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가족'을 분석한 여러 도서들을 살펴봅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핵심 장치인 '억압'의 기제를 설명하며 계급, 인종, 성 개념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데요. 모두 엄청난 분량과 밀도를 자랑하는 책들인만큼 오늘 레터를 읽고 관심이 생기신 분들께는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꾸려 읽으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또, 오늘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역사의 산증인인 한채윤 작가의 사랑과 연대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 또한 함께 소개합니다. 이 책은 에세이라는 분류가 무색하게 꽤나 밀도가 높은 책인데요. 그만큼 느끼고, 깨닫는 경험을 풍성하게 누리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모두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곧 들불에서 한채윤 작가의 책을 읽는 읽기 모임도 열릴 예정이니, 모임에서 함께 읽어도 좋겠습니다 😊
👆 들불의 PICK!
-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꾸리에)
- 《반사회적 가족》, 미셸 바렛·메리 맥킨토시 지음, 김혜경·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 《사회주의 페미니즘》, 낸시 홈스트롬 엮음, 유강은 옮김 (따비)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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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단순한 열망』 읽기 모임
들불 스터디클럽에서는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혁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두 권의 책을 읽고, 우리가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 지구적 한계 안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 함께 읽을 책
(*도서는 필로우에서 보내 드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 제니 오델
『단순한 열망 : 미니멀리즘 탐구』, 카일 차이카
◌ 일시 : 8월 매주 화요일 오후 7:30
◌ 프로그램 방식 : 온라인(120분 내외) 들불과 참여자의 개별 발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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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들의 이야기> 읽기 모임
8월, 〈몸들의 이야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몸, 농담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몸, 낙인 찍힌 몸, 이해받지 못하는 몸들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 함께 읽을 책 (도서 제공, 개별 신청 가능)
❶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8/17(목) 오후 7:30 ❷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 8/24(목) 오후 7:30 ❸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 8/31(목) 오후 7:30
◌ 프로그램 방식 : 온라인(150분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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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 유숙열 옮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1)이라고 불리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은 저자가 25세의 나이에 쓴 역작입니다. 파이어스톤은 이 책에서 가족의 위계질서와 경제적 계급 간 연관성을 지적합니다. 엥겔스의 말을 빌려, "가족 안에서 남편은 부르주아지이고, 아내와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이죠. 또, "임신은 야만적"이며 "임신은 종을 위하여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p.287)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연분만에 대한 숭배', 그러니까 임신과 출산이라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남성 중심의 문화에 대한 일갈인데요.
계급(권력)의 차원에서 '가족'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 파이어스톤은 성적 계급의 타파를 위해 하층 계급, 즉 여성이 생식수단의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곧 '가족'이라는 위계구조를 무너뜨리고, 여성과 아이들을 경제적 독립과 더 큰 사회로의 통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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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 대해 정희진 작가는 " <성의 변증법>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겨레, "근친상간 금기는 가족의 보존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2) '아트앤스터디'에서 철학자 김은주의 《성의 변증법》 강의를 수강할 수 있습니다. 혼자 읽기 벅찬 분들은 해당 강의의 도움을 받아보셔도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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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바렛, 메리 맥킨토시 지음
김혜경, 배은경 옮김
《반사회적 가족》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사회적 의미틀로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말합니다. 저자는 '가족'이 시장 논리의 안티테제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주의'라는 억압적 구조가 있으며 그렇기에 가족의 역할이 더욱 신성화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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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이 투자할만한 '매력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 사회가 가족에게 물질적·이데올로기적 특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에 투자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거죠. 사회는 이타적이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이상화된 '가족'의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구조적 억압이나 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점차 격하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의 가족화라고 부르며 '가족'이 사회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면으로 자리잡게 된 현상을 분석합니다. 사회의 가족화가 '가족'을 보호와 사랑이 가능한 장소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가족의 부재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가족과 사회, 어디에도 발 붙일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들이 말하는 '가족'은 앞서 이야기했듯 "개별의 역사적·사회적 특정성을 지닌 가족형태"(p.165)이며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입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역사·사회·자본주의가 가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비교적 대중적인 두 가지 명제("핵가족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능적 요구에 잘 들어맞는다", "가족은 쇠퇴해왔으며, 이제 가족이 했던 일의 대부분은 국가가 수행한다")를 검토합니다.(3장 「당대 사회의 분석」)
저자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아닌 새로운 사회로의 발걸음을 제안하며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안정감이나 가족만이 제공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돌봄, 양육 등의 역할을 사회의 역할로 이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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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홈스트롬 지음
유강은 옮김
이 책의 2부 「가족: 사랑, 노동, 권력」에서는 계급을 중심으로 현대의 '가족'을 분석합니다. 2부의 첫 글인 「가족은 죽었다, 새로운 가족 만세!」의 저자 주디스 스테이시는 '가족'이 근대화의 소산이며 근대 가족 제도라고 불리는 이러한 가족의 형태가 '가부장적 교섭'(by 사회학자 데니즈 칸디요티)에서 변화를 나타냈다고 말합니다. 고전적인 가부장적 교섭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와 보호 등 제공 받은 것에 대한 대가로 종속을 받아들이는 데 반해 근대 가부장적 교섭은 두 사람의 결합을 "낭만적 이데올로기로 포장"하며 각자의 욕망을 상호보완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으로 변모했다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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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근대 가족 제도가 진화하면서 가족의 유형이 "매우 동질적이고 규범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이 되었고, 결국 가족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이며 자명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데요. 전근대에는 사망률과 재혼율이 높았기 때문에 가족 유형이 다양하고 복잡했지만, 근대로의 이행을 거치면서 사망률이 점차 낮아지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가족생활 경로"를 예상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그 근거로 제시되고요.
가족 제도의 진화 과정을 살핀 스테이시는 이러한 근대 가족 제도가 명백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각자의 욕망을 상호보완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근대 가부장적 교섭의 방식은 사실 잘못된 명제라는 것인데요. "낭만적 이끌림과 상호 보완적인 감정적 욕구에 의해 두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결혼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근대 가족 제도의 분업 형태가 여성들에게 결혼을 선택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상 결혼이라는 선택에 개인적인 욕망은 전혀 무관하다는 거죠.
노동 분업의 측면에서 근대 가족 제도를 살핀 스테이시는 이 글의 말미에서 "'가족'을 묻어버리자"고 제안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묻어버려야 하는 가족은 정확히는 가족 '제도'를 의미합니다.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주부, 결혼한 남녀와 자녀로 구성되는 단위가 지배하는 근대 가족 제도"(p.201)를 말이죠.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의 가족'을 제시합니다. "가족의 정의를 확대"하고, "가족 유형과 선호, 관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족의 정의로써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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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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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한채윤 지음 (은행나무)
모뎀 접속음을 들으며 10초 정도 기다리면 투박한 모니터에 온통 파란 화면이 뜨고, 그 화면에 (요즘 유행하는) 픽셀 폰트로 빼곡하게 적힌 네티즌 광장, 동호회, 자료실 등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입장했습니다. 그 곳에는 성향, 기호가 비슷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만남의 장이 있었어요. 이게 다 언제 적 이야기냐면, 바로 PC통신의 붐이 일어났던 90년대의 이야기입니다.1)
90년대 후반, '동성애자들의 PC통신 동호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2)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동성애자 동호회3) 같은 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던 것도 기억나고요. 제게 '동성애'는 당시에도 꽤 익숙한 말이었는데, 주변에 '이반'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이반'은 그들을 분리하고 따돌리기 위한 단어였는데, 저는 늘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들과 그들이 '이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정의감에서 비롯된 마음이라기보다는 제가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수의 친구 중 몇몇이 이반이라 불리며 따돌림 당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죠. 그래서인지 PC통신의 동성애자 동호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막연한 호감을 가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비슷한 모습을 한 공간일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러나 이러한 제 마음은 그 뿐이었습니다. 친구들과는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동성애자 동호회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잊었죠.
이런 저와 달리, '동성애자 동호회'와의 만남으로 인권 운동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의 한채윤 작가입니다.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는 "1997년 PC통신 동성애자 인권모임 또하나의사랑에서 활동을 시작해 1998년에는 한국 최초의 퀴어 잡지 《버디》를 창간했다. 2001년부터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조직위원 (...) 2002년에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설립" 등 엄청난 이력을 갖고 있는 저자의 첫 에세이인데요.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 본인의 탄생부터 유년시절의 이야기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싸움의 과정,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그릇된 이해에 대한 반론과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비롯해 역사, 문학 등을 퀴어하게 읽고 쓴 리뷰들을 담고 있습니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록을 담은 '일기'와 비슷하게 여겨지는 요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에세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책입니다.
오늘 〈들불이 만난 이야기〉에서는 이 책의 주요 키워드를 선정하여 그 내용을 소개하고,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들불이 만난 이야기〉는 제 마음에 꽂힌 키워드를 우선적으로 소개하는 코너이기 때문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진 못하는데요.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는 무엇 하나 빠뜨릴 내용이 없는 작품이니, 가급적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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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당시 공포 장르에 관심이 많아 하이텔 여름캠프(정확한 이름이 아닐 수 있습니다)의 괴담 코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3) 당시에는 '성소수자'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아 다양한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동성애자'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또하나의사랑'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었어요. 본 레터에서는 당시에 불리던 명칭(동성애자 인권모임) 그대로 작성하였지만, '성소수자 인권모임'으로 부르는 게 바람직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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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책임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p.73)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 p.81
이 책의 1부 「성별교란자의 여행」은 저자가 "여자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수많은 경험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부 「싸우자는 예쁜 말」에서는 "여자인 줄 몰랐다"는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겉모습으로 성별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하거나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성별에 기반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어온 싸움의 여정들이 담겨 있어요.
두 파트를 읽으며 저는 저자에게 서려있는 '한恨'을 느꼈어요. 다만 여기에서 제가 느낀 '한'은 하얀 소복 차림에 긴 머리를 하고 억울한 얼굴을 한 채 말 없이 서 있는 모습이 아닌 짧은 머리에 유쾌하고 단단한 얼굴을 한, 무엇 하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은 부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과는 조금 다릅니다. 또, 저자는 '한'을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데요. '한'의 정서를 행동으로 나아갈 동력으로 삼죠. 이 역시 죽어서 한을 풀고자 했던 전통적인 '여성상'과 다릅니다. 살아 숨쉬면서, 그것도 '행복하게' 살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 과정에는 우리의 삶에 대한 저자의 책임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사용 및 집회 신고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로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상황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해결방안을 모색한 일이나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창립총회를 준비하면서 담당 주무관에게 등록 거절을 당한 이후 서울시와 벌였던 싸움 등 여러 사건들에서 저자의 책임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의 책임감에 감화되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그의 곁에 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역시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나 역시 더 이상 한을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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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엄살원 지음 (위고)
《엄살원》은 "우리로부터 쫓겨난 모두를 위한 시공간 (...) 우리에서 탈락된 우리에게 바치는 만찬이 열리는 곳"(p.6)을 표방하는 장소인 '엄살원'이 여러 활동가들을 손님으로 맞아 비건 만찬을 차려 드리며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엄살원'에서 맞이한 손님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의 활동가부터 정의당 국회의원,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 등 다양한데요. 활동 영역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많은 물음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하는 절망적인 "몰이해의 황무지"에 서로를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책임감'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계에 강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우리 역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죠.
"여기 새벽이생추어리에 장기적으로 몸을 묵고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p.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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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토록 선명한 방식의 투쟁을 사랑한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상처받고 슬프고 화도 나겠지만, 광장으로 나와 춤을 출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저항,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퀴어라고 생각하니까." (p.100)
전에 〈전쟁없는세상〉에 올라온 리뷰를 읽고, 에이즈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운 '액트업파리(Act up Paris)'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120bpm〉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리뷰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에 춤추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는 내용이었어요. 또, '120bpm'이라는 제목이 '무척 빠르게 뛰는 심박수'를 의미하는 한편, 음악 템포 단위인 bpm을 이용해 "삶과 죽음 사이에 선 액트업파리 활동가들의 저항이 멋진 춤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고 설명한 부분 역시 눈길을 사로 잡았죠. 그래서 영화를 봤고, '투쟁의 몸짓은 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투쟁'과 '몸짓(춤)'을 연결시켜 이해하게 된 건 리베카 솔닛의 작품들4)을 읽으면서부터였어요. 솔닛은 여러 작품에서 활동가들의 몸짓에 대해 반복하여 이야기합니다. 마치 그들의 투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의 몸짓을 읽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회운동', '투쟁', '혁명'과 같은 단어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단어들이 주는 감상은 보다 더 엄숙하고 불행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한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투쟁의 모습에 대해 낯설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솔닛의 글을 읽으며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고, 이후 여러 활동들이 펼쳐지는 장소에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마주하면서 '아 정말로, 투쟁의 몸짓은 춤과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게 되었죠.
이후 활동가들이 투쟁과 몸짓을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라는 제목에는 이끌릴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면서 이 제목이 춤추면서 싸우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항으로서의 몸짓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을 해주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죠.
저자는 우리가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이 세상의 그 어떤 시선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모이고, 거리를 누비고, 서로의 존재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 큰 저항인지를 표현하고 느껴왔다."(p.100)고 말하며 우리가 광장에서 추는 춤이 곧 강력한 저항이자 길들여지지 않는 퀴어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투쟁이 몸짓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을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면, 이 책을 읽고 퀴어문화축제의 춤 행렬에 합류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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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딸기,호수 정주 엮음, 강정지킴이 활동기록팀,
강정평화네트워크 기획 (카카포)
몸짓을 통해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제주에도 있습니다. 바로 강정지킴이들인데요. 이들은 ‘강정평화네트워크’를 조직하고 10년 넘게 제주 해군기지 폐쇄를 위한 불복종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이렇듯 매일 “백배, 미사, 인간띠잇기와 4종 댄스”와 같은 일상적 저항행동을 펼치며 국가 주도의 폭력과 자연 파괴를 막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몸짓과 저항이라는 아름다운 연결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의 힘은 의외성과 고집스러움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해군에 항의하는 표시로 텐트를 치고 자고 자장면이랑 짬뽕을 배달시켜 먹어요.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 연날리기도 하고 이동식 난로를 가져와 군고구마도 구워 먹고요. 또 어떤 친구들은 요가도 하고 춤도 추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며 뮤직비디오 찍듯이 공연도 해요. (...) 이게 다 투쟁이고 운동이죠. 무겁고 힘들 수 있는 일들을 재미있는 놀이로 전환 시켜 함께 하는 거죠. 이런 걸 기지정문 앞에서 총을 멘 군인들 앞에서 해요.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면 웃겨요. 재기발랄하고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고 놀라는 순간들이 많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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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불이 만난 이야기〉에서는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를 '한과 책임', '저항의 춤'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소개해봤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이 책은 두 키워드 이외에도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혐오자(또는 혐오하는 사회) 스스로에게 향하는 질문으로 바꾸면서 반론을 제기하는 파트, 성서를 비롯해 여러 이야기 속 퀴어에 대한 이야기나 역사 속 주요 담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리뷰 파트 등 풍성한 콘텐츠를 담고 있어요.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를 함께 읽는 자리를 들불에서 마련하였으니,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감상을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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