은 '정적'을 미치도록 시끄러운 상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애너벨에게 텅 비어 있는 조용한 상태를 어떻게 견디냐고 묻죠. 애너벨은 오언에게서 이 질문을 받은 그 날부터 서서히 자기 자신을 소개할 준비를 합니다.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언니의 이야기, 한때 친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자신을 '창녀'라고 부르는 소피와의 관계, 윌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계속해서 '쉬이이, 애너벨, 나야'라는 끔찍한 목소리를 들어야했던 지난 시간들. 오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로 결심하죠.
"비명보다 침묵이 싫었다고?"
"훨씬 더." 오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말은 적어도 다툴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안다는 뜻이야.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라도 찾아볼 수 있잖아. 그런데 침묵은...... 알 수가 없어. 그냥...."
"그 자체로 무지무지 시끄럽지." (p.186-187)
|
|
|
오늘은 애너벨처럼 ‘진실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 권의 책을 함께 소개해보려고해요. 학창시절의 스스로를 외롭게 내버려둔 채 훌쩍 커버린 누군가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큰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
|
|
몬태나주의 시골에서 자란 주인공, 캐머런 포스트는 열두 살의 어느 날,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습니다. 하필 그 날은 소꿉친구 아이린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처음 키스한 날 밤이었는데요. 아이린과 키스한 일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웠던 캐머런은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 일은 아무도 몰라'라는 안도감을 느끼고, 이내 이런 생각을 한 스스로를 혐오하게 됩니다.
이후 캐머런은 아이린을 떠나보내고, 콜리와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되는데요. 둘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결국 탄로나고, 캐머런의 이모는 동성애 전환치료를 하는 기독교 시설 '하나님의 약속'에 캐머런을 보내게 됩니다.
그 곳에서 캐머런은 사람들의 다양한 상처를 목격하게 되고, '주류 사회'의 '정상성'에 편입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 수없이 방황합니다.
그럼에도 캐머런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길, 타인을 마음껏 사랑할 자유를 누리게 될 미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갑니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자 폭력적인 교육을 일삼는 시설과 자신을 격리시키려는 사회에 계속해서 맞서면서 말이죠.
"중요한 건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리고 우리에 대해 계속 말하는 거야." |
|
|
《너를 위한 증언》은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널리 알려진 김중미 작가의 책으로, 성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이 긴 세월 이어져 온 (타의로 인한)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내 증언을 시작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 일기, 편지, 유서와 같이 누군가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형식을 활용한다는 점인데요. 이 때문에 독자는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마음 깊이 와닿는 걸 느끼게 됩니다. 또, 이어지는 그들의 고백에 귀 기울이면서, 현실에서의 내가 누군가와 연대하는 그 출발점에 '경청과 공감'이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죠.
"그러나 나는 끝까지 살아낼거에요. 엄마, 숨이랑 함께 살아남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언니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 곁에 살아있게 할거예요. 당신이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한다해도 우리가 드러낼 진실을 가릴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과 손을 잡고 끝까지 당신과 맞설 거예요." (p.284) |
|
|
보수적인 작은 동네의 고등학교 신문부 기자로 활동하는 주인공 피비 타운센드는 모범생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네모 안의 동그라미>라는 블로그에 성 지식을 올리는 익명의 10대 '폼'이기도 한데요.
그러던 어느 날, 폼의 트위터 팔로워가 급격히 증가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지역구 시장 출마자이면서 극우 기독교인인 리디아 브룩허스트가 자신의 트위터에 폼의 블로그 링크를 걸며, "10대들에게 섹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성적 충동과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인데요. 이후 브룩허스트는 폼의 정체를 밝히겠다며 갖은 방법을 동원해 그를 추적합니다.
청소년이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금기시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그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접하죠. 이러한 무지와 왜곡으로 인해 고통 받는 대상은 언제나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성'에 대해서는 활짝 열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할텐데요. 과연 피비는 이러한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게 될까요? 피비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 역시 '성'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정립해보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한다는 걸 그냥 좀 인정하면 안 되나? 그게 현실인데. 10대들이 민망하지만 마땅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원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하나? 그게 현실인데.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 ‘넌 아직 어려서 몰라도 돼’ 하는 사람들은 10대의 성관계를 통제해야 할 문제라고 여긴다. 우리가 섹스에 대해 알게 되자마자 뛰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보를 언제, 얼마만큼 얻는지 통제하려 든다. 성적 호기심에 대한 바람직한 반응은 ‘여기 정보가 있어.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야’다. ‘여기 네가 볼 건 없어! 썩 나가!’가 아니라." (p.10-11) |
|
|
『미치도록 시끄러운 정적에 관하여』
함께 읽는 북클럽 OPEN!
💥 도서 제공 💥
들불에서 『미치도록 시끄러운 정적에 관하여』를 함께 읽고 이야기나누는 북클럽을 마련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립니다!
- 프로그램 일시 : 5/9(화) 오후 7:30
- 프로그램 방식 : 온라인 진행
- 참가비 : 25,000원/청소년은 무료! (도서 포함)
*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의 참가비는 들불의 '청소년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합니다. |
|
|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들불은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답니다! |
|
|
들불레터 지난화 다시 보기
💌 링크
🎧 지난 들불레터를 오디오로 들으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친구에게 들불레터 추천하기 아래의 링크를 주변에 공유해주시면, 들불의 내일에 큰 보탬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