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의 여정을 당신과 함께합니다 📓
우리 함께 보고, 읽고, 써 나가요! 우리의 이야기를요. ⓒ한국영화감독조합, 후출처=여성신문 성평등 영화 기준 ‘벡델 테스트’ 통과한 2020 한국영화 10편 불씨 여러분, 안녕하세요! 8월 20일의 들불레터 12화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들이 두려우신가요? 10분에 한 번씩 울려대는 재난문자가 될 수도 있겠고요. 자연 파괴, 말 안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 고립감, 마감의 압박, 크나큰 슬픔…. 두려움은 타인에게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내면의 균열이지만 혼자서 안고 가다 보면 언젠가 감정 용량이 초과돼서 뚜껑이 열려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근본적인 원인은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SF가 가미된 소설이나 상쾌한 여성 서사 영화나 드라마로 머리를 식혀준답니다. 얼마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에서 기획한 <2020 씨네페미니즘학교>에 다녀왔어요. 조우리 작가가 강연을 맡았고(조우리 작가 작품은 들불레터 14화에서 다룬답니다!) 주제는 <여성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였는데요. 강연 전 영화 상영작은 호주의 공포 영화 <바바둑>이었고 무서운 영화는 평소 즐기는 편이 못 되는 콩알 가슴이지만 2년에 한 번씩은 꾸준히(?) 봐왔던 터라 용기 있게 입장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행과 한 칸씩 떨어져서 관람해서인지 영화를 더 시원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바둑>에는 출산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배우자를 잃고, 그날 태어난 아들을 키우느라 원래 했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별다른 취미도 없이 지내는 아멜리아가 나옵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지하실에서 아버지의 유품 중 바바둑이라는 그림책을 발견해 읽어달라고 조르고, 악령에 씐 금서인 바바둑은 아멜리아의 삶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검은 악당 바바둑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멜리아가 악몽같이 느끼는 삶을 따라가다 보니 해소할 데 없는 일상의 고단함은 객석에 앉아있는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애도를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굴러가는 삶, 불청객 취급을 하는 주변인들…. 누군가의 양육자로 느껴본 드려움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로서 안고 살고 있었던 여러 감정들에 공감돼 눈물 나는 심리 호러물이었습니다. 상영 후 강연에서는 조우리 작가만 말씀을 하시고, 참여자들은 온라인 채팅방에서 질의응답과 각자의 평론을 내놓았는데요. 말소리가 오가지 않아서 평소보다 고요했지만 다른 분들의 기가 막힌 해석과 평론이 '여성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관한 사유를 깊이 있게 해주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네요. 두려움의 근원을 없애지 못해도, 곁에 서로가 있음을 인지하게 해주는 대화와 공감의 장은 언제나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 치유와 애도를 마음 놓고 수행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것을 다짐하는 단단한 밤이었습니다. 아픔과 사랑의 상처를 꿰맵시다! 두 번째 표는, 여성 신문 기사에서 가져왔는데요. 2019년에서 2020년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에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10편이 나와있습니다. 백델 테스트는 영화의 성 평등 지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1985년 고안한 체크리스트입니다. [첫째,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셋째, 해당 대화 소재나 주제는 남자 캐릭터에 관한 것이 아닐 것.]
이 목록 중에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본 영화도 있고,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아직 보지 않은 영화도 있네요. 한동안 다시 집 안에서의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데, 성 평등한 한국 영화들로 마음의 잔근육을 다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여러분도 함께 보실래요? 제게 지난해 늦여름의 설레는 이벤트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람이었는데요, 올해도 어김없이 개최한다고 해서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하단에 링크들에 들어가시면 오늘(8월 20일) 3시에 공개된 상영 시간표도 확인하실 수 있고요, 공식 트레일러도 보실 수 있습니다. 배우 전소니, 뮤지션 황소윤, 감독 이옥섭이 뭉친 <탈출: send me out>. 이 사랑스럽고 씩씩한 한국판 라푼젤 이야기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요. 댓글에 넘쳐 나는 해석들을 보면 희망차고 연결된 느낌도 든답니다. 정말이지, 출연자도 팬들도 다 천재 같아요! 작년처럼 벽지 같은 뭉게구름 하늘을 보며 야외 개막식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여성 서사와 여성들의 힘이 가득한 행사에 어떤 작품이 초청됐는지 구경할 생각을 하니, 제 마음은 영양제를 챙겨 먹은 것처럼 든든해요. 들불의 콘텐츠도 항상 여러분의 마음에 힘과 휴식을 고루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보고, 읽고, 써 나가요! 우리의 이야기를요. 민주 드림 "다시 결성되는 이 라이팅 클럽의 일원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며." 강영숙 작가가 소개하는 계동길의 영인과 김작가를 만나보실래요? 📖 『라이팅 클럽』 📓 "거기가 파이팅 클럽 맞나요?" "아니요, 라이팅 클럽입니다." 무언가 쓰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라이팅 클럽은 종로 계동에서 글방을 운영하는 김 작가의 딸, 영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10대 후반부터 살게 돼 엄마, 딸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오가지 않는 둘 사이. 친구처럼 싸우고 비슷하게 사랑을 하는 그들에게 유난히도 추운 북촌. 그 속에서 쓰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이끌어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제가 불씨 여러분께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요…, 1. 영인이가 머리맡에 끼고 자는 책들을 알려준다! 소개팅에 나가면 내가 요즘 좋아하는 책을 읊고 추천해 줘서 재수 없는 여자애 취급을 받는 영인이. 읽는 동안 제게는 너무 좋은 친구가 됐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생업 전선에 뛰어든 그의 이야기 아래 시몬 베이유의 『노동 일기』가 음악처럼 깔립니다. 불사의 인간이 나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도 그렇고요. 영인이가 어릴 적부터 용돈을 모아서 산 꼬깃꼬깃한 책들을 함께 읽고 싶은 마음에 휩싸이게 된답니다. 미쳐버릴 만큼 힘들 때, 『돈키호테』에서조차 자신을 발견하는 영인의 모습에 참 독서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2. 멋진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강영숙 작가는 10년의 시간차를 두고 쓴 작가의 말에서, 처음에 영인의 편에서 이야기를 썼다가 지금은 김 작가의 편이라고 했는데요. 저도 읽는 중에는 영인에게 이입했지만, 글과 술과 모임을 즐기는 김 작가도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끝에 가서 들었습니다. 좋은 엄마라기보다는 좋은 친구고 선생인 느낌이지만요. 영인은 긴장될 때 뱃살이 떨리고 머리는 산발한 것처럼 보이게 볶아져 있을 때가 많지만, 겉치레보다 읽고 쓰는 일이 중요한 멋진 사람인데, 이런 영향을 준 사람은 계동에서 주부들을 모아 글방을 운영하고, 나이 들어서 또 등단한 김 작가가 아닐까 싶었답니다. 지질한 남자들도 많이 나왔지만, 그들은 등장과 같이 지질하게 퇴장한 점도 마음에 드네요. 천방지축이지만 영인에게 즐거울 자리를 내어 준 여고 동창 K와 R은,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주인집 할머니도요. 3.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멋진 여자들이 편지를 씁니다. 영인은 R에게 유치한 부르짖음을 보내고 K는 그 편지가 부끄러워질 만큼 멋진 사랑의 속삭임을 영인에게 보내지요. 영인이 장에게 편지 뭉치를 보낼 때는 제가 소설 속에 뛰어 들어가서 폐기해버리고 싶지만, 내용만큼은 아름다울 테지요. 영인이 잠시 계동을 떠날 때, 주인집 할머니와 김 작가는 각각 편지를 건네는데요, 찝질한 막걸리와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어린 그 편지의 내용이 눈물 나게 향긋해요.(그러고 보니 <바바둑>에서도 옆집 할머니가 모자에게 신경 많이 써 주셔요.) 크고 흰 종이를 책상에다 깔아놓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두서 없이, 사랑을 휘갈기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4. 80-90년대의 계동 길을 걷게 해 준다! 계동은, 김 작가가 영인을 데리고 오고서부터 계속해서 영인이 살아가는 터전인데요. 종로와 안국을 거쳐 광화문까지 정처 없이 산책하고, 술을 먹고 기어 다니기도 하는 고민이 어려있는 길. 사랑을 느낀 사람들의 지질함에서 도망치면 있는 길. 그리고 앉은 자리가 반질반질해질 정도로 우직하게 글을 쓰는 J작가가 있는 길입니다. 영인이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북촌은 외국인이 돌아다니고 비싸져버린 관광지로 그려질 때가 있고 저도 사실 놀러 가길 좋아하는 동네인데요. 한옥 틈 구석구석에 라이팅 클럽 사람들의 말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아서, 살아본 적 없는 시간과 집이 그리워집니다. 이슬아 작가는 서평에서 "라이팅을 통한 파이팅"이라고 적었고, 강영숙 작가는 이슬아의 글로 위로를 얻어왔는데 그가 내 책에 실릴 서평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화려하려고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쓰다 보니 화려해진 사람들이 작품 외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모습에 독자로서 또 한 번 벅찼어요. 글과 일과 거리를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라이팅 클럽. 불씨 여러분에게도 큰 위로와 재미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시집도 같이 읽어요, 이다희의 『시 창작 스터디』 📓 10편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연작이 있는 시집 제목에 매혹되고 저는 그동안 독서 모임이나 시 합평회에 종종 참여했었는데요, 제목을 보자마자 설레고 이미 재밌어서 집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인은 시 창작 스터디라는 제목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된 책 펼치기였어요. 마침 라이팅 클럽을 읽기 시작한 시기와 겹쳐서 이런 독서 모임 관련한 제목들에 즐거웠고요. 표제작은 기대와 '다르게' 재밌었고 일상과 마음을 돌아 보게 하는 소재가 많아 좋아하게 된 시집입니다. 시인의 말에 홀려서 [포니테일을 보면 잡아댕겨야 하는 아이가 있다. 하필 그런 아이가 나였고 당연히 친구들은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산발한 머리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하얀 김이 올라오는 것을 봤다. 신호등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가로수가 모두 일렁거리는 것을 봤다. 얼핏 교과서에서 아지랑이라는 단어를 배운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는 포니테일을 잡아당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에게 아지랑이가 더욱 이상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은 어른이 된 후에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 손이 이 시집을 한껏 잡아당겨 읽어주길 바란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참지 못하고 그랬듯이.] 민주 드림
강영숙은... 최근작 『부림지구 벙커 X』이 있다. 『라이팅 클럽』은 10년 만에 재출간된 그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집 『날마다 축제』, 장편 소설 『리나』등이 있다. 그는 『부림지구 벙커 X』 출간 인터뷰에서 “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세먼지나 황사가 없는 깨끗한 하늘 아래서 살고 싶다. 갑자기 닥친 재난으로 삶이 순식간에 잘못되는 일이 없는 안전한 사회에 살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는 친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해준 얘기를 많이 참고했다…." 라고 말했다. 평론가 심진경은,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반명사 여성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그녀들은 덩치가 크지만 힘이 세지 않고 무신경하면서도 섬세하다. 강하면서 나약하고 대범하면서 소심하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인물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다면체적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쉽게 포착되기 어렵다." 고 썼다. ![]() ![]() 이다희는... 2017년 '백색 소음'으로 등단했다. 앤솔러지 시집 『대답 대신 비밀을 꺼냈다』에 참여했고, 2020년 시집 『시 창작 스터디』를 냈다. 그는 등단 소감에서 "사랑 안에서 무력한 저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할 힘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부디 그 힘이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상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먼 길을 달려 노래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라고 썼다. >>다음 화에서는 허희정 작가 작품 소개가 이어집니다. ![]() ![]() <들불살롱> 004 들불 X WICC윅 프로젝트 풀어라 만화 탁! 들불과 여성 인디 만화가 커뮤니티 WICC이 협업하는 첫번째 워크샵! WICC의 모임장이자 독립 만화가, 직업인 A가 진행하는 <회사가기 싫은 날은? 맨날>! 본 워크샵에서 만화를 그리기 전 함께 읽어볼 책은 『일꾼의 말』입니다. 이 책은 다양한 직종의 일꾼들이 적은 비즈니스 에세이로, 읽어보면 회사에 대한 고민과 답답함을 조금은 덜어주는 느낌이에요. 온라인에서 만난 불씨들과 소감을 얘기하다보면 그보다 더 많은 상쾌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활동 도서로 선정해 보았습니다. 😄 <회사 가기 싫은 날은? 맨날>은 2회 온라인 독서모임, 2회 오프라인 만화 창작 모임으로 진행되고 9월 5일 (토)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의 프로그램 예고도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fieldfire.kr 연재] mixtape 들불 🎼vol.2 ![]()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되는 mixtape 들불! 이번 연재에서는 강영숙 작가의 <라이팅 클럽>을 읽고 dosii의 앨범 테마를 떠올렸다는 해인님의 멋진 큐레이션이 이어집니다. 돌고 돌아 계동으로 돌아오게 된 영인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우리 함께 dosii의 곡을 흥얼거려보아요. curator’s comment: 10년 만에 개정되어 나온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앞뒤를 빼곡한 서재 사진으로 두른 표지를 보고 나면 언뜻 지적인 세계로 초대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라이팅 클럽을 빠져나오면서 제가 느낀 건 ‘여긴 좀 너저분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혼자 책 읽고 싶다’에 가까웠어요.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거나, 미워서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글쓰기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덩어리가 되고 무리 짓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졌기 때문일 텐데요. 정기적으로 참여할 의향은 없더라도 잊을만하면 한 번쯤 들르고 싶어지는 곳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얘기를 듣는다고 글쓰기 교실 사람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겠죠? 나무는 나무가 아닌 것들을 갖지 않으려 한다 겨울날 우리는 나무들 속에서 나무를 찾아냈다 결대로 내려앉는 눈을 정성껏 털어주었다 나무들의 지옥에서 나무를 건져냈다 「나무가 있는 초상화」에서. / 『시 창작 스터디』, 이다희 민주 씀 이번 주 들불레터, 어떠셨나요? 후원 계좌: 카카오뱅크 7979-23-45945 (노혜지) instagram @fieldfire.kr e-mail contact@fieldfire.kr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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