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11월, 들불이 주목하는 신간 네 권을 소개하고, 선천성 장애 ‘천골무형성증’을 지니고 태어난 여성이자, 철학자, 한 아이의 엄마인 클로이 쿠퍼 존스 《이지 뷰티》를 집중 조명합니다.
▪️ 들불의 PICK!
-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김현미 지음 (봄알람)
-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창비)
- 『세상이 물려준 식사를 끝장내고』, 장미경 지음 (든든)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 (돌베개)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이지 뷰티』,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한겨레출판)
-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장-뤽 낭시 지음 (갈무리)
-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일레인 스캐리 지음 (도서출판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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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봄알람)
지난 레터에서 들불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탐욕스러운 일자리', 특히 전문직종의 경우 퇴근 이후에도 계속해서 업무가 가능한 노동자를 선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아이를 둔 양육자 중 한 명이 가정을 택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고 분석하며, 이때 가정을 택하며 유연한 일자리를 택하는 쪽이 주로 여성이기 때문에 성별 소득 격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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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인 김현미는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강도 높은 노동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경우 능력주의를 실현하고 자발적인 '노예' 상태가 됨으로써 일터 내 불안정성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렇듯 일-중독 상태를 자처한 여성들이 '혼자서' 겪어내는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불평등한 구조를 직시할 여력을 잃게된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터에서의 페미니즘'은 요원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저자는 청년 여성, 남성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록하며 일터를 "대안 창출이 가능한 '광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 그들의 신념을 공유합니다. 일터에서의 페미니즘을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일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살아낸다는 것,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자기 추궁적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려는 의욕도 매우 높다. 이 책은 노동, 일상, 정체성을 잠식해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 있고 경쟁력 있는 개인이 되고자 하는 동시에 구조적 불평등과 페미니즘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은 일터 여성들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쓰였다." (p.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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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참여를 위해 제 책을 쓰게 되면서, 주어를 '나'로 두는 일의 곤혹스러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글 쓰는 행위를 줄곧 나와 착 달라 붙어야만 가능한 일로 여겼던 제게는 낯설고 어려운 경험이었는데요. 이때 처음으로 어떤 글은 나를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의 화자인 '나'는 상처를 받고 괴로운 시기를 보내던 중, 정신과 상담의의 권유를 통해 '일기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라고 시작했더니 한줄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죠. 그래서 그는 '시옷'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흔히들 '기록'을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이때의 기록 역시도 내 안으로 깊이 파고들며 침잠하는 행위가 아닌 먼 발치에서 나를 관찰하고 돌아보는 행위라면, '쓰기'라는 것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멀찌감치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본 강의 소개 문구였다. 무엇과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도치가 물었다. 내가 기록한 나와. 내가 기록 속에 가두어놓은 나와. 여전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나와. 림자는 신들린 듯 대답을 쏟아내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왠지 양팔에 소름이 돋았다. 헤어지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기록하세요. 어떤 수치심도 글로 옮기면 견딜 만해집니다." (p.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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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니즘'만큼 많은 편견과 오해에 둘러싸인 신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채식을 한다고하면, 아직 비거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한 마디씩 듣곤 하죠. 육식을 하지 않으면 기운이 나지 않는다거나 근육이 붙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들불레터와 왠지 잘 어울리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은 '비건 지향'을 하고 있는 7인의 비건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비거니즘을 향한 몰이해와 편견을 깨부수고 채식이라는 행동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한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비건을 오랫동안 실천해온 '비건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채식,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내 안의 어려움을 해소해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완벽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페미니즘과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면’, ‘학생이라면’, ‘엄마라면’이라는 전제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또 ‘비건’이라는 자격이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이런 고민들은 계속하게 돼요. 왜냐면 취향이 아니라 신념이니까, 신념은 자신을 계속 제련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이거라도 하니까 어디야 싶은 부분도 있지만요." (p.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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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를 보다가 '이제 예전과 같은 가난은 사라졌다'고 단언하는 문장을 마주친 일이 있었습니다. 가난이 '사라졌다'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문장인지, '예전과 같은 가난'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것인지 헷갈리더라고요. 가난이 정말로 사라졌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빈곤 문제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일테고, '예전과 같은' 가난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쓴 문장이라면 가난의 수준마저도 나누어 이해하며, 마치 진실게임처럼 진짜 가난, 가짜 가난을 구분하고자 한 것처럼 보이니까 문제일 텐데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저 문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10~20대가 얼마나 돈을 많이 쓰는지를 지적하며, 그들을 섣불리 '(이전보다) 풍요로운 세대'로 진단했습니다. '흙수저', '청년빈곤'과 같은 말들이 오랜 기간 한국사회의 가난 담론을 지배했었다는 걸 떠올려본다면, 그들의 세태 분석은 꽤 놀랍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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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빈곤 대물림을 겪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은폐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가난'의 문제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피고, 한국사회의 빈곤, 노동 문제 등을 분석하며 정책의 방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삶에 여러 제약을 경험하며 가난을 겪어야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를 무시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p.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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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한겨레출판)
'아름다움'에 관해 논하는 책 중 제가 자주 찾아 읽는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한 권은 장-뤽 낭시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으로, 낭시가 몽트뢰유 연극센터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강연들〉 시리즈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낭시는 "아름다움은 진실의 섬광이다"라는 문장에 기대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에서 소환하고 지향하는" 진실이야말로 아름다움이라고 말합니다. 또,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형상이라기보다 불안정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미지에 가깝다고 이야기하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책으로는 일레인 스캐리의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스캐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곧 정의로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 삶의 반경을 넓히며, 우리를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이 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분배적 속성을 가진, 평등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하죠.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이 가지는 공통점은 '정의'와 '아름다움'이 제목에 함께 배치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정의와 아름다움은 대치되거나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공존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름답다는 건 오직 미학적 경험(예술적 소양이나 취향 등)에 의존하는 혹은 (어쩌면 폭력적인) 응시를 통해서만 가능한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협한 논의가 지배적인 상황에서(특히 자본주의나 소비중심주의와 결합하면서 아름다움이 소비만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이들이 아름다움을 '정의'의 문제와 함께 논한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단어들로는 '대칭', '조화', '완결성'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또, 이미지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아 맨(인체 비례도)나 모나리자 같은 작품, 한국의 유명 연예인의 얼굴, 어느 관광 명소의 모습을 떠올릴 테고요. 이 단어들과 이미지는 보통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눈물, 땀, 피로 얼룩진 이미지,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고 기울어져 있는 모습, 절뚝거리는 사람의 뒷모습, 치수에 맞지 않아 꽉 끼는 옷, 끝없이 부글거리는 배 속, 이질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게 기어가는 생물... 이러한 단어들은 아름다움과 연결이 되나요? 물론 누군가는 이 역시 아름답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시대가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아름다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설계, 치수, 양식과 같은 규율하는 힘들에 의해 포착되고 고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법칙으로 축약될 수 있었다. 치수와 비례는 어디에서나 아름다움과 미덕으로 인식됐다. 플라톤은 "아름다움, 비례, 그리고 진실은... 하나로 간주된다"라고 썼다." - p.37, 《이지 뷰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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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알려진 코모 호수 클로이는 이 장소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한, 아름답게 조각된 빛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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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은 예측 가능하다. 대칭을 볼 때 내 마음은 편해지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단지 정확한 치수의 결과'라는 말은 미적 경험의 신비를 축소시킨다. 몸 전체로 뭔가를 인식하는 경험, 아름다움에 맞춰진 아주 오래된 감각, 미와 미의 불협화음을 물리적으로 포착하는 행위. (...) 나는 예술 작품과 사람들, 아이디어, 소리, 폭풍, 문장, 일몰, 시내와 강과 바다, 색채, 노력, 실패, 이별, 고통 앞에서 그런 고도의 집중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것들 중 측량 가능한 게 얼마나 될까?" - p.37-38, 《이지 뷰티》
《이지 뷰티》의 저자인 클로이 쿠퍼 존스에게는 선천성 희귀질환인 '천골무형성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그는 휘어 있는 척추, 균형이 맞지 않는 걸음걸이, 불안정한 고관절을 가지고 있죠. '무형성증'이라는 병명이 내포하듯 이 병은 천골을 '누락'한 병입니다. 그는 그의 몸에서 천골이 누락된 것처럼, 삶에서도 줄곧 '누락'의 경험을 합니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누락의 경험 사이사이 그는 아름다움을 떠올려요. 자신과 같이 '누락됐다'고 여겨지는 존재가 '아름다움'과관계 맺는 방식이란 무엇일까 고민하죠. 그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누락과 아름다움의 경계에는 욕망과 사랑, 섹슈얼리티, 모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은 대칭, 조화, 완결성과는 다르게 전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한 노력과 에너지를 기울여야 발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지 뷰티》는 바로 그러한 노력의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다시 앞서 말씀 드렸던 낭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낭시는 아름다움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에서 소환하고 지향하는 진실이라고 말했는데요. 낭시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욕망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클로이 쿠퍼 존스는 자신의 '기형적인' 몸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섹스의 대상으로 부적합하다고 여기는 이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타고나는 것, 불변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클로이가 이러한 조건에서 벗어나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좌절과 모욕, 수치힘을 안깁니다. 클로이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감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구체적인 요소들의 적절한 배열"(p.198)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 알아 차립니다. 그러면서 특정 요소가 누락된, 적절치 못한 배열을 가진 몸은 영영 괄호로 묶이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닫죠.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성과 유머, 기술을 자신의 추함을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까지 클로이에게 사랑, 섹스, 욕망은 상대가 자신의 몸을 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아닌 내면의 것을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사랑고 섹스도 가능하다고 믿었죠. 하지만 지금의 남편인 앤드류는 그에게 (사랑과 섹스에 대한) 욕망이란 몸을 다시 봐주고, 몸에 대한 갈망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여기에서 아름다움은 발견됩니다. 집요한 관찰, 끝없는 갈망이라는 욕망을 통해, 앤드류와 클로이 사이에 둘만의 진실을 탄생시킴으로써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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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는 이어 비욘세 콘서트에 갔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곳에서 클로이는 자신을 섣불리 걱정한 다른 관객과 보안요원에 의해 구급대에 실려나갈 위기에 처합니다. 그때 한 구급요원이 거듭 괜찮다고 말하는 클로이를 향해 제안합니다. 무대 가장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는 편이 어떻겠냐고요. 그렇게 클로이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현재로 데려다 놓는 압도적인 '비욘세 경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클로이는 이 경험을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보샌켓이 말한 '어려운 아름다움'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어려운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가 "복잡함과 긴장, 그리고 폭넓음"을 만난다고 주장했죠. 그는 보샌켓의 이론을 떠올리며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려했던 복잡함과 긴장에 대해 생각합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지난날, 열린 공간에 자신을 데려다 놓지 않으려 했던 완고한 태도로 인해 잃어버린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자신의 아이인 '울프강'이 태어날 때 느꼈던 감정을 상기합니다. 한꺼번에 소화하기에는 복잡하고 무거웠던 감정, 가슴을 누르는 통증과도 같은 그 감정을 말이죠. 비욘세 경험은 웅크린 채 꽁꽁 숨기려 했던 클로이의 중심을 아이에게로 옮겨 두게 만듭니다. 일레인 스캐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아름다움이 삶의 반경을 확장하고, 나의 중심을 주변 인물에 두는 것이라면 클로이는 이제 막 아름다움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를 통해, 그와 함께 경험하는 현재라는 놀라운 선물 속에서 말이죠.
"보샌켓의 말에 따르면 어려운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복합적인 것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걸 전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진정으로 복잡한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감상하려면 그것을 천천히, 조금씩 소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한꺼번에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드러내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 p.266, 《이지 뷰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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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름다움과 추함, 욕망과 고통 사이에서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여성이 알을 깨듯 벅찬 걸음으로 세상을 통과해 나가는 작품이에요.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 낯선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향한 혐오의 시선을 느낍니다. 하지만 '몸'으로 낯선 곳을 통과하는 걸 멈추지 않죠. 여기에서 그의 아름다움은 새롭게 주조됩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고통이 두려워 나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직면하고, 그것을 나의 언어로, 나의 진실로 해석해내는 과정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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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낭시가 6~12살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 관한 강연을 진행하고 이를 기록한 책입니다. 낭시의 기존 작품들과 달리 비교적 쉽게 이해가 가능한 책입니다. 특히 강의 말미에 진행한 질의응답의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질문들이 제법 등장하기 때문에 강의 내용보다 더 얻는 것이 많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이 책에서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아름다움'에 관한 강연 내용입니다. 낭시는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인용하며 '아름다움'에 관한 강의를 마치는데요. 여러분도 이 인용문으로부터 아름다움에 관한 나만의 철학적 사유를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내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나는 아름다움이 몹시 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름다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 그것이 지나가고 나서야, 오늘 나는 아름다움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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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일레인 스캐리
《고통받는 몸》(오월의봄)으로 알려진 일레인 스캐리의 작품입니다. 앞서 소개한 《이지 뷰티》에는 일레인 스캐리가 야자수의 아름다움을 놓친 일화가 언급됩니다. 이때 스캐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우리의 오류를 지적하는데요. 첫째는 전에 아름답던 것을 더 이상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깨달음, 두 번째는 항상 아름답다고 여겨질 자격이 있었던 물체에 대해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다는 것입니다. 스캐리는 야자수를 보며 자신의 실수(후자의 실수)를 깨닫습니다. 스캐리는 이때 발생하는 인식의 변화, 오류의 교정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에 마치 그 인식 자체(그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가 뇌에서 썩는 것만 같다... 그 인식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무너지거나 분해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체계는 '뇌가 썩는 것만 같은' 과정을 거쳐야 변화가 가능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감각되는 아름다움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우리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확장하기 위해 기꺼이 변화를 감수해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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