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들불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한 후,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들불이 구입한 책을 소개합니다. 저는 행사 둘째날 도서전에 방문했는데요. 오전부터 붐비는 행사장의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감탄하였습니다. 제가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데 왠지 마음이 들뜨고 뿌듯하더라고요. 다만, 독립출판물과 1인 출판사 부스가 안 쪽에 위치해 있어, 더 많은 책을 구매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다음 해에는 꼭 깊숙이 위치한 부스부터 가봐야겠어요. 그럼 오늘의 들불레터도 힘차게 시작해보겠습니다!
🆕 들불의 새로운 소식들
- 여자답게 마시는 시간 : 《걸리 드링크》 북클럽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작 읽기 모임
- 프랑켄슈타인 vs 프랭키스슈타인 북클럽
- 작가와 함께 하는 《일할 자격》 읽고 쓰기 워크숍
💁♀️ 들불의 PICK! : 도서전에서 구입한 책들
- 《그리고, 터지다》, 박희정
- 《가부장 자본주의》, 폴린 그로장
- 《개의 설계사》, 단요
- 《종의 기원담》, 김보영
-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앤 헬렌 피터슨, 찰리 워절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도서 증정 이벤트)
-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주디스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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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답게 마시는 시간 🍻 『걸리 드링크』 북클럽
7월 15일, 맥주를 마시며 『걸리 드링크』 를 함께 읽을 애주가·애독자를 찾습니다!
◌ 일시 : 7월 15일 토요일 오후 6시
◌ 프로그램 방식 : 오프라인(150분 내외)
◌ 진행 장소 : 서울시 성동구 부근
◌ 인원 : 선착순 10명
◌ 진행 : 정재민 술의 맛과 향, 그리고 도수를 사랑하는 술꾼이며 술을 매개로 한 글을 씁니다. 주종별 에세이 <지나간 술도 다시 보자>를 쓰고 있으며 콘텐츠 속 술 마시는 여성 캐릭터를 분석한 글, <그녀들이 그 술을 마시는 이유>를 썼습니다. 뉴스레터 <슬점>의 공동 발행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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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러리 오마라 지음, 정영은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술은 오랫동안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왔습니다. 남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일, 인맥, 친목 도모 등의 이유로 정당화되었고,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는 그 형량을 경감해 줄 정도로 술과 남자의 관계는 진득했죠. 한편, 여자의 음주는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금기 중 하나였습니다. '조신함'이 여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던 시절, 사람들은 술을 즐기는 여자들을 비하했고 그들을 '공공재'처럼 대상화하며 희롱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여자들이 혼자 또는 여럿이 술을 마시고 즐기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여성을 비난하던 행태도 전보다는 줄어든 것처럼 보이고요. 하지만 이처럼 술을 즐기는 여성 인구가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술을 '만드는' 여자들의 수는 적은 편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여성 양조사의 펍, 양조장을 찾기란 쉽지 않아요. 세계 여성의 날에 여성 양조사를 소개하는 기사들이 여럿 올라오곤 했지만, 그것도 유명한 인물에 국한되어 있는 등 다양하지 않았고요. 여성 맥주 양조사 1호로 불리는 바네하임 김정하 대표가 처음 수제맥주펍을 오픈한 것이 10년도 채 되지 않은 걸 보면, 여성이 양조장 문턱을 넘기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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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와 달리 과거 양조장은 여성들이 주로 출입하던 곳이었습니다. 중세시대 여성이 양조 산업을 주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맬러리 오마라의 책 《걸리 드링크》에서 에일을 만드는 여성, 이른바 '에일와이프alewife'들이 에일*을 만들고 에일하우스alehouse를 열어 맥주를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당시 그나마 식음이 가능한 물조차도 정수가 되지 않아 더러웠기 때문에 평민들은 물 대신 에일을 즐겨 마셨습니다. 그렇기에 에일은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고, 꾸준한 수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계가 어려웠던 여성들은 돈벌이를 위해 별다른 준비 없이 집에서 바로 제작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에일을 판매하기 시작했죠.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여성, '힐데가르트 폰 빙엔' 역시 맥주 애호가였습니다. 힐데가르트는 독일 최초의 자연사 서적이기도 한 자신의 저서 『자연학』에 맥주 원료들이 가지는 효능을 쓴 한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첨가물인 '홉'의 효능도 담았습니다. 이 책에 담긴 홉에 대한 내용은 이후 맥주 산업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죠.
양조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 여성임에도 현재에 이르러 여성 양조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 역시 《걸리 드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에일와이프들은 판매를 위해 끝이 뾰족한 긴 모자를 쓰는 등 눈에 띄는 복장을 착용했고, 에일하우스 앞에 긴 빗자루를 내걸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죠. 또, 양조를 위해 쌓아둔 곡물 주변에는 쥐를 쫓는 고양이들이 맴돌았고요.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마녀의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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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에일와이프를 "신실한 남성을 죄악으로 이끄는 유혹자"로 묘사(p.117)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에일와이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죠. 이제 여성들은 술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례로 1692년 세일럼 마녀사냥의 첫 희생자는 술집을 운영하던 세라 오스본이었죠. 교회를 비롯한 사회의 박해와 혐오로 인해 양조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이 사라지면서, 양조 산업의 주도권은 자연스레 남성에게로 이전되었습니다. 현재 여성 양조사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있었던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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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은 분야를 막론하고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억압이 현재에 이르러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여성사'를 다루는 책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역사 속 많은 장면에서 여성이 활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여겨지는데요. 그 중 《걸리 드링크》는 '술'이라는 금기에 맞서고 즐겼던 여자들의 역사를 담고 있어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나 술을 즐기지 않더라도 여성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 모두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지금 들불 북클럽을 신청하시면 맥주 한 캔과 함께 제법 방대한 분량(500쪽)의 작품 역시 제공 받으실 수 있어요 🍺 <여자답게 마시는 시간 : 걸리 드링크 북클럽> 신청하시고 읽고 마시는 즐거운 시간 함께 보내요! 💁♀️
* 에일 : 에일ale은 보리, 밀, 귀리 등 곡물을 조합하여 만든 맥주로 당시에는 맥주beer가 아닌 에일로 불렀고 에일에 홉을 첨가한 경우에만 맥주라고 불렀습니다.
* 이미지 : 손님을 끌기 위해 높은 모자를 쓴 에일와이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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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여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작 읽기 모임
들불의 네 번째 전작읽기 프로그램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작 읽기>에서는 배수아 작가가 말한 것처럼 “정말 이상한 책, 정말 이상한 언어로 쓰인 책”인 리스펙토르의 작품들을 다룰 예정이에요.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가도 이내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언어를 이상한 것은 이상한대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것은 또 그런대로 헤매며 읽어보려고 합니다.
◌ 일시 : 7월 매주 월요일 오후 7:30 ◌ 방식 : 오프라인 (공간 포말)
◌ 진행 : 최리외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영문학을 공부하며 번역가로 생활한다. 책방에서 독서모임과 북토크 등을 열며 낭독극과 글쓰기 등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감각과 섹슈얼리티, 디아스포라적 속성 등 여성의 몸과 말하기를 이루는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으며,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인 작품을 읽고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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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vs 프랭키스슈타인 북클럽
《프랑켄슈타인》·《프랭키스슈타인》 북클럽에서는 “서구 백인 남성들이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매혹된 존재들에 붙여진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호명하며 그 안에 숨겨진 여자, 이방인, 성소수자, 난민 등 혼종의 존재들을 불러 세웁니다. 유명한 고전인 《프랑켄슈타인》을 이참에 제대로 독해해보고 싶은 분들, 《프랭키스슈타인》을 통해 현대의 관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논점들을 검토해보고 싶은 분들은 즐겁게 참여하실 수 있을 거예요!
◌ 일시
《프랑켄슈타인》 : 6/25(일) 오후 7:30
《프랭키스슈타인》 : 7/2(일) 오후 7:30
◌ 방식 : 온라인
◌ 진행 : 김은산
사회적인 분석과 미학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작업해오며 몇 권의 책을 썼습니다. 서촌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했던 경험을 가장 멋진 작업으로 기억합니다.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성들과 함께 걷고 쓰는 '다시 나는 새'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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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읽고 쓰기 워크숍
『일할 자격』 writing club에서는 노동자란 누구인지, 노동할 수 있는 몸, 정신, 생활이란 무엇인지, 사회가 규정하는 ‘노동의 자격’이란 무엇인지 살피며 (정상) 노동자 각본과 생산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후 책에서 발견한 키워드를 토대로 한 편의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눕니다 📝
◌ 일시 (총 2회, 150분 내외, 온라인)
- 1주차 : 7/16(일) 오전 10시
- 2주차 : 7/23(일) 오전 10시
* 도서는 갈라파고스에서 보내 드립니다!
◌ 진행 : 지아
우리 사회가 질병과 건강에 대해 어떤 담론을 형성해 가야 할지에 관심이 많은 사회과학자.
◌ 초대 작가 :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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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지음 (파시클)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이자 《나는 숨지 않는다》,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등을 함께 쓴 저자 박희정의 만화가 인터뷰집입니다. 인권기록활동가가 만화가를 인터뷰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참여한 인터뷰이는 총 다섯 명으로, 《카산드라》,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봄이와》, 《안녕 커뮤니티》, 《똥두》를 만든 만화가들이에요. 인터뷰에 참여한 작가님 모두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전에 《회사가 사라졌다》를 읽고 '파시클' 출판사에 큰 애정이 생긴 터라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실패를 하도 많이 해서 그런가, 되는대로 살자는 마음이야. 이제 나이도 많은데 뭐.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계획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난 목숨 붙어 있는 한 그냥 그릴 거야. 만화 그리면 만화가 아닌가. (...) 만화가로 성공하지 못할 사주라고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래 나는 원래 디폴트가 그거지(웃음)." (이하진, 《카산드라》·《도박중독자의 가족》 저자)
* 아직 온라인 판매처를 찾지 못해 텀블벅 링크를 걸어 두었습니다.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추후 파시클 공식 계정의 소식을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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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그로장 지음, 배세진 옮김 (민음사)
민음사TV(10:45)에서도 소개되었던 책으로, '가부장', '자본주의', '불행', '일과 삶의 균형' 등 요 근래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키워드가 꽉꽉 들어찬 표지로 구매욕을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민음사 TV에서 책의 편집을 담당한 맹미선 편집자가 언급한 추천 구절인 "임금 불평등은 여성 대 남성이 아니라 엄마 대 엄마가 아닌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라는 문장의 전후 맥락을 살피고 싶어 도서를 구입했습니다. 이 책의 1부 1장은 「세계 대전이라는 계기」인데요. 최근 복간된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을 읽고 나서 읽으면 더욱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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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지음 (아작)
얼마 전 들불에서 단요 작가의 《마녀가 되는 주문》을 다뤘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작가님께 흠뻑 빠진 저는 단요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요. 그러다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아쉬움을 느낄 무렵, 때마침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슈퍼스타 소녀가 기르는 로봇 개, 그리고 그 로봇 개의 인공지능을 슈퍼스타에 맞춰 설계한 설계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간 여러 작품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 온 작가님이 이번 작품에서는 특유의 단단한 어조로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셨을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결국엔 소설을 통해 감정과 애정의 본질적인 징그러움이 윤리와 어떻게 뒤엉키는지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방점의 상당 부분이 윤리에 찍혀 있기 때문에, 소설의 테마는 감정의 윤리, 영원한 타자의 윤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수상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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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지음 (아작)
저희 집 책장에는 '김보영 zone'이 있습니다. 그간 출간된 김보영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시해둔 곳인데요. 그래서 이번에 도서전에 가서 딱 한 권만 사야한다면 무조건 이 책을 사겠다!고 결심한 책이 바로 《종의 기원담》입니다. 《종의 기원담》은 김보영 작가가 2000년 즈음 썼던 1, 2편 결말인 3편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 세 편은 각기 다른 이야기"이며 "그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같은 주제에 대한 관점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고 썼는데요. 한 이야기를 20년 넘게 이어올 수 있는 그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얼른 책을 펼쳐 보아야겠습니다.
"부디 이야기를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에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은유로 보며 눈에 보이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치환하려 애쓰지는 말기 바란다.” (작가의 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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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지음 (읻다)
들불에서 〈인터뷰집 읽기 모임〉(가제)을 기획하면서 가장 자주 들춰본 책이 바로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입니다. 인터뷰이에게 향하는 질문과 태도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죠. 또, 작가님의 글쓰기 철학 중 공감되는 지점들도 많았고요. 이번에 출간된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역시 인터뷰집인데요. 이번 작품은 한영, 한일, 한독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산문이라고 해요. 작가의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번역가의 이야기는 자주 들려오지 않기 때문에 특히 귀하게 느껴지는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 시 번역가의 삶과 철학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길, 또,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은유 작가님의 통찰을 꼼꼼히 배워갈 수 있길 바랍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세상에 무엇을 더하였는가'라는 엄정한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의 노동은 세상에 무엇을 더하고 있나. 나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나. 한국문학 불모지를 개척하는 젊은 번역가들이 사는 법과 직업적 긍지를 조심스레 내놓는다. 문학의 시대는 끝났고 첨단기술이 소설을 쓰고 번역가를 대체하리란 전망이 우세한 시절에 시가, 문학이, 번역이 사람을 살리는 현장 이야기를 얹고 싶었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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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헬렌 피터슨, 찰리 워절 지음 이승연 옮김 (반비)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과 번아웃 문제를 다룬 《요즘 애들》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의 신작으로, 지금 제가 고민 중인 키워드, '일과 삶의 균형',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입니다. 이 책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늘어난 '유연 근무'를 일 중심으로 구조화된 삶과 사회에 혁신을 가져다 줄 하나의 방편으로 보고 있는데요. 조직 내에서 일과 노동의 환경 개선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 또 조직의 안팎에서 노동 현장의 여러 문제들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재택근무는 의미 있는 통제와 저항의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한 위기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이 될 수도 없다. 앞서 열거한 유해한 역학 관계는 모두 원격근무 세계로도 그대로 옮겨질 수 있다. 특히 노동자 또는 회사가 재택근무를 ‘사무실에서 하던 모든 일을 집에서 하는데 단지 임대료와 공과금을 직원이 부담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므로 이 책을 쓴 목적은 사무실 근무의 가장 유해하고 소외감을 유발하고 짜증 나는 면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숙고해보자는 것이다. 단순히 업무를 하는 장소를 옮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과 일에 쏟는 시간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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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옮김 (창비)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자 제 주변에서 보인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마스크를 벗게 되어 너무 좋다며 해제 첫 날부터 벗어 던진 사람도 있었고, 지하철 같이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부분적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경험하는 타인과의 접촉이 이제 정말 불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감염병과 상관 없이 계속해서 마스크를 쓸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죠. 또, 어떤 이들은 팬데믹 상황과 관련해 생겨난 직장 내 여러 규칙들이 완화된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반응이든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이를테면 호흡의 부자유나 위생, 노동환경과 같은 것을 새롭게 감각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팬데믹을 경험하며 무엇인가를 새롭게 감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경험하는 새로움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지속해오던 노동 환경이 팬데믹 상황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바이러스에 의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난과 차별의 양상에 주목하기도 했죠. 이와 같은 새로운 감각에 대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가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란 기존의 세계에 대한 온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세계의 일부 혹은 전부가 바이러스의 출현과 영향에 의해 재인식되고, 다른 감각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합니다.
"(...) 팬데믹에 관한 무엇인가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검토의 대상으로 재인식하게 하고 세계를 우려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하며, 지금 이 버전의 세계는 예상되지 않았던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도록 하고, 아울러 갑자기 세계를 새로운 종류의 모호성을 가진 곳이자 새로운 제약들을 강요하는 곳으로서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p.27)
버틀러는 팬데믹으로 인해 출현한 세계의 새로운 버전을 '상호연결성'의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합니다. 가령, 바이러스가 중국·브라질·남아프리카 등 '외국'으로부터 오고 있다고 보도한 언론의 행태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의 신체는 지금까지(그리고 팬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조차도) 끊임없이 외부의 것과 접촉해왔으며, 이러한 접촉의 바탕에 "유기체는 외래 물질을 섭취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p.24)라는 명제가 자리함을 지적하죠. 또, 버틀러는 상호구성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며 바이러스가 가지는 문제란 그것이 외래의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라는 점이며, 우리는 "어떻게 외부 세계가 신체의 일부분이고 일부분이어야만 하는지"(p.23)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타인과의 접촉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제 지인의 감각을 이해해본다면, 이는 마치 외부의 접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느껴지지만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일부 부인하고 바이러스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요소가 신체 구석구석 침투하고 있으며 신체 역시 세계에 의존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주장이라는 해석 또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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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챕터는 2장 「팬데믹 시대의 권력들 - 생활의 제약에 대한 단상」입니다. 이 챕터에서 버틀러는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세계의 경제를 재개(활성화)하는 것이 마치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한편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함에 따라 그들이 다른 집단에 비해 바이러스에 취약해질 수 있고, 신체를 마모시킬 정도의 장시간 노동이 도리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과거 맑스(Karl Marx)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노동을 함으로써 노동자는 살 만한 삶을 위한 환경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가깝게 다가가거나 혹은 죽는다는 것"(p.85)이죠.
"우리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경제를 연다. 혹은 계속 경제가 활성화된 상태로 둔다. 하지만 바로 그 저임금 노동자들은 경제를 재개함에 따라 삶이 폐기 가능한 것으로 치부되는 이들이자, 자신의 일이 다른 노동자에 의해 대체 가능해지는 이들이자, 자신의 생명이 단수의 귀중한 생명으로서 여겨지지 않는 이들인 것이다. 달리 말해, 팬데믹 상황하에서 노동자는 살기 위해 일하러 가지만 바로 그 일이 그 노동자의 죽음을 재촉한다."(p.87-88)
이러한 관점은 콜센터 내 집단 감염으로 인해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던 상황과 결부시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집단 감염 이후 콜센터 노동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며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이 여전한 일터로 복귀한 이유가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지금 당장의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를 죽게 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일해야하는"(p.84) 노동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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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사람들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의했습니다. 버틀러의 이번 저작 역시 그러한 시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공동의 세계'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세계'라는 단어가 단일한 지평으로서 이야기되더라도 세계는 '세계들'이라는 복수의 형태, 일부는 겹치고 또 일부는 나뉘어 갈라지며 완전히 융합되지 않는 세계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이라는 말의 양태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계신가요? 버틀러의 책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를 읽으며 그 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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