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지난 레터에 이어 여름을 보내기 전 읽으면 좋을 도서를 소개했습니다. 지난 레터에서 '휴가', '여행'을 키워드로 한 작품들을 소개했다면, 이번 레터에서는 공포/SF 장르의 소설을 준비해봤어요! 또, 기록노동자 희정 작가의 신간 『베테랑의 몸』을 소개하며 '베테랑'들이 안전하게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함께 조명하였습니다.
▪️ 들불의 PICK!
- 『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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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혜 지음 (퍼플레인(갈매나무))
여러모로 마음이 지치는 요즘 무기력함을 물리칠 만한 소설을 한 권 가지고 왔습니다. 스릴러, SF 요소가 있어 여름에 읽기 좋고, 공동체 속 이기주의나 종족 우월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기후 위기 이후 미래에 대한 예측도 담겨 있어 생각해 볼거리가 많았던 소설이었는데요. 현실도피를 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현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을 짚어주는 것 같아 더욱 매력적이었던 작품입니다.
'제발 이 지구를 망하게 내버려 둬. 너희가 사는 곳도 아니잖아.' p.193
주인공 유리는 두 가지 초능력을 가졌습니다. 첫째로, 평행 우주에서 온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둘째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꿈에서 경험하는 예지몽을 꿀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유리는 평행우주에서 온 '나'인 '토토', '베이', '륜', '렌', '진'을 통해 믿을 수 없는 자신의 숙명을 전해 듣게 됩니다. 유리가 자신과 붉은 실로 연결된 홍연자인 '시아'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걱정을 대신해 주는 '시아'의 능력이 결국 지구를 망가지게 하는 일을 돕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홍연자들은 대부분 서로를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유리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지구의 수많은 사람을 구하게 되는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처음에는 개인의 감정에 몰두해 집단적이고 장기적인 영향력을 간과합니다. 시아의 경우, 좋은 마음으로 행한 일이라도 집단과의 영향 관계를 고려하지 못할 때 상상 이상으로 부정적인 영향력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지만 인물들은 점차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거-미래라는 시간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유리와 평행우주에서 온 유리의 '나' 역시 개인이기주의에서, 다수의 존재들을 위한 선택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지구 망해도 상관없어." (...) "너한테나 상관없겠지. 한꺼번에 확 사라지는 낭만적인 멸망 같은 건 오지 않아. 한 명씩,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비참하게 죽을 거야. 살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다가. 마지막 인간의 존엄성을 내버려 가며. 그런 미래를 방관하긴 싫어." 다시 창밖으로 나가려는 토토의 뒷모습에 유리는 물었다. "대체 왜 나야?" "내가 너고, 우리가 너니까." p.198
사람마다 한 소설에서 집중적으로 보는 부분이 다를 텐데요. 제가 이 소설에서 발견한 건 ‘나의 안전’, ‘내 사람’과 같이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날이 생계유지는 어려워지고, 거듭 흉흉해지는 세상 속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지켜야 한다는 방어적인 마음이 앞서는 게 현실입니다.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게 옳다는 걸 알지만 선뜻 그러지 못하는 유리와 유리의 '나'들 사이의 갈등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나올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 또한 책을 읽는 각자에게 달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방패처럼 단단해진 마음, 혹은 무기력해진 마음이라면 이 책과 함께 우리의 다른 결말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제안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비채)
여성의 관점이 담긴 SF 소설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신간이 올해 5월 말에 나왔습니다. 720페이지라는 분량이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역시 이번에 소개한 소설처럼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을 주목하게 하는 SF 소설이라는 점에서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함께 추천하고 싶어요.
윤선 읽고 씀
🔍 윤선 :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나고, '우리'와 맞닿는 지점을 찾아 들불레터에 소개합니다. 미술계에서 주로 활동하며 책을 만들고 미술에 대한 글을 씁니다. 아트북 <[ o o o ]>을 제작하고, 《교-차-점 交叉點》을 공동 기획했습니다. (https://brunch.co.kr/@yunsu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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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베테랑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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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희정 글·최형락 사진 (한겨레출판)
언제부턴가 월요일이 되면 가족 모두가 둘러 앉아 〈생활의 달인〉*을 시청하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그냥 하는 거'라고 말하며 능숙하게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일은 무척 즐거웠어요. '달인'이라고 불리는 일을 쑥스러워하는 달인들의 겸손함과 그럼에도 뿜어져 나오는 자부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죠. 어느 날은 우리 집의 또 다른 달인들(엄마와 아빠)이 '저건 나도 할 수 있다'며 자신의 기술을 뽐내기도 했는데, 매일 보아 온 부모님의 손기술도 누군가의 눈에는 '달인'의 기술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일을 그저 '돈 버는 일'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계기였죠.
〈생활의 달인〉에서 기억에 남는 회차 중 하나는 대학교 학생식당에서 라면을 끓여 주시는 '라면의 달인' 선생님의 영상**이었습니다. 화구와 몸이 30cm도 안되는 거리에 바짝 붙어 있는 상황에서 몸에 찬 물을 뿌려가며 라면 10개를 동시에 끓이는 조리사의 몸짓은 능숙하고 날렵했습니다. 그 분이 가진 '리듬'은 놀라웠어요. 물과 라면스프를 넣고, 끓기를 기다렸다가 면을 넣어 국자로 탁 뒤집는 장면은 흉내내기 어려운 박자감을 가지고 있었죠. '왜 이렇게 빨리 끓이냐'는 질문에 조리사는 '빨리 해야 하니까 저도 모르게' 속도가 붙었다고 답하며 줄 지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을 가리켜보였습니다. 언젠가 저도 학생식당의 라면 배식줄에 서서 땀을 흘리며 라면을 끓이는 조리사 님을 바라본 일이 있었는데요. 그 때는 라면에 맞춰져 있던 초점이 〈생활의 달인〉을 통해 비로소 조리사 님께로 옮겨 가 포커싱되는 걸 느꼈고, 그간 보지 못했던 세계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오늘 소개할 《베테랑의 몸》 역시 일의 감각이 몸이 새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세계의 해상도가 높이는 책입니다. 이 책은 몸을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로 정의하고, '베테랑의 몸'들이 기록한 일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모두 손 "뱃심 든든한 몸통, 짙게 그을린 피부, 딴딴한 장딴지 (...) 갈라진 발바닥, 청력 낮은 귀"에 새겨져 일을 하는 몸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옵니다.
이들은 일의 결과물로서 변형된 몸을 바라보며 몸의 마디마다 녹아든 자부심 또한 꺼내 보입니다. 독자는 이들의 자부심을 마주하면서,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일의 깊숙한 이면을 알게 되고, 어떤 직업에 대해,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환상, 동정과 낙인을 밀어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새로운 이해가 채워지고, 이는 곧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질테죠.
들불레터에서는 《베테랑의 몸》에 등장한 몇 명의 베테랑을 소개하고, 그들의 '일'이 처한 상황을 조명하며 수많은 '일하는 몸'들이 각자의 영역에 무사히 발 붙이고 설 수 있도록 그들의 몸과 그 몸이 선 자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 〈생활의 달인〉 : SBS에서 방영 중인 시사/교양 프로그램.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의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를 담았습니다. 제가 한창 시청하던 시기에는 월, 화 주 2회 방송을 했고, 이후 월요일 오후 9시로 방영시간이 바뀌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방송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라면의 달인' 편은 현재 유튜브에서 '생활의 달인'을 '조회수' 기준으로 검색했을 때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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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것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땅에 발을 딛고, 나와 다른 존재들과 연루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해를 부여잡아야 했다. 노동은 내내 헤아리고, 읽어 내리고, 귀를 여는 일이었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연결된 노동의 속성으로 인해, 나는 그가 다채로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것을 본다.
조리사 하영숙은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하여 8년을 근무하다 결혼으로 10여 년을 쉬고, 이후 다시 직장을 구합니다. 이때 그는 동네 인근의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는데요. 그가 조리사 일을 시작한 1995년은 학교 학생수만 2000명에 달하던 시절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버텨 일에 적응하고 체계적인 조리법을 배워갈 무렵, 학교는 매년 1명씩 사직처리하는 방침을 정하게 됩니다. 8명이던 조리사가 4명이 될 때까지 버티던 그는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2003년, 전국여성노동조합을 찾고, 그렇게 처우 개선을 외치던 세월이 흘러 그는 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조리사로 살아오면서 많이 먹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힘 쓸 일이 많으니 든든하게 먹어두어야 했던 것이죠. 덕분에 단단한 뱃심에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또, 그의 손톱은 늘 짧습니다. 급식실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위생검사를 위해 손톱을 바짝 자르던 게 이어져오고 있죠. 또, 독한 청소용품으로 이곳저곳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폐 질환을 앓기도 했고요.
- 학교 급식실 근무 6년만에 폐 결절... "살고 싶어 파업합니다" (링크)
[인터뷰] "건강하게 일하고 싶어"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전지부 노동자들의 바람
학교 급식실은 작업 공간으로서 안전하다고 말하기 힘든 공간입니다.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손과 손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 어깨, 팔과 팔꿈치, 허리 통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 작업조건 실태 및 육체적 작업부하 평가' 연구보고서) 또, 급식실 노동자들의 폐 CT 검진 결과에 따르면 약 4만명의 노동자 중 1만명이 넘는 인원이 이상 소견을 받았죠. 기름을 밟고 넘어져 다치거나 세척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는 예삿일이고,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뜨거운 증기가 조리사에게로 직접 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023년 4월 25일 교육부 및 전국시도교육청과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체결한 '2022년 단체임금협약서'에 따른 급식 조리사 등 2유형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월 191만8000원입니다. 일의 강도에 비하면 터무니 없는 박봉입니다.
- 위험한 급식실에 이론적 매뉴얼만... "현장에 답이 있어요" (링크)
산업안전보건 매뉴얼은 이러한 급식실의 위험성과 안전 증진을 위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현장과의 괴리로 인해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예컨대 급식 조리사들이 일할 때 착용하는 방수 앞치마는 몸을 완전히 보호해주지 못하는데도 화학물질 사용 작업 시 착용하는 보호복으로 분류되고 있고, 오븐기 세척시 발생하는 오븐 클리너의 '김'을 막기 위해서는 보안경이 필요하지만, 여러명이 보안경 하나를 돌려쓰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 보안경을 사용 중일 땐 없는 채로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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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좋아서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잘 살고 싶어 한다. 이 성실하고 재주 많은 로프공이 '내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을 베테랑의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로프공 김영탁은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는 일 말고 다른 일을 찾다가 건물 외벽 청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외벽 청소는 일의 위험성에 비해 단가가 낮았고, 이에 그는 실리콘 보수로 일을 옮깁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고소 (로프) 작업(높은 곳에서 실시하는 작업)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음을 지적합니다. 로프공은 자격증도, 안전 교육도 따로 없는 미통합 직업군인 건데요. 그래서 그는 늘 '추락'을 염두에 두고 일합니다.
그가 로프공 일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힘을 분산시키는 일입니다. 로프를 탈 때 힘이 들어가면 일할 때 힘 쓰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건물 외벽에서는 잡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힘의 반동을 내 몸이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힘을 빼는 게 중요하죠. 이렇게 숙달된 베테랑인 그도 공중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투성이라고 말합니다. 로프공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안전 장비를 착용합니다. 안전 장비가 아니면 안전을 지킬 방도가 없기 때문에요.
- 알바생 목숨값 1000만원이라는 법원 (링크)
2021년 9월,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 청소를 하던 20대의 김 씨가 줄이 끊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 해당 사건의 1심 판결이 나왔는데요.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원청 법인에 벌금 1,000만원을, 원청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사업주에게 각각 징역 6개월과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집행유예 선고로 인해 책임자들은 형을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김 씨의 사망에 대한 책임 비용이 벌금 1,000만원이 전부인 셈입니다.
추락을 막기 위한 추락방지대도, 줄의 마모를 막기 위한 로프보호대도 사용하지 못한 채 사망해야했던 그의 사례는 사실 한국에서 특이한 사례는 아닙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산업안전보건범죄 피해 실태 및 특성에 관한 연구)이 건설업 관련 판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가 약 80%에 달하고 있음에도 높은 집행유예율 및 낮은 벌금액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도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인천지방법원 오기두 판사가 줄이 끊어져 추락사한 29세 로프공 사건에 대해 "시정"의견을 낸 사례 등) 여전히 법원은 반복적으로 집행유예만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167조)은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사실 법정형은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에 기본형을 징역 1년~2년 6개월로 제시합니다. 여기에 감경요소가 더해지면 징역은 더 깎여나가고요. 계속되는 로프공 추락사에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담보로 일터로 나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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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 위에는 어딜 봐도 햇빛 가릴 곳이 없다. 해가 쏟아지면 받아내고, 물이 들어오면 젖어가며 이 배에 자신들의 몸을 길들였다. 그래서일까. 사진작가가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선박에 몸을 기대어 포즈를 잡는다. 자연스럽다. 가장 익숙한 곳이다.
딸 넷에 아들 하나, 총 다섯 아이를 책임져야 했던 부부는 낚시로 시작해 그물질을 하고, 직판장에 가 '다라이'를 엎어 놓으며 돈을 벌어 왔습니다. 도다리철이 되면 아픔도 잊게 할 만큼의 보상이 돌아오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선창에 내리고 난 그들의 몸은 만신창이입니다.
배에서는 그물을 끌어내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갑니다. 또, 허리를 꺾은 채 바다에 돌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허리 통증도 심하죠. 게다가 그물에 딸려오는 돌덩이, 조개껍데기, 날카로운 낚시나 유리 조각이 그들의 몸을 성할 날 없게 만듭니다. "몸에 배 가지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들의 몸은 뱃일로 다져져 다부진데요. 그럼에도 그들은 일을 마치고 나면 바닥에 가만히 누워 굳은 몸을 펴야 합니다. 그들은 가만 누워 30년 넘게 함께 해 온 뱃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가늠합니다. 요즘 어부의 자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바다 위의 크고 작은 배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바다 생물을 잡는 '결과'에만 집중함으로써 베테랑이 서야할 자리에 들어섰던 자부심과 뿌듯함마저 사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 최저임금을 국적에 따라 차별하는 이상한 나라의 이주선원 (링크)
이주노동자는 1991년부터 한국배의 선원으로 일하기 시작해 그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2020년에는 전체 선원의 44%에 달할 정도로 그 수가 늘었죠. 이주노동자의 주요 국적으로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필리핀, 미얀마 등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노동자의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어선원을 구하는 모집공고에는 '어선원 송출비용'이라는 항목이 적혀있습니다. 은행이나 송출업체로부터 대출을 받아 고액의 송출비용을 마련해 이른바 '관리업체 사후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지불하는 것이죠. 선원법은 금품을 받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송출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송출업체들과 연계된 송입업체는 식사시간 외에 일체의 휴식시간을 주지 않거나 저녁 6시부터 아침 8시까지 쉬지 않고 일하게 하는 등 강압적인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 그들의 몸을 혹사시키고, 대출 받은 송출비용의 상환을 위해서는 이렇게 일해야한다며 가혹한 노동 환경을 정당화합니다.
2018년 조업 중 양망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손등, 손가락이 골절되는 재해를 입은 35톤 어선의 이주선원노동자 W 씨는 치료 완료 후에도 장해가 남자 산재급여를 신청했습니다. 20톤 이상 선박에서 근무하는 선원의 최저임금은 2020년 기준 월 2,215,960원이었는데, W의 산재급여 산정 기준 임금은 2020년 기준 월 1,862,240원으로 적용했죠. 이주어선원이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인데요.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이 국적에 따라 차등적용된다는 점은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여실히 드러내는 단서 중 하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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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베테랑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건 베테랑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쓰는 사물(도구)과의 관계 맺음으로 시작해서 타인은 물론, 살아가는 터전까지. 우리는 노동을 매개로 이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 관계들 사이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다. 자유롭지 않으니 부끄러움은 늘 공동의 것이다. 자주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쓴다. 그린다. 일한다. 노동한다. 무엇이건 시도한다.
- p.304 「일러스트레이터·전시기획자 전포롱」 중
전포롱은 자기 자신 안에 잔뜩 들어찬 감정을 묘사할 길을 찾던 중 그림을 그리게 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그리기 시작한 작품 안에서 그는 스스로를 발견했죠. 인정 받고 싶어하는 나, 작은 틈새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나... 이렇게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은 그를 전시를 기획하며 그림을 사랑하는 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지금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걸 공간 '브레이브 썬샤인'을 운영하며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겪었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동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그는 베테랑을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자신이 겪었던 우울감과 부끄러움은 분명 부당한 감정이었지만, 그러한 감정들이 있었기에 동료 작가들을 지지하는 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오일파스텔'입니다. 오일파스텔은 발색도 좋고,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한 도구로, 전포롱 그림의 특징인 '자유로운 터치'를 구사하기에 손색 없습니다. 꾸덕한 점성은 그에게 묘한 위로를 줍니다. 손에 엉망으로 퍼진 색들은 꼭 그의 명함과도 같습니다.
- '페미' 낙인에 해고 통보, 게임 업계의 현주소 (링크)
얼마 전,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를 개발한 게임 개발사 '프로젝트 문'의 김지훈 디렉터가 공식 채널을 통해 사회적 논란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일은 게임 캐릭터의 신체 노출이 적다는 이유로 별점 테러를 한 이용자들이 '일러스트레이터가 메갈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데서 비롯되었는데요. 게임 업계는 김자연 성우의 교체사건 등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검열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특히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을 취약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일을 지키기 위해 사생활을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것은 물론, 여성이 '일'로 인정받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업계 바깥에 머물게 만들기 때문이죠.
- 예술인 사각지대 '처우개선 시급'... '빛바랜 문화강국 (링크)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문화예술계는 예술인에 대한 복지와 창작 환경 등에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오래 이어온 지원사업이 연이어 중단되는 등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죠.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의 연 수입은 평균 755만원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3년 전인 1,281만원보다 41% 감소한 금액입니다. 정부는 예술활동증명 간소화 등 '예술인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강화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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