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불레터에서는 급식노동자 이혜경 님의 산재사망 사건을 조명하고, 산업재해와 관련한 도서 두 권을 소개하였습니다. 또, 전후 영국의 최고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뮤리얼 스파크의 작품을 소개하고,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운전석의 여자』의 역자 이연지 번역가의 인터뷰를 함께 실었습니다.
🗄️ 들불 캐비닛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강동묵 외
- 『이것도 산재예요?』, 노동건강연대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도서 증정 이벤트)
- 『운전석의 여자』, 뮤리얼 스파크 (문예출판사)
-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뮤리얼 스파크 (문학동네)
- 『메멘토 모리』, 뮤리얼 스파크 (푸른사상)
🔥 들불의 새로운 소식들
-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읽기 행동 with 사단법인 아디
- 『오늘의 기분은 무슨 색일까?』 워크숍
- 루이즈 글릭 시집 완간 기념 강연회 (들불레터 구독자 할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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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간 성남의 한 고등학교의 학교급식실에서 근무했던 학교급식노동자 이혜경 님이 폐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경기교육청은 이혜경 님의 추모 분향소 설치와 추모 기자회견을 막고, 추모를 위해 모인 노동자들에게 구속, 영장발부 등을 운운하며 협박을 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조 간부 2명이 연행됐고, 간부 1명이 응급실로 이송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내 학교급식실에서 발생하는 급식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보고된 사례만 매년 500건이 넘습니다. 2021년에는 351건, 지난해에는 515건으로 무려 46%나 늘었고, 올해 6월 말까지 255건이 보고되고 있죠.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14개 시·도교육청 급식종사자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폐암 의심' 또는 '폐암 매우 의심' 판정을 받은 급식노동자가 139명(0.58%)이었다고 합니다. 이 중 추가 검사를 통해 31명이 폐암 확진을 받았고요. 이 검진 결과가 서울, 경기, 충북 등 인원이 많은 지역이 제외된 결과라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이에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는 지속적으로 급식실 환경 개선, 인력 충원 등을 강력 요청했으나, 교육 당국의 미온한 대처로 피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산업재해와 관련하여 정부와 사법부는 이를 회피하거나 부인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 원청과 경영책임자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다른 사례로, 오늘 대법원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원청, 하청 관계자들 사건에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와 서부발전에 무죄를 확정 지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당시 김씨는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는데요. 업무상 주의 의무 및 산업안전보건법상 요구되는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사고 원인이었지만, 원청과 김씨 사이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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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묵 외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나름북스)
10명의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펴낸 직업병과 산업재해 사건들에 관한 책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열사병, 수은중독, 석면 관련 질환, 근골격계 질환, 백혈병 등 한국사회 노동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요 질환과 함께 이를 유발한 노동 환경에 주목합니다. 또,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산업안전보건 체계와 관리감독의 허점을 조명하고, 산업재해의 인정을 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도 다루죠. 노동자의 몸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의 과정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삼성반도체 제보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작업환경 문제나 자기 질병에 대해 말하는 그 간단한 일조차 이렇게 공포와 긴장을 견뎌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공유정옥) 그들이 산업폐기물 같이 되는 게 싫다. 산업은 '합리화'하고 '강제 조정'할 수 있지만, 사람은 아니다. 사람 몸에 남은 상처나 경험은 그렇게 할 수 없는 법이니까.(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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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건강연대 지음 (보리)
주변을 살펴보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한 사례만이 산재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아픈 노동자가 유별난 것처럼 구는 문화 때문에 아픈 사실을 숨기고 산재처리를 꺼리는 경우도 많죠. 《이것도 산재예요?》는 이렇듯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모든 걸 노동자의 책임으로 떠넘겼던 사례들, 이에 애써 숨겼던 아픔들을 '이것도 산재'라고 짚어내며, 산업재해 전반에 관해 제대로 뜯어보는 작품입니다.
"산재보험 제도는 회사가 허락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권리라는 것을 모르는 까닭은 정부가 알리지 않아서입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학교에서도 가르치면서 친숙한 말이 되어야 할 텐데요. 학교에서도 잘 가르치지 않고 국민들에게 홍보하지도 않습니다. 산재보험 이용은 기업의 허가사항이 아니라는 것, 개인의 권리라는 것을 학교교육, 직업교육에 포함시켜 널리 알려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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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의 여자』
뮤리얼 스파크 지음, 이연지 옮김 (문예출판사)
《운전석의 여자》는 1970년 뮤리얼 스파크가 쓴 〈운전석의 여자〉가 수록된 중단편집입니다. 스파크는 표제작인 〈운전석의 여자〉를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기도 했는데요. 다소 낯선 형식과 서술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리제'라는 여성 주인공이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남부의 한 휴양지로 떠나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운전석의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운전하는 여자'는 현대에도 여전히 멸시와 위협을 당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큰 차를 운전해야 한다'는 등의 팁이 돌기도 하죠. 외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투르크메니스탄처럼 아예 여성 운전을 금지했던 나라들도 있죠.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에서야 여성 운전을 허용했고,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는 여전히 여성 운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의 억압이 '운전'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지금, '운전하는 여자'는 직접 핸들을 쥐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향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주체적인 여성상을 대변하는 존재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제목이 '운전석의 여자'라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운전석에 앉은 주인공 '리제'가 어떤 인물인지 단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단서가 되니까요.
리제는 매치가 되지 않는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밝은 표지의 책을 들고 다녀 타인의 비웃음을 삽니다. 또, 존재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찾아 다니며 여러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데요. 이처럼 리제가 사람들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 믿는 가부장제의 문법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동안, 사람들은 리제를 끊임없이 비웃고 놀립니다. 그의 존재는 남성들에게 때로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남자들에게 리제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또 어떤 남자들에게는 통제가 필요한 여성으로 비춰 집니다. 리제의 욕망을 통제하고, 응징을 가하려는 남성들은 리제를 강간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리제가 죽음마저도 적극적으로 욕망한다는 점입니다. 기행을 펼친 끝에 리제가 뱉는 말은 "나를 죽여요."입니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리제의 욕망, 죽음마저도 '핸들링'하고자 했던 기이한 주체성에 낯섦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리제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리제의 기이한 행적을 이해해보기 위해, 《운전석의 여자》를 옮긴 이연지 번역가와의 짧은 인터뷰를 준비해 봤어요. 번역가 님께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운전석의 여자》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함께 추천해주셨는데요. 〈운전석의 여자〉 이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신 분들은 레터 하단의 링크를 통해 인터뷰 전문을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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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ame Muriel Spark, Scottish novelist (May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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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잠깐! 뮤리얼 스파크는 어떤 작가인가요?
스코틀랜드의 노동자 이민 가정 출신의 작가 뮤리얼 스파크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고,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의 모델이 되기도 한 케이 선생에게서 작가가 될 것을 권유 받습니다. 이후 교사, 백화점 사무원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이혼 후 《포에트리 리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1951년 〈옵서버〉의 단편 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하게 되면서 소설가 경력을 쌓기 시작했는데요. 《메멘토 모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등을 출간해 국제적 명성을 쌓았으며, 1970년 스파크가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은 《운전석의 여자》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스파크의 작품에는 여러 흥미로운 지점들이 발견됩니다. 우선, 스파크의 작품에는 다양한 유형의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작가 본인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한 적이 없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거나 여성이 주요 인물로 자리한다는 점, 또 편집자 시절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의 서간집을 편집했던 점을 미루어 비평가들은 그를 "여성의식이 강한 작가"로 평하고 있습니다. 또, 김정매의 논문 「뮤리엘 스파크의 여성 인물들 - 그 유형과 종교성」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시 창작에 매진해 왔고 이 때문에 소설 장르를 시보다 "열등한" 형식으로 생각했다고 해요. 그러나 카톨릭교로 전향하면서 소설을 집필하는 데에 스스로 의의를 찾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여러 비평가들은 그녀의 생애를 예술적 진실과 신앙을 융합시키려 한 일련의 긴 시도였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그의 작품은 "복지국가, 세속화, 탈식민, 반정신분석"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현대세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미래의 삶에 대한 성찰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김희선, 「신을 연기하기: 뮤리엘 스파크 소설의 자아반영성, 종교, 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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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역자 선생님께서 직접 출판사 측에 『운전석의 여자』 출간 제안을 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 책의 출간 제안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연지 번역가 코로나 기간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운전석의 여자』 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해서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은 독자분에게 뮤리얼 스파크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것이 생겼는데,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책상 앞에 앉아 첫 장을 번역한 다음 출간 제안을 드렸어요.
들불 뮤리얼 스파크는 여러 책을 출간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은 작가이지만, 한국에서는 그의 명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선생님께서는 뮤리얼 스파크의 어떤 점을 애정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이연지 번역가 처음 『운전석의 여자』를 발견(?)하고 이 책에 사로잡혔던 순간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다른 책을 검색하던 중에 추천 도서로 떴었거든요. (...) 책에 대한 설명을 읽지 않고 바로 미리보기로 첫 페이지를 쓱 훑어보았더니, 원피스를 벗기라며 옷 가게에서 난동을 부리는 여자와 당혹스러워하는 점원이 등장하더라고요. 막연하게 봉변을 겪는 이 점원이 주인공인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 장 뒤로 넘겼는데, 화자의 시선은 제 예상과는 달리 점원이 아닌 옷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든,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여자를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측을 180도 벗어난 진행에 놀란 동시에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들어 단번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바로 책을 주문했고,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손에서 정말 내려놓지 못하고 읽었어요. (...) 근래 체험한 중에 가장 강렬한 독서 경험을 선사해 준 작가인지라 그 뒤로는 어디를 가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소개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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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석의 여자」의 서술방식과 스파크가 주인공 '리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사회의 진실
들불 이 책의 표제작인 「운전석의 여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스파크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집필한 최고의 소설이자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았다고 하는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리제’는 신경질적이고, 광적인 여성입니다. 읽다보면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싶은 순간들이 여럿 등장해요. 그의 선택에 어떠한 의도가 있는 건지 전혀 드러나지도 않고요. 이러한 설정에는 독특한 서술방식도 한 몫하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미래에 리제가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중간중간 언급하고, 다시 현재(혹은 과거)로 돌아와 리제의 행동을 멀리서 관찰하듯 서술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리제의 속내를 알 수 없죠.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한편, 그의 마음을 추측하기 위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서술방식이 어떠한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연지 번역가 일단 초반에 리제가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미리 언급함으로써 이 소설은 독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가 아니라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 궁금증을 동력 삼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요, 그런 점에서는 전형적인 후더닛(Whodunit) 장르의 문법을 따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말씀처럼 리제의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서술 방식은 독자들에게 제삼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 바로 이 지점에서 『운전석의 여자』는 장르의 전형성을 벗어나게 되고요. (...) 이런 면을 종합해 봤을 때 뮤리얼 스파크는 실험적 소설과 대중적 소설 모두의 이론과 작법에 통달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특성을 그대로 적용하고 어떤 특성을 비틀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실천에 옮겼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전형성을 벗어난 서술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결과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들불 광기에 사로잡힌 여성을 이 사회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또 그러한 여성을 위협하는 위험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 해설에서 필리스 체슬러의 《여성과 광기》를 언급하시면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나 학대와 관련된 후속 연구들이 있었던 점을 짚어주신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스파크가 ’리제‘라는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사회의 진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연지 번역가 말씀처럼 정신적 문제가 확연한 리제를 한편에서는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로 여겨 두려워하고, 한편에서는 손쉬운 범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소설 속에서 리제는 두 차례나 강간의 위험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는데, 이 두 강간 미수범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 결국 리제가 사체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 경찰의 수사가 두 남자 뿐 아니라 리제의 진짜 살인범에게까지 도달하고, 또 리제의 신원까지 밝힐 수 있었던 건 모두 리제가 남긴 ‘자취’ 때문입니다. 리제의 옷차림, 관계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밝은 표지의 책, 그리고 각종 기행 모두가요. (...) 이런 수단을 택해야 했던 이유가 수많은 신원 미상의 살인 피해자 중 하나, 혹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춘 피해자 중 하나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면 우스꽝스럽다기보다는 처절하게 느껴지죠. 자신 같은 존재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악의, 또 공권력의 무심함과 무능함, 이 모든 것을 살면서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으리란 것도 짐작해 볼 수 있고요. 그런 점에서 ‘리제’라는 여성은 작게는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여성, 크게는 사회적 약자가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가시성을 확보할 수 없는 사회상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70년대에 쓰인 소설이 시사하는 바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층 더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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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가 영업하는 『운전석의 여자』 속 단편들!
들불 『운전석의 여자』 에는 표제작 외에도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요. 이 중 역자 선생님께서 특히 애정하시는 작품이 있다면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 주세요.
이연지 번역가 (모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굳이 한 작품을 꼽자면 「이교의 유대 여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번역하는 동안 줄곧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했거든요. 제 외할머니는 소설 속 화자의 할머니와 닮은 점은 없으세요. 불교 신자셨고, 곱게 단장하는 걸 좋아하셨고, 여성 행진에 참여하신 적은 더더욱 없고요. 그런데 뮤리얼 스파크의 자전적인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할머니와의 추억을 그리는 애정 어린 어조 때문인지, 아무튼 번역하며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몇 차례 울기도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이 작품에 애착이 있습니다.
들불 끝으로 『운전석의 여자』를 통해 뮤리얼 스파크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될 독자들에게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연지 번역가 운전석의 여자를 재미있게 읽은 분도 계시겠지만, 끝까지 난해함만을 느낀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런 독자분들께 뮤리얼 스파크가 반전을 숨긴 작가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운전석의 여자만 읽고 책을 덮지 마시고 단편에도 꼭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핑커튼 양의 대재앙」으로 넘어가 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데요. 길이는 짧지만 뮤리얼 스파크식 통찰력과 냉소, 유머가 훌륭하게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신경증과 이에 대한 편견 혹은 낙인은 뮤리얼 스파크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거듭 다뤘던 주제인데, 『운전석의 여자』와 이러한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이를 훨씬 더 가볍고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끝으로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운전석의 여자』를 통해 뮤리얼 스파크의 매력을 발견하는 독자분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래서 국내에 뮤리얼 스파크의 더 많은 작품이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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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좋은 뮤리얼 스파크의 다른 작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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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문학동네)
뮤리얼 스파크의 대표작으로, 1930년대 여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학교 선생인 진 브로디는 자신이 지금 전성기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는 인물입니다. 여성 스스로 자신을 '전성기'라고 평하는 일은 다소 드문 일이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가 말하는 전성기는 커리어의 고점을 향해 내달리는 순간, 혹은 정점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순간이 아닌 학생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고, 독창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죠. 한편, 그는 타고난 파시스트이며, 자신만의 기준을 강하게 강조하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저자는 브로디 선생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샌디'라는 아이를 통해 보여줍니다. 스파크는 이 작품에서도 소설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서술 기법을 채택해요. 샌디와 브로디, 전지적 화자의 관점을 교차하며, 중심이 되는 이야기 위에 인물 각자가 쓴 새로운 소설을 층층이 쌓아 올리죠. 이처럼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스파크 특유의 서사 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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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얼 스파크 지음, 김수영 옮김 (푸른사상)
《메멘토 모리》는 1959년 처음 발표된 소설로, 한국에서는 김수영 시인이 마지막으로 번역한 작품으로 소개 되었습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말라)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익명의 협박 전화를 받은 영국 상류층 노인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여러 감정들을 묘사한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소재를 상기시키고 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유명 시인의 번역으로 한국에 알려졌지만, 작품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책이기에 많은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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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읽기 행동 with 사단법인 아디
들불에서 활동가와 연구자, 대중 독자를 잇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연대하는 책 읽기〉를 진행합니다. 첫 읽기 행동은 사단법인 아디와 함께 하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읽기 행동'으로, 아디에서 발간한 자료집을 포함하여 총 여섯 권의 책을 함께 읽습니다.
- 일시: 12월 21일 목요일 오후 8시 (120분)
- 장소: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6층, C6-30 - 함께 읽을 책: 《아무도 그녀들에게 묻지 않았다》(2020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
- 일시: 12월 27일부터 1월 24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
🎨 저자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기분은 무슨 색일까?》 워크숍
멘탈스타일리스트 비잉벨 님의 책을 토대로 내 마음의 다채로운 색깔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성과를 중심으로 회고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올해는 내 마음도 함께 회고해보면 어떨까요? 연말을 맞아 일하는 마음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 드립니다.
- 일시: 12월 13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120분)
- 장소: 강남역 도보 3분 거리의 공간 - 도서 제공
- 컬러 명상 가이드
- 나만의 색 이름 붙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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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불레터 구독자 이벤트!(with 시공사)
들불은 지난 4월, 루이즈 글릭의 작품 5권을 함께 읽는 워크숍을 진행했었는데요. 12월,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을 끝으로 글릭의 시집이 완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기념해 시공사에서는 정은귀 역자와 함께 하는 루이즈 글릭 기념 강연회를 준비했다고 해요. 들불레터 구독 인증을 하시면 해당 강연회에 50% 할인된 금액으로 참석하실 수 있다고 하니,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메일함에 도착한 들불레터를 캡쳐하여 해당 이미지를 신청폼 - '도서 구매 인증' 항목에 업로드해 주세요. 구독 인증을 하시면 참가비의 50%를 할인받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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