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들불이 주목한 신간 네 권을 소개하고, 최유안 작가의 신작 『먼 빛들』을 『사람, 장소, 환대』와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 들불의 PICK!
-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마리아 투마킨
- 『휘말린 날들』, 서보경
- 『결핍으로 달콤하게』, 에밀리 디킨슨
- 『내 생애 이야기 1~7』, 조르주 상드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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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투마킨 지음, 서제인 옮김 (을유문화사)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감각, 느낌, 통찰, 환상 같은 것은 모두 개인적인 것이며, (...) 우리는 경험에 대한 정보를 경험할 수는 있지만, 경험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 역시 타인에게서 제공되는 정보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일 겁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죠.
마리아 투마킨도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자기 만족적인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그럼에도 끊임없이 시도할 때 '연대'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에서 조각난 이야기들을 섞어 쓰는 방식을 채택해 보여 줍니다. 인간의 고통을 쉽게 추적하거나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구조적으로 나타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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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마킨의 작품에 대해 몇몇 비평가는 "이 책이 대책 없이 암담하다"고 평했다는데요. 투마킨은 (그것이 다소 암담할지라도)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모두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연대가 가능하다고 믿으며 이렇게 씁니다.
"'그 사람이 나일 수도 있었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물음에 주어진 답을 해독하는 데에는 보통 영겁의 시간이 걸리지 않던가? 한 인간에 관한 사실들은 대개 타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중 대부분은 애초에 타인들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무시하면 사람들은 상징의 집합체로 변해 버린다. (...)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의 어떤 점이 우리와 다른지 알아차리는 것이며, 또한 그 다른 점을 굳이 비틀어 숭고함에 가까운 무언가로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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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경 지음 (반비)
'휘말리다'는 물살이나 감정, 사건에 완전히 휩쓸리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단어죠. 그래서 《휘말린 날들》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궁금증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휘말리는 감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어떻게 휘말리게 될까 하고요.
이 책은 서문 〈앞줄에서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합니다.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인 저자는 앞줄에서 먼저 '감염'이라는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감염을 둘러싼 문법과 어조, 이들이 겪은 상실과 애도의 기억, 변화를 위한 통찰 등을 서술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휘말리는 일 자체를 두려워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무지한 상태로 머무는 순간이 더 두렵다고, 적극적으로 휘말리고 연루될 때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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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권력을 전복하고, 공동체의 책임을 일깨우는데 '언어의 (재)전유 또는 재정의'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통해 '휘말리다'라는 단어 역시 제게 두려움보다는 용기나 책임과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 되었는데요. 《휘말린 날들》은 앞서 용기를 내 주었던 HIV/AIDS 감염인들과의 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휘말리는 삶을 다짐하게 되는 좋은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앞줄의 사람들은 바삐 숨거나 도망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외려 뒷줄의 사람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는 이들이다. 해줄 이야기가 있다는 마음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끝없이 달아나려는 탈주의 욕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용기가 있다. 전할 이야기가 있을 때, 앞줄은 버려진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 먼저 겪은 사람들의 자리, 다음 사람이 홀로 고통받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의 자리이다. 경계선이 결정하는 운명을 바꾸고, 함께 있을 장소를 찾는 사람들의 자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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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지음, 박서영 옮김 (민음사)
전에 하재영 작가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를 소개하면서, 이 책의 제목이 된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문장이 에밀리 디킨슨이 쓴 편지에서 가져온 것임을 설명한 바 있는데요. 이때 디킨슨의 서간집이 국내에 번역·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었어요. 그러다 얼마 전, 미국 시를 전공한 박서영 박사에 의해 국내 최초로 디킨슨의 서간집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찌나 반갑고 기뻤는지 몰라요.
디킨슨은 편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편지는 제게 언제나 불멸처럼 느껴져요. 그것은 육체를 가진 친구 없이 마음만 홀로 있으니까요. 우리의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태도와 억양 덕분에, 혼자 걷는 생각에도 유령과 같은 힘이 깃드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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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편지는 이제 정말 특별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메신저로, 이메일로, 소셜미디어로 계속해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지금, '편지'는 낭만적이지만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편지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오늘도 친구에게, 연인에게, 가족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디킨슨이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과감하게 써 내려가며 "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기쁨을 누렸던 것처럼, 진실한 마음과 기쁨은 오직 편지를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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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 지음, 박혜숙 옮김 (나남출판)
페미니즘 문학사를 조명할 때마다빠짐없이 호명되는 작가 조르주 상드의 자서전이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되었습니다. 상드는 여성을 속박하는 문화적 규범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 그가 겪은 개인적 경험, 그리고 19세기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이 《내 생애 이야기》에 엮여 서술되었다고 하니 그 내용이 무척 궁금해져요.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또 투사로서 그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요? 연말을 맞아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우리의 삶도 전반적으로 회고해보는 시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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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드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상드의 (역사적) 중요성을 확신했다. 나는 상드의 문학작품들을 읽었지만, 역사학자로서 서간문과 자서전에 더 흥미를 느꼈고, 이어서 그녀의 정치적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상드는 귀족인 부친과 평민인 모친 사이에 태어난 사회적 혼종이었다. 그런 출생의 복합성 때문에 그녀는 사회적 불평등에 눈을 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연민을 품었고, 자신을 대변하지 못해 잊힌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날카로운 의식을 지녔다. 상드는 “혁명가로서 인내하고 끈질기되, 테러리스트는 되지 말자”라고 강조했다. 그녀가 보기에, 민주주의는 단숨에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힘든 학습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다. 그녀는 민주주의 기초로서 시민 교육을 먼저 제안했다. 시민들의 정신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해 오랜 시간을 두고 분명히 여러 세대를 거쳐야 하는 정치의식의 함양을 뜻했다." ― 미셸 페로(역사학자. 파리 디드로대학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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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 최유안 (&앤드)
어릴 땐 나이가 들면, 많은 문제들을 복잡할 것 없이 심플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세상에 심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복잡했던 문제들은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는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고, 도처에는 알다가도 모를 마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차가 쌓이면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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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저처럼 우왕좌왕하며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었고, 권력을 욕망하며 질서 그 자체가 되기를 원하기도, 질서에 맞서며 혁신을 불러 일으키고 싶다는 야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여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여자들은 조직의 전통과 관습, 고정된 문법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가늠하고 그에 속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관습을 수용하든 그에 저항하든, 조직 안에서 표류하는 존재가 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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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표지에 삽입된 이미지는 빛과 관련된 사진을 찍는 Nobu Tanaka의 작품입니다. (사진: Nobu Tanaka 인스타그램 @nobutanaka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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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은 제가 만난 여자들처럼, 질서 안팎의 관습에 부딪히고 표류하며 끝없이 자신의 '자리'에 관해 고민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각 챕터의 제목은 이야기의 화자인 여은경, 최민선, 표초희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세 편의 이야기는 각자 다른 사연을 소개하지만, 서로 포개어지고 연결되면서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기도 합니다. 독특한 점은, 이들 모두가 중간관리자 이상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여성들이라는 점입니다. 대학교수인 은경, 문화예술 행정기관 센터장인 민선, 비엔날레 예술 감독인 초희는 언뜻 보기에 성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역시 계속해서 자신들을 밀어내려고 하는 공고한 질서 앞에서 무력감과 초조함을 느낍니다.
"그것이 권위면 따르겠다는 김 교수, 전통과 비전통이란 늘 번복된다던 노 교수, 전통이라는 것에 목이 조일 것 같다던 황예은, 유교와 전통과 풍습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이 지킬 개념이라 생각하며 평생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상들께 부지런히 제사를 올리는 은경의 부모와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은경과 그 모든 개념이 의미 없어진 것만 같은 이 모든 상황이, 그렇게 액정의 불빛을 따라 교차하는 느낌이었다."
《먼 빛들》은 여은경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은경은 미국에서 한국계 최연소로 로스쿨 교수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의 어느 대학 총장의 제안으로, 한국에 와 교수로 부임하게 되는데요. 그를 환영하는 듯 보이는 교수들의 말과 행동에서 은경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수수께끼 같은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갈팡질팡하며 곤란해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은경은 대학원생인 황예은에게서 "대학 교수들의 관료주의를 고발하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은경이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로, 그가 평등이나 사회 정의 같은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죠. 이후 은경은 대학원생 노동권에 관한 문제를 가시화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료 교수들의 반응은 냉담할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은경은 '권위'라는 것에 대해, 그것이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 조직에서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거듭 고민합니다.
한편,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최민선은 문화원장인 성해윤의 제안으로 30대 후반에 문화예술 행정기관의 센터장이 된 인물입니다. 민선은 입사동기인 은해와 해윤의 뜻을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통해 조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관계'의 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민선은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쪽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낍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인 비엔날레 예술 감독인 초희는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점차 나이에 걸맞는 자리에서 더 넓은 범위의 문제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요구하죠. 초희는 이에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관습을 벗어나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민혁과의 만남에서도 자주 드러나는데요. 그 나이대라면 응당 처해야 할 상황에서 조금 비껴나간 듯 보이는 민혁의 모습에서, 관습적인 것으로부터 조금 물러나 있는 민혁의 모습에서 관습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괴로워하죠.
《먼 빛들》의 세 인물은 일터와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예리하게 감각하며, 자신이 선 자리가 어디쯤인지 끊임없이 가늠하는 여자들입니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채 서게 된 지금의 그 자리는, 마치 그들을 환대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인지 그들은 때로 위태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지점에서 멈춰서지 않습니다. 질서, 전통, 관습에 붙들리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하죠.
"책을 쓰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와 그것의 전복에 주목했다. 질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원하거나 원해진 탓에 인물들은 중심에서 멀어졌다. 자기 앞에 놓인 질서를 끊임없이 파헤치며 고민하는 사람들, 어떤 모습으로든 결국 자기 자리에서 한 발 떼어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여러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그것은 이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내게 주어진 정체성이기도 했다."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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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를 쓴 김현경은 여성, 장소, 자리(Woman, place, and the social), 이 세 단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물으며, 여성이 장소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고, 사회적인 것은 여기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논의로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공공장소에서, 공원이나 카페나 기차역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시민권을 가진 거주자들뿐 아니라 잠시 머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과 동등한 정도로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였다."고, 심지어는 집에서조차 여성은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여성의 지위 향상이 이루어진 현 시점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조건적"임을 지적합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나의 진짜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하는 여성의 수가 줄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 역시 전보다 환대 받게 되었다는 분석은 과장되었으며, "멋진 옷과 가방도, 자격증도, 명패와 직함도 완전한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다"고 강조하죠. "몇몇 성공한 여성이 있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그렇기에 여성이 자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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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 우연히 한 장소에 모이게 된 그들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계속해서 흔적을 남기는 '빛'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나의 자리를 감각하고, 조정하는 일 역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고 고단해서 영영 손에 잡히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노력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분명한 흔적으로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독자는 온기를 품은 채 서서히 번지고 스며드는 빛처럼, 인물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한 발 내디딘 자리에 지금까지의 질서와는 다른 장면이 존재하고 있을거란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사람, 장소, 환대》의 서문에서 저자는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자리, 삶의 자리, 마음의 자리에 골몰하며 어떤 방향으로든 한 발 떼기로 마음 먹은 《먼 빛들》의 인물들처럼 우리가 지금 우리의 자리에 대해 고민하며, 작고 단단한 거품 안에 머물지 않고 미약하게나마 한 발짝 나아가려 시도를 한다면 우리의 자리는 조금 더 넓어질 지도 모릅니다. 나의 '자리'를 앞서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그리고 그들이 나아간 방향을 짐작하며 내 삶의 궤적을 따라 그리고 싶은 분이라면 지금 최유안 작가의 《먼 빛들》을 읽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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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는 일하는 여성의 야망과 삶을 조명한 드라마입니다. 이 작품은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자가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의 권모술수에 의해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주고, 여성이 일을 하면서 어떠한 편견과 혐오에 맞서야 하는지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여러 여성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인공 고아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고,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고민은 《먼 빛들》의 인물들이 품은 고민과 일면 닮아 있어요.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운 지점도 많았던 드라마지만, 《먼 빛들》과 함께 가볍게 보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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